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4권, 태종 7년 11월 10일 경신 1/1 기사 / 1407년 명 영락(永樂) 5년
정비가 민무질의 처를 궁중에 불러들인 것이 문제 되다
국역
정비전(靜妃殿)에 입번(入番)하는 내관(內官) 이용(李龍)·수문 내관(守門內官) 안순(安順)·박성부(朴成富)·김인봉(金仁鳳)과 사약(司鑰) 김의(金義) 등을 순금사(巡禁司)의 옥에 가두고 벌을 차등 있게 주었다. 전달에 임금이 강무(講武)의 행차가 있었는데, 정비(靜妃)가 궁비(宮婢) 좌이(佐耳)를 시켜 민무질(閔無疾)의 처 한씨(韓氏)를 불러서, 미복(微服) 차림으로 중궁(中宮)에 들어와 자고 나갔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알고, 사헌부(司憲府)에 명하여 조사하여 사실을 알아내게 하였다. 장령(掌令) 탁신(卓愼)이 장(狀)으로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순금사(巡禁司)에 가두었으니, 다시 묻지 말라!"
하였다. 순금사(巡禁司)에서 이용 등의 옥사(獄辭)를 갖추어 율에 비추어 아뢰었다.
"전 검교 지내시부사(檢校知內侍府事) 김인봉(金仁鳳)은 공술(供述)하기를, ‘지난 10월 12일에 강무(講武)의 거둥이 있은 뒤, 14일 초저녁에 이르러 중궁(中宮)께서 무수리[水賜] 좌이(佐耳)를 시켜 명령을 전하기를, 「미미(微微)한 일가 여자가 들어 오는 자가 있을 것이니, 금하지 말라.」고 하시었습니다. 김인봉이 이 명령을 듣고 동판부사(同判府事) 이용(李龍)에게 고하니, 이용이 대답하기를, 「중궁에서 명령이 있으면 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좌이(佐耳)가 바깥에서 부인을 인도하여 들어왔습니다. 이튿날 꼭두새벽 달이 지기 전에 궁문이 열리니, 좌이(佐耳)가 또 그 부인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하였고, 이용(李龍)은 공술하기를, ‘보통 사람의 의복 차림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하였고, 김인봉은 또 말하기를, ‘중궁의 명령이 있었던 까닭으로 그 출입에 대하여 금하지 않았습니다.’ 하였습니다. 위의 두 사람을 율에 준(准)하면, 임의로 궁문에 들어온 자는 장(杖) 60대에 도(徒) 1년이고, 문관(門官)·시위관(侍衛官)으로서 고의로 놓아준 자는 각각 범죄한 사람과 죄가 같고, 깨달아 살피지 못한 자는 3등을 감하여 장(杖) 80대입니다.
검교 동지내시부사(檢校同知內侍府事) 안순(安順)은 공술하기를, ‘지난 10월 15일 파루(罷漏) 뒤에 검교 첨내시부사(檢校僉內侍府事) 박성부(朴成富)가 사람을 시켜 궁문을 열라고 전하여 말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때가 아니 되어 열 수가 없다.」고 하였더니, 박성부가 또 스스로 와서 말하기를, 「중궁(中宮)에서 명령이 있으니, 빨리 숯불[炭火]을 들여가고 문을 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의 예보다 일찍 열었습니다.’ 하였고, 박성부는 공술하기를, ‘한 시녀가 안에서 소리쳐 말하기를, 「빨리 문을 열고 숯불[炭火]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안순(安順)에게 고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위의 두 사람의 죄를 율에 준하면, 문금쇄약조(門禁鎖鑰條)에 이르기를, ‘황성(皇城)의 문을 때가 아닌데도 마음대로 여는 자는 교형(絞刑)에 처하고, 왕지(王旨)가 있어서 문을 여는 자는 논하지 않는다.’ 하였고, 명례(名例)에는 이르기를, ‘함께 죄를 범한 자는 생각을 낸 자가 수범(首犯)이 되고, 수종(隨從)한 자에게는 1등을 감하여 장(杖) 1백 대에, 유(流) 3천 리(里)에 처한다.’ 하였고, 중궁의 명령으로 궁전(宮殿)의 문을 열고 닫은 자에 이르러서는 율에 그런 글이 없습니다. 김의(金義)는 그날 저녁에 연고가 있어 입직(入直)하지 못하였습니다."
