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권, 태종 1년 3월 28일 정해 1/2 기사 /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우정승 하윤이 좌정승 이거이를 파면시킬 명분으로 먼저 사직하다
국역
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이 사직하기를 청하니 허락하였다. 윤이 아뢰기를,
"신이 재주롭지 못한 사람으로서 외람되게 정승의 지위에 있어 변괴(變怪)를 가져왔습니다. 예전 사람도 정승이 되어 변괴를 만나서 사직한 자가 또한 있었습니다."
하였다. 처음에 좌정승(左政丞) 이거이(李居易)가 일찍이 아상(亞相)이 되었는데, 큰아들 이저(李佇)가 부마(駙馬)가 되었고, 또 정사(定社)의 공(功)에 참여하였으므로, 병권(兵權)을 맡아 총애가 날로 새로왔고, 작은 아들 이백강(李伯剛)이 또 부마가 되었으므로 총애를 믿고 부도(不道)한 일을 자행하였다. 임금이 세자(世子)로 봉하여진 때를 당하여 상왕(上王)이 여러 절제사(節制使)의 관할인 군관(軍官)을 고쳐서 모두 삼군부(三軍府)에 소속시켜 감무(監撫)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절제사가 명령을 듣고 병권(兵權)을 즉시 삼군부에 바쳤는데, 오직 거이와 저(佇)만이 병권을 그대로 잡고서 즉시 송납(送納)치 아니하였다. 이에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이무(李茂) 등이 임금께 아뢰기를,
"거이 부자가 병권을 내놓기를 아깝게 여기오니, 뜻을 헤아릴 수 없고, 또 신 등을 지목하여 말하기를, ‘한덩어리 고기’라 하니, 일찍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도 역시 이를 미워하여 마침내 거이를 내보내어 계림 부윤(雞林府尹)을 삼고, 저(佇)로 완산 부윤(完山府尹)을 삼고, 이무(李茂)로 영흥 부윤(永興府尹)을 삼았었다. 즉위(卽位)한 뒤에 거이로써 좌정승을 삼았으니, 대개 그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요, 오래 맡기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거이가 이를 알지 못하고 조금도 사면할 뜻이 없으므로, 윤이 가만히 임금께 고하고 재이(災異)를 칭탁하여 사직한 것이었다.
원문
○丁亥/右政丞河崙乞辭職, 許之。 崙啓曰: "臣以不才, 濫居相位, 以致變怪。 古人爲相, 遇變怪而辭職者, 亦有之矣。" 初左政丞李居易, 嘗爲亞相, 以長子佇爲駙馬, 又與定社之功, 得任兵權, 寵遇日新, 季子伯剛, 又爲駙馬, 故恃寵恣行不道。 當上之封世子也, 上王革諸節制使, 所管軍官, 皆屬三軍府, 俾監撫之。 諸節制使聞令而釋兵, 卽納三軍府, 唯居易與佇, 執其兵權, 不卽送納。 於是, 判義興三軍府事李茂等, 復于上曰: "居易父子吝釋兵權, 志不可測。 且目臣等曰: ‘一塊肉耳。’ 不可不早慮也。" 上亦惡之, 遂出居易爲雞林府尹, 佇爲完山府尹, 李茂爲永興府尹。 及卽位, 以居易爲左政丞, 蓋欲快其心耳, 非欲久任也。 居易不知, 略無辭謝之志, 崙密告于上, 托災異以辭。
태종 1년 (1401) 3월 28일
국역
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이 사직하기를 청하니 허락하였다. 윤이 아뢰기를,
"신이 재주롭지 못한 사람으로서 외람되게 정승의 지위에 있어 변괴(變怪)를 가져왔습니다. 예전 사람도 정승이 되어 변괴를 만나서 사직한 자가 또한 있었습니다."
하였다. 처음에 좌정승(左政丞) 이거이(李居易)가 일찍이 아상(亞相)이 되었는데, 큰아들 이저(李佇)가 부마(駙馬)가 되었고, 또 정사(定社)의 공(功)에 참여하였으므로, 병권(兵權)을 맡아 총애가 날로 새로왔고, 작은 아들 이백강(李伯剛)이 또 부마가 되었으므로 총애를 믿고 부도(不道)한 일을 자행하였다. 임금이 세자(世子)로 봉하여진 때를 당하여 상왕(上王)이 여러 절제사(節制使)의 관할인 군관(軍官)을 고쳐서 모두 삼군부(三軍府)에 소속시켜 감무(監撫)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절제사가 명령을 듣고 병권(兵權)을 즉시 삼군부에 바쳤는데, 오직 거이와 저(佇)만이 병권을 그대로 잡고서 즉시 송납(送納)치 아니하였다. 이에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이무(李茂) 등이 임금께 아뢰기를,
"거이 부자가 병권을 내놓기를 아깝게 여기오니, 뜻을 헤아릴 수 없고, 또 신 등을 지목하여 말하기를, ‘한덩어리 고기’라 하니, 일찍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도 역시 이를 미워하여 마침내 거이를 내보내어 계림 부윤(雞林府尹)을 삼고, 저(佇)로 완산 부윤(完山府尹)을 삼고, 이무(李茂)로 영흥 부윤(永興府尹)을 삼았었다. 즉위(卽位)한 뒤에 거이로써 좌정승을 삼았으니, 대개 그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요, 오래 맡기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거이가 이를 알지 못하고 조금도 사면할 뜻이 없으므로, 윤이 가만히 임금께 고하고 재이(災異)를 칭탁하여 사직한 것이었다.
원문
○丁亥/右政丞河崙乞辭職, 許之。 崙啓曰: "臣以不才, 濫居相位, 以致變怪。 古人爲相, 遇變怪而辭職者, 亦有之矣。" 初左政丞李居易, 嘗爲亞相, 以長子佇爲駙馬, 又與定社之功, 得任兵權, 寵遇日新, 季子伯剛, 又爲駙馬, 故恃寵恣行不道。 當上之封世子也, 上王革諸節制使, 所管軍官, 皆屬三軍府, 俾監撫之。 諸節制使聞令而釋兵, 卽納三軍府, 唯居易與佇, 執其兵權, 不卽送納。 於是, 判義興三軍府事李茂等, 復于上曰: "居易父子吝釋兵權, 志不可測。 且目臣等曰: ‘一塊肉耳。’ 不可不早慮也。" 上亦惡之, 遂出居易爲雞林府尹, 佇爲完山府尹, 李茂爲永興府尹。 及卽位, 以居易爲左政丞, 蓋欲快其心耳, 非欲久任也。 居易不知, 略無辭謝之志, 崙密告于上, 托災異以辭。
원본
태종 1년 (1401)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