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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16권, 태종 8년 12월 6일 기묘 3번째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호조 판서 조박의 졸기

호조 판서(戶曹判書) 평원군(平原君) 조박(趙璞)이 죽었다. 조박평양부(平壤府) 사람으로, 자(字)는 안석(安石), 호(號)는 우정(雨亭)이며, 전의 영(典儀令) 조사겸(趙思謙)의 아들이다. 조박은 재주가 탁이(卓異)하여 여러 사람에 뛰어났다. 홍무(洪武) 병진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삼사 좌윤(三司左尹)에 이르렀다. 주상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조박이 동서(同壻)간이므로 가장 친하고 오랜 사이었다. 이런 이유로 태조(太祖)를 마음으로 따랐다. 정몽주(鄭夢周)조박을 청주 목사(淸州牧使)로 내보냈다가 조금 뒤에 수원부(水原府)로 잡아 올려 장차 죽이려고 하였는데, 조박이 망명(亡命)하여 면하였다. 태조가 계운(啓運)한 뒤에 개국공(開國功)을 논하여 예조 전서(禮曹典書)를 제수하였고, 공정왕(恭靖王)이 선위(禪位)를 받으매 정사훈(定社勳)을 녹훈(錄勳)하여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제수하였고, 주상이 즉위하매 또 좌명(佐命)의 공로를 기록하여 삼사 좌사(三司左使)를 제수하고, 신사년에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다. 일찍이 양광도(楊廣道)를 안렴(按廉)하고, 전라도·경상도를 관찰(觀察)하고, 서북면(西北面)을 순문(巡問)하였는데, 처결(處決)하는 것이 물 흐르듯이 하여 조금도 의심되지 않으니, 부내(部內)가 이를 칭찬하였다. 죽으니 나이 53세였다.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예장(禮葬)하게 하고, 시호(諡號)를 문평(文平)이라 하였다. 아들은 조신언(趙愼言)이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67면
  • 【분류】
    인물(人物)

    ○戶曹判書平原君 趙璞卒。 , 平壤府人, 字安石, 號雨亭, 典儀令思謙之子。 倜儻不群, 登洪武丙辰第, 累官至三司左尹。 上在潛邸, 以友壻, 最親且舊, 由是歸心太祖鄭夢周淸州, 尋逮水原府, 將殺之, 亡命得免。 及太祖啓運, 論開國功, 拜禮曹典書。 恭靖受禪, 錄定社勳, 拜參贊門下府事兼司憲府大司憲。 上卽位, 又記佐命之勞, 拜三司左使, 同知辛巳貢擧。 嘗按廉楊廣道, 觀察全羅慶尙道, 巡問西北面, 處決如流不小疑, 部內稱之。 卒年五十三。 命有司禮葬, 諡文平。 子, 愼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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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