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9권, 태종 10년 3월 26일 임진 2/4 기사 / 1410년 명 영락(永樂) 8년
민무구·민무질의 장례에 대한 임금의 명을 어긴 관원들을 힐문하다
국역
지신사(知申事) 안등(安騰)과 노희봉(盧希鳳)에게 제 집에 돌아가서 대죄(待罪)하라고 명하였다. 처음에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가노(家奴) 각 1명씩으로 하여금 역마(驛馬)를 달려 상구(喪具)를 제주(濟州)로 가져가게 하고, 전라도 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로 하여금 이 두 종[奴]에게 바다를 건널 선척(船隻)을 치장(治裝)해 주게 하고, 또 제주 목사(濟州牧使)에게 전지(傳旨)하여 땅을 택하여 후히 장사(葬事)하게 하고, 사인(舍人) 신개(申槪)를 불러 전교(傳敎)하기를,
"이 사람들을 이미 법에 의해 처치하였는데, 지금 내가 이 명령이 있는 것은 차마 못하기 때문이다. 의리에 해로울 것이 없으니 부디 저지하고 억제하지 말라."
하였다. 신개가 물러나와 당상(堂上)에게 고하고 다만 바다를 건너는 문빙(文憑)만 주었다. 대언(代言) 이안우(李安愚)가 사인(舍人) 조계생(趙啓生)에게 말하기를,
"제주(濟州)에 들여보낼 민무구 등의 노자(奴子)에게 역마(驛馬)를 지급할 문자(文字)가 이미 이루어졌는가?"
하니, 조계생이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안등(安騰)이 곧 신개의 승전(承傳) 내용을 조계생에게 고하였다. 조계생이 신개에게 물으니, 신개가 말하기를,
"듣지 못하였다."
하였다. 안등이 다시 조계생에게 전지(傳旨)하여 포마 문자(鋪馬文字)를 지급하게 하였다. 그 문자(文字)가 이미 발행되매, 여러 대언(代言)이 다시 사사로 조계생에게 이르기를,
"만일 민무구 등의 종[奴]이 체복사(體覆使)보다 먼저 제주(濟州)에 들어가면 혹 도망하여 숨을 염려가 있으니, 당상(堂上)에게 고하여 하루 이틀 늦추어서 발송해도 늦지 않다."
하였다. 조계생이 당상(堂上)에게 고하니, 조영무(趙英茂)·이조(李慥)가 옳게 여겨 다시 포마 문자(鋪馬文字)를 거두었다. 조계생이 말하기를,
"주상의 명령이 있으시니 머물러 둘 수 없습니다. 만일 전라 감사(全羅監司)에게 이첩(移牒)하여, 〈전라 감사가〉 작량(酌量)해서 체복사가 발선(發船)한 뒤에 기송(起送)하게 하는 것이 가할 것 같습니다."
하니, 황희(黃喜)·윤사수(尹思修)는 조계생의 말을 옳게 여겼으나, 조영무가 따르지 않았다. 이튿날 임금이 알고 조계생을 불러 편전(便殿) 문밖에 나오게 하여 묻기를,
"사인(舍人)은 도리를 아는 유생(儒生)인데, 어째서 마음대로 왕명(王命)을 폐하여 포마 문자(鋪馬文字)를 도로 거두었는가? 군신(君臣) 사이에 이같이 할 수 있는가? 또 민무구·민무질은 나라 사람이 모두 죽여야 된다고 하므로, 내가 부득이하여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러나, 어찌 인정(人情)이 없겠느냐? 내가 들으니, 처음에 제주에 들어갈 때에 저고리[襦衣] 하나만 입고 갔다고 한다. 지금 보내는 홑옷[單衣]은 빈렴(殯斂)하기 전에 도착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만일 노자(奴子)가 체복사(體覆使)와 함께 들어가지 못하면, 죽이는 날에 곧 입관(入棺)할 것이니, 입관한 뒤에 옷을 입힐 수 있겠느냐? 비록 종[奴]이 체복사와 같은 배를 타고 가더라도 어찌 죽이는 것을 금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조계생이 대답하기를,
"바다를 건너는 모든 일은 이미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게 이첩하여 판비(辦備)하였으므로, 하루 이틀 머물더라도 늦지 않기 때문에 환수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게 아뢰지 않고 마음대로 환수하였으니, 비록 정부(政府)라 하더라도 어찌 감히 이렇게 무례(無禮)할 수 있느냐? 곤외(閫外)042) 에 봉사(奉使)한 신하도 명령을 받을 일이 있으면 반드시 계문(啓聞)하는데, 하물며, 정부(政府)는 가까운 데 있는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고, 신개를 순금사(巡禁司)에 가두려고 하다가 조금 뒤에 말하기를,
"내가 만일 신개를 죄주면, 대신(大臣)이 반드시 불안해 할 것이다. 마땅히 명령을 전달한 자를 죄주겠다."
