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59권, 세종 15년 3월 10일 계해 5/5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지신사 안숭선이 김청과 더불어 파저강을 토벌하는 성죄방목을 초하여 아뢰다
국역
지신사 안숭선이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 김청(金聽)과 더불어 파저강을 토벌하는 성죄방목(聲罪榜目)049) 을 초하여 아뢰었다. 그 말에 이르기를,
"조선국 평안도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 최윤덕은 현재 변경의 분란으로 인하여 직책을 담당하고, 공경히 왕명을 받들어 이 방면을 제어하노라. 너희 파저강 등처에는 올량합(兀良哈) 등의 무리가 흩어져 살고, 경계가 서로 연하여 이따금 본도(本道)의 변군(邊郡)인 강계·여연 등 고을에 이르러 양식과 간장 등의 물건을 구걸하면, 청구함에 따라 즉시 구제해 주고, 일찍이 거절하지 않은 지가 여러 해 되었는데, 무슨 혐의와 틈이 있어서 떼를 지어 야인 올적합의 모양을 가장하고 강계·여연 등의 고을을 침범하여, 인민과 마소 등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하여, 아들은 아버지를 잃고, 아내는 남편을 잃게 하였으니, 그 참혹한 피해가 심하였다. 장차 군마(軍馬)를 정비하여 바로 도적의 소굴에 닿아서 적괴(賊魁)를 사로잡아 죄를 처치하고자 한다. 지금 올량합 등이 분(憤)을 품은 이유의 현저한 일을, 인해 조목에 따라 뒤에 기록하니, 모름지기 방(榜)에 이르러 보기를 바란다.
1. 너희들이 사로잡아 간 군민(軍民)이 변군(邊郡)에 도망해 온 것을, 그 그본을 심문하여 중국에 매인 군정이면 관리를 시켜 중국으로 풀어 보내고, 본적이 본국 사람이면 그대로 본업(本業)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으니, 너희들을 위한 계책으로는 깊이 뉘우쳐서 다시 전과 같은 잘못된 일을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이를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분함을 품고 원망을 맺아서, 일차는 홍희(洪熙) 원년 윤7월에 천호(千戶) 동발탑(童孛塔) 등이 와서 말하기를, ‘도망해 온 인구를 돌려보내지 않을 것 같으면 강가에 사는 인민들을 노략해 가져가겠다. ’고 하고, 본년 11월에 올량합 장삼보(張三保)가 강을 지나 와서 말하기를, ‘도망해 온 인구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겨울에는 인민들이 성안으로 들어가서 감히 침범하지 못할지라도, 여름 농번기(農繁期)에 인민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에 강가에 와서 사람을 사로잡기가 진실로 어렵지 않다. ’고 하였으며, 일차는 선덕(宣德) 원년 6월 일에 건주위 도사(建州衛都司) 이만주(李滿住)가 지휘 임흑노(林黑奴)를 보내어 앞서 와서 분을 내어 말하기를, ‘도망해 온 인구를 즐겨 돌려보내지 않으면, 장차 너희 나라 강가의 주민들을 몇 배로 사로잡아서, 멀고 깊은 곳에 사는 올적합 지방에 전매(轉賣)하겠다. ’고 말을 마치고 돌아갔다. 일차는 선덕 7년 7월 일에 지휘 임합라(林哈剌) 등 9명이 이만주의 비문(批文)을 가지고 여연에 이르러서 도망해 온 인구를 찾기를 요구하고 돌아갔고, 일차는 금년 8월 일에 전항(前項)의 임합라 5명이 여연군 강가에 이르러 벼를 베는 박강금(朴江金)을 잡아 묶어서 소리쳐 말하기를, ‘우리의 노비를 너희 나라에서 수용해 두고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지금 이 사람을 잡아가서 우리의 노비가 있는 곳을 묻겠다. ’고 설파하고 돌아갔는데, 금년 11월 초7일에 박강금(朴江金)이 도망해 돌아와서 고하기를, ‘임합라의 집에서 머무르는 우리 나라의 말을 통하는 여자 만월(萬月)의 말에, 「강물이 얼면 임합라가 인민을 노략하고자 한다.」 하고, 임합라가 강금(江金)에게 말하기를, 「안심하고 여기에 있으면, 너의 부모 처자도 잡아 오겠다.」고 한다.’ 하였다니, 이와 같이 여러 해에 쌓인 분함을 머금고 지금 올적합의 모양을 가장한 것이다.
