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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2월 22일 기묘 1번째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세자가 자신을 반성하여 종묘에 고하는 글과 주상전께 올리는 상서

세자가 종묘(宗廟)에 고하니, 그 글은 이러하였다.

"증손(曾孫) 왕세자 신(臣) 이제(李禔)목조 인문 성목 대왕(穆祖仁文聖穆大王)·익조 강혜 성익 대왕(翼祖康惠聖翼大王)·도조 공의 성도 대왕(度祖恭毅聖度大王)·환조 연무 성환 대왕(桓祖淵武聖桓大王)·태조 강헌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太祖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의 영전에 밝게 고합니다. 엎드려 공손히 생각하건대, 조종(祖宗)께서 적공누인(積功累仁)098) 하여, 우리 태조 때에 성한 덕과 높은 공으로 능히 천심(天心)을 누림에 집안을 화하여 나라로 만들고 대업을 개창하고 왕통을 드리웠습니다. 우리 부왕(父王) 전하께서는 잘 계승하고 잘 전술하시어, 가득 찬 것을 손에 들듯이 조심하여 지키고 이루어 왔습니다. 신 제(禔)를 적장(嫡長)이라 하여 책봉하여 세자로 삼으시고, 아침 저녁으로 훈회(訓誨)하되, 이제면명(耳提面命)099) 하여 정녕하게 반복(反覆)하심이 지극히 깊고도 간절하였습니다. 또 서연(書筵)을 두어 날마다 빈객(賓客)·대간(臺諫)으로 하여금 경서(經書)를 강명(講明)하게 하니, 대개 의리(義理)에 통효(通曉)하여 세자된 직분을 지극히 함으로써 승조(承祧)의 중대함에 맞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禔)가 생각하건대, 군부(君父)의 마음을 우러러 몸받지 못하고 빈사(賓師)의 가르침을 패복(佩服)하지 못하여, 정사(正士)를 소박(疎薄)하고 소인(小人)을 친압(親狎)하였습니다. 사욕 때문에 법도를 무너뜨리고 방종 때문에 예의를 무너뜨려, 여러 번이나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아니하여 그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하였고, 위로는 조종(祖宗)의 덕을 더럽혔으니 신의 죄가 큽니다. 신이 비록 우매하다 하더라도 양심(良心)의 발로는 그만둘래야 그만두지 못함이 있습니다. 더구나 일찍이 글을 읽어 의리(義理)를 대략이나마 아니, 감히 마음을 씻고 행실을 고쳐 그 끝을 도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마음을 깨끗이 하고 자애자신(自艾自新)100) 할 조목을 갖추어 조종의 영전에 다짐하는 바입니다.

첫째, 인자(人子)의 직분은 효도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인신(人臣)의 직분은 충성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충효(忠孝)의 도리를 다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어서 이제부터는 부왕(父王)의 가르침을 일호(一毫)라도 감히 어기지 아니하고, 일시(一時)라도 감히 소홀히 아니하여 항상 마음에 두어, 그 힘을 다하여 죽은 뒤에야 그만두겠습니다.

둘째, 사람의 삶이 있음은 조종(祖宗)에서 근본한 것이니, 자손 된 자는 몸받을 것을 생각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더욱이 국가를 처음으로 세우고 그 자손에게 도모하여 줌에서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어서 이제부터는 적루(積累)의 어려움과 창수(創垂)의 쉽지 아니함을 우러러 생각하여 몸을 닦고 행실을 삼가 신(神)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겠습니다.

세째, 골육지친(骨肉之親)은 본래 한 기운[一氣]을 같이 타고 나왔으므로 후하게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우리 동포(同胞)101) 로부터 구족(九族)에 이르기까지 친하고 사랑하여 그 좋고 싫음을 같이하되, 끝까지 변함없이 함으로써 조종께서 일시(一視)하시는 뜻을 온전하게 하겠습니다. 네째, 사람이 착하고 악하여지는 것은 친하는 데에 달렸습니다. 군자(君子)를 친하면 훈도(薰陶)되고 함양(涵養)되어 덕이 모르는 사이에 닦아지고, 소인(小人)을 친하면 아첨하며 교사한 데에 빠져 날로 아래로 내려가게 되니, 이어서 이제부터는 섬소(憸小)102) 를 물리치고 정직한 사람을 친근(親近)하게 함으로써 밖에서 꾀어 내는 사특함을 버리고 본연(本然)의 선(善)을 확충하겠습니다.

다섯째, 성덕(成德)과 달재(達才)는 반드시 성학(聖學)에 의하는 것이므로 근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의 낮이면 읽고 밤이면 생각하여서 싫어하거나 게을리하지 아니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精)함에 이름으로써 성정(誠正)103) 의 공(功)을 두터이 하겠습니다.

