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세종실록7권, 세종 2년 1월 21일 경신 3/5 기사 /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효자·절부·의부·순손의 실적을 찾아 아뢰게 하다

신역 바로가기

국역

임금이 처음 즉위하여 중외에 교서를 내리어, 효자·절부(節婦)·의부(義夫)·순손(順孫)이 있는 곳을 찾아 실적(實迹)으로 아뢰라고 했더니, 무릇 수백인이 되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그 중에 특행(特行)이 있는 자를 추리라."

하고, 정초를 명하여 예조에 올린 행장 기록을 가지고 좌·우 의정과 의논한 결과 무릇 41인이었다. 대흥 호장(大興戶長) 이성만(李成萬)은 그 아우 순(順)과 더불어 부모를 잘 섬겨 마음을 다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고, 매양 봄 가을에는 주식(酒食)을 갖추어 부모의 사랑하는 친구를 맞아서 연락(宴樂)하므로써 그 마음을 즐겁게 하고, 죽은 후에는, 형은 어머니의 무덤을 지키고, 아우는 아버지의 무덤을 지키며, 매양 아침 저녁에 형제가 서로 가고 오고 하여 한 상에서 같이 먹고, 비록 한 개의 음식을 얻어도 반드시 함께 먹었다. 해미 선군(海美船軍) 임상좌(林上左)는 어머니가 죽으매 무덤을 지키고, 집이 가난하매 신을 만들어 제사를 차렸다. 박유(朴蕤)는, 어머니가 죽으매, 그 무덤을 지키고, 그 아내는 품을 팔아 제수를 마련했고, 간혹 이것도 되지 못하면, 채소로 제사지냈다. 인동(仁同)의 김윤(金閏)은 바다의 수자리[戍]에 가서 돌아오지 못한 때에, 그 어머니가 역병을 앓았는데, 아들들이 다 피하였거늘, 윤이 마침 수자리에서 돌아와 간호했으며,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몸소 등에 업어 장사지내고, 매양 번들게 되면, 사람을 사서 대신 가게 하여 3년 동안 무덤을 지켰다. 진원(珍原) 학생(學生) 이격(李格)의 처 심씨(沈氏)는 나이 겨우 7세에 아버지가 죽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일찍 죽었음을 통한하여 빈소 곁에 여막을 치고 제사지내기를 생시와 같이 하였다. 공주(公州)에 거주하는 현감(縣監) 정자구(鄭自丘)의 처 고씨(高氏)는 나이 33세 지아비가 죽었는데,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고자 했으나, 그 명을 좇지 않고 무덤 곁에 집을 짓고, 매양 시속 명절날이면 반드시 친히 스스로 제사를 지냈다. 면천 소감(沔川少監) 심인부(沈仁富)의 처 경씨(耿氏)는 나이 28세에 지아비가 죽었으매, 온 가족이 그 뜻을 빼앗고자 하거늘, 울면서 좇지 않고 지금까지 절개를 지키었다. 서산(瑞山) 사노(私奴) 막금(莫金)의 처 조이[召史]는 나이 24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뭇사람이 다투어 데려가려고 했지만, 좇지 않고 수절했는데, 나이 이미 54세이다. 연산(連山)의 급제(及第) 김문(金問)의 처 허씨(許氏)는 나이 20세에 지아비가 죽었는데, 무덤 곁에 여막을 치고 몸소 조석 상식을 드리어 능히 3년을 마쳤으며, 지금까지 곡읍(哭泣)을 그치지 않고 몸치장을 하지 않았다. 대구(大丘)의 낭장(郞將) 김내(金鼐)의 처 서씨(徐氏)는 나이 24세에 지아비가 죽었는데, 아버지가 개가를 시키고자 했으나, 굳이 거절하고 좇지 않고 지금까지 절개를 지키니, 나이 48세이다. 선산(善山)의 선군(船軍) 조을생(趙乙生)의 처 약가이(藥加伊)는 병자년에 지아비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사생을 알지 못하매, 주육과 냄새나는 나물을 먹지 않고, 부모가 개가시키려 하니, 눈물을 흘리면서 좇지 않았고, 8년이나 되어 그 지아비가 돌아오매 함께 살아 아내의 도리를 다하였다. 학생 김구(金玽)의 처 불비(佛非)는 나이 20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고자 하였으나, 죽기를 맹세하고 좇지 않고 구고(舅姑)를 끝까지 봉양하였다. 함창(咸昌)의 전(前) 권무(權務) 박희준(朴希俊)의 처 김씨는 23세에 지아비가 죽었는데,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고자 하나, 굳세게 회피하고 절개를 지키니, 나이 이미 47세이다. 영천(永川) 낭장(郞將) 이선(李鮮)의 처 정씨(鄭氏)는 나이 24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그, 부모가 개가시키고자 하였으나, 좇지 않았고, 지금까지 고기를 먹지 않았다. 영일(迎日)의 전제공(前提控) 이등(李登)의 처 오씨(吳氏)는 나이 27세에 지아비가 서울에서 죽었는데, 그 시체를 거두어 집 북쪽 산에 장사지내고, 시조모 섬기기를 친정부모 같이 하고, 매양 초하루 보름이면 묘에 나아가 제사를 지냈다. 김해(金海)의 전(前) 녹사(錄事)윤홍도(尹弘道)의 처 배씨(裵氏)는 나이 19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시어머니를 각근(恪勤)하게 섬기고, 시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제사를 지성으로 지냈다. 의령(宜寧)의 학생 심치(沈致)의 처 석씨(石氏)는 나이 20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시어머니를 섬김에 그 효성이 극진했고,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고자 하매, 말하기를,

"남편이 외아들로 일찍 돌아갔으니, 어버이께서 만약 나의 뜻을 빼앗으면, 죽은 이의 병든 어머니를 그 뉘가 봉양하겠습니까."

