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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115번째기사

태조를 다시 문하 시중에 제수하였으나 사양하는 전문을 올리자 윤허하지 않다

12월, 다시 태조로써 문하 시중 도총 중외 제군사(門下侍中都摠中外諸軍事)로 삼으니, 태조가 전문(箋文)을 올려 사양하였다.

"다만 덕(德)을 헤아려 직위를 주는 것은 이것이 임금의 밝음이 되고, 총행(寵幸)으로써 공(功)을 차지하지 않는 것은 신하의 의리에 합합니다. 만약 영화(榮華)를 탐내어 함부로 나아가면 혹은 재화(災禍)를 맞이하고 원망을 초래합니다. 이로써 소공(召公)113) 은 권세가 극성하면 있기 어려움을 근심했으며, 채택(蔡澤)114) 은 공(功)이 이루어진 사람은 떠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 조종에서 시중(侍中)의 임무는 실로 주(周)나라의 총재(冢宰)의 벼슬이니 나라를 균등하게 함도 이미 어려운 일인데, 음양(陰陽)을 조화(調和)시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신은 국량(局量)이 좁고 얕으며 학술(學術)은 소략(疏略)하고 거칠은데, 가성(假姓)115) 이 해독을 퍼뜨리던 시기를 당하여, 군사를 일으켜 중국을 침범하는 일이 있어 신(神)과 사람이 함께 통분히 여기고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 거의 기울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여러 장수들과 함께 군사를 돌이켜 삼가 천자의 명령을 받들었으니, 참위(僭僞)116) 의 종자(種子)들은 저절로 멸망에 이르고, 정통(正統)의 전승(傳承)은 능히 흥복(興復)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곧 조종(祖宗)께서 몰래 도와주심이요, 진실로 신(臣)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작읍(爵邑)을 주신 은혜를 입어 이내 중외(中外)의 국사(國事)를 통솔하니, 덕(德)에 의하여 잘 다스려진 정치에 도움이 없으므로, 소임을 감당하지 못하여 일을 실패시킨 근심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금년 봄에 윤이(尹彝)이초(李初)가 도망해 중국으로 들어가서, 가만히 천자(天子)를 업신여기고 친왕(親王)에게 청하여 천하의 군사를 움직여 사직(社稷)을 옮기고자 하니, 김종연(金宗衍)이 그 주모자(主謀者)가 되어 스스로 미혹(迷惑)하여 도망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실(王室)의 안위(安危)에 매여 있으며, 신(臣) 자신의 이해(利害)에는 관계되지 않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숨은 것을 고의로 놓아주매, 다만 반역할 것을 몰래 서로 모의하니, 다만 신의 총리(寵利)가 시켜 그렇게 한 것이지만, 생각이 이에 이르매 조심하고 황공하여 그침이 없습니다. 요사이 우의정(右議政)에 사면(辭免)하게 되매 사사로이 마음속에 다행하게 여겼는데, 지금 또 신을 시중(侍中)에 임명하여 명령이 위에서 내려오니 몸둘 곳이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국가가 재건(再建)되어 문물(文物)이 다시 일어나니, 스스로 큰 인재가 아니면 어찌 국정(國政)을 보좌하겠으며, 무거운 덕망이 없으면 어찌 능히 인심을 진압 복종시키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신의 지극한 정성을 살피시와 신의 중한 책임을 벗겨 주신다면, 신은 마땅히 어진 사람에게 길을 피하여, 관직을 비워두었다는 비난[曠職之議]을 끼침이 없을 것이며, 집에서 노년(老年)을 보내면서 제사지내 복을 비는 정성을 바치겠습니다."

왕은 윤허(允許)하지 아니하고 비답(批答)하였다.