하고, 지신사(知申事) 안등(安騰)을 책하기를,
"네가 직책이 출납(出納)에 있으니, 포마(鋪馬)에 대한 말을 네가 반드시 전하지 않은 것이다. 네가 만일 전지(傳旨)하였다면, 정부(政府)에서 어찌 이렇게 하였겠는가? 내가 있을 때에 당해서도 오히려 이러하니, 만일 어린 임금이 선다면 반드시 명령을 좇지 않을 것이다."
하고, 노희봉(盧希鳳)과 더불어 집에 돌아가게 하였다. 또 조계생에게 명하기를,
"내가 너를 순금사에 가두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대신(大臣)을 공경하여서이다. 조심하여 다시는 이같이 불공(不恭)하지 말라."
하였다. 임금이 대언(代言)들에게 이르기를,
"안등과 신개 중에 누가 죄가 있는가? 왜 분별하여 아뢰지 않는가?"
하니, 김여지(金汝知)가 대답하기를,
"명령이 없으시기에 감히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신사(知申事)는 사실 죄가 없다. 신개가 명을 받고 정부(政府)에 전하지 않았으니, 죄는 신개에게 있다."
하고,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황희(黃喜)를 불러 뜻[旨]을 이르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신개가 명령을 받고 정부(政府)에 모두 전하지 않았고, 정부의 뜻은, 갑자기 죄인의 종[奴]으로 하여금 역마(驛馬)를 달려 체복관(體覆官)과 함께 행하게 하면, 해로(海路)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상량(商量)하여 아직 머물러 둔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인(舍人)이 내 명령을 전하지 않았으니, 나를 업신여긴 것이다. 또 당상(堂上)을 속였으니 죄가 있는가 없는가?"
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어찌 죄가 없겠습니까? 정부(政府)의 뜻이 비록 신이 아뢴 바와 같으나, 조계생도 또한 그 책임을 사면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인(舍人)의 죄를 내버려두고 묻지 않는 것은 대신(大臣)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정부(政府)는 피혐(避嫌)하지 말라."
하니, 황희가 물러갔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6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교통-수운(水運) / 왕실-국왕(國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042] 곤외(閫外) : 경계(境界)의 바깥.
원문
○命知申事安騰及盧希鳳, 歸其家待罪。 初, 命承政院, 令無咎、無疾家奴各一名, 馳驛致喪具于濟州, 使全羅道都觀察使裝給二奴過海船隻, 且傳旨于濟州牧使, 擇地厚葬。 召舍人申槪, 傳曰: "此人等已置於法, 今我有是命, 不忍故也。 無(防)〔妨〕 於義, 愼勿沮抑。" 槪退告堂上, 只給過海之文。 代言李安愚謂舍人趙啓生曰: "濟州入送無咎等奴子給馬文字已成歟?" 啓生對以不知。 安騰卽以申槪承傳, 告啓生, 啓生問槪, 槪曰: "未嘗聞。" 騰乃更傳旨於啓生, 俾給鋪馬文字。 其文字已發, 諸代言復私謂啓生曰: "萬一無咎等奴, 先體覆入濟州, 則或致逃匿, 可告堂上, 留一兩日發送未晩。" 啓生告堂上, 趙英茂、李慥等然之, 復收鋪馬之文。 啓生曰: "有上命, 不可拘留。 若移牒全羅監司, 酌量體覆發船後起送似可。" 黃喜、尹思修是啓生之言, 英茂不從。 