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권, 태종 1년 6월 4일 신유 1/2 기사 /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태상왕의 명으로 회안군을 소환하려 하자 의정부와 백관이 반대하다
국역
이방간(李芳幹)을 소환(召還)할 것을 명하니, 의정부(議政府)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간(諫)하여 말리었다. 정부(政府)에 전지(傳旨)하기를,
"회안군(懷安君)의 경진년 일은 그 본심(本心)이 아니고, 다만 박포(朴苞)에게 현혹된 것이었다. 이제 황제께서 고명(誥命)과 인신(印信)을 주시어 군신(君臣)의 분수가 이미 정하여졌으니, 무엇을 혐의할 것이 있는가? 사람을 보내어 소환하라."
하였다. 이에 영삼사사(領三司事) 하윤(河崙)·좌정승(左政丞) 김사형(金士衡)·우정승(右政丞) 이서(李舒) 등 20여 인이 상소하여 그 불가함을 진달하고, 대간(臺諫)이 교장(交章)으로 상언(上言)하여 소환하지 말기를 청하니, 임금이 모두 불가하다고 하여 말하기를,
"이방간은 죄가 진실로 가볍지 않으나, 태상(太上)의 명령을 어길 수 없고, 나도 역시 항상 동기(同氣)의 생각이 있어 친친(親親)의 어짊[仁]을 온전히 하고자 한다. 경 등의 아뢰는 바가 비록 옳으나, 따를 수 없다."
하였다. 임술일에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 조준(趙浚) 등이 상소하기를,
"금월 초4일에 도승지(都承旨) 박석명(朴錫命)이 왕지(王旨)를 전하기를, ‘방간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명령을 듣고 생각하기를, 방간이 군사를 들어 난(亂)을 꾸미어, 종사(宗社)에 득죄(得罪)하여 속적(屬籍)이 이미 끊어졌으니, 마땅히 법(法)으로 논하여야 할 것인데, 다행히 전하(殿下)의 관인(寬仁)하심을 힘입어서 편(便)한 곳에 나가 있어 작록(爵祿)을 보전하고 있으니, 은혜가 또한 극진합니다. 만일 또 소환하여 서울 안에 있으면, 인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할 뿐 아니라, 화변(禍變)이 혹 생길까 실로 두려우니, 이것이 신 등이 무릅쓰고 청하여 불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효우(孝友)의 지극한 정으로, 위로는 태상(太上)의 마음을 위로하고, 아래로는 의친(懿親)의 은혜를 온전히 하여, 반드시 소환하려고 유윤(兪允)하지 않으시니, 효제(孝悌)의 정성은 가위 지극하시나, 그러나 혹 변(變)이 생기어 두 번이나 악명(惡名)을 입게 되면, 은혜를 베푼다는 것이 도리어 화(禍)가 되게 하는 것이오니, 신 등은 매우 전하를 위하여 염려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다시 소환하지 말고, 전과 같이 안치(安置)하여 보전(保全)하소서."
하였으나, 임금이 태상의 명령을 어기기 어려워서 반드시 소환하려고 하였다. 계해일에 대사헌(大司憲) 유관(柳觀) 등이 글[章]을 올리어 다시 청하기를,
"방간(芳幹)이 종사(宗社)에 득죄하였으니 베임[誅]을 용서할 수 없는데, 다행히 전하(殿下)의 우애(友愛)의 은혜를 힘입어서, 머리를 보전하고 편안히 바깥 고을[外郡]에 처하여 있으니, 이미 다행합니다. 지금 또 불러서 서울 안에 두면, 방간은 비록 전일(前日)의 잘못을 징계하였더라도, 그 도당의 불궤(不軌)한 마음은 일찍이 잊지 않았을 것이니, 만일 부정(不靖)한 것이 있으면, 전하께서 비록 보전(保全)하고자 하나,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또 있는 곳인 익주(益州)가 완산(完山)과 몹시 가까운데, 완산은 군사와 말[馬]이 정(精)하고 강(强)하니, 반측(反側)하는 사람들을 둘 수 없습니다. 청컨대 바닷섬에 옮겨 두어서 여년(餘年)을 마치게 하면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럴까 저럴까 하여 결단하지 못하였는데, 정부와 백관들이 교장(交章)을 올려 극력 불가하다고 말리어, 임금이 안치(安置)하게 하였다.
