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권, 태종 2년 3월 7일 경인 4/4 기사 /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저화의 통용을 위해 풍저창의 미두와 사재감의 어육을 민간의 저화와 바꾸다
국역
풍저창(豊儲倉)의 미두(米豆)와 사재감(司宰監)의 어육(魚肉)으로 민간(民間)의 저화(楮貨)를 바꾸었으니, 저화를 통용케 하고자 함에서였다. 임금이 하윤(河崙)에게 일렀다.
"일반 백성들이 무역을 할 때에 포목만을 쓰려 하고, 저화는 쓰려 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아마도 습속(習俗)이 포목만을 쓸 줄 알고, 저화가 쓰기에 편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저화를 가지고 민간의 오종포(五綜布)를 바꾸어 모두 공가(公家)로 들여오면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저화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저화가 민가에 아직 두루 돌지 못했는데 갑자기 포목의 사용을 금하면 백성들이 반드시 이를 원망할 것이다. 저화를 제조할 판(板)을 더 만들어서 인쇄해 내어 사람마다 모두 저화를 얻을 수 있게 한 뒤에 기한을 정하여 포목의 사용을 금하는 것이 옳겠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7면
- 【분류】금융-화폐(貨幣) /
원문
국역
풍저창(豊儲倉)의 미두(米豆)와 사재감(司宰監)의 어육(魚肉)으로 민간(民間)의 저화(楮貨)를 바꾸었으니, 저화를 통용케 하고자 함에서였다. 임금이 하윤(河崙)에게 일렀다.
"일반 백성들이 무역을 할 때에 포목만을 쓰려 하고, 저화는 쓰려 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아마도 습속(習俗)이 포목만을 쓸 줄 알고, 저화가 쓰기에 편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저화를 가지고 민간의 오종포(五綜布)를 바꾸어 모두 공가(公家)로 들여오면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저화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저화가 민가에 아직 두루 돌지 못했는데 갑자기 포목의 사용을 금하면 백성들이 반드시 이를 원망할 것이다. 저화를 제조할 판(板)을 더 만들어서 인쇄해 내어 사람마다 모두 저화를 얻을 수 있게 한 뒤에 기한을 정하여 포목의 사용을 금하는 것이 옳겠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7면
- 【분류】금융-화폐(貨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