1. 알목하(斡木河) 주민이 말하기를, ‘조선국(朝鮮國)의 여연군(閭延郡)을 소란하게 한 홀라온 올적합은 다만 40명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이만주의 관하에 매인 사람으로서, 떼를 지어 인도하여 도둑질하고는 거짓 홀라온을 칭탁하였다. ’고 하며,
1. 도둑 3명이 얼굴에 거짓 자형(刺形)을 그리고, 소보리 동원(小甫里洞原) 지방에 이르러 새벽밥 먹을 때에, 눈물[雪水]로 씻어 먹으로 그린 자형(刺形)을 다 없앴으니, 그 간사함이 현저하다.
1. 알목하에 머무르는 지휘 범찰(凡察)의 집 사람의 말에, ‘알타리 올량합(斡朶里兀良哈) 등이 이르기를, 「여연 근처에 내왕하여 길을 아는 파저강에 사는 사람들이 홀라온 올적합을 인도하여 도둑질하고 돌아오다가 흠차 내관(欽差內官) 장(張)을 만났는데, 장(張)이 너희들의 노략한 사람과 물건을 우리가 직접 보고 그대로 둘 수 없으니, 마소와 재물을 제외하고 모두 돌려보내라.」고 하였는데, 어떤 도적들이, 나이가 젊은 부녀는 그 집으로 데리고 가고, 어리고 약한 남녀는 숨기고 돌려 보내지 않았다. ’고 한다.
1. 도적들이 돌아가다가 파저강에 이르니, 어떤 올량합 두 명이 맞이해 보고 위로하며 말하기를, ‘네가 조선에 도착하였을 적에, 우리는 네가 죽어서 어느 곳에 있는가 하고 쌀을 가지고 문복(問卜)하였더니, 지금 살아 돌아오니, 기쁘다. ’고 하며, 다 술과 고기를 대접하기를 마쳤으며,
1. 장 대인(張大人)이 일컫기를, ‘사람의 모양은 수염이 있고 반쯤 희며, 조선 말을 잘 통하는 사람이라. ’고 한다.
1. 임합라(林哈剌)의 아내가 말하기를, ‘우리 집 종 6명이 도망해 갔는데 우리에게 돌려주지 아니하여 마음이 괴롭더니, 지금 올적합들이 조선에 이르러 사람과 물건을 죽이고 약탈하였으니, 기쁘고 감사하여 하늘을 우러르며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한다. ’고 하였다.
1. 도적들의 말에, ‘조선 사람 송천부(宋天富)는 집이 부유하여 상시로 내왕하면 반드시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외짝눈 이춘부(李春富)는 음식을 즐겨 대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꾸짖으니, 지금 송(宋)의 집은 불태울 필요가 없으나, 이(李)의 집은 모름지기 불태워야 한다. ’고 하였는데, 그때에 이의 집은 과연 불태웠었다.
1.올량합 심아랑합(沈阿郞哈)이 서로 싸울 때에 군중(軍中)에 이르렀는데, 우리 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상시로 내왕하면서 간장을 구걸하였는데, 어찌하여 떼를 지어 도둑질을 하느냐. ’고 하자, 그 사람이 말고삐를 잡고 피하여 갔다.
1. 우리 나라 통사가 여진(女眞) 말로써 안탑고답노(按塔高答奴)를 부르니, 도둑이 대답하기를, ‘고답노는 오지 아니하였고 그 장인이 군중에 와 있다. ’고 하며, 적이 또 이르기를, ‘멧돼지와 잃은 집돼지를 쫓아 이만주 대인(李滿住大人)이 군사를 거느리고 여연성(閭延城)을 향해 떠나서, 너희들을 약탈하고 성(城)을 쳐서 여기에 왔다. ’고 설파하였다. 전항(前項)의 여러가지 일은, 간사한 꾀와 속이는 계책임을 밝히 알 수 있다.
