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55권, 세종 14년 1월 1일 신유 2/3 기사 / 1432년 명 선덕(宣德) 7년
근정전 영외 섬돌에서 구식(救食)하였으나 일식하지 않다
국역
승정원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전에 구식(救食)할 때에는 시위하는 여러 신하들이 군사들과 더불어 좌우로 열을 나누었기 때문에, 어떤 이는 해를 등지고 서게 되었다. 오늘의 일식은 정오(正午)에 있으니, 서쪽에 서 있는 자는 정오를 지나면 당연히 해를 등지게 될 것이다. 마땅히 합쳐서 동쪽에서 시위하게 하라."
하였다. 임금이 소복(素服)차림으로 근정전 영외(楹外)의 섬돌 위에 나아가서 의례(儀禮)대로 구식하였으나 마침내 일식하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입내하여 서운관(書雲觀)의 관원에 명하여 종일토록 측후(測候)하게 하였다. 북경에 갔다가 돌아온 통사(通事) 이연(李讌)을 불러서 묻기를,
"중국에서도 또한 원일에 일식이 있겠다고 말하더냐."
하니, 대답하기를,
"중국에서도 역시 원일 오시(午時)에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였다.
원문
세종 14년 (1432) 1월 1일
국역
승정원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전에 구식(救食)할 때에는 시위하는 여러 신하들이 군사들과 더불어 좌우로 열을 나누었기 때문에, 어떤 이는 해를 등지고 서게 되었다. 오늘의 일식은 정오(正午)에 있으니, 서쪽에 서 있는 자는 정오를 지나면 당연히 해를 등지게 될 것이다. 마땅히 합쳐서 동쪽에서 시위하게 하라."
하였다. 임금이 소복(素服)차림으로 근정전 영외(楹外)의 섬돌 위에 나아가서 의례(儀禮)대로 구식하였으나 마침내 일식하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입내하여 서운관(書雲觀)의 관원에 명하여 종일토록 측후(測候)하게 하였다. 북경에 갔다가 돌아온 통사(通事) 이연(李讌)을 불러서 묻기를,
"중국에서도 또한 원일에 일식이 있겠다고 말하더냐."
하니, 대답하기를,
"중국에서도 역시 원일 오시(午時)에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였다.
원문
원본
세종 14년 (1432)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