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26권, 세종 6년 11월 4일 을해 1/2 기사 /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 《시경》 시월편을 강하다
국역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 《시경(詩經)》 시월편(十月篇)을 강하였다. 주전(朱傳)의
"일식과 월식은 비록 떳떳한 돗수가 있으나, 임금이 덕을 닦아 정치를 잘 하면 식(食)이 일어날 것도 일어나지 아니한다."
는 데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 말이 진실로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일찍이 《삼국사략(三國史略)》을 보니, 신라에는 일식이 있었는데, 백제에서는 쓰지 아니하였고, 백제에는 일식이 있었는데, 신라에는 쓰지 아니하였다. 어찌 신라에서는 일식이 있는데, 백제(百濟)에는 일식이 없었다 하겠는가. 아마도 사관의 기록이 자상한 것과 소략한 것이 다르기 때문인가 한다."
하니, 시강(侍講) 김돈(金墩)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음(陰)·청(晴)이 달랐으면 달랐지 어찌 노(魯)나라에서는 일식이 있었으면서 제(齊)나라에서는 일식이 없었으며, 제나라에서는 일식이 있었으면서 노나라에서는 일식이 없었을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하였다.
원문
세종 6년 (1424) 11월 4일
국역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 《시경(詩經)》 시월편(十月篇)을 강하였다. 주전(朱傳)의
"일식과 월식은 비록 떳떳한 돗수가 있으나, 임금이 덕을 닦아 정치를 잘 하면 식(食)이 일어날 것도 일어나지 아니한다."
는 데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 말이 진실로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일찍이 《삼국사략(三國史略)》을 보니, 신라에는 일식이 있었는데, 백제에서는 쓰지 아니하였고, 백제에는 일식이 있었는데, 신라에는 쓰지 아니하였다. 어찌 신라에서는 일식이 있는데, 백제(百濟)에는 일식이 없었다 하겠는가. 아마도 사관의 기록이 자상한 것과 소략한 것이 다르기 때문인가 한다."
하니, 시강(侍講) 김돈(金墩)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음(陰)·청(晴)이 달랐으면 달랐지 어찌 노(魯)나라에서는 일식이 있었으면서 제(齊)나라에서는 일식이 없었으며, 제나라에서는 일식이 있었으면서 노나라에서는 일식이 없었을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하였다.
원문
원본
세종 6년 (1424) 1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