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5권, 태조 3년 1월 12일 임자 1/2 기사 /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흠차 내사 노타내 등이 자문을 가지고 오니 임금이 선의문 밖에서 맞이하다
국역
흠차 내사(欽差內史) 노타내(盧他乃)·박덕룡(朴德龍)·정징(鄭澄) 등이 좌군 도독부(左軍都督府)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오니, 임금이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선의문(宣義門)에 나가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 자문은 이러하였다.
"홍무(洪武) 26년(1393) 11월 20일에 산동 도사(山東都司) 영해위(寧海衛)에서 고려(高麗)의 불한당[劫賊] 1명 최독이(崔禿伊)를 잡아 본부(本府)002) 에 이르렀다. 본인(本人)의 장공(狀供)에 의거한다면 고려 숙주(肅州) 노질동(爐叱洞)에 거주하는 사람인데, 홍무 26년 7월 7일에 고려왕 이성계(李成桂)가 만호(萬戶) 김사언(金寺彦)과 천호(千戶) 차성부(車成富)·이부수(李富壽)·임원(林原)·임청언(林淸彦)·이불수(李佛壽)·홍충언(洪忠彦)과 백호(百戶) 정융(鄭隆)·홍원(洪原)·임충언(林忠彦)을 보내어 배 7척을 거느리고 배마다 인원 37명씩과 베[布] 2곤(綑)을 실으니, 합계 인원이 2백 59명이요, 베가 5백 60필이었는데, 매매(賣買)를 가작(假作)하여 소식을 듣게 하고는 말하기를, ‘만약 대군(大軍)이 오지 않을 때는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요동(遼東)을 공격할 것이다.’라고 했으며, 뒤를 이어 재차 배 10척을 보내는 데, 배마다 인원 37명을 싣게 하고는 각기 군기(軍器)를 가지게 하니, 합계 인원이 2백 70명이 되었다. 또 잡아 보낸 천호(千戶) 김완귀(金完貴)의 공술(供述)에 의거하면, ‘여진(女眞)에 소속된 백호(百戶) 김광의(金光義)는 곧 금성 판관(金城判官) 임갈용의(任葛龍義)와 영사(令史) 여균피력(藜均皮力) 등의 소위(所爲)이므로 모두 김완귀(金完貴)에게는 관계 안 되는 일이다.’ 한다. 각인(各人)이 현재 필둔 구자(畢屯口子)에 거주하고 있는데, 본부(本府)의 좌도독(左都督) 양문(楊文) 등 관원이 각인(各人)의 공사(供詞)를 가지고 봉천문(奉天門)에 본디대로 갖추어 황제에게 아뢰어서 성지(聖旨)를 받았다. ‘이와 같이 도독부(都督府)에서 그 연고(緣故)로써 문서를 보내어 가서 이성계(李成桂)에게 알게 할 것이니, 그들이 왜적(倭賊)을 가조(假造)하고 또 한번 흔단(釁端)을 일으키고, 그들로 하여금 여진(女眞)의 관리를 꾀어서 보내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삼가 받들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면
- 【분류】외교-명(明)
- [註 002] 본부(本府) : 도독부(都督府).
원문
○壬子/欽差內史盧他乃、朴德龍、鄭澄等, 齎左軍都督府咨文來, 上率群臣, 出宣義門迎之。 其咨曰:
洪武二十六年十一月二十日, 據山東都司寧海衛解到高麗劫賊一名崔禿伊到府。 責據本人狀供, 係高麗 肅州 爐叱洞住人。 於洪武二十六年七月七日, 有高麗王 【上諱。】 差萬戶金寺彦、千戶車成富ㆍ李富壽ㆍ林原ㆍ林淸彦ㆍ李佛壽ㆍ洪忠彦、百戶鄭隆ㆍ洪原ㆍ林忠彦, 領船七隻, 每船裝人三十七名ㆍ布二綑, 共計人二百五十九名, 布五百六十匹。 假作買賣, 打聽消息, 說道: "若大軍不來時, 我起軍打遼東。" 續後再差船十隻, 每船裝人三十七名, 各帶軍器, 共計人(二)〔三〕 百七十名。 又據解千戶金完貴供稱, "有女眞係百戶金光義, 卽金城判官任葛龍義、令史藜均皮力等所爲, 幷不干金完貴事, 各人見在畢屯口子住。" 得此, 本府左都督楊文等官將各人供詞具本, 於奉天門奏奉聖旨: "恁都督府將這緣故行文書去, 敎李 【諱。】 知道。 這等假造倭賊, 又是他一次生釁, 就敎他將誘女眞的官吏送來。" 欽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면
- 【분류】외교-명(明)
태조 3년 (1394) 1월 12일
태조실록5권, 태조 3년 1월 12일 임자 1/2 기사 /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흠차 내사 노타내 등이 자문을 가지고 오니 임금이 선의문 밖에서 맞이하다
국역
흠차 내사(欽差內史) 노타내(盧他乃)·박덕룡(朴德龍)·정징(鄭澄) 등이 좌군 도독부(左軍都督府)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오니, 임금이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선의문(宣義門)에 나가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 자문은 이러하였다.
