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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7권, 세종 17년 3월 13일 을유 2번째기사 1435년 명 선덕(宣德) 10년

사재감 정 변효문을 보내어 명나라 사신에게 예의를 묻는 어찰조목을 주다

사재감 정(司宰監正) 변효문(卞孝文)을 보내어 명나라 사신에게 예의를 묻는 어찰사목(御札事目)을 주었다.

"1. 고려 위조(僞朝) 때에 명나라 사신이 조서(詔書)를 가지고 오매, 왕이 친히 향(香)을 올리고자 하였더니, 명나라 사신이 말하기를, ‘왕이 친히 향을 올린다는 의는 없다. ’고 하였다. 그러기에, 우리 태조태종께서 조서를 맞이했을 때 모두 친히 향을 올리신 적이 없고, 내가 고명(誥命)을 받았을 때에도 역시 향을 올리지 않았는데, 그 뒤에 인종(仁宗)의 즉위 조서(卽位詔書)와 현 황제를 태자(太子)에 봉한 조서를 받았을 때 내가 친히 향을 올린 바 있으나, 한결같이 번국(藩國)의 예의에 의하여 하였던 것인데, 이제 사신이 역시 친히 향을 올릴 필요가 없다고 하니, 이로 미루어 볼진대, 고려 때의 명나라 사신의 말은 반드시 어떤 근거가 있을 것이니, 이제 이러한 고사에 의하여 친히 향을 올리지 않는 것이 어떤가.

1. 번국 예의에는 조서를 맞이할 경우에는 조복(朝服)을 입고, 사물(賜物)을 받을 때는 시복(時服)을 입는데, 사신도 말하기를, ‘조서를 맞는 것은 큰 일이나, 칙서를 받는 것은 작은 일이라.’ 하였다 하니, 금번에 예를 행함에 있어 영조례(迎詔禮)를 마친 다음, 사신은 들어가 쉬고, 나는 막차(幕次)로 들어가되 백관은 근정문으로 나와 시복으로 갈아입고는 도로 뜰로 들어가서, 사신이 나온 뒤에 수칙례(受勅禮)를 행하는 것이 어떤가. 관면(冠冕)을 갖추고 고두례(叩頭禮)를 행하게 되면 몹시 불편도 하려니와, 이마가 땅에서 3, 4 치[寸] 가량 떨어진 것을 사신이 보게 되면 반드시 웃을 것이다. 시복으로 갈아입는다면 이런 염려는 없을 것이나, 만약에 갈아입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진대, 그대로 조복 차림으로 칙서를 받고, 가능하다면 고두례를 제폐하고 다만 부복만을 행하고 일어나는 것도 옳을 것이다. 또 번국의 예의에는 또한 고두례란 것이 없다.

1. 우리 태조께서 명나라 사신을 접견할 때 황제의 문안을 묻는 예를 반드시 먼저 행한 것이 실록(實錄)에 갖추 실려 있고, 본조의 육전에도 역시 외신(外臣)이 황제의 문안을 묻는 예가 실려 있으며, 이제 사신도 역시 문상례(門上禮)를 말하고 있으니, 금번에 임시 예를 행해야 되겠는가, 번국 예의에 없는 것이니 이 예는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67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19면
  • 【분류】
    외교-명(明) / 역사-전사(前史)

○遣司宰監正卞孝文, 問禮於使臣, 授御札事目:

一。 高麗僞朝時, 使持詔命而來, 其王欲親上香, 使曰: "王無親上香之義。" 是以我太祖太宗迎詔之時, 皆不親上香, 予受誥命, 亦不親上香。 厥後受仁宗卽位詔, 今上封太子詔, 予親上香, 一依藩國禮儀也。 今使臣亦曰: "不必親上香。" 以此觀之, 高麗使之言, 必有所據。 今依故事, 不親上香何如? 一。 藩國禮儀, 迎詔則朝服, 受賜時則時服。 使臣亦曰: "迎詔, 大事; 受勑, 小事。" 今之行禮, 迎詔禮畢, 使臣入歇, 予入幕次, 百官出勤政門, 改着時服, 還入庭, 使臣出後, 行受勑禮何如? 冠冕而行叩頭禮, 甚不便也。 顙去地三四寸許, 使臣見之, 必笑也。 改著時服, 則無此慮也。 如曰: "改着不可也, 仍朝服而受勑可。", 則除叩頭, 而只行俯伏興可也。 且藩國儀, 亦無叩頭禮。 一。 我太祖使, 必先行問上禮, 實錄具載其事, 本朝《六典》, 亦載外臣問上之禮。 今使臣亦言問上禮, 今權行此禮乎? 蕃(圖)〔國〕 儀所無, 不行此禮乎?


  • 【태백산사고본】 21책 67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19면
  • 【분류】
    외교-명(明)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