1. 중국의 군사와 백성들이 불행히 사로잡혀서, 종이 되어 부림을 당하게 되니, 부모 처자를 바라는 마음은 실로 가엾다. 능히 도망해 나오면 사실을 계문(啓聞)하고 인해 원적지(原籍地)로 옮겨 보내겠다.
1. 본국의 변민(邊民)으로서 혹 야인들의 겁탈을 당하였거나, 혹은 어떤 일로 죄를 짓고 망명하여 오랫동안 오랑캐속에 있는 자가 능히 도망해 돌아와서 직업을 회복하면, 각각 원적지에 돌아가게 하고 원죄(原罪)는 논하지 않겠다. 위의 말을 자세히 알지어다."
하였다.
- [註 049] 성죄방목(聲罪榜目) : 죄를 성명(聲明)하는 게시문(揭示文).
원문
○知申事安崇善, 與判承文院事金聽, 草征婆猪聲罪牓目以啓。 其辭曰:
朝鮮國 平安道兵馬都節制使崔閏德, 見爲邊釁事, 當職敬奉王命, 控制方面。 惟爾婆猪江等處散住兀良哈等類, 境地相連, 往往到於本道邊郡江界ㆍ閭延等處, 乞索米糧鹽醬等物, 隨請輒行接濟, 未嘗搪塞, 蓋亦有年于玆矣。 有何嫌隙, 成群粧扮野人 兀狄哈形狀, 入寇江界、閭延等郡, 殺掠人民、馬牛、資産, 孤人之子, 寡人之妻? 其爲酷害滋甚, 將欲整搠軍馬, 直抵賊巢, 擒捉賊魁, 問罪區處。 今將兀良哈等含憤顯著事, 因逐條于後, 須至榜者。
一。 爾等虜到軍民, 逃來邊郡, 審問根脚, 委係上國軍丁, 差官解發; 所籍本國人口, 仍令復業。 爲爾計者, 深自愧悔, 不可復蹈前非。 不此之思, 反行含憤構怨, 一次洪熙元年閏七月日千戶童孛塔等, 到來言說: "逃來人口, 不肯發還, 將江邊人民虜掠將去。" 一次本年十一月日兀良哈 張三保, 過江言說: "逃來人口, 不肯發還。 冬月人民入城, 不敢來侵, 夏月農忙, 人民四散時分, 到來江邊, 虜掠人口, 實爲未難。" 一次宣德元年六月日建州衛都司李滿住, 差指揮林黑奴前來, 發憤言說: "逃來人口, 不肯發還。 將爾國江邊住民倍數虜掠, 轉賣於深遠處, 住兀狄哈地面。" 說罷回去。 一次宣德七年七月日指揮林哈剌等九名, 齎李滿住批文到閭延, 索要逃來人口回去。 一次本年八月日前項林哈剌等五名, 到閭延郡江邊, 將刈禾人朴江金, 捉拿綁縛, 聲言: "我的奴婢, 爾國容留不還, 今捉此人將去, 問我奴婢在處。" 說罷回去。 本年十一月初七日朴江金逃回, 告稱: "林哈剌家住通曉本國語音婦女萬月, 說道: ‘江水氷凍, 林哈剌欲虜掠人口。’ 林哈剌也說江金: ‘安心在此, 爾的父母妻子, 亦也要捉來。’" 有此積年含憤, 今乃詐爲兀狄哈形狀。 一。 斡木河住人說稱: "朝鮮國 閭延郡作耗, 忽剌溫 兀狄哈但四十名, 其餘俱係李滿住管下人, 成群指引作賊, 詐稱忽剌溫。" 一。 賊人三名詐畫面上剌形, 回到小甫里洞原地面, 蓐食時, 以雪水洗墨畫, 盡去剌形, 其詐顯着。 一。 斡木河住指揮凡察家人言: "斡朶里 兀良哈等云: ‘閭延等處來往知路婆猪江住人等, 指引忽剌溫 兀狄哈作賊回還, 遇見欽差內官張, 〔張曰〕: 「發放爾等虜掠人物。 今我撞見, 不可任置。 除牛馬財物外, 人口盡行發還。」 有賊人等將年壯婦女, 放回其家, 幼弱男女, 隱匿不還。’" 