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권, 태종 2년 6월 1일 계축 2/6 기사 /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중국의 내란과 관련, 하윤 등과 서북면에 성 쌓는 문제를 의논하다
국역
하윤(河崙) 등과 더불어 서북(西北) 여러 고을에 성(城)을 쌓을 것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하윤 등이 아뢰기를,
"오늘날 중국에 병란(兵亂)이 일어났사오니, 마땅히 서북면에 성을 쌓아야 합니다."
하고, 이무(李茂)는 말하기를,
"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이성(泥城)·강계(江界) 등 다섯 성을 쌓음이 옳겠습니다."
하였다. 하윤이 말하기를,
"만약 돌로 쌓을 수 없다면 목책(木柵)도 가(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공력(工力)도 적게 들고 성(城)이 이루어지니 오히려 성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였다. 김사형(金士衡)이 말하기를,
"삼국(三國)이 전쟁할 때에 모두 목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지금 중국은 매우 어지럽고 우리 나라는 무사하오니, 이때에 성을 쌓아야만 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가을이 되면 사신을 보내어 쌓도록 하겠다."
원문
국역
하윤(河崙) 등과 더불어 서북(西北) 여러 고을에 성(城)을 쌓을 것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하윤 등이 아뢰기를,
"오늘날 중국에 병란(兵亂)이 일어났사오니, 마땅히 서북면에 성을 쌓아야 합니다."
하고, 이무(李茂)는 말하기를,
"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이성(泥城)·강계(江界) 등 다섯 성을 쌓음이 옳겠습니다."
하였다. 하윤이 말하기를,
"만약 돌로 쌓을 수 없다면 목책(木柵)도 가(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공력(工力)도 적게 들고 성(城)이 이루어지니 오히려 성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였다. 김사형(金士衡)이 말하기를,
"삼국(三國)이 전쟁할 때에 모두 목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지금 중국은 매우 어지럽고 우리 나라는 무사하오니, 이때에 성을 쌓아야만 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가을이 되면 사신을 보내어 쌓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