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29권, 태종 15년 5월 8일 갑진 2/4 기사 / 1415년 명 영락(永樂) 13년
민무회·염치용의 일로 형조에 명하여 의정부를 핵문하게 하다
국역
형조에 명하여 의정부를 핵문(劾問)하게 하였다. 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 완산 부원군(完山府院君) 이천우(李天祐)와 금천군(錦川君) 박은(朴訔)이 대궐에 나아와 아뢰었다.
"전일에 신 등이 염치용의 불충한 죄를 모반 대역(謀反大逆)의 율(律)에 좇아 아뢰었으나, 성상의 자애(慈愛)를 입어 감등(減等)하여 시행하였습니다. 이제 우의정 이직(李稷)의 말을 들으니, ‘염치용은 노비(奴婢)를 얻지 못한 연유로 해서 분한(忿恨)을 이기지 못하여 이 같은 허탄(虛誕)한 말을 발설한 것뿐인데, 지금 모역(謀逆)의 율(律)에 해당시킴은 잘못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은 이 말을 듣고서는 감히 출사(出仕)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신 등을 유사(攸司)에 내리어 변명(辨明)하게 해주소서."
임금이 육조(六曹)를 불러 그 진위(眞僞)를 추핵(推覈)하게 하고, 또 명하여 대언(代言) 조말생(趙末生)을 영의정 하윤(河崙)의 집에, 한상덕(韓尙德)을 좌의정 남재(南在)의 집에, 탁신(卓愼)을 우의정 이직(李稷)의 집에 보내어, 의금부에서 조율(照律)한 것이 ‘맞지 않는다’는 뜻을 물어서 오게 하니, 대언(代言) 등이 복명(復命)하였는데, 조금 있다가 하윤(河崙)과 남재(南在)·이직(李稷) 등이 대궐에 나아와 하윤이 상언(上言)하였다.
"염치용의 죄를 감등(減等)하는 것에 여러 신하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염치용이 신을 가리켜 ‘뇌물을 받았다.’고 한 까닭에, 신은 혐의를 피[避嫌]하여 감히 죄를 청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이직이 아뢰었다.
"염치용은 불충한 말을 드러내 놓고 말하였으니, 그 죄는 주륙(誅戮)함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성상이 감등(減等)하는 일도 매우 이치에 합당하므로 주륙을 청함은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또 대신이 일을 청하는 것을 가볍게 할 수 없고, 또 생각하건대, ‘역모’란 두 글자가 합당하지 못하다고 여긴 것뿐이지 반드시 의금부의 조율(照律)이 잘못되었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군주가 더불어 일을 대신과 의논하므로 신하로서 정승(政丞)에 이르기를 어렵게 여긴다. 경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바로서 지위가 극품(極品)에 있다. 비록 사리를 알지 못하는 대신이라 하더라도 응당 이 같은 말은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경은 대체(大體)를 알지 않는가? 내 또한 생각하건대, 반드시 이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 여긴다."
이직이,
"신을 유사(攸司)에 내리시어 발명(發明)하게 하여 주소서."
하고, 물러가자, 참찬(參贊) 유정현(柳廷顯)을 불러 그 까닭을 물으니, 유정현이 대답하였다.
