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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7권, 세종 2년 1월 3일 임인 4/6 기사 /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순효 대왕의 지문과 애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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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효 대왕(順孝大王)을 후릉(厚陵)에 장사하였다. 지문(誌文)에 말하기를,

"영락 17년 세차 기해년 가을 9월 26일 무진에 온인 공용 순효 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 돌아가시매 성덕 신공(聖德神功) 상왕 전하 및 주상 전하께서 애통함이 지극히 간절하여 상을 입음에 예를 극진히 하고, 임금이 군신을 거느려 존호(尊號)를 받들어 올리었다. 그 이듬해 경자년 정월 초3일 임인에 예로써 송경(松京) 해풍군(海豐郡)에 있는 정안 왕후(定安王后)의 능에 합장하니, 이것은 유명(遺命)에 의한 것이다. 대왕은 우리 태조 강헌 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타고난 자질이 온인 공근(溫仁恭謹)하며, 용맹과 지략이 범인에 뛰어났다. 고려에 벼슬하여 여러 번 승진하여 장상(將相)에 이르렀다. 일찍이 태조를 따라 출정(出征)하여 공을 세웠다. 경오년에 군사를 거느리고 예산(禮山)에서 왜적을 잡아 승리를 거두었다. 임신년 가을 7월에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영안군(永安君)에 책봉되었고, 무인년 가을 8월에 태조가 편치 못하였을 때, 권신(權臣)이 음모를 꾸며 난리를 꾸미고자 하거늘, 우리 상왕이 기미를 밝게 보아 그를 죽여 버리고 태조께 청하여, 대왕을 세자(世子)로 책봉하였다. 9월 정축일에 태조의 내선(內禪)을 받아 임금이 되었다가, 경진년 봄 3월에 위를 이을 아들이 없기 때문에 우리 상왕을 책봉하여 세자로 삼았다. 그 해 가을에 몸이 편하지 못하여 우리 상왕에게 왕위를 전하니, 상왕이 인문 공예(仁文恭睿)라는 존호를 올리었다.

상왕은 애경(愛敬)으로 효도를 다하여 날이 갈수록 더욱 돈독하였다. 대왕의 춘추는 63세요, 왕위에 있은 지 3년이고, 한가히 있어 몸을 조리하기는 20년이었으니, 이것이 평생 애(哀)·영(榮)의 대략이다.

비(妃)는 김씨이니, 증 문하좌시중(贈門下左侍中) 김천서(金天瑞)의 딸이다. 성품이 투기(妬忌)하지 않고 모시는 비첩에까지도 예로써 대우하였으므로, 우리 상왕이 순덕(順德) 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렸다. 후에 정안 왕후(定安王后)로 추증(追贈)하였다.

자식은 없었는데 궁첩의 아들이 15인이고, 딸이 10인이 있다. 이원생(李元生)은 의평군(義平君)에 봉하였고, 다음은 이무생(李茂生)이요, 다음은 어리니, 지씨(池氏)가 낳았다. 이군생(李群生)은 순평군(順平君)에 봉하였고, 다음은 이의생(李義生)이요, 다음 셋은 모두 어리다. 딸은 전주 부윤(全州府尹) 김겸(金謙)의 아들 김세민(金世敏)에게 출가하였으니, 숙신 옹주(淑愼翁主)로 봉하였고, 다음은 둘은 모두 어리니, 기씨(奇氏)가 낳았다. 그 나머지 남녀는 다 어리다. 의평은 금주 감무(衿州監務) 최치숭(崔致崇)의 딸에 장가들어 1남 1녀를 낳았으니, 모두 어리다. 순평은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설존(薛存)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영락 18년 경자 정월 일 삼가 기록한다."