임금이 이를 보고, 위의 사람과 김의(金義) 등은 모두 장(杖) 60대에 처하고, 이용은 늙고 병들었으므로 속(贖)을 거두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지신사(知申事) 황희(黃喜)에게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중궁(中宮)에게 민무구 등의 불충한 음모와 장래의 화를 되풀이하여 깨우쳐 타일렀더니, 중궁이 남김없이 모두 알고서, 분이 나서 이를 갈며 절대로 구원하거나 보호할 생각이 없다고 하며 말하기를, ‘부모님 생전(生前)에나 목숨을 보전 할 수 있으면 족하겠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부인(婦人)의 어진 마음으로 차마 갑자기 끊지 못하고, 지금 강무(講武)하는 틈을 타서 몰래 민무질의 아내를 불러 궁중(宮中)에 출입하게 하였다. 그 사이의 사상(事狀)을 추측하기가 어려우니, 어떻게 처리할까?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묘안을 얻지 못하겠다. 한두 사람의 환자(宦者)와 시녀(侍女)로 하여금 공상(供上)만 끊기지 않게 하여 그대로 이 궁에 두고, 나는 경복궁(景福宮)으로 옮겨 거처하여 겉으로 소박(疎薄)하는 뜻을 보여, 뉘우치고 깨닫도록 하고자 한다. 그러나 폐(廢)하여 내버릴 생각은 없다."
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인군의 일거일동은 경솔하고 가볍게 할 수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심히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내가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하고, 드디어 다시 말하지 않았다.
원문
○庚申/下靜妃殿入番內官李龍、守門內官安順ㆍ朴成富ㆍ金仁鳳及司鑰全義等于巡禁司獄, 決罰有差。 前月, 上有講武之行, 靜妃使宮婢佐耳, 召閔無疾妻韓氏, 以微服入中宮, 經宿乃出。 至是, 上知之, 命司憲府案驗得實。 掌令卓愼以狀聞, 上曰: "予已下巡禁司, 其勿復問。" 巡禁司具李龍等獄辭, 照律以啓: 前檢校知內侍府事金仁鳳供稱: "去十月十二日講武行幸之後, 至十四日初昏, 中宮使水賜佐耳傳命曰: ‘有微微族女入來者, 其勿禁。’ 仁鳳聞此, 以告同判府事李龍, 龍答云: ‘中宮有命則毋禁。’ 旣而佐耳自外引婦人以入, 翌日曉頭月落前宮門開, 佐耳又率其婦人而出。" 李龍供稱: "作常樣人衣服而入。" 金仁鳳又言: "有中宮之命, 故其於出入不禁。" 右兩人准律, 擅入宮門者, 杖六十徒一年; 門官侍衛官故縱者, 各與犯人同罪; 失覺察者, 減三等杖八十。 檢校同知內侍府事安順供稱: "去十月十五日罷漏後, 檢校僉內侍府事朴成富, 使人傳說開宮門, 予答以非時不可開。 成富又自來言: ‘中宮有命, 促入炭火, 可開門’, 故於常例早開。" 成富供稱: "有一侍女自內呼言: ‘促開門, 將炭火來’, 故以是言告於安順。" 右二人罪準律, 門禁鏁鑰條云: "若皇城門, 非時擅開者, 絞; 有旨開門者, 勿論。" 名例云: "共犯罪者造意爲首, 隨從減一等, 杖一百, 流三千里。" 至於以中宮之命, 開閉宮殿門者, 律無其文。 金義於其夕有故, 不入直。 上覽之, 命上項人及義等竝杖六十, 惟李龍以老病收贖。
〔○〕 上謂知申事黃喜曰: "予嘗與中宮, 以無咎等不忠之謀、將來之禍, 反復曉諭, 中宮悉知無遺, 憤發切齒, 絶無救護之計曰: ‘得保全於父母生前足矣。’ 然而以婦人之仁, 不忍遽絶, 今因講武之隙, 密召無疾之妻, 出入宮中。 其間事狀難測, 處之何以? 熟思而未領其要。 欲以一二宦者及侍女侍從, 但不絶供上, 仍置此宮, 予移御景福宮, 外示疎薄以悔悟之, 然無廢棄之理。" 喜對曰: "人君擧動, 不可輕易, 臣愚以爲甚不可也。" 上曰: "予更思之。" 遂不復言。
태종 7년 (1407) 11월 10일
국역
정비전(靜妃殿)에 입번(入番)하는 내관(內官) 이용(李龍)·수문 내관(守門內官) 안순(安順)·박성부(朴成富)·김인봉(金仁鳳)과 사약(司鑰) 김의(金義) 등을 순금사(巡禁司)의 옥에 가두고 벌을 차등 있게 주었다. 전달에 임금이 강무(講武)의 행차가 있었는데, 정비(靜妃)가 궁비(宮婢) 좌이(佐耳)를 시켜 민무질(閔無疾)의 처 한씨(韓氏)를 불러서, 미복(微服) 차림으로 중궁(中宮)에 들어와 자고 나갔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알고, 사헌부(司憲府)에 명하여 조사하여 사실을 알아내게 하였다. 장령(掌令) 탁신(卓愼)이 장(狀)으로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순금사(巡禁司)에 가두었으니, 다시 묻지 말라!"