하고, 명을 좇지 않고 시어머니 섬기기를 더욱 각근히 하여, 매양 시어머니가 출입할 때면 자신이 부축하였다. 합천(陜川)의 전(前) 장흥고 부사(長興庫副使) 장우량(張友良)의 처 한씨(韓氏)는 나이 25세에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버림을 당하여도 수절하며 개가하지 않았고, 시부모가 죽으매 6년 동안 상을 입었고, 기일이면 제사를 지냈다. 전주(全州) 기관(記官) 이경(李瓊)의 처 조이[召史]는 나이 26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시부모를 잘 섬겼고, 시부모가 돌아간 후에는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상을 입고 가산을 기울여 상장(喪葬)에 썼다. 정읍(井邑)의 산원(散員) 진경(陳慶)의 처 유(劉)씨는 나이 30세에 지아비가 왜란에 죽었는데, 지금까지 절개를 지키고 시어머니를 섬겨 효도를 다하였다. 금산(錦山)의 부정(副正) 임영순(林英順)의 처 한(韓)씨는 나이 26세에 지아비가 죽었으나, 지금까지 절개를 지켜 이제 나이 61세이다. 전산원(前散員) 이익(李益)의 처 조이[召史]는 나이 25세에 지아비가 죽었는데, 지금까지 수절하여 나이가 이미 67세이다. 광주(光州)의 별장(別將) 홍전(洪琠)의 처 박씨는 나이 30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시어머니를 효성으로 섬겼는데, 나이 이미 51세이다. 나주(羅州)의 한림(翰林) 조탁(趙琢)의 처 나씨는 나이 24세에 아들 없이 혼자 되었으나, 개가하지 않았다. 태인(泰仁)의 전(前) 사정(司正) 박조(朴慥)의 처 임씨(林氏)는 지아비를 따라 서울에 살았는데, 시어머니가 병들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런데, 밤중에 불이 일어나 위험해지매, 곧 화염중에 뛰어들어 시어머니를 업고 오면서 머리와 팔에 화상을 입었으나, 화는 면하였다. 제주(濟州)의 전(前) 주부(注簿) 문방귀(文邦貴)는 그곳 풍속이 3년상을 행하지 않지만, 병술년에 아버지가 죽었을 때 3년 동안 무덤을 지켰으며, 상제(喪制)는 다 가례(家禮)를 따름으로써 효도의 기풍을 세우니, 제주 사람들이 이를 본받아 무덤을 지킨 자가 3인이요, 3년상을 행한 자가 10여인이나 되었다. 서울 남부(南部)에 거주하는 전(前) 정(正) 권경(權景)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죽어 홀어머니를 모셨는데, 혼정신성[定省]했고, 외출할 때나 돌아올 때는 반드시 고하였으며, 집안의 물건은 감히 마음대로 하지 않고 반드시 어머니께 청한 후에야 쓰며, 만약 희귀한 음식을 보면 반드시 가지고 오고, 만약 어머니가 병에 걸리면 옷과 띠를 풀지 않으며, 의원을 구하여 약을 택해서 들이되, 병이 나을 때가지 계속했다. 중부(中部)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전사례(全思禮)는 아버지가 죽으매, 거적자리[苫]에서 자며 흙덩어리로 베개하고, 매일 범벅죽[飦粥]을 먹으며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3년을 마쳤으며, 어머니를 섬기되, 나갈 때나 돌아올 때면 고하고 혼정신성(昏定晨省)하며, 학문에 부지런하고 조행이 그릇되지 않았다. 공주(公州) 전 판무산현사(判撫山縣事)인 임모(林謩)는 경오년에 왜적 70여 명이 집에 나타났을 때 문을 막아 들어오지 못하게 하다가, 부모가 뒷문으로 나가기를 기다려 함께 피했다. 서천(舒川)의 유인봉(兪仁奉)은 부모를 섬기되, 큰 추위나 더위나 비에도 노고를 꺼리지 않고 봉양할 것을 힘을 다하여 판출(辦出)하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무덤을 6년이나 지켰다. 해미(海美)의 전 별장 임우(林雨)는 병진년·정사년 사이에 왜적이 갑자기 와서 에워쌌는데, 마침 그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있어 혼자서 적을 물리치고 아버지를 업고 산으로 달아나 난을 면하였다. 유학 정효신(鄭孝新)은 나이 13세에 아버지가 죽었는데, 3년간 무덤을 지키었다. 안음(安陰)의 산원(散員) 심전(沈腆)은 무진년에, 왜적이 갑자기 들어와 그 아버지를 잡아 목을 매어 가거늘, 은대(銀帶)와 은괴(銀塊)를 가지고 적중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바꾸어 왔다. 선산(善山)의 학생 전익수(田益修)는 정사년에, 아버지가 전쟁에서 죽으매, 조부 섬기기를 아버지와 같이 하고, 조부가 죽은 후에는 3년간 묘에 여막을 짓고 지켰다. 함창(咸昌)의 유학 신효량(申孝良)은 조부의 무덤을 3년간 지키되 채식만 먹었다. 유학 신효온(申孝溫)은 아버지 상사 3년간에 나물과 과일도 먹지 않고, 어머니와 조모를 섬기되, 봉양도 잘하고 또 공경하였다. 무안(務安)의 생원(生員) 김생우(金生禹)는 부모를 잘 섬기었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6년간 무덤을 지켰으며, 거적자리에서 흙덩이를 베고 잤으며,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살았을 때와 같이 하였다. 해미(海美)의 유학 정안의(鄭安義)는 조모의 무덤을 지켰다. 진주(晉州)의 전(前) 낭장(郞將) 강용진(姜用珍)은 왜적의 침입을 당하여, 목사 박자안(朴自安)과 더불어 싸웠으나 패하고, 말이 지쳐 거의 적에게 잡히었을 때, 그가 탄 말을 목사에게 주어 겨우 면함을 얻었다. 김제(金堤) 전 교수관(交授官) 정곤(鄭坤)은 사재로 서원(書院)을 세웠는데, 고을 사람들은 물론 타향 사람들도 와서 배우기를 원하는 자이면 다 가르쳐 주었다. 광주(光州)의 생원 최보민(崔保民)이 사재로 서원을 세워 생도를 훈도하고 가르쳤다. 임금이 명하여 이성만·이순·임상좌·박유·김윤·문방귀와 이격의 처 심씨, 정자구의 처 고씨, 심인부의 처 경씨, 막금의 처 조이, 김문의 처 허씨, 김내의 처 서씨, 조을생의 처 약가이, 김구의 처 불비, 박희준의 처 김씨, 이선의 처 정씨, 이등의 처 오씨, 윤홍도의 처 배씨, 심치의 처 석씨, 이경의 처 조이, 진경의 처 유씨, 임영순의 처 한씨, 이익의 처 조이, 홍전의 처 박씨, 조탁의 처 나씨, 박조의 처 임씨 등에게는 그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포창하고, 그 집의 요역(徭役)을 면제하게 하고, 권경·전사례·임모·유인봉·임우·정효신·심전·전익수·신효온·신효량·정안의·강용진·정곤·최보민·김생우 등은 요량하여서 벼슬을 주라고 하였다.