一。 賊人等回到婆猪江, 有兀良哈二名迎見賊人慰之云: "爾到朝鮮, 我道爾死在那里, 將米問卜, 今乃生還, 歡喜矣。" 盡饋酒肉訖。 一。 張大人稱云: "人係有髯半白, 朝鮮語音通曉之人。" 一, 林哈剌妻言: "我家奴婢六口逃去, 不肯還, 我好生煩惱。 今有兀狄哈等到(朝解)〔朝鮮〕 殺掠人物, 喜感仰天拱手。" 一。 賊人等言: "朝鮮人宋天富家計富饒, 常時來往必饋餉, 一隻眼人李春富不肯饋餉, 反行打罵。 今也宋家不要燒火, 李家須要燒火。" 其時李家果然燒火。 一。 兀良哈 沈阿郞哈相戰時, 到於軍中, 本國人語曰: "常時來往, 乃至求索鹽醬, 如何結黨作賊?" 其人勒馬避去。 一。 本國通事以女眞言, 喚按塔高答奴, 賊人答云: "高答奴不曾來, 其妻父來在軍中。" 賊又云: "趕野猪失家豚, 李滿住大人, 領兵發向閭延城, 搶掠爾等撇了城子來此。" 如此說罷, 前項逐條奸謀詭計, 灼然可知。 一。 中國軍民不幸被虜, 爲奴使喚, 使父母妻子懸望, 實爲可憐, 有能逃脫前來, 將啓聞事因, 轉發原籍。 一。 本國邊民, 或被野人搶劫, 或爲事匿罪亡命, 久在虜中者, 有能逃還復業, 各歸原籍, 不論原罪。 右仰知悉。
세종실록59권, 세종 15년 3월 10일 계해 5/5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지신사 안숭선이 김청과 더불어 파저강을 토벌하는 성죄방목을 초하여 아뢰다
국역
지신사 안숭선이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 김청(金聽)과 더불어 파저강을 토벌하는 성죄방목(聲罪榜目)049) 을 초하여 아뢰었다. 그 말에 이르기를,
"조선국 평안도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 최윤덕은 현재 변경의 분란으로 인하여 직책을 담당하고, 공경히 왕명을 받들어 이 방면을 제어하노라. 너희 파저강 등처에는 올량합(兀良哈) 등의 무리가 흩어져 살고, 경계가 서로 연하여 이따금 본도(本道)의 변군(邊郡)인 강계·여연 등 고을에 이르러 양식과 간장 등의 물건을 구걸하면, 청구함에 따라 즉시 구제해 주고, 일찍이 거절하지 않은 지가 여러 해 되었는데, 무슨 혐의와 틈이 있어서 떼를 지어 야인 올적합의 모양을 가장하고 강계·여연 등의 고을을 침범하여, 인민과 마소 등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하여, 아들은 아버지를 잃고, 아내는 남편을 잃게 하였으니, 그 참혹한 피해가 심하였다. 장차 군마(軍馬)를 정비하여 바로 도적의 소굴에 닿아서 적괴(賊魁)를 사로잡아 죄를 처치하고자 한다. 지금 올량합 등이 분(憤)을 품은 이유의 현저한 일을, 인해 조목에 따라 뒤에 기록하니, 모름지기 방(榜)에 이르러 보기를 바란다.