翌日, 上知之, 召啓生進便殿門外問曰: "舍人是識理儒生, 乃何擅廢王命, 還收鋪馬之文? 君臣之間, 其若是乎? 且無咎、無疾, 國人皆曰可殺, 予不得已而從之。 然豈無人情乎? 予聞其初入濟州也, 但着一襦衣而去, 今送單衣, 欲及未殯之前也。 若其奴不與體覆同歸, 則殺之之日, 卽入棺, 入棺之後, 衣可着乎? 雖其奴與體覆同舟而去, 豈能禁其殺乎?" 啓生對曰: "過海凡事, 已行移於全羅道觀察使備辦, 留一二日, 未爲晩也, 故還收之。" 上曰: "不啓於予而擅收, 雖政府, 何敢如此無禮? 閫外奉使之臣, 如有取旨之事, 尙且啓聞。 況政府在近, 何得乃爾?" 欲下申槪于巡禁司, 旣而曰: "予若罪槪, 大臣必不安矣, 宜罪其傳命者。" 乃責知申事安騰曰: "汝職在出納, 鋪馬之言, 汝必不傳。 汝若傳旨, 則政府何至如此? 當我在時尙爾, 儻幼君立, 必不從命矣。" 使與希鳳歸家。 又命啓生曰: "吾欲下汝巡禁司, 所以不然者, 敬大臣也。 愼勿爲如此不恭。" 上謂代言等曰: "安騰、申槪, 孰爲有罪? 何不別白以聞?" 金汝知對曰: "未有所命, 不敢。" 上曰: "知申事實無罪。 槪承命而不傳於政府, 罪在槪。" 乃召知議政府事黃喜諭旨, 喜對曰: "槪承命不盡傳于政府, 且政府之意以謂: ‘遽使罪人之奴馳驛, 而與體覆官偕行, 其於海路, 或先或後, 未可知也。’ 是以商量而姑留也。" 上曰: "舍人不傳予命, 慢我也, 又欺堂上, 有罪歟? 無罪歟?" 喜對曰: "豈無罪乎? 政府之意, 雖如臣所啓, 啓生亦不得辭其責矣。" 上曰: "舍人之罪, 置而不問者, 敬大臣耳, 政府無避嫌。" 喜乃退。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6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교통-수운(水運) / 왕실-국왕(國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국역
지신사(知申事) 안등(安騰)과 노희봉(盧希鳳)에게 제 집에 돌아가서 대죄(待罪)하라고 명하였다. 처음에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가노(家奴) 각 1명씩으로 하여금 역마(驛馬)를 달려 상구(喪具)를 제주(濟州)로 가져가게 하고, 전라도 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로 하여금 이 두 종[奴]에게 바다를 건널 선척(船隻)을 치장(治裝)해 주게 하고, 또 제주 목사(濟州牧使)에게 전지(傳旨)하여 땅을 택하여 후히 장사(葬事)하게 하고, 사인(舍人) 신개(申槪)를 불러 전교(傳敎)하기를,
"이 사람들을 이미 법에 의해 처치하였는데, 지금 내가 이 명령이 있는 것은 차마 못하기 때문이다. 의리에 해로울 것이 없으니 부디 저지하고 억제하지 말라."
하였다. 신개가 물러나와 당상(堂上)에게 고하고 다만 바다를 건너는 문빙(文憑)만 주었다. 대언(代言) 이안우(李安愚)가 사인(舍人) 조계생(趙啓生)에게 말하기를,
"제주(濟州)에 들여보낼 민무구 등의 노자(奴子)에게 역마(驛馬)를 지급할 문자(文字)가 이미 이루어졌는가?"
하니, 조계생이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안등(安騰)이 곧 신개의 승전(承傳) 내용을 조계생에게 고하였다. 조계생이 신개에게 물으니, 신개가 말하기를,
"듣지 못하였다."
하였다. 안등이 다시 조계생에게 전지(傳旨)하여 포마 문자(鋪馬文字)를 지급하게 하였다. 그 문자(文字)가 이미 발행되매, 여러 대언(代言)이 다시 사사로 조계생에게 이르기를,
"만일 민무구 등의 종[奴]이 체복사(體覆使)보다 먼저 제주(濟州)에 들어가면 혹 도망하여 숨을 염려가 있으니, 당상(堂上)에게 고하여 하루 이틀 늦추어서 발송해도 늦지 않다."