"4월 27일에 찬성(贊成) 이숙번(李叔蕃)이 사람을 시켜 신을 부르기에, 신이 그 집으로 갔었습니다. 이숙번(李叔蕃)이 말하기를, ‘염치용(廉致庸)과 민무회(閔無悔)의 말이 주상에게 미쳤으니 그 죄가 주륙에 해당한다. 그러나, 주상이 말감(末減)에 좇아 시행하였고, 헌사(憲司)에서도 한 번도 죄를 청하지 아니하니, 이제 무슨 낯으로 다시 죄를 청하겠는가? 우리들이 진실로 죄를 청해야 한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옳다’고 하니, 이숙번이 ‘이직의 사위가 민무회의 형이니, 반드시 그 죄를 청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대의(大義) 앞엔 친족(親族)도 없다. 어찌 인척(姻戚)의 도당 때문에 공의(公義)를 폐하겠는가?’ 하고, 즉시 사인(舍人) 조서로(趙瑞老)를 보내어 3의정(議政)에게 통지하였습니다. 조서로가 돌아와 그 회답을 말하기를, ‘영의정은 말하기를, 염치용이 나를 가리켜 뇌물을 받았다고 하므로, 〈나는〉 혐의가 있어 죄를 청하기 어렵다.’ 하였고, 좌의정은 말하기를, ‘부(府)에서 합하여 죄를 청하고자 한다면 그에 따르겠다.’고 하여, 여전히 어물쩍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고, 우의정은 말하기를, ‘염치용의 죄는 주상이 단안을 내리기에 여지가 없으니, 다시 죄를 청함은 옳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말뜻을 들으니 모두가 죄를 청하려 하지 않음이었습니다.
5월 초1일에 일식(日食)을 구(救)하기 위하여 자문(紫門)에 모였었는데, 의정부의 영의정은 오지 아니하였고, 좌의정과 우의정이 자리에 있기에, 신이 또 앞서의 의논을 말하였습니다. 이직이 애써 말하기를, ‘염치용은 노비를 빼앗긴 데 격분하여 원망의 말을 한 것뿐이지, 위계(危計)를 꾀하고 악역(惡逆)을 한 것도 아니니,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듯하다. 본래 상소(上疏)에 따라서 다스렸으니, 어찌 감히 다시 청하여 그 죄를 더하겠는가?’ 하므로, 신이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을 변하여 말하기를, ‘이 일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인데 장관(長官)이 하려고 하지 않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하였습니다. 초7일에 이르러 3정승과 함께 대궐에 나아와 교지(敎旨)를 들은 뒤 집으로 돌아갈 때, 이직이 길에다 말을 세우고 신을 기다리기에, 신이 말에 채찍질을 가하여 그 앞으로 갔더니, 이직이 저에게 말하기를, ‘지난번에 죄를 청할 것을 의논하다가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 주상의 명령을 듣고 보니, 부끄럽고 뉘우침을 이기지 못하겠다. 공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한한다.’ 하였으므로, 신이 말하기를, ‘내가 죄를 청하고자 하였으나 공이 들어주지 아니하여, 지금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과연 징험이 되지 않았는가?’ 하니, 이직이, ‘진실로 그러하다. 그러나, 그 죄를 청하지 않은 것이 도리어 임금의 덕(德)을 보충하는 소이(所以)가 될는지 어찌 알겠는가?’ 하였습니다."
임금이 즉시 육조에 명하여 의정부에 묻기를, 의금부에서 조율(照律)한 것이 타당치 못하다고 한 까닭을 묻게 하고, 형조로 하여금 이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원문
