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1권, 태종 16년 1월 21일 갑인 3/3 기사 / 1416년 명 영락(永樂) 14년
민무휼·민무회의 자진을 독촉한 원주 목사 권우를 의금부에 가두다
국역
원주 목사(原州牧使) 권우(權遇)를 의금부(義禁府)에 가두었다. 임금이 말하였다.
"오래 전에 민무휼(閔無恤)과 민무회(閔無悔)가 상(喪)을 당하여 들어와 뵈었는데, 민무회가 나에게 고하기를, ‘형(兄)들은 그 죄로 죽었습니다.’고 하고, 또 경인년(庚寅年)에 민무회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온 집안이 도륙(屠戮)되어야 마땅한데, 노모(老母)를 봉양하기 위하여 생존해 있습니다.’고 하였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무슨 죄로 온 집안이 도륙되겠는가? 비록 송씨(宋氏)가 은혜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이런 일을 하겠는가?’고 하였다. 단지 중궁(中宮)의 말만 가지고 한다면 이 사람들은 차라리 단명(短命)함이 옳았을 것이나, 내가 중궁(中宮)을 보아 감히 결단하지 못하였다. 전날에 하 정승(河政丞)036) 이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만약에 강(江)을 건너 도망하게 되면 불가합니다.’고 한 까닭에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사람을 시켜 굳게 지키게 하였다. 의정부의 관원 두 사람이 와서 하직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굳게 지켜서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만일 자진(自盡)하고자 한다면 이를 금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지신사(知申事)가 일찍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나갈 때 의금부(義禁府) 백호(百戶)에게 일러서 말하기를, 「단지 노모가 있기 때문이다.」하였습니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로 하여금 금하지 말라 한 것인데, 이제 원주 목사 권우(權遇)가 보고하기를, ‘본주(本州)에 안치(安置)한 민무휼(閔無恤)을 왕지(王旨)에 의거하여 인리(人吏)·일수 양반(日守兩班)037) 과 시위군(侍衛軍)으로 하여금 둘러싸서 지키고 자진(自盡)하도록 독촉하였더니, 14일에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고 하였다. 대개 그 죄가 주륙에 해당한다고 여러 사람이 모두 청하였으니, 내가 비록 법대로 하였더라도 누가 나더러 잔인(殘忍)하다고 하였겠는가? 단지 중궁(中宮)을 보아서 아직까지 감히 사사(賜死)시키지 않았으나, 내가 어찌 독촉하여 자진하게 하라고 하겠는가? 실로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인데, 만약에 이맹진(李孟畛)이 잘못 전했다면 이맹진에게 죄가 있고, 이맹진이 말하지 않았는데 권우가 독촉하였다면, 권우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
사헌부(司憲府)에 명하여 핵문(劾問)하게 하니, 대사헌(大司憲) 이원이 아뢰기를,
"헌부(憲府)에 내린다면 반드시 직첩(職牒)을 거둔 뒤에 추핵(推劾)하여야 하는데, 권우와 이맹진은 아직도 누가 유죄한지 알지 못하니, 청컨대, 의금부(義禁府)에 내려서 신 등으로 하여금 잡치(雜治)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의금부에서 상언(上言)하기를,
"권우가 말하기를, ‘이맹진이 선전(宣傳)하기를, 「민무휼로 하여금 자진(自盡)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하고, 이맹진은 말하기를 ‘성상의 명령과 같이 하였다.’고 하니, 두 사람의 말이 같이 아니합니다. 청컨대, 형문(刑問)하여 핵실(覈實)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나는 이맹진의 실수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동시에 명을 받았던 송인산(宋仁山)도 청주(淸州)에서 착오가 없게 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권우가 잘못 들은 소치일 것이다. 권우는 우유(迂儒)038) 이므로 죄가 무거울까 두려워서 복죄하지 않지만, 이것은 사죄(死罪)가 아니다. 만약에 이것을 가지고 일일이 깨우쳐 주면 형벌을 쓰지 않고도 정상을 캐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이를 의논하게 하니, 유사눌(柳思訥)이,
"위법한 단서가 이미 나타났는데도 사실을 고백하지 아니하니, 신하의 뜻이 없습니다. 형문(刑問)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명하기를,
"내가 형(刑)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경(卿)의 말도 이치에 근거한 것이니, 또한 옳다."
하고, 바로 먼저 이맹진의 갇힌 것을 풀어 주었다.
- [註 036] 하 정승(河政丞) : 하윤(河崙).
- [註 037] 일수 양반(日守兩班) : 지방 각역(各驛)에서 심부름하는 천례(賤隸). 《세종실록(世宗實錄)》 28권에 보면, "각 고을 각역(各驛)에서, 앞에서 심부름하는 자를 국속(國俗)에서 일수 양반이라 한다." 하였음.
