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권, 태종 1년 2월 6일 을미 1/2 기사 /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중국의 사신 육옹과 임사영이 조서를 가지고 오다
국역
중국의 사신(使臣) 예부 주사(禮部主事) 육옹(陸顒)·홍려 행인(鴻臚行人) 임사영(林士英)이 조서(詔書)를 받들고 오니, 산붕(山棚)·결채(結綵)·나례(儺禮)를 베풀고, 임금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조복(朝服) 차림으로 교외에서 맞아 의정부(議政府)에 이르렀으니, 수창궁(壽昌宮)이 불탔고, 시좌전(時坐殿)이 좁기 때문이었다. 조서를 선시(宣示)하니, 봉천 승운(奉天承運) 황제의 조서에 이르기를,
"중국의 바깥 육합(六合) 안에 무릇 땅덩이를 가진 나라는 반드시 인민(人民)이 있고, 인민이 있으면 반드시 임금이 있어 통치하는 것이다. 땅이 있는 나라는 대개 수로 헤아릴 수 없으나, 오직 시서(詩書)를 익히고 예의를 알아서, 능히 중국의 교화를 사모한 연후에야 중국에 조공(朝貢)하고, 후세에 일컫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나라가 있어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또 혹은 대국(大國)을 섬기지 못하여 착하지 못한 것으로 사방에 알려지는 자가 또한 있다. 너희 조선은 기자(箕子)의 가르침을 익혀서, 본래 배우기를 좋아하고 의(義)를 사모하는 것으로 중국에 알려졌고, 우리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께서 만방(萬邦)을 무림(撫臨)하심으로부터 신(臣)이라 일컫고 조공(朝貢)을 받들어 혹시라도 게으르고 방자한 일이 없었고, 짐(朕)이 공경히 유조(遺詔)를 받아 제위(帝位)를 이음에 미쳐 곧 사신을 보내어 조상하고 하례하였는데, 그때에 짐이 양음(諒陰)025) 에 있었으므로 살피어 회답하지 못하였다. 복(服)을 벗음에 미쳐서는 마침 북번(北藩)의 종실(宗室)이 조용하지 못하여 전쟁[軍旅]이 그치지 않았으므로, 회수(懷綏)의 도(道)가 결여(缺如)되었었다. 그러나 너 권지 국사(權知國事) 이(李) 【경(曔) .】 는 능히 사대(事大)의 예(禮)를 두터이 하여 짐의 생일을 맞아 다시 공비(貢篚)를 닦았으니, 마음에 아름답게 여기어 지금 사신(使臣)을 보내서 건문(建文) 3년의 대통력(大統曆) 한 권과 문기(文綺)·사라(紗羅) 40필을 내려 지극한 뜻에 회답한다. 너는 천도를 순(順)히 받들고 번의(藩儀)를 공손히 지키어, 간사한 것에 현혹하지 말고, 거짓에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충순(忠順)을 굳게 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길이 보전하여, 후세로 하여금 ‘인현(仁賢)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빛이 난다.’고 말하게 하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이에 조서(詔書)로 보이는 바이니, 마땅히 짐의 권회(眷懷)하는 바를 몸받으라."
하였다. 읽기를 마치매, 임금이 상사(賞賜)를 받고, 잔치를 베풀어 사신을 위로하였다. 사신이 태평관(太平館)으로 가니, 임금이 관(館)에 이르러 위안(慰安)하고 환궁(還宮)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95면
- 【분류】외교-명(明)
- [註 025] 양음(諒陰) : 상중(喪中).
원문
○乙未/朝廷使臣禮部主事陸顒、鴻臚行人林士英, 奉詔書來, 設山棚結綵儺禮。 上率百官, 以朝服迎于郊, 至議政府。 以壽昌宮災, 而時坐殿隘故也。 宣詔。 奉天承運皇帝詔曰:
中國之外, 六合之內, 凡有壤地之國, 必有人民, 有人民, 必有君以統之。 有土之國, 蓋不可以數計, 然唯習詩書知禮義, 能慕中國之化者, 然後朝貢于中國, 而後世稱焉。 否則雖有其國, 人不之知, 又或不能事大, 而以不善聞于四方者, 亦有矣。 惟爾朝鮮, 習箕子之敎, 素以好學慕義, 聞中國。 自我太祖高皇帝撫臨萬邦, 稱臣奉貢, 罔或怠肆, 曁朕祗受遺詔, 肇承丕緖, 卽遣使弔賀。 時在諒陰, 不遑省答, 及玆除服, 會北藩宗室不靖, 軍旅未息, 懷綏之道, 迨今缺然。 惟爾權知國事李曔, 能敦事大之禮, 以朕生辰, 復修貢篚, 心用嘉之。 今遣使齎賜建文三年《大統曆》一卷、文綺紗羅四十匹, 以答至意。 爾尙順奉天道, 恪守藩儀, 毋惑于邪, 毋怵于僞, 益堅忠順, 以永令名, 俾後世謂仁賢之敎, 久而有光, 不亦休乎! 故玆詔示, 宜體眷懷。
讀訖, 上受賜, 設宴慰使臣。 使臣就太平館, 上至館慰安, 還宮。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95면
