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2권, 태종 1년 7월 11일 무술 1/1 기사 /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문하부 낭사에서 사관 민인생을 귀양 보낼 것을 건의하다
국역
민인생(閔麟生)을 변방에 귀양보내었다. 문하부(門下府) 낭사(郞舍)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러하였다.
"예전에 열국(列國)이 각각 사관(史官)이 있어, 항상 임금의 좌우에서 언행과 정사를 갖추 기록하지 않음이 없어 후대의 권계(勸戒)를 삼았습니다. 지난번에 신 등이 이것을 직접 계달하여 곧 유윤(兪允)을 받아 사관으로 하여금 날마다 좌우에 입시(入侍)케 하였는데, 가만히 듣건대, 사관은 아일(衙日)의 정사를 듣는 때 이외에는 입시하지 말도록 하시었다 하오니, 이것이 어찌 전하의 본심(本心)이겠습니까? 이것은 사관이 적임자가 아니어서, 나아가고 물러감[進退]에 예(禮)를 잃어서 성념(聖念)을 움직인 소치입니다. 한 사관이 실례한 까닭으로 하여 마침내 만세의 좋은 법을 폐하시니, 신 등은 전하를 위하여 애석히 여깁니다. 원컨대 사관으로 하여금 매일 일을 아뢸[啓事] 때마다 따라 나오고 따라 물러가게 하여 모범을 만세에 남기소서. 사관 민인생은 입시할 때를 당하여 여러 번 예(禮)를 잃어서 휘장을 걷고 엿보기까지 하였으니, 불경하기 심합니다. 원컨대 유사(攸司)로 하여금 그 직첩(職牒)을 거두고 외방에 귀양보내게 하소서."
원문
태종 1년 (1401) 7월 11일
국역
민인생(閔麟生)을 변방에 귀양보내었다. 문하부(門下府) 낭사(郞舍)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러하였다.
"예전에 열국(列國)이 각각 사관(史官)이 있어, 항상 임금의 좌우에서 언행과 정사를 갖추 기록하지 않음이 없어 후대의 권계(勸戒)를 삼았습니다. 지난번에 신 등이 이것을 직접 계달하여 곧 유윤(兪允)을 받아 사관으로 하여금 날마다 좌우에 입시(入侍)케 하였는데, 가만히 듣건대, 사관은 아일(衙日)의 정사를 듣는 때 이외에는 입시하지 말도록 하시었다 하오니, 이것이 어찌 전하의 본심(本心)이겠습니까? 이것은 사관이 적임자가 아니어서, 나아가고 물러감[進退]에 예(禮)를 잃어서 성념(聖念)을 움직인 소치입니다. 한 사관이 실례한 까닭으로 하여 마침내 만세의 좋은 법을 폐하시니, 신 등은 전하를 위하여 애석히 여깁니다. 원컨대 사관으로 하여금 매일 일을 아뢸[啓事] 때마다 따라 나오고 따라 물러가게 하여 모범을 만세에 남기소서. 사관 민인생은 입시할 때를 당하여 여러 번 예(禮)를 잃어서 휘장을 걷고 엿보기까지 하였으니, 불경하기 심합니다. 원컨대 유사(攸司)로 하여금 그 직첩(職牒)을 거두고 외방에 귀양보내게 하소서."
원문
원본
태종 1년 (1401)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