원문

○上初卽位, 下敎中外, 求孝子、節婦、義夫、順孫所在, 以實迹聞, 凡數百人。 上以爲宜簡特行, 命鄭招, 以禮曹所上記行實狀, 議於左右議政, 凡得四十一人以聞。

大興戶長李成萬與其弟順, 事父母盡心, 甘旨奉養, 每春秋具酒食, 致父母所愛親舊宴樂, 以悅其心。 及沒, 兄守母墳, 弟守父墳, 每朝夕兄弟相往, 食共一案, 雖得一味, 必與共食。 海美船軍林上左母沒守墳, 家貧織屨, 以供祭祀。 朴蕤母沒守墳, 其妻傭債, 以給祭祀, 間或不繼, 祭之以蔬。 仁同 金閏戍海未還, 其母病疫, 諸子皆避, 閏遞戍來侍。 及歿, 親負以葬。 每當番上, 雇人自代, 守墳三年。 珍原學生李格妻沈氏, 年甫七歲父死, 侍母而居。 恨父早死, 廬于殯側, 祭如事生。 公州住縣監鄭自丘妻高氏, 年三十三夫亡, 父欲改嫁, 不從其命, 造家於墳側, 每俗節日, 必親自設祭。 沔川少監沈仁富妻耿氏, 年二十八夫亡, 一族欲奪情, 哭泣不從, 至今守節。 瑞山私奴莫金妻召史, 年二十四夫亡, 爭欲娶之, 不從守節, 年已五十四矣。 連山及第金問妻〈許〉氏, 年二十夫亡, 結廬墓側, 親奠朝夕, 克終三年, 至今哭泣不輟, 不飾容儀。 大丘郞將金鼐妻徐氏, 年二十四夫亡, 父欲奪節, 固拒不從, 至今守節, 年四十八矣。 善山船軍趙乙生妻藥加伊, 歲丙子, 夫爲倭所擄, 未知存沒, 不食酒肉、葷菜, 父母欲嫁, 涕位不從。 隔八年, 其夫還來同居, 以全婦道。 學生金玽妻佛非, 年二十夫亡, 父欲改嫁, 誓死不從, 終養舅姑。 咸昌前權務朴希俊妻金氏, 年二十三夫亡, 父欲改嫁, 强辭守節, 年已四十七。 永川郞將李鮮妻鄭氏, 年二十四夫亡, 父母欲改嫁, 不從, 至今不食肉。 迎日前提控李登妻吳氏, 年二十七, 夫死於京, 收遺骸葬于家北, 事夫祖母如事己親, 每月朔望, 詣墓設祭。 金海前錄事尹弘道妻裵氏, 年十九夫亡, 事姑甚謹, 及姑歿, 奉祀不怠。 宜寧學生沈致妻石氏, 年二十夫亡, 事姑克孝, 其父欲改嫁, 辭曰: "良人以獨子早逝, 父若奪志, 亡夫病母, 其誰奉養?" 遂不從命, 事姑益謹, 每姑出入, 身親扶之。 陜川前長興庫副使張友良妻韓氏, 年二十五, 以無子見棄, 守節不改, 舅姑歿, 行喪六年, 忌日行祭。 全州記官李瓊妻召史, 年二十六夫亡, 善事舅姑, 及沒, 代夫行喪, 傾家産以供喪葬。 井邑散員陳慶妻劉氏, 年三十夫死倭亂, 至今守節, 事姑克孝。 錦山副正林英順妻韓氏, 年二十六夫亡, 至今守節, 年已六十一矣。 前散員李益妻召史, 年二十五夫亡, 至今守節, 年已六十七矣。 光州別將洪琠妻朴氏, 年三十夫亡, 陪姑孝養, 年已五十一。 羅州翰林趙琢妻羅氏, 年二十四, 無子寡居不更。 泰仁前司正朴慥妻林氏, 從夫居京, 姑病不運身, 半夜失火, 直入火焰之中, 負姑以出, 焦頭爛臂, 遂得免。 