- [註 038] 우유(迂儒) : 세상 물정에 어두운 유학자.
원문
○囚原州牧使權遇于義禁府。 上曰: "昔無恤、無悔蒙喪而入見。 無悔告予曰: ‘兄等以其罪死也。’ 又庚寅年, 無悔曰: ‘我等宜合門屠戮, 爲養老母而生存。’ 予曰: ‘以何罪合門屠戮乎? 雖宋氏有恩, 予豈爲是哉? 但以中宮言: 「此人等寧宜短命。」 予見中宮而不敢決斷。’ 前日河政丞曰: ‘此人等若逃越江, 則不可。’ 故命承政院, 使人堅守。 義禁府官員二人來辭, 予曰: ‘堅守莫使逃逸, 萬一欲自盡, 勿禁之耳。’ 是則知申事嘗曰: ‘此人出去時, 謂義禁府百戶言曰: 「但爲有老母耳。」’故予使之勿禁。 今原州牧使權遇報云: ‘本州安置無恤, 據王旨, 使人吏、日守兩班及侍衛軍圍守, 促令自盡, 十四日自縊而死。’ 蓋其罪當誅, 衆皆請之。 予雖如法, 誰謂我殘忍? 但見中宮, 尙不敢賜死, 予豈言督令自盡? 實予所不言。 若孟畛誤傳, 則孟畛有罪也, 孟畛不言而遇促之, 則遇有罪也。" 命司憲府劾問。 大司憲李原啓曰: "下司憲府則必收職牒而後推劾。 遇與孟畛未知某爲有罪, 請下義禁府, 令臣等雜治。" 從之。 義禁府上言曰: "權遇白: ‘孟畛宣傳曰: 「使無恤自盡。」’ 孟畛白: ‘如上命。’ 二言不同, 請刑問覈實。" 上曰: "予以爲非孟畛之失也。 同時受命, 宋仁山於淸州不差, 此必遇誤聽所致也。 遇迂儒, 恐罪重不伏, 此非死罪也。 若以此開曉, 可不用刑而得情。" 仍命承政院議之。 思訥曰: "違端已露, 而不以實白, 無人臣之意, 刑問可也。" 命曰: "予惡用刑, 卿言據理亦是。" 乃先釋孟畛囚。
태종 16년 (1416) 1월 21일
국역
원주 목사(原州牧使) 권우(權遇)를 의금부(義禁府)에 가두었다. 임금이 말하였다.
"오래 전에 민무휼(閔無恤)과 민무회(閔無悔)가 상(喪)을 당하여 들어와 뵈었는데, 민무회가 나에게 고하기를, ‘형(兄)들은 그 죄로 죽었습니다.’고 하고, 또 경인년(庚寅年)에 민무회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온 집안이 도륙(屠戮)되어야 마땅한데, 노모(老母)를 봉양하기 위하여 생존해 있습니다.’고 하였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무슨 죄로 온 집안이 도륙되겠는가? 비록 송씨(宋氏)가 은혜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이런 일을 하겠는가?’고 하였다. 단지 중궁(中宮)의 말만 가지고 한다면 이 사람들은 차라리 단명(短命)함이 옳았을 것이나, 내가 중궁(中宮)을 보아 감히 결단하지 못하였다. 전날에 하 정승(河政丞)036) 이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만약에 강(江)을 건너 도망하게 되면 불가합니다.’고 한 까닭에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사람을 시켜 굳게 지키게 하였다. 의정부의 관원 두 사람이 와서 하직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굳게 지켜서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만일 자진(自盡)하고자 한다면 이를 금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지신사(知申事)가 일찍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나갈 때 의금부(義禁府) 백호(百戶)에게 일러서 말하기를, 「단지 노모가 있기 때문이다.」하였습니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로 하여금 금하지 말라 한 것인데, 이제 원주 목사 권우(權遇)가 보고하기를, ‘본주(本州)에 안치(安置)한 민무휼(閔無恤)을 왕지(王旨)에 의거하여 인리(人吏)·일수 양반(日守兩班)037) 과 시위군(侍衛軍)으로 하여금 둘러싸서 지키고 자진(自盡)하도록 독촉하였더니, 14일에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고 하였다. 대개 그 죄가 주륙에 해당한다고 여러 사람이 모두 청하였으니, 내가 비록 법대로 하였더라도 누가 나더러 잔인(殘忍)하다고 하였겠는가? 단지 중궁(中宮)을 보아서 아직까지 감히 사사(賜死)시키지 않았으나, 내가 어찌 독촉하여 자진하게 하라고 하겠는가? 실로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인데, 만약에 이맹진(李孟畛)이 잘못 전했다면 이맹진에게 죄가 있고, 이맹진이 말하지 않았는데 권우가 독촉하였다면, 권우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
