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권, 태종 2년 3월 23일 병오 1/2 기사 /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민폐 단속을 지나치게 한 지평 이지의 서리와 소유를 가두다
국역
사헌부 지평 이지(李漬)가 데리고 다니는 서리(書吏)와 소유(所由)를 가두도록 명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이지에게 명하기를,
"내 행차에 군사들이 민가에 들어가서 폐단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이지가 서리와 소유를 나누어 보내면서 말하기를,
"만약 민가에 들어가는 자가 있으면 참외(參外)는 바로 잡아들이고, 참상(參上)은 그 성명(姓名)을 물어 가지고 와서 알리라."
하였다. 별시위(別侍衛)인 전 소감(少監) 윤인(尹璘)과 전 호군(護軍) 김택(金澤) 등이 민가로 들어가므로, 소유(所由)가 그 성명을 물으니 윤인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로 붙들어 반접(反接)012) 해 가지고 오니, 이지가 그를 풀어주고 금법(禁法)을 범한 이유를 물었다. 윤인이 말하기를,
"비를 피했을 뿐이지 폐를 끼친 일은 없었소."
하므로, 즉시 놓아주었다. 이 사실이 들리자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윤인은 4품의 관원이다. 만약 그가 죄가 있다면 신문(申聞)하여 논죄(論罪)함이 옳다. 또 윤인은 민가를 소요(騷擾)하게 한 것이 아니라 비를 피하여 잠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함부로 근시(近侍)하는 사람을 결박했으니, 이지의 난법(亂法)이 어찌 이 같을 수 있겠는가?"
하고, 이지의 서리·소유를 가두게 하였다. 이지가 청하여 말하기를,
"신은 죄가 있으므로 감히 나가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나오고 못나옴은 모두가 내게 달려 있다. 무슨 이유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가?"
하매, 이지가 두려워서 대가(大駕)를 따랐다. 내서 사인(內書舍人) 이지직(李之直)이 윤인을 탄핵하기를,
"이미 법을 범하고 민가에 들어갔으며, 또 외람되게 계문(啓聞)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 말을 듣고 더욱 노하여 지신사 박석명을 책하기를,
"경들은 내가 노했을 때에 한마디 말로써 풀어준 일이 없었다. 경이 만약 직간(直諫)을 하였더라면, 비록 한때의 노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이 지나면 마땅히 흑백(黑白)을 알았을 것이다. 경들은 어찌하여 직고(直告)하여 흑백을 가리게 하지 아니하오?"
하였다. 박석명이 달려 나가 대답하기를,
"주상께서 이지를 그르게 여기심은 옳습니다. 이지가 함부로 4품관을 결박하였고, 또 윤인이 소요도 일으키지 아니하였사오니, 죄는 이지에게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박신(朴信)에게 말하기를,
"태상왕께서 행차하실 때 대간(臺諫)이 호종(扈從)하였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호종하였습니다. 그러하오나 간혹 호종을 명하지 아니하시어 대간이 청한 뒤에야 따랐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도 대간이 수가(隨駕)하는 것을 금하겠다."
- [註 012] 반접(反接) : 양손을 등 뒤로 결박하는 것.
원문
○丙午/命囚司憲持平李漬率行書吏及所由。 初, 上命漬曰: "予之行, 禁軍士入民戶作弊。" 漬分遣書吏所由曰: "如有入民戶者, 參外, 直執其人; 參上, 問其姓名來告。" 別侍衛前少監尹璘、前護軍金澤等入民戶, 所由問其姓名, 璘不答, 乃執之反接而來。 漬解之, 詰其犯禁之故, 璘曰: "避雨耳, 非敢作弊。" 卽放之。 事聞, 上怒曰: "璘, 四品員也。 如其有罪, 申聞論罪可矣。 且璘非擾民戶, 避雨暫入, 以此擅縛近侍之人。 漬之亂法, 至如是哉!" 囚漬書吏所由。 漬請曰: "臣有罪不敢出。" 上怒曰: "汝之出不出, 皆在予。 何故汝自不出乎?" 漬懼而隨駕。 內書舍人李之直劾璘旣犯法入民戶, 又冒弄啓聞, 上聞之益怒, 責知申事朴錫命曰: "卿等當予怒時, 曾無一言解之。 卿若直諫, 予雖有一時之怒, 事過當知黑白矣。 卿等何不直告以辨黑白?" 錫命趨進對曰: "上之非漬是矣。 漬擅縛四品員, 且璘非騷擾, 罪在漬。" 上謂朴信曰: "太上之行幸也, 臺諫扈從乎?" 對曰: "扈從, 然或不令扈從, 臺諫請而後從之。" 上曰: "如此則予亦禁臺諫之隨駕矣。"
태종 2년 (1402) 3월 23일
국역
사헌부 지평 이지(李漬)가 데리고 다니는 서리(書吏)와 소유(所由)를 가두도록 명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이지에게 명하기를,
"내 행차에 군사들이 민가에 들어가서 폐단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이지가 서리와 소유를 나누어 보내면서 말하기를,
"만약 민가에 들어가는 자가 있으면 참외(參外)는 바로 잡아들이고, 참상(參上)은 그 성명(姓名)을 물어 가지고 와서 알리라."