여섯째, 충언(忠言)과 참설(讒說)104) 이 앞에 섞여서 들어오면 반드시 밝게 살펴야만 그 실정을 얻을 것이니, 바라건대, 허심과욕(虛心寡欲)하여 참소와 사특함을 끊어 버리고 직언(直言) 듣기를 즐기되 끝까지 바꾸지 아니하겠습니다.

일곱째, 금색(禽色)의 황망함과 술을 좋아하고 음악을 즐기는 것은 하서(夏書)105) 에 실려 있으니, 만세(萬世)에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역대(歷代)로 흥하고 망함이 이에 연유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니, 거의 기미(幾微)한 사이에서도 자세히 살펴 성정(性情)의 정(正)함을 지키고 혹시 잠시라도 소홀함이 없게 하여, 이 네 가지 허물을 영원히 끊어 버리겠습니다.

여덟째, 언어(言語)는 일신(一身)의 추기(樞機)이라 망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유(先儒)들이 성(誠)을 논할 때, 말을 망발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였으니, 거의 마음속에 충신(忠信)을 간직하여 그 망발을 금하고, 이미 말을 내었으면 반드시 그 실지를 밟아 표리(表裏)가 서로 기다리는 지경에 나아가고, 언행이 일치하기를 기약하겠습니다. 대체로 이 조건들은 성심(誠心)에서 나온 것이라 이것을 말로 나타내고 글로 써서 감히 삼가 아뢰니, 우러러 빌건대, 하늘에 계신 조종(祖宗)의 영령께서 특별한 음즐(陰騭)106) 을 더하여, 신(臣)의 충정을 이끌어 주고 신의 마음을 헤아려 이 여덟 가지를 힘쓰며 따르게 하되, 스스로 그만둘 수 없게 하심으로써 그 직분을 다하게 하고, 부왕(父王)께서 부탁하심의 중함을 이어받고, 태조(太祖)께서 처음 열으신 대업을 넓히며, 조종께서 후손에게 물려줄 한 없는 경사를 연장하게 하여 주기를 신은 지극히 원하여 마지않습니다. 이미 고(告)한 뒤에 지금의 이 말에 변함이 있으면 조종의 영령께서는 반드시 벌을 내려 용서하지 마소서."

또 주상전(主上殿)께 상서(上書)하였는데, 그 글은 이러하였다.

"왕세자 신 이제(李禔)는 말씀드립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사람이 그의 살 곳을 잃으면 반드시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고, 자식이 그 자리를 잃으면 반드시 어버이를 부르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의 지극한 정이라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을 헤아린 뒤에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윽이 생각하건대, 신 제(禔)는 명완(冥頑)하고 남과 같지 못함에도 부왕 전하께서 신을 적장(嫡長)이라 하여 그 우매함을 잊고 책봉하여 세자로 삼은 지 지금은 14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르치고 깨우치심이 순지(純至)하여, 크게는 충효의 도리와 작게는 일용(日用)의 세세한 행실까지 모두 들지 아니함이 없으셨고, 또 사부(師傅)·빈객(賓客)을 두어 날마다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하되 인하여 대간(臺諫)에 명하여 엄히 고찰을 가하게 하시니, 자애(慈愛)하시는 생각과 교양하시는 방법이 이보다 더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로 경서에 통하고 사리에 통달하여 세자의 직분을 다하고 종사(宗社)107) 의 중함을 이어받게 하고자 하심이었으나, 신 제(禔)는 단지 전하께서 자애하심만을 믿고 전하께서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위함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완악한 자들과 친압하여 오직 사욕만 좇고 법도를 무너뜨리며 예의를 무너뜨리는 행실을 그전부터 너무나 자주 하였습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전하께서 특히 견책(譴責)을 가하므로, 신은 그 때에 겨우 스스로 회오(悔悟)하여 하늘을 두고 말하면서 허물을 되풀이 않기로 맹세하였더니, 아직도 어린아이의 습성이 있는 까닭에 소인의 유혹에 빠지고 또 다시 혼미함에 빠져, 드디어 하늘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임금을 속이기까지 하였는데도 반성하지 못했으니, 신의 죄를 생각하면 어디에서나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이 이른바, ‘스스로 지은 죄는 피할 수 없다.’한 것이 신을 두고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마땅히 몸을 어루만지며 내송(內訟)108) 하고, 병기(屛棄)109) 에 편안하게 여겨야 할 것이지, 어찌 감히 한 마디 말이라도 꺼내어 자신(自新)할 도리를 구하겠습니까? 비록 그러나, 신 제(禔)는 강보(襁褓) 유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이 이미 24세입니다만, 일찍이 경각(頃刻)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보지 못하였는데, 일조(一朝)에 지척(咫尺)의 땅이 호월(胡越)110) 과 같아짐이 있어, 시선(視膳)·문안(問安)할 길이 없어지고 용안을 뵙고 순색(順色)할 길도 없어졌으니, 이것은 신이 밥을 대하여도 먹는 것을 잊으며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 묵묵(默默)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일에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며 천어(天語)를 얻어 받들던 것과 또 여러 아우와 내정(內庭)에서 기쁘게 놀던 것들을 추사(追思)하면 황홀하기 꿈속의 일만 같습니다. 마음 잡기 어려움을 또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신 제(禔)가 마음 잡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또한 그만이지만, 가만히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자애하는 마음이 아직도 그치지 못하여 신의 불초함을 잊으시고 생각하여 그만두지 못하실까 두렵습니다. 말이 이에 이르니 크게 한숨 쉬며 눈물이 흘러내림을 깨닫지 못합니다. 신 제(禔)는 타고난 바탕이 우완하고 둔하며, 마음을 씀이 광망(狂妄)하여, 지금 비록 죄를 뉘우쳤다 하더라도 스스로 보전하지 못하여 다시 전일의 미혹을 밟을까 염려하여, 감히 스스로 경계하는 여덟 가지를 가지고 종묘와 하늘에 계신 신령에게 다짐하며 잊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또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뜻으로써 천청(天聽)을 우러러 번독(煩瀆)하게 합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화복(禍福)은 자기가 구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은즉, 선과 악을 행하는 것도 실은 나에게 있는 것이지 남에게서 연유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그러하나, 예로부터 소인들이 저부(儲副)를 미혹시킨 것을 사전(史傳)에서 상고하면 흔히 있으니, 소인을 제거하기는 어렵고 친하기는 쉬운 것이 분명합니다. 바라건대, 전일에 기기(奇技)와 음교(淫巧)로써 신을 불의(不義)에 빠지게 한 자들을 법대로 처단하여 후래(後來)의 섬소(憸小)들이 아첨하는 길을 막으소서. 신의 어리석음으로 정사(正士)를 친근하게 하고, 날로 착한 말을 들어 성인(成人)이 되게 하면 얼마나 다행일는지 모르겠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가엾게 여겨 주소서."