○命刑曹劾問議政府。 義禁府提調完山府院君 李天祐、錦川君 朴訔詣闕啓曰: "前日臣等將致庸不忠之罪, 比謀反大逆之律以聞, 蒙上慈減等施行。 今聞, 右議政李稷之言曰: ‘致庸以不得奴婢之故, 不勝忿恨, 發此虛誕之言耳, 今乃當以謀逆之律誤矣。’ 臣等聞此, 不敢出仕, 請下臣等于攸司, 使得辨明。" 上命召六曹, 推覈眞僞, 命遣代言趙末生于領議政河崙, 韓尙德于左議政南在, 卓愼于右議政李稷等第, 問義禁府照律不協之意以來。 代言等復命。 俄而崙及在、稷等詣闕, 崙上言曰: "減等致庸之罪, 群臣缺望。 特以致庸指臣爲受贈, 故臣避嫌不敢請罪耳。" 稷啓曰: "致庸揚說不忠之言, 其罪應誅。 然上之減等, 甚合於理, 不應請誅。 且大臣請事, 不可輕擧, 又意謀逆二字之不合耳, 非必以義禁府之照律爲誤也。" 上曰: "君之所與議事者大臣, 臣之至於政丞者爲難。 卿以人所瞻望, 位於極品, 雖不識理之大臣, 不應發如此之言, 況卿知大體乎? 吾亦意其必不爲如此言也。" 稷曰: "下臣攸司, 俾得發明。" 旣退, 召參贊柳廷顯問其故, 廷顯曰: "四月二十七日, 贊成李叔蕃使人呼臣, 臣到其家, 叔蕃曰: ‘致庸、無悔言及於上, 罪當誅戮, 上從末減施行。 憲司一不請罪, 今將何顔以復請乎? 吾等固當請罪。’ 臣曰: ‘諾。’ 叔蕃曰: ‘稷之女壻, 無悔之兄也, 必不肯爲。’ 臣曰: ‘大義滅親, 豈以姻黨, 廢公義乎?’ 卽遣舍人趙瑞老, 通於三議政, 瑞老回答言: ‘領議政云: 「致庸指我爲受賂, 有嫌難請。」 左議政云: 「合府欲請則從之。」 依違不決。 右議政云: 「致庸之罪, 上斷之無餘, 不應復請也。」 聽其言詮, 皆不欲爲。’ 五月初一日, 以救日食, 會于紫門。 議政府領議政不來, 左右議政在坐, 臣又發前議, 稷力言: ‘致庸特忿於見奪奴婢, 而出怨言, 不是謀危惡逆。 籍沒家産, 似爲甚重, 固應疏理, 何敢復請而增之?’ 臣聞而作色曰: ‘此事在所當爲, 然長官不欲, 何以爲之?’ 及至初七日, 同三相詣闕聽旨之後還家。 時, 稷在途駐馬俟臣, 臣策馬而前, 稷謂臣曰: ‘向者議請罪而未果, 今聞上命, 不勝慙悔, 恨不用公言。’ 臣曰: ‘吾欲請之, 公不見聽, 今事至如此, 果不驗歟?’ 稷曰: ‘誠然。 然安知其不爲, 乃所以反補君德也歟?’" 上卽命六曹, 問議政府以義禁府照律爲未協之由, 使刑曹掌之。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국역
형조에 명하여 의정부를 핵문(劾問)하게 하였다. 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 완산 부원군(完山府院君) 이천우(李天祐)와 금천군(錦川君) 박은(朴訔)이 대궐에 나아와 아뢰었다.
"전일에 신 등이 염치용의 불충한 죄를 모반 대역(謀反大逆)의 율(律)에 좇아 아뢰었으나, 성상의 자애(慈愛)를 입어 감등(減等)하여 시행하였습니다. 이제 우의정 이직(李稷)의 말을 들으니, ‘염치용은 노비(奴婢)를 얻지 못한 연유로 해서 분한(忿恨)을 이기지 못하여 이 같은 허탄(虛誕)한 말을 발설한 것뿐인데, 지금 모역(謀逆)의 율(律)에 해당시킴은 잘못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은 이 말을 듣고서는 감히 출사(出仕)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신 등을 유사(攸司)에 내리어 변명(辨明)하게 해주소서."
임금이 육조(六曹)를 불러 그 진위(眞僞)를 추핵(推覈)하게 하고, 또 명하여 대언(代言) 조말생(趙末生)을 영의정 하윤(河崙)의 집에, 한상덕(韓尙德)을 좌의정 남재(南在)의 집에, 탁신(卓愼)을 우의정 이직(李稷)의 집에 보내어, 의금부에서 조율(照律)한 것이 ‘맞지 않는다’는 뜻을 물어서 오게 하니, 대언(代言) 등이 복명(復命)하였는데, 조금 있다가 하윤(河崙)과 남재(南在)·이직(李稷) 등이 대궐에 나아와 하윤이 상언(上言)하였다.
"염치용의 죄를 감등(減等)하는 것에 여러 신하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염치용이 신을 가리켜 ‘뇌물을 받았다.’고 한 까닭에, 신은 혐의를 피[避嫌]하여 감히 죄를 청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이직이 아뢰었다.