라고 하였다. 애책문(哀冊文)에는 말하기를,

"영락 17년 세차 기해 9월 계묘 삭(朔) 26일 무진에 인문 공예 상왕이 정침(正寢)에서 돌아가다. 인덕궁(仁德宮)을 빈소(殯所)로 하고, 시호를 온인 공용 순효 대왕이라고 올렸다. 이듬해 경자년 정월 경자 삭 초3일 임인에 이르러 후릉(厚陵)에 장사하였으니, 예(禮)로써 하였다. 빈전(殯殿)에 새벽이 되어 영이(靈轜)가 떠나려 할 때, 달은 명정(銘旌)에 비치고, 슬픈 바람은 상엿줄[縞紼]에 불도다. 사왕(嗣王) 신(臣) 아무는 삼가 발인 전[祖儀]을 받들어 잠깐 시간을 늦추자니, 신선의 거동을 더위잡기 어려우니 섭섭하고, 임금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이에 글하는 신하[詞臣]를 명하여 성실하신 덕을 찬송하옵니다.

그 글에 말하기를, ‘아아, 성하신 태조 일찍이 큰 업을 창조하였도다. 우리 선후(先后)에 미쳐서 밝게 계승하였도다. 효우(孝友)는 천성[因心]이요, 화목(和睦)도 돈독하였도다. 세자[潛邸]로 있을 때에도 도움이 넓고 많았도다. 저 왜적을 굴복시키니, 백성이 창을 버리었도다. 영성(盈成)함을 성하게 응하여 은혜가 동식물에 미치도다. 중병으로 인하여 정사를 보실 수 없게 되매, 덕있는 이에게 위를 사양하고 일찍 나랏일에서 떠났도다. 오직 상성(上聖)이 명을 받아 왕위에 나아갔도다. 거의 20년 동안에 다스린 도가 화흡[熙洽]하도다. 문명(文明)에 이르러 역수[歷服]를 계승하였도다. 진실로 오늘에 이르게 됨이 모두 열어 준 것이도다. 오직 덕의 빛남이며 공의 빛남이도다. 유유히 즐기고 수양하여 백년을 향수하리라 하였더니, 어찌하여 하루 저녁에 길이 떠나시었나이까. 아아, 슬프다. 신의(宸扆)를 보니 있는 듯하더니, 궁검(弓劍)을 남기시니 어찌하여 따라가리요. 이성(二聖)을 뵈오려고 생각하시었음이나, 신하들의 감상은 많도다. 아아, 슬프다. 저 많고 많은 사람들은 모두 죽으면 없어지는도다. 오직 신성(神聖)이 끼친 공열은 천지와 같이 민멸(泯滅)하지 않으리라. 아아, 슬프도다. ’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원문

○葬順孝大王于厚陵。 誌文曰:

永樂十七年歲在己亥秋九月二十六日戊辰, 溫仁恭勇順孝大王宮車晏駕, 我聖德神功上王殿下及我主上殿下哀慕切至, 服喪盡禮。 上率群臣, 奉上尊號, 越明年庚子正月初三日壬寅, 以禮合葬于松京 海豐郡 定安王后之陵, 遺命也。 大王我太祖康獻大王之第二子, 天資溫仁恭謹, 勇略過人, 仕高麗累官至將相, 嘗從太祖出征立功, 歲庚午, 將兵捕倭于禮山獻捷。 歲壬申秋七月, 太祖卽位, 封永安君。 歲戊寅秋八月, 太祖不豫, 權臣有欲挾幼構亂者, 我上王炳幾殲除, 請于太祖, 冊封大王爲世子。 九月丁丑, 受太祖內禪, 歲庚辰春三月, 以無繼嗣, 封我上王爲世子。 其年冬, 不豫, 禪位于我上王, 上王進大王尊號曰仁文恭睿。 上王愛敬盡孝, 久而益篤。 大王春秋六十三歲, 在王位三年, 居閑養病二十年。 此終始哀榮之大槪也。 妃金氏, 贈門下左侍中諱天瑞之女, 性不妬忌, 禮遇妾侍。 我上王進尊號爲順德王大妃, 追贈定安王后。 無子, 宮妾子, 男十五人、女十人。 曰元生, 封義平君, 次茂生, 次幼, 池氏出也。 曰群生, 封順平君, 次義生, 次三皆幼。 女適全州府尹金謙之子世敏, 封淑愼翁主, 次二皆幼, 奇氏出也。 其餘男女皆幼。 義平娶衿州監務崔致崇之女, 生一男一女, 皆幼。 順平娶判司宰監事薛存之女。 永樂十八年庚子正月日, 謹誌。