사헌부(司憲府)에 명하여 핵문(劾問)하게 하니, 대사헌(大司憲) 이원이 아뢰기를,
"헌부(憲府)에 내린다면 반드시 직첩(職牒)을 거둔 뒤에 추핵(推劾)하여야 하는데, 권우와 이맹진은 아직도 누가 유죄한지 알지 못하니, 청컨대, 의금부(義禁府)에 내려서 신 등으로 하여금 잡치(雜治)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의금부에서 상언(上言)하기를,
"권우가 말하기를, ‘이맹진이 선전(宣傳)하기를, 「민무휼로 하여금 자진(自盡)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하고, 이맹진은 말하기를 ‘성상의 명령과 같이 하였다.’고 하니, 두 사람의 말이 같이 아니합니다. 청컨대, 형문(刑問)하여 핵실(覈實)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나는 이맹진의 실수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동시에 명을 받았던 송인산(宋仁山)도 청주(淸州)에서 착오가 없게 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권우가 잘못 들은 소치일 것이다. 권우는 우유(迂儒)038) 이므로 죄가 무거울까 두려워서 복죄하지 않지만, 이것은 사죄(死罪)가 아니다. 만약에 이것을 가지고 일일이 깨우쳐 주면 형벌을 쓰지 않고도 정상을 캐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이를 의논하게 하니, 유사눌(柳思訥)이,
"위법한 단서가 이미 나타났는데도 사실을 고백하지 아니하니, 신하의 뜻이 없습니다. 형문(刑問)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명하기를,
"내가 형(刑)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경(卿)의 말도 이치에 근거한 것이니, 또한 옳다."
하고, 바로 먼저 이맹진의 갇힌 것을 풀어 주었다.
- [註 036] 하 정승(河政丞) : 하윤(河崙).
- [註 037] 일수 양반(日守兩班) : 지방 각역(各驛)에서 심부름하는 천례(賤隸). 《세종실록(世宗實錄)》 28권에 보면, "각 고을 각역(各驛)에서, 앞에서 심부름하는 자를 국속(國俗)에서 일수 양반이라 한다." 하였음.
- [註 038] 우유(迂儒) : 세상 물정에 어두운 유학자.
원문
○囚原州牧使權遇于義禁府。 上曰: "昔無恤、無悔蒙喪而入見。 無悔告予曰: ‘兄等以其罪死也。’ 又庚寅年, 無悔曰: ‘我等宜合門屠戮, 爲養老母而生存。’ 予曰: ‘以何罪合門屠戮乎? 雖宋氏有恩, 予豈爲是哉? 但以中宮言: 「此人等寧宜短命。」 予見中宮而不敢決斷。’ 前日河政丞曰: ‘此人等若逃越江, 則不可。’ 故命承政院, 使人堅守。 義禁府官員二人來辭, 予曰: ‘堅守莫使逃逸, 萬一欲自盡, 勿禁之耳。’ 是則知申事嘗曰: ‘此人出去時, 謂義禁府百戶言曰: 「但爲有老母耳。」’故予使之勿禁。 今原州牧使權遇報云: ‘本州安置無恤, 據王旨, 使人吏、日守兩班及侍衛軍圍守, 促令自盡, 十四日自縊而死。’ 蓋其罪當誅, 衆皆請之。 予雖如法, 誰謂我殘忍? 但見中宮, 尙不敢賜死, 予豈言督令自盡? 實予所不言。 若孟畛誤傳, 則孟畛有罪也, 孟畛不言而遇促之, 則遇有罪也。" 命司憲府劾問。 大司憲李原啓曰: "下司憲府則必收職牒而後推劾。 遇與孟畛未知某爲有罪, 請下義禁府, 令臣等雜治。" 從之。 義禁府上言曰: "權遇白: ‘孟畛宣傳曰: 「使無恤自盡。」’ 孟畛白: ‘如上命。’ 二言不同, 請刑問覈實。" 上曰: "予以爲非孟畛之失也。 同時受命, 宋仁山於淸州不差, 此必遇誤聽所致也。 遇迂儒, 恐罪重不伏, 此非死罪也。 若以此開曉, 可不用刑而得情。" 仍命承政院議之。 思訥曰: "違端已露, 而不以實白, 無人臣之意, 刑問可也。" 命曰: "予惡用刑, 卿言據理亦是。" 乃先釋孟畛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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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6년 (1416)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