하였다. 순금사(巡禁司)에서 이용 등의 옥사(獄辭)를 갖추어 율에 비추어 아뢰었다.
"전 검교 지내시부사(檢校知內侍府事) 김인봉(金仁鳳)은 공술(供述)하기를, ‘지난 10월 12일에 강무(講武)의 거둥이 있은 뒤, 14일 초저녁에 이르러 중궁(中宮)께서 무수리[水賜] 좌이(佐耳)를 시켜 명령을 전하기를, 「미미(微微)한 일가 여자가 들어 오는 자가 있을 것이니, 금하지 말라.」고 하시었습니다. 김인봉이 이 명령을 듣고 동판부사(同判府事) 이용(李龍)에게 고하니, 이용이 대답하기를, 「중궁에서 명령이 있으면 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좌이(佐耳)가 바깥에서 부인을 인도하여 들어왔습니다. 이튿날 꼭두새벽 달이 지기 전에 궁문이 열리니, 좌이(佐耳)가 또 그 부인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하였고, 이용(李龍)은 공술하기를, ‘보통 사람의 의복 차림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하였고, 김인봉은 또 말하기를, ‘중궁의 명령이 있었던 까닭으로 그 출입에 대하여 금하지 않았습니다.’ 하였습니다. 위의 두 사람을 율에 준(准)하면, 임의로 궁문에 들어온 자는 장(杖) 60대에 도(徒) 1년이고, 문관(門官)·시위관(侍衛官)으로서 고의로 놓아준 자는 각각 범죄한 사람과 죄가 같고, 깨달아 살피지 못한 자는 3등을 감하여 장(杖) 80대입니다.
검교 동지내시부사(檢校同知內侍府事) 안순(安順)은 공술하기를, ‘지난 10월 15일 파루(罷漏) 뒤에 검교 첨내시부사(檢校僉內侍府事) 박성부(朴成富)가 사람을 시켜 궁문을 열라고 전하여 말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때가 아니 되어 열 수가 없다.」고 하였더니, 박성부가 또 스스로 와서 말하기를, 「중궁(中宮)에서 명령이 있으니, 빨리 숯불[炭火]을 들여가고 문을 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의 예보다 일찍 열었습니다.’ 하였고, 박성부는 공술하기를, ‘한 시녀가 안에서 소리쳐 말하기를, 「빨리 문을 열고 숯불[炭火]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안순(安順)에게 고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위의 두 사람의 죄를 율에 준하면, 문금쇄약조(門禁鎖鑰條)에 이르기를, ‘황성(皇城)의 문을 때가 아닌데도 마음대로 여는 자는 교형(絞刑)에 처하고, 왕지(王旨)가 있어서 문을 여는 자는 논하지 않는다.’ 하였고, 명례(名例)에는 이르기를, ‘함께 죄를 범한 자는 생각을 낸 자가 수범(首犯)이 되고, 수종(隨從)한 자에게는 1등을 감하여 장(杖) 1백 대에, 유(流) 3천 리(里)에 처한다.’ 하였고, 중궁의 명령으로 궁전(宮殿)의 문을 열고 닫은 자에 이르러서는 율에 그런 글이 없습니다. 김의(金義)는 그날 저녁에 연고가 있어 입직(入直)하지 못하였습니다."