濟州前注簿文邦貴, 州俗不行三年喪, 歲丙戌父沒, 守墳三年, 喪制悉遵《家禮》, 以樹孝風, 鄕人效之, 守墳者三人, 行喪三年者十餘人。 京中南部住前正權景, 早年父歿, 侍母定省, 出告反面, 家中之物不敢自私, 必請而後用之。 若見異味, 必懷之; 若有疾, 衣不解帶, 求醫嘗藥, 疾止乃已。 中部住幼學全思禮, 父死, 寢苫枕塊, 日飮飦粥, 不嘗美味, 以終三年。 事母出告反面, 昏定晨省, 學問勤勤, 操行不謬。 公州前判撫山縣事林謩, 歲庚午, 倭賊七十餘名到家, 當門拒之, 使賊不得入, 俟父母出後門, 遂俱以去。 舒川 兪仁奉, 事父母, 祁寒暑雨, 不憚勞苦, 凡所奉養, 盡力營辦, 及歿, 守墳六年。 海美前別將林雨, 歲丙辰、丁巳年間, 倭賊突至圍之, 適其父病臥, 獨力却賊, 負父走山, 遂得俱脫。 幼學鄭孝新, 年十三父沒, 守墳三年。 安陰散員沈腆, 歲戊辰, 倭賊突入, 執其父結項而去, 持銀帶銀塊赴賊中, 買父而來。 善山學生田益修, 歲丁巳, 父死於戰。 事祖如父, 及沒, 廬墓三年。 咸昌幼學申孝良, 守祖墳三年, 飯蔬食。 幼學申孝溫, 居父喪三年, 不食菜果, 事母及祖母, 能養而敬。 務安生員金生禹, 善事父母, 及歿, 守墳六年, 寢苫枕塊, 事死如生。 海美幼學鄭安義, 守祖母墳。 晋州前郞將姜用珍, 倭賊入寇, 牧使朴自安與戰而敗, 馬困幾爲賊所獲, 進其所乘馬 遂得免。 金堤前敎授官鄭坤, 私置書院, 境內與他鄕自願來學者, 無不敎訓。 光州生員崔保民, 私置書院, 訓誨生徒。

上命李成萬、李順、林上佐、朴蕤、金閏、文邦貴、李格妻沈氏、鄭自丘妻高氏、沈仁富妻耿氏、莫金妻召史、金問妻許氏、金鼐妻徐氏、趙乙生妻藥加伊、金玽妻佛非、朴希俊妻金氏、李鮮妻鄭氏、李登妻吳氏、尹弘道妻裵氏、沈致妻石氏、李瓊妻召史、陳慶妻柳氏、林英順妻韓氏、李益妻召史、洪琠妻朴氏、趙琢妻羅氏、朴慥妻林氏等, 竝旌表門閭, 復其家, 權景、全思禮、林謩、兪仁奉、林雨、鄭孝新、沈腆、田益修、申孝溫ㆍ孝良、鄭安義、姜用珍、鄭坤、崔保民、金生禹等量宜注授。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세종실록7권, 세종 2년 1월 21일 경신 3/5 기사 /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효자·절부·의부·순손의 실적을 찾아 아뢰게 하다

국역

임금이 처음 즉위하여 중외에 교서를 내리어, 효자·절부(節婦)·의부(義夫)·순손(順孫)이 있는 곳을 찾아 실적(實迹)으로 아뢰라고 했더니, 무릇 수백인이 되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그 중에 특행(特行)이 있는 자를 추리라."