원문
○辛酉/命召還芳幹, 議政府率百官諫止之。 傳旨政府曰: "懷安君庚辰之事, 非其本心, 但惑於朴苞耳。 今皇帝賜誥印, 君臣之分已定, 何足嫌乎? 其遣人召還。" 於是, 領三司事河崙、左政丞金士衡、右政丞李舒等二十餘人上疏, 陳其不可; 臺諫交章上言, 請勿召還, 上皆不可曰: "芳幹罪固不輕, 然太上之命, 不可違。 予亦常有同氣之念, 欲全親親之仁。 卿等所啓雖善, 不可從矣。"
(○) 壬戌, 判議政府事趙浚等上疏曰:
今月初四日, 都承旨朴錫命, 奉傳王旨, 召芳幹以來。 臣等聞命以爲, 芳幹稱兵作亂, 得罪宗社, 屬籍已絶。 當以法論, 幸賴殿下寬仁, 就居便處, 保有爵祿, 恩亦極矣。 若又召還, 以居中國, 不惟人心疑懼, 實恐禍變或生。 此臣等所以冒昧申請, 以爲不可者也。 殿下以孝友之至情, 上以慰太上之心, 下以全懿親之恩, 必欲召還, 不賜兪允, 孝悌之誠, 可謂至矣。 然或生變, 再被惡名, 則其所以恩之, 反所以禍之, 臣等竊爲殿下慮焉。 伏望殿下, 斷以大義, 毋復召還, 安置如舊, 使得保全。
上重違太上之命, 必欲召還。
(○) 癸亥, 大司憲柳觀等, 上章復請曰:
芳幹獲罪宗社, 不容誅矣。 幸賴殿下友愛之恩, 得保首領, 安處外郡, 已爲幸矣。 今又召置京中, 則芳幹雖懲前日之失, 其黨與不軌之心, 未嘗忘也。 如有不靖, 則殿下雖欲全之, 而不可得矣。 且所在益州, 密邇完山, 完山士馬精强, 不可置反側之人也。 請徙置于海島, 以終餘年, 幸甚。
上猶豫未決, 政府與百官交章上請, 極陳不可, 上意乃決, 遂令仍舊安置。
태종 1년 (1401) 6월 4일
국역
이방간(李芳幹)을 소환(召還)할 것을 명하니, 의정부(議政府)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간(諫)하여 말리었다. 정부(政府)에 전지(傳旨)하기를,
"회안군(懷安君)의 경진년 일은 그 본심(本心)이 아니고, 다만 박포(朴苞)에게 현혹된 것이었다. 이제 황제께서 고명(誥命)과 인신(印信)을 주시어 군신(君臣)의 분수가 이미 정하여졌으니, 무엇을 혐의할 것이 있는가? 사람을 보내어 소환하라."
하였다. 이에 영삼사사(領三司事) 하윤(河崙)·좌정승(左政丞) 김사형(金士衡)·우정승(右政丞) 이서(李舒) 등 20여 인이 상소하여 그 불가함을 진달하고, 대간(臺諫)이 교장(交章)으로 상언(上言)하여 소환하지 말기를 청하니, 임금이 모두 불가하다고 하여 말하기를,
"이방간은 죄가 진실로 가볍지 않으나, 태상(太上)의 명령을 어길 수 없고, 나도 역시 항상 동기(同氣)의 생각이 있어 친친(親親)의 어짊[仁]을 온전히 하고자 한다. 경 등의 아뢰는 바가 비록 옳으나, 따를 수 없다."
하였다. 임술일에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 조준(趙浚) 등이 상소하기를,
"금월 초4일에 도승지(都承旨) 박석명(朴錫命)이 왕지(王旨)를 전하기를, ‘방간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명령을 듣고 생각하기를, 방간이 군사를 들어 난(亂)을 꾸미어, 종사(宗社)에 득죄(得罪)하여 속적(屬籍)이 이미 끊어졌으니, 마땅히 법(法)으로 논하여야 할 것인데, 다행히 전하(殿下)의 관인(寬仁)하심을 힘입어서 편(便)한 곳에 나가 있어 작록(爵祿)을 보전하고 있으니, 은혜가 또한 극진합니다. 만일 또 소환하여 서울 안에 있으면, 인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할 뿐 아니라, 화변(禍變)이 혹 생길까 실로 두려우니, 이것이 신 등이 무릅쓰고 청하여 불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효우(孝友)의 지극한 정으로, 위로는 태상(太上)의 마음을 위로하고, 아래로는 의친(懿親)의 은혜를 온전히 하여, 반드시 소환하려고 유윤(兪允)하지 않으시니, 효제(孝悌)의 정성은 가위 지극하시나, 그러나 혹 변(變)이 생기어 두 번이나 악명(惡名)을 입게 되면, 은혜를 베푼다는 것이 도리어 화(禍)가 되게 하는 것이오니, 신 등은 매우 전하를 위하여 염려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다시 소환하지 말고, 전과 같이 안치(安置)하여 보전(保全)하소서."