서문(誓文)과 상서(上書)는 모두 빈객(賓客) 변계량(卞季良)이 제술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49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98]
    적공누인(積功累仁) : 공(功)을 쌓고 인(仁)을 쌓음.
  • [註 099]
    이제면명(耳提面命) : 남의 귀를 끌어당겨서 알아듣게 직접 가르침. 곧 친절하게 가르침을 형용하는 말.
  • [註 100]
    자애자신(自艾自新) :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다스려 스스로 새로운 사람이 됨.
  • [註 101]
    동포(同胞) : 형제.
  • [註 102]
    섬소(憸小) : 간사한 무리.
  • [註 103]
    성정(誠正) : 성의정심.
  • [註 104]
    참설(讒說) : 참소하는 말.
  • [註 105]
    하서(夏書) : 《서경(書經)》의 편명.
  • [註 106]
    음즐(陰騭) : 도움.
  • [註 107]
    종사(宗社) : 종묘와 사직.
  • [註 108]
    내송(內訟) : 스스로 꾸짖어 책함.
  • [註 109]
    병기(屛棄) : 물리쳐 버림.
  • [註 110]
    호월(胡越) : 거리가 멀어짐.

○己卯/世子告于宗廟, 其辭曰:

曾孫王世子臣敢昭告于穆祖仁文聖穆大王翼祖康惠聖翼大王度祖恭毅聖度大王桓祖淵武聖桓大王太祖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之靈。 伏以恭惟, 祖宗積功累仁, 至我太祖, 盛德隆功, 克享天心, 化家爲國, 創業垂統。 我父王殿下善繼善述, 持盈守成, 以臣嫡長, 冊爲世子, 朝夕訓誨, 耳提面命, 丁寧反覆, 至深切矣。 且置書筵, 日令賓客、臺諫講明經書, 蓋欲通曉義理, 以盡世子之職, 以副承祧之重也。 惟不能仰體君父之心, 佩服賓師之訓, 疎薄正士, 狎昵小人, 以欲敗度, 以縱敗禮, 至再至三, 不順乎親, 大傷厥心, 上累祖宗之德, 臣罪大矣。 臣雖愚昧, 良心之發, 有不容已, 矧嘗讀書, 粗知義理, 敢不洗心改行, 圖惟厥終也哉? 是用齊(袚)〔祓〕 一心, 條具自艾自新之目, 質諸祖宗之靈。

一曰: 人子之職, 莫大於孝; 人臣之職, 莫大於忠, 忠孝之道, 已所當盡。 繼自今於父王之敎, 一毫不敢或違, 一時不敢或忽, 恒存乎心, 以盡其力, 斃而後已。