하고, 정초를 명하여 예조에 올린 행장 기록을 가지고 좌·우 의정과 의논한 결과 무릇 41인이었다. 대흥 호장(大興戶長) 이성만(李成萬)은 그 아우 순(順)과 더불어 부모를 잘 섬겨 마음을 다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고, 매양 봄 가을에는 주식(酒食)을 갖추어 부모의 사랑하는 친구를 맞아서 연락(宴樂)하므로써 그 마음을 즐겁게 하고, 죽은 후에는, 형은 어머니의 무덤을 지키고, 아우는 아버지의 무덤을 지키며, 매양 아침 저녁에 형제가 서로 가고 오고 하여 한 상에서 같이 먹고, 비록 한 개의 음식을 얻어도 반드시 함께 먹었다. 해미 선군(海美船軍) 임상좌(林上左)는 어머니가 죽으매 무덤을 지키고, 집이 가난하매 신을 만들어 제사를 차렸다. 박유(朴蕤)는, 어머니가 죽으매, 그 무덤을 지키고, 그 아내는 품을 팔아 제수를 마련했고, 간혹 이것도 되지 못하면, 채소로 제사지냈다. 인동(仁同)의 김윤(金閏)은 바다의 수자리[戍]에 가서 돌아오지 못한 때에, 그 어머니가 역병을 앓았는데, 아들들이 다 피하였거늘, 윤이 마침 수자리에서 돌아와 간호했으며,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몸소 등에 업어 장사지내고, 매양 번들게 되면, 사람을 사서 대신 가게 하여 3년 동안 무덤을 지켰다. 진원(珍原) 학생(學生) 이격(李格)의 처 심씨(沈氏)는 나이 겨우 7세에 아버지가 죽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일찍 죽었음을 통한하여 빈소 곁에 여막을 치고 제사지내기를 생시와 같이 하였다. 공주(公州)에 거주하는 현감(縣監) 정자구(鄭自丘)의 처 고씨(高氏)는 나이 33세 지아비가 죽었는데,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고자 했으나, 그 명을 좇지 않고 무덤 곁에 집을 짓고, 매양 시속 명절날이면 반드시 친히 스스로 제사를 지냈다. 면천 소감(沔川少監) 심인부(沈仁富)의 처 경씨(耿氏)는 나이 28세에 지아비가 죽었으매, 온 가족이 그 뜻을 빼앗고자 하거늘, 울면서 좇지 않고 지금까지 절개를 지키었다. 서산(瑞山) 사노(私奴) 막금(莫金)의 처 조이[召史]는 나이 24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뭇사람이 다투어 데려가려고 했지만, 좇지 않고 수절했는데, 나이 이미 54세이다. 연산(連山)의 급제(及第) 김문(金問)의 처 허씨(許氏)는 나이 20세에 지아비가 죽었는데, 무덤 곁에 여막을 치고 몸소 조석 상식을 드리어 능히 3년을 마쳤으며, 지금까지 곡읍(哭泣)을 그치지 않고 몸치장을 하지 않았다. 대구(大丘)의 낭장(郞將) 김내(金鼐)의 처 서씨(徐氏)는 나이 24세에 지아비가 죽었는데, 아버지가 개가를 시키고자 했으나, 굳이 거절하고 좇지 않고 지금까지 절개를 지키니, 나이 48세이다. 선산(善山)의 선군(船軍) 조을생(趙乙生)의 처 약가이(藥加伊)는 병자년에 지아비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사생을 알지 못하매, 주육과 냄새나는 나물을 먹지 않고, 부모가 개가시키려 하니, 눈물을 흘리면서 좇지 않았고, 8년이나 되어 그 지아비가 돌아오매 함께 살아 아내의 도리를 다하였다. 학생 김구(金玽)의 처 불비(佛非)는 나이 20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고자 하였으나, 죽기를 맹세하고 좇지 않고 구고(舅姑)를 끝까지 봉양하였다. 함창(咸昌)의 전(前) 권무(權務) 박희준(朴希俊)의 처 김씨는 23세에 지아비가 죽었는데,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고자 하나, 굳세게 회피하고 절개를 지키니, 나이 이미 47세이다. 영천(永川) 낭장(郞將) 이선(李鮮)의 처 정씨(鄭氏)는 나이 24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그, 부모가 개가시키고자 하였으나, 좇지 않았고, 지금까지 고기를 먹지 않았다. 영일(迎日)의 전제공(前提控) 이등(李登)의 처 오씨(吳氏)는 나이 27세에 지아비가 서울에서 죽었는데, 그 시체를 거두어 집 북쪽 산에 장사지내고, 시조모 섬기기를 친정부모 같이 하고, 매양 초하루 보름이면 묘에 나아가 제사를 지냈다. 김해(金海)의 전(前) 녹사(錄事)윤홍도(尹弘道)의 처 배씨(裵氏)는 나이 19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시어머니를 각근(恪勤)하게 섬기고, 시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제사를 지성으로 지냈다. 의령(宜寧)의 학생 심치(沈致)의 처 석씨(石氏)는 나이 20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시어머니를 섬김에 그 효성이 극진했고,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고자 하매, 말하기를,

"남편이 외아들로 일찍 돌아갔으니, 어버이께서 만약 나의 뜻을 빼앗으면, 죽은 이의 병든 어머니를 그 뉘가 봉양하겠습니까."