- 【분류】외교-명(明)
태종 1년 (1401) 2월 6일
국역
중국의 사신(使臣) 예부 주사(禮部主事) 육옹(陸顒)·홍려 행인(鴻臚行人) 임사영(林士英)이 조서(詔書)를 받들고 오니, 산붕(山棚)·결채(結綵)·나례(儺禮)를 베풀고, 임금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조복(朝服) 차림으로 교외에서 맞아 의정부(議政府)에 이르렀으니, 수창궁(壽昌宮)이 불탔고, 시좌전(時坐殿)이 좁기 때문이었다. 조서를 선시(宣示)하니, 봉천 승운(奉天承運) 황제의 조서에 이르기를,
"중국의 바깥 육합(六合) 안에 무릇 땅덩이를 가진 나라는 반드시 인민(人民)이 있고, 인민이 있으면 반드시 임금이 있어 통치하는 것이다. 땅이 있는 나라는 대개 수로 헤아릴 수 없으나, 오직 시서(詩書)를 익히고 예의를 알아서, 능히 중국의 교화를 사모한 연후에야 중국에 조공(朝貢)하고, 후세에 일컫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나라가 있어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또 혹은 대국(大國)을 섬기지 못하여 착하지 못한 것으로 사방에 알려지는 자가 또한 있다. 너희 조선은 기자(箕子)의 가르침을 익혀서, 본래 배우기를 좋아하고 의(義)를 사모하는 것으로 중국에 알려졌고, 우리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께서 만방(萬邦)을 무림(撫臨)하심으로부터 신(臣)이라 일컫고 조공(朝貢)을 받들어 혹시라도 게으르고 방자한 일이 없었고, 짐(朕)이 공경히 유조(遺詔)를 받아 제위(帝位)를 이음에 미쳐 곧 사신을 보내어 조상하고 하례하였는데, 그때에 짐이 양음(諒陰)025) 에 있었으므로 살피어 회답하지 못하였다. 복(服)을 벗음에 미쳐서는 마침 북번(北藩)의 종실(宗室)이 조용하지 못하여 전쟁[軍旅]이 그치지 않았으므로, 회수(懷綏)의 도(道)가 결여(缺如)되었었다. 그러나 너 권지 국사(權知國事) 이(李) 【경(曔) .】 는 능히 사대(事大)의 예(禮)를 두터이 하여 짐의 생일을 맞아 다시 공비(貢篚)를 닦았으니, 마음에 아름답게 여기어 지금 사신(使臣)을 보내서 건문(建文) 3년의 대통력(大統曆) 한 권과 문기(文綺)·사라(紗羅) 40필을 내려 지극한 뜻에 회답한다. 너는 천도를 순(順)히 받들고 번의(藩儀)를 공손히 지키어, 간사한 것에 현혹하지 말고, 거짓에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충순(忠順)을 굳게 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길이 보전하여, 후세로 하여금 ‘인현(仁賢)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빛이 난다.’고 말하게 하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이에 조서(詔書)로 보이는 바이니, 마땅히 짐의 권회(眷懷)하는 바를 몸받으라."
하였다. 읽기를 마치매, 임금이 상사(賞賜)를 받고, 잔치를 베풀어 사신을 위로하였다. 사신이 태평관(太平館)으로 가니, 임금이 관(館)에 이르러 위안(慰安)하고 환궁(還宮)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95면
- 【분류】외교-명(明)
- [註 025] 양음(諒陰) : 상중(喪中).
원문
○乙未/朝廷使臣禮部主事陸顒、鴻臚行人林士英, 奉詔書來, 設山棚結綵儺禮。 上率百官, 以朝服迎于郊, 至議政府。 以壽昌宮災, 而時坐殿隘故也。 宣詔。 奉天承運皇帝詔曰:
中國之外, 六合之內, 凡有壤地之國, 必有人民, 有人民, 必有君以統之。 有土之國, 蓋不可以數計, 然唯習詩書知禮義, 能慕中國之化者, 然後朝貢于中國, 而後世稱焉。 否則雖有其國, 人不之知, 又或不能事大, 而以不善聞于四方者, 亦有矣。 惟爾朝鮮, 習箕子之敎, 素以好學慕義, 聞中國。 自我太祖高皇帝撫臨萬邦, 稱臣奉貢, 罔或怠肆, 曁朕祗受遺詔, 肇承丕緖, 卽遣使弔賀。 時在諒陰, 不遑省答, 及玆除服, 會北藩宗室不靖, 軍旅未息, 懷綏之道, 迨今缺然。 惟爾權知國事李曔, 能敦事大之禮, 以朕生辰, 復修貢篚, 心用嘉之。 今遣使齎賜建文三年《大統曆》一卷、文綺紗羅四十匹, 以答至意。 爾尙順奉天道, 恪守藩儀, 毋惑于邪, 毋怵于僞, 益堅忠順, 以永令名, 俾後世謂仁賢之敎, 久而有光, 不亦休乎! 故玆詔示, 宜體眷懷。
讀訖, 上受賜, 設宴慰使臣。 使臣就太平館, 上至館慰安, 還宮。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95면
- 【분류】외교-명(明)
원본
태종 1년 (1401) 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