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28권, 태종 14년 11월 2일 신축 1/2 기사 /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동지에 잔치를 베푸니 권희달과 박자청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
국역
동지(冬至)였으므로 임금이 상왕(上王)을 받들고 광연루(廣延樓) 아래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이어서 여러 신하에게 돈화문(敦化門) 안에서 잔치를 내려 주었다. 잔치가 파하니, 여러 신하들이 사은(謝恩)하고자 하여 함께 전정(殿庭)으로 들어가는데, 총제(摠制) 권희달(權希達)이 술에 취하여, 각 조(曹) 참의(參議)들의 반서(班序)가 매우 가까운 것을 보고, 녹사(錄事)를 불러서 예조(禮曹)에 고(告)하였다. 박자청(朴子靑)이 듣고서 이를 금지시키니, 권희달이 노하여 욕을 하였다. 박자청도 술기운으로 언성(言聲)을 높여서 권희달을 꾸짖고 이를 때리고자 하니, 권희달이 말을 순하게 하여 무릎을 꿇고 사과하였으므로 박자청이 그제서야 그만두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박자청의 광포(狂暴)함이 도리어 권희달보다 지나치다."
다음날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上疏)하였다.
"재상(宰相)은 인주(人主)의 고굉(股肱)이요, 조정(朝廷)의 의표(儀表)이니, 행동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자청·권희달이 전정(殿庭)에 반열(班列)하여 서서 사사로이 서로 분(憤)을 내어, 처음에는 고성(高聲)으로 서로 다투다가 나중에는 부여잡고서 꾸짖고 욕하였으니, 그 조정의 기강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법을 업신여기고 예를 허물어뜨림이 심하였습니다. 청컨대, 유사(攸司)에 내려서 죄를 다스려서 조정을 바로잡으소서."
임금이 두 사람의 성질이 본래 광포(狂暴)하여 족히 죄를 가(加)할 것이 못된다고 하여, 다만 명하여 가노(家奴)를 각각 10명씩 의금부(義禁府)에 가두도록 하였다. 헌사(憲司)에서도 또한 소청(疏請)하였으나 임금이 들어주지 않았다.
원문
태종 14년 (1414) 11월 2일
국역
동지(冬至)였으므로 임금이 상왕(上王)을 받들고 광연루(廣延樓) 아래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이어서 여러 신하에게 돈화문(敦化門) 안에서 잔치를 내려 주었다. 잔치가 파하니, 여러 신하들이 사은(謝恩)하고자 하여 함께 전정(殿庭)으로 들어가는데, 총제(摠制) 권희달(權希達)이 술에 취하여, 각 조(曹) 참의(參議)들의 반서(班序)가 매우 가까운 것을 보고, 녹사(錄事)를 불러서 예조(禮曹)에 고(告)하였다. 박자청(朴子靑)이 듣고서 이를 금지시키니, 권희달이 노하여 욕을 하였다. 박자청도 술기운으로 언성(言聲)을 높여서 권희달을 꾸짖고 이를 때리고자 하니, 권희달이 말을 순하게 하여 무릎을 꿇고 사과하였으므로 박자청이 그제서야 그만두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박자청의 광포(狂暴)함이 도리어 권희달보다 지나치다."
다음날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上疏)하였다.
"재상(宰相)은 인주(人主)의 고굉(股肱)이요, 조정(朝廷)의 의표(儀表)이니, 행동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자청·권희달이 전정(殿庭)에 반열(班列)하여 서서 사사로이 서로 분(憤)을 내어, 처음에는 고성(高聲)으로 서로 다투다가 나중에는 부여잡고서 꾸짖고 욕하였으니, 그 조정의 기강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법을 업신여기고 예를 허물어뜨림이 심하였습니다. 청컨대, 유사(攸司)에 내려서 죄를 다스려서 조정을 바로잡으소서."
임금이 두 사람의 성질이 본래 광포(狂暴)하여 족히 죄를 가(加)할 것이 못된다고 하여, 다만 명하여 가노(家奴)를 각각 10명씩 의금부(義禁府)에 가두도록 하였다. 헌사(憲司)에서도 또한 소청(疏請)하였으나 임금이 들어주지 않았다.
원문
원본
태종 14년 (1414) 1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