하였다. 조계생이 당상(堂上)에게 고하니, 조영무(趙英茂)·이조(李慥)가 옳게 여겨 다시 포마 문자(鋪馬文字)를 거두었다. 조계생이 말하기를,
"주상의 명령이 있으시니 머물러 둘 수 없습니다. 만일 전라 감사(全羅監司)에게 이첩(移牒)하여, 〈전라 감사가〉 작량(酌量)해서 체복사가 발선(發船)한 뒤에 기송(起送)하게 하는 것이 가할 것 같습니다."
하니, 황희(黃喜)·윤사수(尹思修)는 조계생의 말을 옳게 여겼으나, 조영무가 따르지 않았다. 이튿날 임금이 알고 조계생을 불러 편전(便殿) 문밖에 나오게 하여 묻기를,
"사인(舍人)은 도리를 아는 유생(儒生)인데, 어째서 마음대로 왕명(王命)을 폐하여 포마 문자(鋪馬文字)를 도로 거두었는가? 군신(君臣) 사이에 이같이 할 수 있는가? 또 민무구·민무질은 나라 사람이 모두 죽여야 된다고 하므로, 내가 부득이하여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러나, 어찌 인정(人情)이 없겠느냐? 내가 들으니, 처음에 제주에 들어갈 때에 저고리[襦衣] 하나만 입고 갔다고 한다. 지금 보내는 홑옷[單衣]은 빈렴(殯斂)하기 전에 도착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만일 노자(奴子)가 체복사(體覆使)와 함께 들어가지 못하면, 죽이는 날에 곧 입관(入棺)할 것이니, 입관한 뒤에 옷을 입힐 수 있겠느냐? 비록 종[奴]이 체복사와 같은 배를 타고 가더라도 어찌 죽이는 것을 금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조계생이 대답하기를,
"바다를 건너는 모든 일은 이미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게 이첩하여 판비(辦備)하였으므로, 하루 이틀 머물더라도 늦지 않기 때문에 환수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게 아뢰지 않고 마음대로 환수하였으니, 비록 정부(政府)라 하더라도 어찌 감히 이렇게 무례(無禮)할 수 있느냐? 곤외(閫外)042) 에 봉사(奉使)한 신하도 명령을 받을 일이 있으면 반드시 계문(啓聞)하는데, 하물며, 정부(政府)는 가까운 데 있는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고, 신개를 순금사(巡禁司)에 가두려고 하다가 조금 뒤에 말하기를,
"내가 만일 신개를 죄주면, 대신(大臣)이 반드시 불안해 할 것이다. 마땅히 명령을 전달한 자를 죄주겠다."
하고, 지신사(知申事) 안등(安騰)을 책하기를,
"네가 직책이 출납(出納)에 있으니, 포마(鋪馬)에 대한 말을 네가 반드시 전하지 않은 것이다. 네가 만일 전지(傳旨)하였다면, 정부(政府)에서 어찌 이렇게 하였겠는가? 내가 있을 때에 당해서도 오히려 이러하니, 만일 어린 임금이 선다면 반드시 명령을 좇지 않을 것이다."
하고, 노희봉(盧希鳳)과 더불어 집에 돌아가게 하였다. 또 조계생에게 명하기를,
"내가 너를 순금사에 가두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대신(大臣)을 공경하여서이다. 조심하여 다시는 이같이 불공(不恭)하지 말라."
하였다. 임금이 대언(代言)들에게 이르기를,
"안등과 신개 중에 누가 죄가 있는가? 왜 분별하여 아뢰지 않는가?"
하니, 김여지(金汝知)가 대답하기를,
"명령이 없으시기에 감히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신사(知申事)는 사실 죄가 없다. 신개가 명을 받고 정부(政府)에 전하지 않았으니, 죄는 신개에게 있다."
하고,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황희(黃喜)를 불러 뜻[旨]을 이르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신개가 명령을 받고 정부(政府)에 모두 전하지 않았고, 정부의 뜻은, 갑자기 죄인의 종[奴]으로 하여금 역마(驛馬)를 달려 체복관(體覆官)과 함께 행하게 하면, 해로(海路)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상량(商量)하여 아직 머물러 둔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인(舍人)이 내 명령을 전하지 않았으니, 나를 업신여긴 것이다. 또 당상(堂上)을 속였으니 죄가 있는가 없는가?"
