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4권, 태종 2년 11월 7일 병술 2/4 기사 /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태상왕의 행재소에 심종·유창을 보내어 시위케 하다
국역
임금이 청원군(靑原君) 심종(沈淙)·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유창(劉敞)을 태상왕의 행재소(行在所)에 보내어 시위(侍衛)하게 하고,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이직(李稷)을 보내어 문안(問安)하고, 겸하여 의친(衣襯)·옥백(玉帛) 등 신명께 예(禮)할 물건을 드리게 하였다. 태상왕이 일찍이 시위(侍衛) 이자분(李自芬)을 보내어 의친·옥백을 빨리 보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태상왕이 지나는 주군(州郡)의 성황(城隍)으로 신(神)이 있는 곳에 모두 의친·옥백으로써 예(禮)를 행하고 말하였다.
"나의 이번 행차를 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즉위한 이후로 한번도 선릉(先陵)에 참배하지 못했으니, 지금 친히 제사하지 않으면 죽은 뒤에 무슨 면목으로 선인(先人)을 지하에서 뵐 수 있겠는가?"
원문
국역
임금이 청원군(靑原君) 심종(沈淙)·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유창(劉敞)을 태상왕의 행재소(行在所)에 보내어 시위(侍衛)하게 하고,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이직(李稷)을 보내어 문안(問安)하고, 겸하여 의친(衣襯)·옥백(玉帛) 등 신명께 예(禮)할 물건을 드리게 하였다. 태상왕이 일찍이 시위(侍衛) 이자분(李自芬)을 보내어 의친·옥백을 빨리 보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태상왕이 지나는 주군(州郡)의 성황(城隍)으로 신(神)이 있는 곳에 모두 의친·옥백으로써 예(禮)를 행하고 말하였다.
"나의 이번 행차를 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즉위한 이후로 한번도 선릉(先陵)에 참배하지 못했으니, 지금 친히 제사하지 않으면 죽은 뒤에 무슨 면목으로 선인(先人)을 지하에서 뵐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