"염치용은 불충한 말을 드러내 놓고 말하였으니, 그 죄는 주륙(誅戮)함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성상이 감등(減等)하는 일도 매우 이치에 합당하므로 주륙을 청함은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또 대신이 일을 청하는 것을 가볍게 할 수 없고, 또 생각하건대, ‘역모’란 두 글자가 합당하지 못하다고 여긴 것뿐이지 반드시 의금부의 조율(照律)이 잘못되었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군주가 더불어 일을 대신과 의논하므로 신하로서 정승(政丞)에 이르기를 어렵게 여긴다. 경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바로서 지위가 극품(極品)에 있다. 비록 사리를 알지 못하는 대신이라 하더라도 응당 이 같은 말은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경은 대체(大體)를 알지 않는가? 내 또한 생각하건대, 반드시 이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 여긴다."
이직이,
"신을 유사(攸司)에 내리시어 발명(發明)하게 하여 주소서."
하고, 물러가자, 참찬(參贊) 유정현(柳廷顯)을 불러 그 까닭을 물으니, 유정현이 대답하였다.
"4월 27일에 찬성(贊成) 이숙번(李叔蕃)이 사람을 시켜 신을 부르기에, 신이 그 집으로 갔었습니다. 이숙번(李叔蕃)이 말하기를, ‘염치용(廉致庸)과 민무회(閔無悔)의 말이 주상에게 미쳤으니 그 죄가 주륙에 해당한다. 그러나, 주상이 말감(末減)에 좇아 시행하였고, 헌사(憲司)에서도 한 번도 죄를 청하지 아니하니, 이제 무슨 낯으로 다시 죄를 청하겠는가? 우리들이 진실로 죄를 청해야 한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옳다’고 하니, 이숙번이 ‘이직의 사위가 민무회의 형이니, 반드시 그 죄를 청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대의(大義) 앞엔 친족(親族)도 없다. 어찌 인척(姻戚)의 도당 때문에 공의(公義)를 폐하겠는가?’ 하고, 즉시 사인(舍人) 조서로(趙瑞老)를 보내어 3의정(議政)에게 통지하였습니다. 조서로가 돌아와 그 회답을 말하기를, ‘영의정은 말하기를, 염치용이 나를 가리켜 뇌물을 받았다고 하므로, 〈나는〉 혐의가 있어 죄를 청하기 어렵다.’ 하였고, 좌의정은 말하기를, ‘부(府)에서 합하여 죄를 청하고자 한다면 그에 따르겠다.’고 하여, 여전히 어물쩍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고, 우의정은 말하기를, ‘염치용의 죄는 주상이 단안을 내리기에 여지가 없으니, 다시 죄를 청함은 옳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말뜻을 들으니 모두가 죄를 청하려 하지 않음이었습니다.
5월 초1일에 일식(日食)을 구(救)하기 위하여 자문(紫門)에 모였었는데, 의정부의 영의정은 오지 아니하였고, 좌의정과 우의정이 자리에 있기에, 신이 또 앞서의 의논을 말하였습니다. 이직이 애써 말하기를, ‘염치용은 노비를 빼앗긴 데 격분하여 원망의 말을 한 것뿐이지, 위계(危計)를 꾀하고 악역(惡逆)을 한 것도 아니니,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듯하다. 본래 상소(上疏)에 따라서 다스렸으니, 어찌 감히 다시 청하여 그 죄를 더하겠는가?’ 하므로, 신이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을 변하여 말하기를, ‘이 일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인데 장관(長官)이 하려고 하지 않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하였습니다. 초7일에 이르러 3정승과 함께 대궐에 나아와 교지(敎旨)를 들은 뒤 집으로 돌아갈 때, 이직이 길에다 말을 세우고 신을 기다리기에, 신이 말에 채찍질을 가하여 그 앞으로 갔더니, 이직이 저에게 말하기를, ‘지난번에 죄를 청할 것을 의논하다가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 주상의 명령을 듣고 보니, 부끄럽고 뉘우침을 이기지 못하겠다. 공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한한다.’ 하였으므로, 신이 말하기를, ‘내가 죄를 청하고자 하였으나 공이 들어주지 아니하여, 지금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과연 징험이 되지 않았는가?’ 하니, 이직이, ‘진실로 그러하다. 그러나, 그 죄를 청하지 않은 것이 도리어 임금의 덕(德)을 보충하는 소이(所以)가 될는지 어찌 알겠는가?’ 하였습니다."