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어찌 죄가 없겠습니까? 정부(政府)의 뜻이 비록 신이 아뢴 바와 같으나, 조계생도 또한 그 책임을 사면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인(舍人)의 죄를 내버려두고 묻지 않는 것은 대신(大臣)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정부(政府)는 피혐(避嫌)하지 말라."
하니, 황희가 물러갔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6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교통-수운(水運) / 왕실-국왕(國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042] 곤외(閫外) : 경계(境界)의 바깥.
원문
○命知申事安騰及盧希鳳, 歸其家待罪。 初, 命承政院, 令無咎、無疾家奴各一名, 馳驛致喪具于濟州, 使全羅道都觀察使裝給二奴過海船隻, 且傳旨于濟州牧使, 擇地厚葬。 召舍人申槪, 傳曰: "此人等已置於法, 今我有是命, 不忍故也。 無(防)〔妨〕 於義, 愼勿沮抑。" 槪退告堂上, 只給過海之文。 代言李安愚謂舍人趙啓生曰: "濟州入送無咎等奴子給馬文字已成歟?" 啓生對以不知。 安騰卽以申槪承傳, 告啓生, 啓生問槪, 槪曰: "未嘗聞。" 騰乃更傳旨於啓生, 俾給鋪馬文字。 其文字已發, 諸代言復私謂啓生曰: "萬一無咎等奴, 先體覆入濟州, 則或致逃匿, 可告堂上, 留一兩日發送未晩。" 啓生告堂上, 趙英茂、李慥等然之, 復收鋪馬之文。 啓生曰: "有上命, 不可拘留。 若移牒全羅監司, 酌量體覆發船後起送似可。" 黃喜、尹思修是啓生之言, 英茂不從。 翌日, 上知之, 召啓生進便殿門外問曰: "舍人是識理儒生, 乃何擅廢王命, 還收鋪馬之文? 君臣之間, 其若是乎? 且無咎、無疾, 國人皆曰可殺, 予不得已而從之。 然豈無人情乎? 予聞其初入濟州也, 但着一襦衣而去, 今送單衣, 欲及未殯之前也。 若其奴不與體覆同歸, 則殺之之日, 卽入棺, 入棺之後, 衣可着乎? 雖其奴與體覆同舟而去, 豈能禁其殺乎?" 啓生對曰: "過海凡事, 已行移於全羅道觀察使備辦, 留一二日, 未爲晩也, 故還收之。" 上曰: "不啓於予而擅收, 雖政府, 何敢如此無禮? 閫外奉使之臣, 如有取旨之事, 尙且啓聞。 況政府在近, 何得乃爾?" 欲下申槪于巡禁司, 旣而曰: "予若罪槪, 大臣必不安矣, 宜罪其傳命者。" 乃責知申事安騰曰: "汝職在出納, 鋪馬之言, 汝必不傳。 汝若傳旨, 則政府何至如此? 當我在時尙爾, 儻幼君立, 必不從命矣。" 使與希鳳歸家。 又命啓生曰: "吾欲下汝巡禁司, 所以不然者, 敬大臣也。 愼勿爲如此不恭。" 上謂代言等曰: "安騰、申槪, 孰爲有罪? 何不別白以聞?" 金汝知對曰: "未有所命, 不敢。" 上曰: "知申事實無罪。 槪承命而不傳於政府, 罪在槪。" 乃召知議政府事黃喜諭旨, 喜對曰: "槪承命不盡傳于政府, 且政府之意以謂: ‘遽使罪人之奴馳驛, 而與體覆官偕行, 其於海路, 或先或後, 未可知也。’ 是以商量而姑留也。" 上曰: "舍人不傳予命, 慢我也, 又欺堂上, 有罪歟? 無罪歟?" 喜對曰: "豈無罪乎? 政府之意, 雖如臣所啓, 啓生亦不得辭其責矣。" 上曰: "舍人之罪, 置而不問者, 敬大臣耳, 政府無避嫌。" 喜乃退。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6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교통-수운(水運) / 왕실-국왕(國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