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5권, 태종 18년 6월 5일 갑신 1/3 기사 / 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
세자에게 관교를 내리고 유정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세자(世子)에게 관교(官敎)380) 를 내려 주고, 심씨(沈氏)를 봉(封)하여 경빈(敬嬪)으로 삼고, 제(禔)를 강봉(降封)하여 양녕 대군(讓寧大君)으로 삼고, 숙빈 김씨(淑嬪金氏)를 삼한 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으로 삼았는데, 심씨는 심온(沈溫)의 딸이었다. 유정현(柳廷顯)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한상경(韓尙敬)을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이원(李原)을 우의정으로, 이지(李枝)를 좌의정으로 치사(致仕)381) 하게 하고, 권홍(權弘)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로, 이지숭(李之崇)을 판우군도총제부사(判右軍都摠制府事)로, 심온(沈溫)을 이조 판서로, 정역(鄭易)을 호조 판서로, 유관(柳觀)을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세자 좌빈객(世子左賓客)으로, 맹사성(孟思誠)을 공조 판서 세자 우빈객(世子右賓客)으로, 이지강(李之剛)을 호조 참판 세자 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으로, 권우(權遇)를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세자 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 윤회(尹淮)를 판전의감사(判典醫監事)로, 김익정(金益精)을 보덕(輔德)으로 삼아 예문관 직제학(藝文館直提學)으로, 유영(柳穎)을 전사시 윤(典祀寺尹)으로, 정초(鄭招)를 필선(弼善)으로 삼아 전사 소윤(典祀少尹)으로, 권도(權蹈)를 직예문관(直藝文館)으로, 이수(李隨)를 문학(文學)으로 삼고, 변계량(卞季良)을 예조 판서로, 김여지(金汝知)를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이맹균(李孟畇)을 충청도 도관찰사로, 이발(李潑)을 함길도 도관찰사로 삼았다.
- [註 380] 관교(官敎) : 임명장.
- [註 381] 치사(致仕) : 나이가 많아 벼슬을 내어놓고 물러남. 조선조 때에는 당상관(堂上官)으로 치사하는 경우에 예조(禮曹)에서 매달 고기와 술을 급여하였으며, 국가의 중대한 정사로 인하여 치사하지 못하는 70세 이상된 1품관에게는 궤(几)와 장(杖)을 하사하였음. 귀로(歸路).
원문
태종 18년 (1418) 6월 5일
국역
세자(世子)에게 관교(官敎)380) 를 내려 주고, 심씨(沈氏)를 봉(封)하여 경빈(敬嬪)으로 삼고, 제(禔)를 강봉(降封)하여 양녕 대군(讓寧大君)으로 삼고, 숙빈 김씨(淑嬪金氏)를 삼한 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으로 삼았는데, 심씨는 심온(沈溫)의 딸이었다. 유정현(柳廷顯)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한상경(韓尙敬)을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이원(李原)을 우의정으로, 이지(李枝)를 좌의정으로 치사(致仕)381) 하게 하고, 권홍(權弘)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로, 이지숭(李之崇)을 판우군도총제부사(判右軍都摠制府事)로, 심온(沈溫)을 이조 판서로, 정역(鄭易)을 호조 판서로, 유관(柳觀)을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세자 좌빈객(世子左賓客)으로, 맹사성(孟思誠)을 공조 판서 세자 우빈객(世子右賓客)으로, 이지강(李之剛)을 호조 참판 세자 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으로, 권우(權遇)를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세자 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 윤회(尹淮)를 판전의감사(判典醫監事)로, 김익정(金益精)을 보덕(輔德)으로 삼아 예문관 직제학(藝文館直提學)으로, 유영(柳穎)을 전사시 윤(典祀寺尹)으로, 정초(鄭招)를 필선(弼善)으로 삼아 전사 소윤(典祀少尹)으로, 권도(權蹈)를 직예문관(直藝文館)으로, 이수(李隨)를 문학(文學)으로 삼고, 변계량(卞季良)을 예조 판서로, 김여지(金汝知)를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이맹균(李孟畇)을 충청도 도관찰사로, 이발(李潑)을 함길도 도관찰사로 삼았다.
- [註 380] 관교(官敎) : 임명장.
- [註 381] 치사(致仕) : 나이가 많아 벼슬을 내어놓고 물러남. 조선조 때에는 당상관(堂上官)으로 치사하는 경우에 예조(禮曹)에서 매달 고기와 술을 급여하였으며, 국가의 중대한 정사로 인하여 치사하지 못하는 70세 이상된 1품관에게는 궤(几)와 장(杖)을 하사하였음. 귀로(歸路).
원문
원본
태종 18년 (1418) 6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