하였으나, 임금이 태상의 명령을 어기기 어려워서 반드시 소환하려고 하였다. 계해일에 대사헌(大司憲) 유관(柳觀) 등이 글[章]을 올리어 다시 청하기를,
"방간(芳幹)이 종사(宗社)에 득죄하였으니 베임[誅]을 용서할 수 없는데, 다행히 전하(殿下)의 우애(友愛)의 은혜를 힘입어서, 머리를 보전하고 편안히 바깥 고을[外郡]에 처하여 있으니, 이미 다행합니다. 지금 또 불러서 서울 안에 두면, 방간은 비록 전일(前日)의 잘못을 징계하였더라도, 그 도당의 불궤(不軌)한 마음은 일찍이 잊지 않았을 것이니, 만일 부정(不靖)한 것이 있으면, 전하께서 비록 보전(保全)하고자 하나,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또 있는 곳인 익주(益州)가 완산(完山)과 몹시 가까운데, 완산은 군사와 말[馬]이 정(精)하고 강(强)하니, 반측(反側)하는 사람들을 둘 수 없습니다. 청컨대 바닷섬에 옮겨 두어서 여년(餘年)을 마치게 하면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럴까 저럴까 하여 결단하지 못하였는데, 정부와 백관들이 교장(交章)을 올려 극력 불가하다고 말리어, 임금이 안치(安置)하게 하였다.
원문
○辛酉/命召還芳幹, 議政府率百官諫止之。 傳旨政府曰: "懷安君庚辰之事, 非其本心, 但惑於朴苞耳。 今皇帝賜誥印, 君臣之分已定, 何足嫌乎? 其遣人召還。" 於是, 領三司事河崙、左政丞金士衡、右政丞李舒等二十餘人上疏, 陳其不可; 臺諫交章上言, 請勿召還, 上皆不可曰: "芳幹罪固不輕, 然太上之命, 不可違。 予亦常有同氣之念, 欲全親親之仁。 卿等所啓雖善, 不可從矣。"
(○) 壬戌, 判議政府事趙浚等上疏曰:
今月初四日, 都承旨朴錫命, 奉傳王旨, 召芳幹以來。 臣等聞命以爲, 芳幹稱兵作亂, 得罪宗社, 屬籍已絶。 當以法論, 幸賴殿下寬仁, 就居便處, 保有爵祿, 恩亦極矣。 若又召還, 以居中國, 不惟人心疑懼, 實恐禍變或生。 此臣等所以冒昧申請, 以爲不可者也。 殿下以孝友之至情, 上以慰太上之心, 下以全懿親之恩, 必欲召還, 不賜兪允, 孝悌之誠, 可謂至矣。 然或生變, 再被惡名, 則其所以恩之, 反所以禍之, 臣等竊爲殿下慮焉。 伏望殿下, 斷以大義, 毋復召還, 安置如舊, 使得保全。
上重違太上之命, 必欲召還。
(○) 癸亥, 大司憲柳觀等, 上章復請曰:
芳幹獲罪宗社, 不容誅矣。 幸賴殿下友愛之恩, 得保首領, 安處外郡, 已爲幸矣。 今又召置京中, 則芳幹雖懲前日之失, 其黨與不軌之心, 未嘗忘也。 如有不靖, 則殿下雖欲全之, 而不可得矣。 且所在益州, 密邇完山, 完山士馬精强, 不可置反側之人也。 請徙置于海島, 以終餘年, 幸甚。
上猶豫未決, 政府與百官交章上請, 極陳不可, 上意乃決, 遂令仍舊安置。
원본
태종 1년 (1401)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