哀冊文曰:

永樂十七年歲在己亥九月癸卯朔二十六日戊辰, 仁文恭睿上王薨于正寢, 殯于仁德宮, 上諡曰溫仁恭勇順孝大王, 越明年庚子正月庚子朔, 初三日壬寅, 葬于厚陵, 禮也。 殯殿向晨, 靈轜將發。 淡月昭兮銘旌, 酸風吹兮縞紼。 嗣王臣某祗奉祖儀, 竚延晷刻。 悵仙御之難攀, 悼宸容之永隔。 爰命詞臣, 載撰誠德。

其詞曰:

於皇太祖, 肇造洪業。 粤我先后, 昭哉繼述。 因心孝友, 克敦和睦。 其在潛邸, 贊襄弘多。 屈此倭奴, 民用投戈。 茂膺盈成, 恩孚動植。 乃緣沈痾, 倦于勤恪。 讓于有德, 早解機務。 肆惟(公)上聖, 受命踐祚。 垂二十年, 治道熙洽。 比于文明, 纉承歷服。 式至今休, 莫非啓迪。 惟德之光, 惟功之濯。 優游怡養, 謂享期頤。 夫何一夕, 遽貽永違? 嗚呼哀哉! 覩宸扆兮如在, 遺弓劍兮奚遽? 致慼見於二聖, 紛感集於臣庶。 嗚呼哀哉! 嗟有生之萬殊兮, 咸乘化以歸盡, 惟神聖之遺烈, 等乾坤而不泯。 嗚呼哀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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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7권, 세종 2년 1월 3일 임인 4/6 기사 /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순효 대왕의 지문과 애책문

국역

순효 대왕(順孝大王)을 후릉(厚陵)에 장사하였다. 지문(誌文)에 말하기를,

"영락 17년 세차 기해년 가을 9월 26일 무진에 온인 공용 순효 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 돌아가시매 성덕 신공(聖德神功) 상왕 전하 및 주상 전하께서 애통함이 지극히 간절하여 상을 입음에 예를 극진히 하고, 임금이 군신을 거느려 존호(尊號)를 받들어 올리었다. 그 이듬해 경자년 정월 초3일 임인에 예로써 송경(松京) 해풍군(海豐郡)에 있는 정안 왕후(定安王后)의 능에 합장하니, 이것은 유명(遺命)에 의한 것이다. 대왕은 우리 태조 강헌 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타고난 자질이 온인 공근(溫仁恭謹)하며, 용맹과 지략이 범인에 뛰어났다. 고려에 벼슬하여 여러 번 승진하여 장상(將相)에 이르렀다. 일찍이 태조를 따라 출정(出征)하여 공을 세웠다. 경오년에 군사를 거느리고 예산(禮山)에서 왜적을 잡아 승리를 거두었다. 임신년 가을 7월에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영안군(永安君)에 책봉되었고, 무인년 가을 8월에 태조가 편치 못하였을 때, 권신(權臣)이 음모를 꾸며 난리를 꾸미고자 하거늘, 우리 상왕이 기미를 밝게 보아 그를 죽여 버리고 태조께 청하여, 대왕을 세자(世子)로 책봉하였다. 9월 정축일에 태조의 내선(內禪)을 받아 임금이 되었다가, 경진년 봄 3월에 위를 이을 아들이 없기 때문에 우리 상왕을 책봉하여 세자로 삼았다. 그 해 가을에 몸이 편하지 못하여 우리 상왕에게 왕위를 전하니, 상왕이 인문 공예(仁文恭睿)라는 존호를 올리었다.