임금이 즉시 육조에 명하여 의정부에 묻기를, 의금부에서 조율(照律)한 것이 타당치 못하다고 한 까닭을 묻게 하고, 형조로 하여금 이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원문
○命刑曹劾問議政府。 義禁府提調完山府院君 李天祐、錦川君 朴訔詣闕啓曰: "前日臣等將致庸不忠之罪, 比謀反大逆之律以聞, 蒙上慈減等施行。 今聞, 右議政李稷之言曰: ‘致庸以不得奴婢之故, 不勝忿恨, 發此虛誕之言耳, 今乃當以謀逆之律誤矣。’ 臣等聞此, 不敢出仕, 請下臣等于攸司, 使得辨明。" 上命召六曹, 推覈眞僞, 命遣代言趙末生于領議政河崙, 韓尙德于左議政南在, 卓愼于右議政李稷等第, 問義禁府照律不協之意以來。 代言等復命。 俄而崙及在、稷等詣闕, 崙上言曰: "減等致庸之罪, 群臣缺望。 特以致庸指臣爲受贈, 故臣避嫌不敢請罪耳。" 稷啓曰: "致庸揚說不忠之言, 其罪應誅。 然上之減等, 甚合於理, 不應請誅。 且大臣請事, 不可輕擧, 又意謀逆二字之不合耳, 非必以義禁府之照律爲誤也。" 上曰: "君之所與議事者大臣, 臣之至於政丞者爲難。 卿以人所瞻望, 位於極品, 雖不識理之大臣, 不應發如此之言, 況卿知大體乎? 吾亦意其必不爲如此言也。" 稷曰: "下臣攸司, 俾得發明。" 旣退, 召參贊柳廷顯問其故, 廷顯曰: "四月二十七日, 贊成李叔蕃使人呼臣, 臣到其家, 叔蕃曰: ‘致庸、無悔言及於上, 罪當誅戮, 上從末減施行。 憲司一不請罪, 今將何顔以復請乎? 吾等固當請罪。’ 臣曰: ‘諾。’ 叔蕃曰: ‘稷之女壻, 無悔之兄也, 必不肯爲。’ 臣曰: ‘大義滅親, 豈以姻黨, 廢公義乎?’ 卽遣舍人趙瑞老, 通於三議政, 瑞老回答言: ‘領議政云: 「致庸指我爲受賂, 有嫌難請。」 左議政云: 「合府欲請則從之。」 依違不決。 右議政云: 「致庸之罪, 上斷之無餘, 不應復請也。」 聽其言詮, 皆不欲爲。’ 五月初一日, 以救日食, 會于紫門。 議政府領議政不來, 左右議政在坐, 臣又發前議, 稷力言: ‘致庸特忿於見奪奴婢, 而出怨言, 不是謀危惡逆。 籍沒家産, 似爲甚重, 固應疏理, 何敢復請而增之?’ 臣聞而作色曰: ‘此事在所當爲, 然長官不欲, 何以爲之?’ 及至初七日, 同三相詣闕聽旨之後還家。 時, 稷在途駐馬俟臣, 臣策馬而前, 稷謂臣曰: ‘向者議請罪而未果, 今聞上命, 不勝慙悔, 恨不用公言。’ 臣曰: ‘吾欲請之, 公不見聽, 今事至如此, 果不驗歟?’ 稷曰: ‘誠然。 然安知其不爲, 乃所以反補君德也歟?’" 上卽命六曹, 問議政府以義禁府照律爲未協之由, 使刑曹掌之。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