二曰: 人之有生, 本於祖宗, 爲子孫所當體念, 況於肇基邦家, 貽厥孫謀也哉? 繼自今仰思積累之艱難、創垂之不易, 修身謹行, 無致神羞。

三曰: 骨肉之親, 本同一氣, 不可不厚。 自吾同胞以至九族, 親之愛之, 同其好惡, 終始不渝, 以全祖宗之一視。

四曰: 人之善惡, 係於所親。 親君子則薰陶涵養, 德修罔覺; 親小人則奪於諂巧, 日就汚下。 繼自今斥退憸小, 親近正直, 以去外誘之私, 以充本然之善。

五曰: 成德達才, 必因聖學, 不可不勤, 庶幾晝誦夜思, 不厭不倦, 以臻格致之精, 以篤誠正之功。

六曰: 忠言讒說, 雜進於前, 必須明察, 乃得其情。 庶幾虛心寡欲, 絶去讒慝, 樂聞直言, 無替終始。

七曰: 禽色之荒, 甘酒嗜音, 載在《夏書》, 萬世所戒, 歷代興廢, 靡不由此。 庶幾察於幾微之際, 守其性情之正, 毋或忽於頃刻, 永絶四者之愆。

八曰: 言語, 一身之樞機, 不可妄發, 先儒論誠, 始不妄語。 庶幾內存忠信, 發禁其妄, 旣發其言, 必踐其實, 表裏進於相須; 言行期於一致。 凡此條件, 發於誠心, 形(於之)〔之於〕 言, 筆之於書, 敢申虔告。 仰惟祖宗在天之靈, 特加陰騭, 誘臣之衷, 度臣之心, 於此八者, 勉勉循循, 自不能止, 以盡其職, 以承父王付託之重, 以弘太祖肇造之業, 以延祖宗垂裕無疆之慶, 臣不勝至願。 旣告之後, 所渝此言, 祖宗之靈, 必罰無宥。

又上書于主上殿, 其辭曰:

王世子臣言。 竊謂, 人失其所, 必號于天; 子失其所, 必號於親, 此人之至情, 而出於無可乃何者也。 夫豈計其是非得失, 然後乃爾耶? 竊念, 臣冥頑無似, 父王殿下以臣嫡長, 忘其(愚眛)〔愚昧〕 , 冊爲世子, 蓋已十四年于玆矣。 自始至今, 誨誘諄至, 大而忠孝之道, 小而日用細行, 靡不畢擧。 且置師傅賓客, 日令講經, 仍命臺諫, 嚴加考察, 慈愛之念、敎養之方, 蔑以加矣。 蓋欲通經達理, 以盡世子之職, 而承宗社之重也。

只知殿下慈愛之可恃, 不念殿下宗社之大計, 昵比頑童, 惟欲之從, 敗度敗禮, 固已數矣。 往歲之秋, 殿下特加譴責, 臣於其時, 稍自悔悟, 指天爲辭, 庶不貳過。 乃緣尙有童蒙之習, 墮於小人之誘, 尋復沈迷, 遂至欺天、欺父、欺君而莫之省也。 念臣之罪, 無地自容, 古人所謂自作孼不可逭者, 臣之謂矣。 所宜撫躬內訟, 安於屛棄, 安有敢出一言, 以求自新之理耶?

雖然, 臣始自襁褓, 至于今日, 年已二十有四歲矣。 未嘗頃刻離於親側, 一朝咫尺之地, 有同 , 視膳問安之無路; 承顔順色之無由, 此臣所以當食忘飱, 已臥復起, 而不能默默也。 追思前日昵侍左右, 獲奉天語, 又與諸弟嬉遊內庭, 怳如夢中之事, 爲心之難, 又可旣耶? 且念, 臣爲心之難, 蓋亦已矣。 竊恐殿下慈愛之心, 尙不能已, 忘臣不肖, 念之而不釋也。 言之至此, 不覺太息而流涕也。 臣稟質頑鈍, 處心狂妄, 今雖悔罪, 不能自保, 復蹈前日之迷復, 敢以自警八條, 質諸宗廟在天之靈, 矢以不諼, 且書悔過自新之意, 仰瀆天聽。

古人有言曰: "禍福無不自己求者。" 則爲善與惡, 實在於我, 而不由乎人。 雖然, 自古小人之蠱惑儲副, 考諸史傳, 比比有之, 小人難去而易親也明矣。 乞將前日以奇技淫巧, 陷臣於不義者, 斷之如法, 以杜後來憸小諂諛之路, 俾臣之愚, 親近正士, 日聞善言, 得爲成人, 不勝幸甚。 伏惟殿下, 垂憐焉。

誓文及上書, 皆賓客季良之製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49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