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4년에 태상왕이 훙하니 묘호를 ’태종’이라 하다. 시책문
금상(今上)556) 4년 임인년(壬寅年)557) 5월 초10일[丙寅]에 성덕 신공 태상왕(聖德神功太上王)이 연화동구(蓮花洞口) 이궁(離宮)에서 훙(薨)하였다. 9월 초2일[丙辰]에 존시(尊謚)를 올려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라 하고, 묘호(廟號)를 ‘태종(太宗)’이라 하였다. 그 시책(謚冊)은 이러하였다.
"고애자(孤哀子) 사왕(嗣王) 신(臣) 【휘(諱).】 은 삼가 재배(再拜) 돈수(頓首)하고 상언(上言)합니다. 삼가 큰 덕(德)과 높은 공(功)은 전고(前古)에 뛰어나니 큰 이름을 시책(謚冊)에 나타내어 후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삼가 떳떳한 전장(典章)에 따라 휘호(徽號)를 올립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황고(皇考) 성덕 신공 태상왕(聖德神功太上王)께서는 총명하고 신성(神聖)하며 용감하고 지혜로우며 너그럽고 어질어서 고려의 국운(國運)이 이미 다한 때를 당하여 천심(天心)의 돌아가는 바를 알고 태조(太祖)를 도와서 만세의 터전을 비로소 개척하였습니다. 중국에 들어가 고황제(高皇帝)558) 를 뵈올 때 세 번이나 접견(接見)하는 총영(寵榮)을 받았습니다. 일이 기미(幾微)559) 가 아직 나타나지 않을 적에 환하게 알아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길이 평안하게 하였습니다. 천부(天賦)의 사랑이 오직 어버이에게 깊어 승안(承顔)560) 의 효(孝)에 지극히 독실하였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우애하여 이에 양덕(讓德)561) 의 빛을 내려 주었습니다. 무위(武威)는 바람과 우레보다 엄숙하고 문치(文治)는 해와 달보다 밝았습니다. 교린(交隣)하는 데 도(道)가 있고 사대(事大)하는 데 정성으로 하니, 덕화(德化)가 먼 데나 가까운 데나 흡족하여 은혜가 동물이나 식물에까지 미쳤습니다. 외람되게 큰 왕통을 이어받은 것을 생각하여 나이가 오래되시도록 영화롭게 봉양하리라 기약하였더니, 어찌 갑자기 승하(昇遐)하여 이에 말명(末命)562) 을 남기십니까? 울부짖고 통곡하는 마음을 견디기가 어려워 이에 현양(顯揚)의 의식을 거행합니다. 삼가 옥책(玉冊)을 받들어 존시(尊謚)를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라 올리고, 묘호(廟號)를 ‘태종(太宗)’이라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밝으신 영(靈)이 충감(沖鑑)을 굽어 내리어, 길이 다복(多福)을 주시어 자손을 무궁한 앞날에 보호하시고, 국가의 계책을 그윽이 도와주어 하늘과 땅과 더불어 구원(久遠)하게 하소서. 삼가 말씀드립니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6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48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556]금상(今上) : 세종 대왕(世宗大王).
- [註 557]
임인년(壬寅年) : 1422년.- [註 558]
고황제(高皇帝) : 주 원장(朱元璋).- [註 559]
기미(幾微) : 낌새.- [註 560]
〔○〕 今上四年壬寅五月丙寅, 聖德神功太上王薨于蓮花洞口離宮。 九月丙辰, 上尊諡曰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 廟號太宗。 其諡冊曰:
孤哀子嗣王臣諱謹再拜頓首上言。 竊以大德隆功, 夐越前古。 鴻名顯冊, 宜示後人。 祇率彝章, 式薦徽號。 恭惟, 皇考聖德神功太上王, 聰明神聖, 勇智寬仁。 當麗運之旣窮, 識天心之攸屬。 扶翼太祖, 肇開萬世之基; 入覲高皇, 持荷三接之寵。 炳幾微於未著, 致宗社之永寧。 立愛惟親, 克篤承顔之孝; 因心則友, 載錫讓德之光。 武威肅於風霆, 文治昭於日月。 交隣有道, 事大以誠。 化洽邇遐, 恩覃動植。 念叨承於景緖, 期榮養於遐齡。 何遽上昇, 乃貽末命? 難堪號擗之痛, 庸擧顯揚之儀。 謹奉玉冊, 上尊諡曰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 廟號太宗。 伏冀睿靈, 俯垂沖鑑。 永綏多福, 保子孫於無窮; 幽贊丕圖, 與天地而竝久。 謹言。
- 【태백산사고본】 16책 36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48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