상왕은 애경(愛敬)으로 효도를 다하여 날이 갈수록 더욱 돈독하였다. 대왕의 춘추는 63세요, 왕위에 있은 지 3년이고, 한가히 있어 몸을 조리하기는 20년이었으니, 이것이 평생 애(哀)·영(榮)의 대략이다.

비(妃)는 김씨이니, 증 문하좌시중(贈門下左侍中) 김천서(金天瑞)의 딸이다. 성품이 투기(妬忌)하지 않고 모시는 비첩에까지도 예로써 대우하였으므로, 우리 상왕이 순덕(順德) 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렸다. 후에 정안 왕후(定安王后)로 추증(追贈)하였다.

자식은 없었는데 궁첩의 아들이 15인이고, 딸이 10인이 있다. 이원생(李元生)은 의평군(義平君)에 봉하였고, 다음은 이무생(李茂生)이요, 다음은 어리니, 지씨(池氏)가 낳았다. 이군생(李群生)은 순평군(順平君)에 봉하였고, 다음은 이의생(李義生)이요, 다음 셋은 모두 어리다. 딸은 전주 부윤(全州府尹) 김겸(金謙)의 아들 김세민(金世敏)에게 출가하였으니, 숙신 옹주(淑愼翁主)로 봉하였고, 다음은 둘은 모두 어리니, 기씨(奇氏)가 낳았다. 그 나머지 남녀는 다 어리다. 의평은 금주 감무(衿州監務) 최치숭(崔致崇)의 딸에 장가들어 1남 1녀를 낳았으니, 모두 어리다. 순평은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설존(薛存)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영락 18년 경자 정월 일 삼가 기록한다."

라고 하였다. 애책문(哀冊文)에는 말하기를,

"영락 17년 세차 기해 9월 계묘 삭(朔) 26일 무진에 인문 공예 상왕이 정침(正寢)에서 돌아가다. 인덕궁(仁德宮)을 빈소(殯所)로 하고, 시호를 온인 공용 순효 대왕이라고 올렸다. 이듬해 경자년 정월 경자 삭 초3일 임인에 이르러 후릉(厚陵)에 장사하였으니, 예(禮)로써 하였다. 빈전(殯殿)에 새벽이 되어 영이(靈轜)가 떠나려 할 때, 달은 명정(銘旌)에 비치고, 슬픈 바람은 상엿줄[縞紼]에 불도다. 사왕(嗣王) 신(臣) 아무는 삼가 발인 전[祖儀]을 받들어 잠깐 시간을 늦추자니, 신선의 거동을 더위잡기 어려우니 섭섭하고, 임금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이에 글하는 신하[詞臣]를 명하여 성실하신 덕을 찬송하옵니다.

그 글에 말하기를, ‘아아, 성하신 태조 일찍이 큰 업을 창조하였도다. 우리 선후(先后)에 미쳐서 밝게 계승하였도다. 효우(孝友)는 천성[因心]이요, 화목(和睦)도 돈독하였도다. 세자[潛邸]로 있을 때에도 도움이 넓고 많았도다. 저 왜적을 굴복시키니, 백성이 창을 버리었도다. 영성(盈成)함을 성하게 응하여 은혜가 동식물에 미치도다. 중병으로 인하여 정사를 보실 수 없게 되매, 덕있는 이에게 위를 사양하고 일찍 나랏일에서 떠났도다. 오직 상성(上聖)이 명을 받아 왕위에 나아갔도다. 거의 20년 동안에 다스린 도가 화흡[熙洽]하도다. 문명(文明)에 이르러 역수[歷服]를 계승하였도다. 진실로 오늘에 이르게 됨이 모두 열어 준 것이도다. 오직 덕의 빛남이며 공의 빛남이도다. 유유히 즐기고 수양하여 백년을 향수하리라 하였더니, 어찌하여 하루 저녁에 길이 떠나시었나이까. 아아, 슬프다. 신의(宸扆)를 보니 있는 듯하더니, 궁검(弓劍)을 남기시니 어찌하여 따라가리요. 이성(二聖)을 뵈오려고 생각하시었음이나, 신하들의 감상은 많도다. 아아, 슬프다. 저 많고 많은 사람들은 모두 죽으면 없어지는도다. 오직 신성(神聖)이 끼친 공열은 천지와 같이 민멸(泯滅)하지 않으리라. 아아, 슬프도다. ’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원문