"홍무(洪武) 26년(1393) 11월 20일에 산동 도사(山東都司) 영해위(寧海衛)에서 고려(高麗)의 불한당[劫賊] 1명 최독이(崔禿伊)를 잡아 본부(本府)002) 에 이르렀다. 본인(本人)의 장공(狀供)에 의거한다면 고려 숙주(肅州) 노질동(爐叱洞)에 거주하는 사람인데, 홍무 26년 7월 7일에 고려왕 이성계(李成桂)가 만호(萬戶) 김사언(金寺彦)과 천호(千戶) 차성부(車成富)·이부수(李富壽)·임원(林原)·임청언(林淸彦)·이불수(李佛壽)·홍충언(洪忠彦)과 백호(百戶) 정융(鄭隆)·홍원(洪原)·임충언(林忠彦)을 보내어 배 7척을 거느리고 배마다 인원 37명씩과 베[布] 2곤(綑)을 실으니, 합계 인원이 2백 59명이요, 베가 5백 60필이었는데, 매매(賣買)를 가작(假作)하여 소식을 듣게 하고는 말하기를, ‘만약 대군(大軍)이 오지 않을 때는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요동(遼東)을 공격할 것이다.’라고 했으며, 뒤를 이어 재차 배 10척을 보내는 데, 배마다 인원 37명을 싣게 하고는 각기 군기(軍器)를 가지게 하니, 합계 인원이 2백 70명이 되었다. 또 잡아 보낸 천호(千戶) 김완귀(金完貴)의 공술(供述)에 의거하면, ‘여진(女眞)에 소속된 백호(百戶) 김광의(金光義)는 곧 금성 판관(金城判官) 임갈용의(任葛龍義)와 영사(令史) 여균피력(藜均皮力) 등의 소위(所爲)이므로 모두 김완귀(金完貴)에게는 관계 안 되는 일이다.’ 한다. 각인(各人)이 현재 필둔 구자(畢屯口子)에 거주하고 있는데, 본부(本府)의 좌도독(左都督) 양문(楊文) 등 관원이 각인(各人)의 공사(供詞)를 가지고 봉천문(奉天門)에 본디대로 갖추어 황제에게 아뢰어서 성지(聖旨)를 받았다. ‘이와 같이 도독부(都督府)에서 그 연고(緣故)로써 문서를 보내어 가서 이성계(李成桂)에게 알게 할 것이니, 그들이 왜적(倭賊)을 가조(假造)하고 또 한번 흔단(釁端)을 일으키고, 그들로 하여금 여진(女眞)의 관리를 꾀어서 보내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삼가 받들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면
- 【분류】외교-명(明)
- [註 002] 본부(本府) : 도독부(都督府).
원문
○壬子/欽差內史盧他乃、朴德龍、鄭澄等, 齎左軍都督府咨文來, 上率群臣, 出宣義門迎之。 其咨曰:
洪武二十六年十一月二十日, 據山東都司寧海衛解到高麗劫賊一名崔禿伊到府。 責據本人狀供, 係高麗 肅州 爐叱洞住人。 於洪武二十六年七月七日, 有高麗王 【上諱。】 差萬戶金寺彦、千戶車成富ㆍ李富壽ㆍ林原ㆍ林淸彦ㆍ李佛壽ㆍ洪忠彦、百戶鄭隆ㆍ洪原ㆍ林忠彦, 領船七隻, 每船裝人三十七名ㆍ布二綑, 共計人二百五十九名, 布五百六十匹。 假作買賣, 打聽消息, 說道: "若大軍不來時, 我起軍打遼東。" 續後再差船十隻, 每船裝人三十七名, 各帶軍器, 共計人(二)〔三〕 百七十名。 又據解千戶金完貴供稱, "有女眞係百戶金光義, 卽金城判官任葛龍義、令史藜均皮力等所爲, 幷不干金完貴事, 各人見在畢屯口子住。" 得此, 本府左都督楊文等官將各人供詞具本, 於奉天門奏奉聖旨: "恁都督府將這緣故行文書去, 敎李 【諱。】 知道。 這等假造倭賊, 又是他一次生釁, 就敎他將誘女眞的官吏送來。" 欽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면
- 【분류】외교-명(明)
원본
태조 3년 (1394)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