1. 너희들이 사로잡아 간 군민(軍民)이 변군(邊郡)에 도망해 온 것을, 그 그본을 심문하여 중국에 매인 군정이면 관리를 시켜 중국으로 풀어 보내고, 본적이 본국 사람이면 그대로 본업(本業)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으니, 너희들을 위한 계책으로는 깊이 뉘우쳐서 다시 전과 같은 잘못된 일을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이를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분함을 품고 원망을 맺아서, 일차는 홍희(洪熙) 원년 윤7월에 천호(千戶) 동발탑(童孛塔) 등이 와서 말하기를, ‘도망해 온 인구를 돌려보내지 않을 것 같으면 강가에 사는 인민들을 노략해 가져가겠다. ’고 하고, 본년 11월에 올량합 장삼보(張三保)가 강을 지나 와서 말하기를, ‘도망해 온 인구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겨울에는 인민들이 성안으로 들어가서 감히 침범하지 못할지라도, 여름 농번기(農繁期)에 인민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에 강가에 와서 사람을 사로잡기가 진실로 어렵지 않다. ’고 하였으며, 일차는 선덕(宣德) 원년 6월 일에 건주위 도사(建州衛都司) 이만주(李滿住)가 지휘 임흑노(林黑奴)를 보내어 앞서 와서 분을 내어 말하기를, ‘도망해 온 인구를 즐겨 돌려보내지 않으면, 장차 너희 나라 강가의 주민들을 몇 배로 사로잡아서, 멀고 깊은 곳에 사는 올적합 지방에 전매(轉賣)하겠다. ’고 말을 마치고 돌아갔다. 일차는 선덕 7년 7월 일에 지휘 임합라(林哈剌) 등 9명이 이만주의 비문(批文)을 가지고 여연에 이르러서 도망해 온 인구를 찾기를 요구하고 돌아갔고, 일차는 금년 8월 일에 전항(前項)의 임합라 5명이 여연군 강가에 이르러 벼를 베는 박강금(朴江金)을 잡아 묶어서 소리쳐 말하기를, ‘우리의 노비를 너희 나라에서 수용해 두고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지금 이 사람을 잡아가서 우리의 노비가 있는 곳을 묻겠다. ’고 설파하고 돌아갔는데, 금년 11월 초7일에 박강금(朴江金)이 도망해 돌아와서 고하기를, ‘임합라의 집에서 머무르는 우리 나라의 말을 통하는 여자 만월(萬月)의 말에, 「강물이 얼면 임합라가 인민을 노략하고자 한다.」 하고, 임합라가 강금(江金)에게 말하기를, 「안심하고 여기에 있으면, 너의 부모 처자도 잡아 오겠다.」고 한다.’ 하였다니, 이와 같이 여러 해에 쌓인 분함을 머금고 지금 올적합의 모양을 가장한 것이다.
1. 알목하(斡木河) 주민이 말하기를, ‘조선국(朝鮮國)의 여연군(閭延郡)을 소란하게 한 홀라온 올적합은 다만 40명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이만주의 관하에 매인 사람으로서, 떼를 지어 인도하여 도둑질하고는 거짓 홀라온을 칭탁하였다. ’고 하며,
1. 도둑 3명이 얼굴에 거짓 자형(刺形)을 그리고, 소보리 동원(小甫里洞原) 지방에 이르러 새벽밥 먹을 때에, 눈물[雪水]로 씻어 먹으로 그린 자형(刺形)을 다 없앴으니, 그 간사함이 현저하다.
1. 알목하에 머무르는 지휘 범찰(凡察)의 집 사람의 말에, ‘알타리 올량합(斡朶里兀良哈) 등이 이르기를, 「여연 근처에 내왕하여 길을 아는 파저강에 사는 사람들이 홀라온 올적합을 인도하여 도둑질하고 돌아오다가 흠차 내관(欽差內官) 장(張)을 만났는데, 장(張)이 너희들의 노략한 사람과 물건을 우리가 직접 보고 그대로 둘 수 없으니, 마소와 재물을 제외하고 모두 돌려보내라.」고 하였는데, 어떤 도적들이, 나이가 젊은 부녀는 그 집으로 데리고 가고, 어리고 약한 남녀는 숨기고 돌려 보내지 않았다. ’고 한다.