하였다. 별시위(別侍衛)인 전 소감(少監) 윤인(尹璘)과 전 호군(護軍) 김택(金澤) 등이 민가로 들어가므로, 소유(所由)가 그 성명을 물으니 윤인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로 붙들어 반접(反接)012) 해 가지고 오니, 이지가 그를 풀어주고 금법(禁法)을 범한 이유를 물었다. 윤인이 말하기를,
"비를 피했을 뿐이지 폐를 끼친 일은 없었소."
하므로, 즉시 놓아주었다. 이 사실이 들리자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윤인은 4품의 관원이다. 만약 그가 죄가 있다면 신문(申聞)하여 논죄(論罪)함이 옳다. 또 윤인은 민가를 소요(騷擾)하게 한 것이 아니라 비를 피하여 잠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함부로 근시(近侍)하는 사람을 결박했으니, 이지의 난법(亂法)이 어찌 이 같을 수 있겠는가?"
하고, 이지의 서리·소유를 가두게 하였다. 이지가 청하여 말하기를,
"신은 죄가 있으므로 감히 나가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나오고 못나옴은 모두가 내게 달려 있다. 무슨 이유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가?"
하매, 이지가 두려워서 대가(大駕)를 따랐다. 내서 사인(內書舍人) 이지직(李之直)이 윤인을 탄핵하기를,
"이미 법을 범하고 민가에 들어갔으며, 또 외람되게 계문(啓聞)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 말을 듣고 더욱 노하여 지신사 박석명을 책하기를,
"경들은 내가 노했을 때에 한마디 말로써 풀어준 일이 없었다. 경이 만약 직간(直諫)을 하였더라면, 비록 한때의 노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이 지나면 마땅히 흑백(黑白)을 알았을 것이다. 경들은 어찌하여 직고(直告)하여 흑백을 가리게 하지 아니하오?"
하였다. 박석명이 달려 나가 대답하기를,
"주상께서 이지를 그르게 여기심은 옳습니다. 이지가 함부로 4품관을 결박하였고, 또 윤인이 소요도 일으키지 아니하였사오니, 죄는 이지에게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박신(朴信)에게 말하기를,
"태상왕께서 행차하실 때 대간(臺諫)이 호종(扈從)하였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호종하였습니다. 그러하오나 간혹 호종을 명하지 아니하시어 대간이 청한 뒤에야 따랐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도 대간이 수가(隨駕)하는 것을 금하겠다."
- [註 012] 반접(反接) : 양손을 등 뒤로 결박하는 것.
원문
○丙午/命囚司憲持平李漬率行書吏及所由。 初, 上命漬曰: "予之行, 禁軍士入民戶作弊。" 漬分遣書吏所由曰: "如有入民戶者, 參外, 直執其人; 參上, 問其姓名來告。" 別侍衛前少監尹璘、前護軍金澤等入民戶, 所由問其姓名, 璘不答, 乃執之反接而來。 漬解之, 詰其犯禁之故, 璘曰: "避雨耳, 非敢作弊。" 卽放之。 事聞, 上怒曰: "璘, 四品員也。 如其有罪, 申聞論罪可矣。 且璘非擾民戶, 避雨暫入, 以此擅縛近侍之人。 漬之亂法, 至如是哉!" 囚漬書吏所由。 漬請曰: "臣有罪不敢出。" 上怒曰: "汝之出不出, 皆在予。 何故汝自不出乎?" 漬懼而隨駕。 內書舍人李之直劾璘旣犯法入民戶, 又冒弄啓聞, 上聞之益怒, 責知申事朴錫命曰: "卿等當予怒時, 曾無一言解之。 卿若直諫, 予雖有一時之怒, 事過當知黑白矣。 卿等何不直告以辨黑白?" 錫命趨進對曰: "上之非漬是矣。 漬擅縛四品員, 且璘非騷擾, 罪在漬。" 上謂朴信曰: "太上之行幸也, 臺諫扈從乎?" 對曰: "扈從, 然或不令扈從, 臺諫請而後從之。" 上曰: "如此則予亦禁臺諫之隨駕矣。"
원본
태종 2년 (1402) 3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