하고, 명을 좇지 않고 시어머니 섬기기를 더욱 각근히 하여, 매양 시어머니가 출입할 때면 자신이 부축하였다. 합천(陜川)의 전(前) 장흥고 부사(長興庫副使) 장우량(張友良)의 처 한씨(韓氏)는 나이 25세에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버림을 당하여도 수절하며 개가하지 않았고, 시부모가 죽으매 6년 동안 상을 입었고, 기일이면 제사를 지냈다. 전주(全州) 기관(記官) 이경(李瓊)의 처 조이[召史]는 나이 26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시부모를 잘 섬겼고, 시부모가 돌아간 후에는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상을 입고 가산을 기울여 상장(喪葬)에 썼다. 정읍(井邑)의 산원(散員) 진경(陳慶)의 처 유(劉)씨는 나이 30세에 지아비가 왜란에 죽었는데, 지금까지 절개를 지키고 시어머니를 섬겨 효도를 다하였다. 금산(錦山)의 부정(副正) 임영순(林英順)의 처 한(韓)씨는 나이 26세에 지아비가 죽었으나, 지금까지 절개를 지켜 이제 나이 61세이다. 전산원(前散員) 이익(李益)의 처 조이[召史]는 나이 25세에 지아비가 죽었는데, 지금까지 수절하여 나이가 이미 67세이다. 광주(光州)의 별장(別將) 홍전(洪琠)의 처 박씨는 나이 30세에 지아비가 죽으매, 시어머니를 효성으로 섬겼는데, 나이 이미 51세이다. 나주(羅州)의 한림(翰林) 조탁(趙琢)의 처 나씨는 나이 24세에 아들 없이 혼자 되었으나, 개가하지 않았다. 태인(泰仁)의 전(前) 사정(司正) 박조(朴慥)의 처 임씨(林氏)는 지아비를 따라 서울에 살았는데, 시어머니가 병들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런데, 밤중에 불이 일어나 위험해지매, 곧 화염중에 뛰어들어 시어머니를 업고 오면서 머리와 팔에 화상을 입었으나, 화는 면하였다. 제주(濟州)의 전(前) 주부(注簿) 문방귀(文邦貴)는 그곳 풍속이 3년상을 행하지 않지만, 병술년에 아버지가 죽었을 때 3년 동안 무덤을 지켰으며, 상제(喪制)는 다 가례(家禮)를 따름으로써 효도의 기풍을 세우니, 제주 사람들이 이를 본받아 무덤을 지킨 자가 3인이요, 3년상을 행한 자가 10여인이나 되었다. 서울 남부(南部)에 거주하는 전(前) 정(正) 권경(權景)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죽어 홀어머니를 모셨는데, 혼정신성[定省]했고, 외출할 때나 돌아올 때는 반드시 고하였으며, 집안의 물건은 감히 마음대로 하지 않고 반드시 어머니께 청한 후에야 쓰며, 만약 희귀한 음식을 보면 반드시 가지고 오고, 만약 어머니가 병에 걸리면 옷과 띠를 풀지 않으며, 의원을 구하여 약을 택해서 들이되, 병이 나을 때가지 계속했다. 중부(中部)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전사례(全思禮)는 아버지가 죽으매, 거적자리[苫]에서 자며 흙덩어리로 베개하고, 매일 범벅죽[飦粥]을 먹으며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3년을 마쳤으며, 어머니를 섬기되, 나갈 때나 돌아올 때면 고하고 혼정신성(昏定晨省)하며, 학문에 부지런하고 조행이 그릇되지 않았다. 공주(公州) 전 판무산현사(判撫山縣事)인 임모(林謩)는 경오년에 왜적 70여 명이 집에 나타났을 때 문을 막아 들어오지 못하게 하다가, 부모가 뒷문으로 나가기를 기다려 함께 피했다. 서천(舒川)의 유인봉(兪仁奉)은 부모를 섬기되, 큰 추위나 더위나 비에도 노고를 꺼리지 않고 봉양할 것을 힘을 다하여 판출(辦出)하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무덤을 6년이나 지켰다. 해미(海美)의 전 별장 임우(林雨)는 병진년·정사년 사이에 왜적이 갑자기 와서 에워쌌는데, 마침 그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있어 혼자서 적을 물리치고 아버지를 업고 산으로 달아나 난을 면하였다. 유학 정효신(鄭孝新)은 나이 13세에 아버지가 죽었는데, 3년간 무덤을 지키었다. 안음(安陰)의 산원(散員) 심전(沈腆)은 무진년에, 왜적이 갑자기 들어와 그 아버지를 잡아 목을 매어 가거늘, 은대(銀帶)와 은괴(銀塊)를 가지고 적중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바꾸어 왔다. 선산(善山)의 학생 전익수(田益修)는 정사년에, 아버지가 전쟁에서 죽으매, 조부 섬기기를 아버지와 같이 하고, 조부가 죽은 후에는 3년간 묘에 여막을 짓고 지켰다. 함창(咸昌)의 유학 신효량(申孝良)은 조부의 무덤을 3년간 지키되 채식만 먹었다. 유학 신효온(申孝溫)은 아버지 상사 3년간에 나물과 과일도 먹지 않고, 어머니와 조모를 섬기되, 봉양도 잘하고 또 공경하였다. 무안(務安)의 생원(生員) 김생우(金生禹)는 부모를 잘 섬기었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6년간 무덤을 지켰으며, 거적자리에서 흙덩이를 베고 잤으며,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살았을 때와 같이 하였다. 해미(海美)의 유학 정안의(鄭安義)는 조모의 무덤을 지켰다. 진주(晉州)의 전(前) 낭장(郞將) 강용진(姜用珍)은 왜적의 침입을 당하여, 목사 박자안(朴自安)과 더불어 싸웠으나 패하고, 말이 지쳐 거의 적에게 잡히었을 때, 그가 탄 말을 목사에게 주어 겨우 면함을 얻었다. 김제(金堤) 전 교수관(交授官) 정곤(鄭坤)은 사재로 서원(書院)을 세웠는데, 고을 사람들은 물론 타향 사람들도 와서 배우기를 원하는 자이면 다 가르쳐 주었다. 광주(光州)의 생원 최보민(崔保民)이 사재로 서원을 세워 생도를 훈도하고 가르쳤다. 임금이 명하여 이성만·이순·임상좌·박유·김윤·문방귀와 이격의 처 심씨, 정자구의 처 고씨, 심인부의 처 경씨, 막금의 처 조이, 김문의 처 허씨, 김내의 처 서씨, 조을생의 처 약가이, 김구의 처 불비, 박희준의 처 김씨, 이선의 처 정씨, 이등의 처 오씨, 윤홍도의 처 배씨, 심치의 처 석씨, 이경의 처 조이, 진경의 처 유씨, 임영순의 처 한씨, 이익의 처 조이, 홍전의 처 박씨, 조탁의 처 나씨, 박조의 처 임씨 등에게는 그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포창하고, 그 집의 요역(徭役)을 면제하게 하고, 권경·전사례·임모·유인봉·임우·정효신·심전·전익수·신효온·신효량·정안의·강용진·정곤·최보민·김생우 등은 요량하여서 벼슬을 주라고 하였다.