1. 도적들이 돌아가다가 파저강에 이르니, 어떤 올량합 두 명이 맞이해 보고 위로하며 말하기를, ‘네가 조선에 도착하였을 적에, 우리는 네가 죽어서 어느 곳에 있는가 하고 쌀을 가지고 문복(問卜)하였더니, 지금 살아 돌아오니, 기쁘다. ’고 하며, 다 술과 고기를 대접하기를 마쳤으며,
1. 장 대인(張大人)이 일컫기를, ‘사람의 모양은 수염이 있고 반쯤 희며, 조선 말을 잘 통하는 사람이라. ’고 한다.
1. 임합라(林哈剌)의 아내가 말하기를, ‘우리 집 종 6명이 도망해 갔는데 우리에게 돌려주지 아니하여 마음이 괴롭더니, 지금 올적합들이 조선에 이르러 사람과 물건을 죽이고 약탈하였으니, 기쁘고 감사하여 하늘을 우러르며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한다. ’고 하였다.
1. 도적들의 말에, ‘조선 사람 송천부(宋天富)는 집이 부유하여 상시로 내왕하면 반드시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외짝눈 이춘부(李春富)는 음식을 즐겨 대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꾸짖으니, 지금 송(宋)의 집은 불태울 필요가 없으나, 이(李)의 집은 모름지기 불태워야 한다. ’고 하였는데, 그때에 이의 집은 과연 불태웠었다.
1.올량합 심아랑합(沈阿郞哈)이 서로 싸울 때에 군중(軍中)에 이르렀는데, 우리 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상시로 내왕하면서 간장을 구걸하였는데, 어찌하여 떼를 지어 도둑질을 하느냐. ’고 하자, 그 사람이 말고삐를 잡고 피하여 갔다.
1. 우리 나라 통사가 여진(女眞) 말로써 안탑고답노(按塔高答奴)를 부르니, 도둑이 대답하기를, ‘고답노는 오지 아니하였고 그 장인이 군중에 와 있다. ’고 하며, 적이 또 이르기를, ‘멧돼지와 잃은 집돼지를 쫓아 이만주 대인(李滿住大人)이 군사를 거느리고 여연성(閭延城)을 향해 떠나서, 너희들을 약탈하고 성(城)을 쳐서 여기에 왔다. ’고 설파하였다. 전항(前項)의 여러가지 일은, 간사한 꾀와 속이는 계책임을 밝히 알 수 있다.
1. 중국의 군사와 백성들이 불행히 사로잡혀서, 종이 되어 부림을 당하게 되니, 부모 처자를 바라는 마음은 실로 가엾다. 능히 도망해 나오면 사실을 계문(啓聞)하고 인해 원적지(原籍地)로 옮겨 보내겠다.
1. 본국의 변민(邊民)으로서 혹 야인들의 겁탈을 당하였거나, 혹은 어떤 일로 죄를 짓고 망명하여 오랫동안 오랑캐속에 있는 자가 능히 도망해 돌아와서 직업을 회복하면, 각각 원적지에 돌아가게 하고 원죄(原罪)는 논하지 않겠다. 위의 말을 자세히 알지어다."
하였다.
- [註 049] 성죄방목(聲罪榜目) : 죄를 성명(聲明)하는 게시문(揭示文).