임금이 이를 보고, 위의 사람과 김의(金義) 등은 모두 장(杖) 60대에 처하고, 이용은 늙고 병들었으므로 속(贖)을 거두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지신사(知申事) 황희(黃喜)에게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중궁(中宮)에게 민무구 등의 불충한 음모와 장래의 화를 되풀이하여 깨우쳐 타일렀더니, 중궁이 남김없이 모두 알고서, 분이 나서 이를 갈며 절대로 구원하거나 보호할 생각이 없다고 하며 말하기를, ‘부모님 생전(生前)에나 목숨을 보전 할 수 있으면 족하겠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부인(婦人)의 어진 마음으로 차마 갑자기 끊지 못하고, 지금 강무(講武)하는 틈을 타서 몰래 민무질의 아내를 불러 궁중(宮中)에 출입하게 하였다. 그 사이의 사상(事狀)을 추측하기가 어려우니, 어떻게 처리할까?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묘안을 얻지 못하겠다. 한두 사람의 환자(宦者)와 시녀(侍女)로 하여금 공상(供上)만 끊기지 않게 하여 그대로 이 궁에 두고, 나는 경복궁(景福宮)으로 옮겨 거처하여 겉으로 소박(疎薄)하는 뜻을 보여, 뉘우치고 깨닫도록 하고자 한다. 그러나 폐(廢)하여 내버릴 생각은 없다."
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인군의 일거일동은 경솔하고 가볍게 할 수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심히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내가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하고, 드디어 다시 말하지 않았다.
원문
○庚申/下靜妃殿入番內官李龍、守門內官安順ㆍ朴成富ㆍ金仁鳳及司鑰全義等于巡禁司獄, 決罰有差。 前月, 上有講武之行, 靜妃使宮婢佐耳, 召閔無疾妻韓氏, 以微服入中宮, 經宿乃出。 至是, 上知之, 命司憲府案驗得實。 掌令卓愼以狀聞, 上曰: "予已下巡禁司, 其勿復問。" 巡禁司具李龍等獄辭, 照律以啓: 前檢校知內侍府事金仁鳳供稱: "去十月十二日講武行幸之後, 至十四日初昏, 中宮使水賜佐耳傳命曰: ‘有微微族女入來者, 其勿禁。’ 仁鳳聞此, 以告同判府事李龍, 龍答云: ‘中宮有命則毋禁。’ 旣而佐耳自外引婦人以入, 翌日曉頭月落前宮門開, 佐耳又率其婦人而出。" 李龍供稱: "作常樣人衣服而入。" 金仁鳳又言: "有中宮之命, 故其於出入不禁。" 右兩人准律, 擅入宮門者, 杖六十徒一年; 門官侍衛官故縱者, 各與犯人同罪; 失覺察者, 減三等杖八十。 檢校同知內侍府事安順供稱: "去十月十五日罷漏後, 檢校僉內侍府事朴成富, 使人傳說開宮門, 予答以非時不可開。 成富又自來言: ‘中宮有命, 促入炭火, 可開門’, 故於常例早開。" 成富供稱: "有一侍女自內呼言: ‘促開門, 將炭火來’, 故以是言告於安順。" 右二人罪準律, 門禁鏁鑰條云: "若皇城門, 非時擅開者, 絞; 有旨開門者, 勿論。" 名例云: "共犯罪者造意爲首, 隨從減一等, 杖一百, 流三千里。" 至於以中宮之命, 開閉宮殿門者, 律無其文。 金義於其夕有故, 不入直。 上覽之, 命上項人及義等竝杖六十, 惟李龍以老病收贖。
〔○〕 上謂知申事黃喜曰: "予嘗與中宮, 以無咎等不忠之謀、將來之禍, 反復曉諭, 中宮悉知無遺, 憤發切齒, 絶無救護之計曰: ‘得保全於父母生前足矣。’ 然而以婦人之仁, 不忍遽絶, 今因講武之隙, 密召無疾之妻, 出入宮中。 其間事狀難測, 處之何以? 熟思而未領其要。 欲以一二宦者及侍女侍從, 但不絶供上, 仍置此宮, 予移御景福宮, 外示疎薄以悔悟之, 然無廢棄之理。" 喜對曰: "人君擧動, 不可輕易, 臣愚以爲甚不可也。" 上曰: "予更思之。" 遂不復言。
원본
태종 7년 (1407)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