원문

○上初卽位, 下敎中外, 求孝子、節婦、義夫、順孫所在, 以實迹聞, 凡數百人。 上以爲宜簡特行, 命鄭招, 以禮曹所上記行實狀, 議於左右議政, 凡得四十一人以聞。

大興戶長李成萬與其弟順, 事父母盡心, 甘旨奉養, 每春秋具酒食, 致父母所愛親舊宴樂, 以悅其心。 及沒, 兄守母墳, 弟守父墳, 每朝夕兄弟相往, 食共一案, 雖得一味, 必與共食。 海美船軍林上左母沒守墳, 家貧織屨, 以供祭祀。 朴蕤母沒守墳, 其妻傭債, 以給祭祀, 間或不繼, 祭之以蔬。 仁同 金閏戍海未還, 其母病疫, 諸子皆避, 閏遞戍來侍。 及歿, 親負以葬。 每當番上, 雇人自代, 守墳三年。 珍原學生李格妻沈氏, 年甫七歲父死, 侍母而居。 恨父早死, 廬于殯側, 祭如事生。 公州住縣監鄭自丘妻高氏, 年三十三夫亡, 父欲改嫁, 不從其命, 造家於墳側, 每俗節日, 必親自設祭。 沔川少監沈仁富妻耿氏, 年二十八夫亡, 一族欲奪情, 哭泣不從, 至今守節。 瑞山私奴莫金妻召史, 年二十四夫亡, 爭欲娶之, 不從守節, 年已五十四矣。 連山及第金問妻〈許〉氏, 年二十夫亡, 結廬墓側, 親奠朝夕, 克終三年, 至今哭泣不輟, 不飾容儀。 大丘郞將金鼐妻徐氏, 年二十四夫亡, 父欲奪節, 固拒不從, 至今守節, 年四十八矣。 善山船軍趙乙生妻藥加伊, 歲丙子, 夫爲倭所擄, 未知存沒, 不食酒肉、葷菜, 父母欲嫁, 涕位不從。 隔八年, 其夫還來同居, 以全婦道。 學生金玽妻佛非, 年二十夫亡, 父欲改嫁, 誓死不從, 終養舅姑。 咸昌前權務朴希俊妻金氏, 年二十三夫亡, 父欲改嫁, 强辭守節, 年已四十七。 永川郞將李鮮妻鄭氏, 年二十四夫亡, 父母欲改嫁, 不從, 至今不食肉。 迎日前提控李登妻吳氏, 年二十七, 夫死於京, 收遺骸葬于家北, 事夫祖母如事己親, 每月朔望, 詣墓設祭。 金海前錄事尹弘道妻裵氏, 年十九夫亡, 事姑甚謹, 及姑歿, 奉祀不怠。 宜寧學生沈致妻石氏, 年二十夫亡, 事姑克孝, 其父欲改嫁, 辭曰: "良人以獨子早逝, 父若奪志, 亡夫病母, 其誰奉養?" 遂不從命, 事姑益謹, 每姑出入, 身親扶之。 陜川前長興庫副使張友良妻韓氏, 年二十五, 以無子見棄, 守節不改, 舅姑歿, 行喪六年, 忌日行祭。 全州記官李瓊妻召史, 年二十六夫亡, 善事舅姑, 及沒, 代夫行喪, 傾家産以供喪葬。 井邑散員陳慶妻劉氏, 年三十夫死倭亂, 至今守節, 事姑克孝。 錦山副正林英順妻韓氏, 年二十六夫亡, 至今守節, 年已六十一矣。 前散員李益妻召史, 年二十五夫亡, 至今守節, 年已六十七矣。 光州別將洪琠妻朴氏, 年三十夫亡, 陪姑孝養, 年已五十一。 羅州翰林趙琢妻羅氏, 年二十四, 無子寡居不更。 泰仁前司正朴慥妻林氏, 從夫居京, 姑病不運身, 半夜失火, 直入火焰之中, 負姑以出, 焦頭爛臂, 遂得免。 濟州前注簿文邦貴, 州俗不行三年喪, 歲丙戌父沒, 守墳三年, 喪制悉遵《家禮》, 以樹孝風, 鄕人效之, 守墳者三人, 行喪三年者十餘人。 京中南部住前正權景, 早年父歿, 侍母定省, 出告反面, 家中之物不敢自私, 必請而後用之。 若見異味, 必懷之; 若有疾, 衣不解帶, 求醫嘗藥, 疾止乃已。 中部住幼學全思禮, 父死, 寢苫枕塊, 日飮飦粥, 不嘗美味, 以終三年。 事母出告反面, 昏定晨省, 學問勤勤, 操行不謬。 公州前判撫山縣事林謩, 歲庚午, 倭賊七十餘名到家, 當門拒之, 使賊不得入, 俟父母出後門, 遂俱以去。 舒川 兪仁奉, 事父母, 祁寒暑雨, 不憚勞苦, 凡所奉養, 盡力營辦, 及歿, 守墳六年。 海美前別將林雨, 歲丙辰、丁巳年間, 倭賊突至圍之, 適其父病臥, 獨力却賊, 負父走山, 遂得俱脫。 幼學鄭孝新, 年十三父沒, 守墳三年。 安陰散員沈腆, 歲戊辰, 倭賊突入, 執其父結項而去, 持銀帶銀塊赴賊中, 買父而來。 善山學生田益修, 歲丁巳, 父死於戰。 事祖如父, 及沒, 廬墓三年。 咸昌幼學申孝良, 守祖墳三年, 飯蔬食。 幼學申孝溫, 居父喪三年, 不食菜果, 事母及祖母, 能養而敬。 務安生員金生禹, 善事父母, 及歿, 守墳六年, 寢苫枕塊, 事死如生。 海美幼學鄭安義, 守祖母墳。 晋州前郞將姜用珍, 倭賊入寇, 牧使朴自安與戰而敗, 馬困幾爲賊所獲, 進其所乘馬 遂得免。 金堤前敎授官鄭坤, 私置書院, 境內與他鄕自願來學者, 無不敎訓。 光州生員崔保民, 私置書院, 訓誨生徒。

上命李成萬、李順、林上佐、朴蕤、金閏、文邦貴、李格妻沈氏、鄭自丘妻高氏、沈仁富妻耿氏、莫金妻召史、金問妻許氏、金鼐妻徐氏、趙乙生妻藥加伊、金玽妻佛非、朴希俊妻金氏、李鮮妻鄭氏、李登妻吳氏、尹弘道妻裵氏、沈致妻石氏、李瓊妻召史、陳慶妻柳氏、林英順妻韓氏、李益妻召史、洪琠妻朴氏、趙琢妻羅氏、朴慥妻林氏等, 竝旌表門閭, 復其家, 權景、全思禮、林謩、兪仁奉、林雨、鄭孝新、沈腆、田益修、申孝溫ㆍ孝良、鄭安義、姜用珍、鄭坤、崔保民、金生禹等量宜注授。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 1
태조-철종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고종-순종
                                                              • 이동
                                                                • 이동
                                                                  • 이동
                                                                    태조-철종
                                                                      고종-순종

                                                                        문자입력기

                                                                        한자목록

                                                                        문자영역
                                                                        한자목록 바로가기

                                                                        부수

                                                                        획수

                                                                        한자목록

                                                                        획수

                                                                        한자목록

                                                                        부수

                                                                        획수

                                                                        한자목록

                                                                        영문INDEX

                                                                        한어 병음

                                                                        한자목록

                                                                        영문INDEX

                                                                        일본어 음독

                                                                        한자목록

                                                                        책갈피목록

                                                                        책갈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