원문
○知申事安崇善, 與判承文院事金聽, 草征婆猪聲罪牓目以啓。 其辭曰:
朝鮮國 平安道兵馬都節制使崔閏德, 見爲邊釁事, 當職敬奉王命, 控制方面。 惟爾婆猪江等處散住兀良哈等類, 境地相連, 往往到於本道邊郡江界ㆍ閭延等處, 乞索米糧鹽醬等物, 隨請輒行接濟, 未嘗搪塞, 蓋亦有年于玆矣。 有何嫌隙, 成群粧扮野人 兀狄哈形狀, 入寇江界、閭延等郡, 殺掠人民、馬牛、資産, 孤人之子, 寡人之妻? 其爲酷害滋甚, 將欲整搠軍馬, 直抵賊巢, 擒捉賊魁, 問罪區處。 今將兀良哈等含憤顯著事, 因逐條于後, 須至榜者。
一。 爾等虜到軍民, 逃來邊郡, 審問根脚, 委係上國軍丁, 差官解發; 所籍本國人口, 仍令復業。 爲爾計者, 深自愧悔, 不可復蹈前非。 不此之思, 反行含憤構怨, 一次洪熙元年閏七月日千戶童孛塔等, 到來言說: "逃來人口, 不肯發還, 將江邊人民虜掠將去。" 一次本年十一月日兀良哈 張三保, 過江言說: "逃來人口, 不肯發還。 冬月人民入城, 不敢來侵, 夏月農忙, 人民四散時分, 到來江邊, 虜掠人口, 實爲未難。" 一次宣德元年六月日建州衛都司李滿住, 差指揮林黑奴前來, 發憤言說: "逃來人口, 不肯發還。 將爾國江邊住民倍數虜掠, 轉賣於深遠處, 住兀狄哈地面。" 說罷回去。 一次宣德七年七月日指揮林哈剌等九名, 齎李滿住批文到閭延, 索要逃來人口回去。 一次本年八月日前項林哈剌等五名, 到閭延郡江邊, 將刈禾人朴江金, 捉拿綁縛, 聲言: "我的奴婢, 爾國容留不還, 今捉此人將去, 問我奴婢在處。" 說罷回去。 本年十一月初七日朴江金逃回, 告稱: "林哈剌家住通曉本國語音婦女萬月, 說道: ‘江水氷凍, 林哈剌欲虜掠人口。’ 林哈剌也說江金: ‘安心在此, 爾的父母妻子, 亦也要捉來。’" 有此積年含憤, 今乃詐爲兀狄哈形狀。 一。 斡木河住人說稱: "朝鮮國 閭延郡作耗, 忽剌溫 兀狄哈但四十名, 其餘俱係李滿住管下人, 成群指引作賊, 詐稱忽剌溫。" 一。 賊人三名詐畫面上剌形, 回到小甫里洞原地面, 蓐食時, 以雪水洗墨畫, 盡去剌形, 其詐顯着。 一。 斡木河住指揮凡察家人言: "斡朶里 兀良哈等云: ‘閭延等處來往知路婆猪江住人等, 指引忽剌溫 兀狄哈作賊回還, 遇見欽差內官張, 〔張曰〕: 「發放爾等虜掠人物。 今我撞見, 不可任置。 除牛馬財物外, 人口盡行發還。」 有賊人等將年壯婦女, 放回其家, 幼弱男女, 隱匿不還。’" 一。 賊人等回到婆猪江, 有兀良哈二名迎見賊人慰之云: "爾到朝鮮, 我道爾死在那里, 將米問卜, 今乃生還, 歡喜矣。" 盡饋酒肉訖。 一。 張大人稱云: "人係有髯半白, 朝鮮語音通曉之人。" 一, 林哈剌妻言: "我家奴婢六口逃去, 不肯還, 我好生煩惱。 今有兀狄哈等到(朝解)〔朝鮮〕 殺掠人物, 喜感仰天拱手。" 一。 賊人等言: "朝鮮人宋天富家計富饒, 常時來往必饋餉, 一隻眼人李春富不肯饋餉, 反行打罵。 今也宋家不要燒火, 李家須要燒火。" 其時李家果然燒火。 一。 兀良哈 沈阿郞哈相戰時, 到於軍中, 本國人語曰: "常時來往, 乃至求索鹽醬, 如何結黨作賊?" 其人勒馬避去。 一。 本國通事以女眞言, 喚按塔高答奴, 賊人答云: "高答奴不曾來, 其妻父來在軍中。" 賊又云: "趕野猪失家豚, 李滿住大人, 領兵發向閭延城, 搶掠爾等撇了城子來此。" 如此說罷, 前項逐條奸謀詭計, 灼然可知。 一。 中國軍民不幸被虜, 爲奴使喚, 使父母妻子懸望, 實爲可憐, 有能逃脫前來, 將啓聞事因, 轉發原籍。 一。 本國邊民, 或被野人搶劫, 或爲事匿罪亡命, 久在虜中者, 有能逃還復業, 各歸原籍, 不論原罪。 右仰知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