○葬順孝大王于厚陵。 誌文曰:

永樂十七年歲在己亥秋九月二十六日戊辰, 溫仁恭勇順孝大王宮車晏駕, 我聖德神功上王殿下及我主上殿下哀慕切至, 服喪盡禮。 上率群臣, 奉上尊號, 越明年庚子正月初三日壬寅, 以禮合葬于松京 海豐郡 定安王后之陵, 遺命也。 大王我太祖康獻大王之第二子, 天資溫仁恭謹, 勇略過人, 仕高麗累官至將相, 嘗從太祖出征立功, 歲庚午, 將兵捕倭于禮山獻捷。 歲壬申秋七月, 太祖卽位, 封永安君。 歲戊寅秋八月, 太祖不豫, 權臣有欲挾幼構亂者, 我上王炳幾殲除, 請于太祖, 冊封大王爲世子。 九月丁丑, 受太祖內禪, 歲庚辰春三月, 以無繼嗣, 封我上王爲世子。 其年冬, 不豫, 禪位于我上王, 上王進大王尊號曰仁文恭睿。 上王愛敬盡孝, 久而益篤。 大王春秋六十三歲, 在王位三年, 居閑養病二十年。 此終始哀榮之大槪也。 妃金氏, 贈門下左侍中諱天瑞之女, 性不妬忌, 禮遇妾侍。 我上王進尊號爲順德王大妃, 追贈定安王后。 無子, 宮妾子, 男十五人、女十人。 曰元生, 封義平君, 次茂生, 次幼, 池氏出也。 曰群生, 封順平君, 次義生, 次三皆幼。 女適全州府尹金謙之子世敏, 封淑愼翁主, 次二皆幼, 奇氏出也。 其餘男女皆幼。 義平娶衿州監務崔致崇之女, 生一男一女, 皆幼。 順平娶判司宰監事薛存之女。 永樂十八年庚子正月日, 謹誌。

哀冊文曰:

永樂十七年歲在己亥九月癸卯朔二十六日戊辰, 仁文恭睿上王薨于正寢, 殯于仁德宮, 上諡曰溫仁恭勇順孝大王, 越明年庚子正月庚子朔, 初三日壬寅, 葬于厚陵, 禮也。 殯殿向晨, 靈轜將發。 淡月昭兮銘旌, 酸風吹兮縞紼。 嗣王臣某祗奉祖儀, 竚延晷刻。 悵仙御之難攀, 悼宸容之永隔。 爰命詞臣, 載撰誠德。

其詞曰:

於皇太祖, 肇造洪業。 粤我先后, 昭哉繼述。 因心孝友, 克敦和睦。 其在潛邸, 贊襄弘多。 屈此倭奴, 民用投戈。 茂膺盈成, 恩孚動植。 乃緣沈痾, 倦于勤恪。 讓于有德, 早解機務。 肆惟(公)上聖, 受命踐祚。 垂二十年, 治道熙洽。 比于文明, 纉承歷服。 式至今休, 莫非啓迪。 惟德之光, 惟功之濯。 優游怡養, 謂享期頤。 夫何一夕, 遽貽永違? 嗚呼哀哉! 覩宸扆兮如在, 遺弓劍兮奚遽? 致慼見於二聖, 紛感集於臣庶。 嗚呼哀哉! 嗟有生之萬殊兮, 咸乘化以歸盡, 惟神聖之遺烈, 等乾坤而不泯。 嗚呼哀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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