"난리를 평정하여 질서 있는 세상으로 회복함은 실로 세상에서 뛰어난 인재(人材)가 되고, 도(道)를 논하여 나라를 다스림은 반드시 하늘을 대신하는 정승(政丞)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 몸의 거취(去就)는 나라의 안위(安危)에 관계된다. 경(卿)은, 뜻은 풍상(風霜)에 격려[勵]되고 기운은 삼광(三光)117) 오악(五嶽)118) 에 타고났소. 예로부터 공(功)이 왕실(王室)에 있었으며, 지금에 이르러 덕(德)이 백성들에게 입혀졌소. 납씨(納氏)119) 를 북방 모퉁이에서 쫓아내고 왜구(倭寇)를 사방의 국경에서 섬멸하였소. 선왕(先王)이 세상을 떠나신 이후로부터 위성(僞姓)이 그 사이에 거짓으로 왕위를 도둑질하여 사냥에 빠지고 주색(酒色)을 즐기며, 살육을 마음대로 행하여 완악하고 흉악한 짓을 크게 행하여, 군사를 일으켜 장차 중국을 범하려고 하는데, 경이 역리(逆理)와 순리(順理)를 밝게 알고 대의(大義)를 주창하여 돌아와서, 종친(宗親)과 여러 신민(臣民)들과 모의하여 마침내 위성(僞姓)을 폐출(廢黜)시키고 과인(寡人)을 추대하여, 나라의 터전이 거의 위태했는데도 다시 편안하게 하고, 종사(宗祀)가 이미 끊어졌는데도 다시 이어지게 하니, 공(功)을 비교하고 덕(德)을 헤아려보매, 옛날에 빛나고 지금도 빛나서, 마땅히 우리 집에 길이 보좌하고 영광을 후사(後嗣)에게 전해야 될 것인데, 어찌 여러 소인들이 몰래 간사한 계획을 꾸밀줄을 기약했으랴. 이것은 실로 나에게 있고 경의 이유는 아니니, 자기를 책망하는 데 깊이 뜻을 두고서 장차 그 형벌을 바로잡으려고 하는데, 경이 갑자기 전장(牋章)120) 을 바쳐 직임(職任)을 면(免)하려고 하니, 경은 비록 생각하기를 상심(詳審)했지마는, 나의 소망(所望)은 그렇지 아니하오. 원수(元首)121)고굉(股肱)122) 이 이미 일체(一體)처럼 되었으니, 황하(黃河)가 띠[帶]와 같이 좁아지고 태산(泰山)이 숫돌[礪]과 같이 작게 되더라도 감히 내 마음에서 잊겠는가? 번거롭게 굳이 사양하지 말고 속히 그대의 직책에 나아가기를 바라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5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王室) / 역사(歷史) / 군사(軍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13]
    소공(召公) : 주(周)나라의 정치가.
  • [註 114]
    채택(蔡澤) : 중국 전국 시대 연(燕)나라 사람.
  • [註 115]
    가성(假姓) : 신씨(辛氏).
  • [註 116]
    참위(僭僞) : 신우(辛禑)·신창(辛昌)을 말함.
  • [註 117]
    삼광(三光) : 일(日)·월(月)·성(星).
  • [註 118]
    오악(五嶽) : 동악(東嶽) 태산(泰山)·서악(西嶽) 화산(華山)·남악(南嶽) 형산(衡山)·북악(北嶽) 항산(恒山)·중악(中嶽) 숭산(崇山)을 말함.
  • [註 119]
    납씨(納氏) : 나하추(納哈出).
  • [註 120]
    전장(牋章) : 전문(箋文).
  • [註 121]
    원수(元首) : 임금.
  • [註 122]
    고굉(股肱) : 신하.

〔○〕十二月, 復以太祖爲門下侍中都摠中外諸軍事。 太祖上箋辭曰:

惟度德而授位, 是爲君上之明; 罔以寵而居功, 乃合人臣之義。 如冒榮而貪進, 或速禍而招尤。 是以召公憂盛滿難居, 蔡澤云功成者去。 況我朝侍中之任, 實家冢宰之官。 均邦國之旣難, 燮陰陽之不易。 伏念臣局量褊淺, 學術疏荒。 當假姓流毒之時, 有興師猾之擧, 神人共憤, 宗社幾傾。 乃與諸將而還, 敬奉天子之命, 僭僞之種, 自底滅亡, 正派之傳, 克致興復。 斯乃祖宗之陰相, 固非臣力之所能, 特霑爵邑之恩, 仍領中外之事。 無補垂衣之化, 常懷覆餗之憂, 於今年春, 有尹彛李初逃入中國, 竊弄天子, 請親王動天下兵, 欲移社稷。 金宗衍爲其謀首, 自惑逃竄。 此係王室之安危, 非關臣身之利害。 乃有人匿且故縱, 惟不軌陰相與謀。 慮惟臣之寵利使然, 念至此而兢惶無已。 近得免於右揆, 私自幸於中心, 今又除臣侍中, 降命自天, 措躬無地。 矧今國家再造, 文物重興, 自非宏材, 曷足贊襄國政, 不有重德, 何能鎭服人情! 伏願諒臣至誠, 釋臣重負。 臣謹當避賢者路, 無貽曠職之譏; 送老于家, 專貢祝釐之懇。

王不允批答曰: "(拔)〔撥〕亂反正, 實爲命世之材; 論道經邦, 必待代天之相。 故其身之去就, 係於國之安危。 惟卿志勵風霜, 氣鍾光嶽。 惟自昔而功在王室, 式至今而德被生民。 逐納氏于朔陲, 殲倭寇于四境。 由先王薨逝以後, 有僞姓假竊其間。 荒于遊畋, 耽于酒色, 恣行殺戮, 大肆頑兇。 至興軍師, 將犯華夏, 而卿明知逆順, 倡義回還。 謀及宗親與諸臣庶, 遂乃廢黜僞姓, 推戴寡躬, 而使邦基幾危而復安, 宗祀旣絶而再續。 較功度德, 耀古光今。 當永輔於我家, 傳榮享於後嗣, 何期群小, 潛肆奸謀? 此實在余, 非卿之故, 深有志於責己。 將欲正其刑章, 而卿遽貢牋章, 規免職任。 卿雖思之審矣, 余所望則不然。 元首股肱, 旣同一體, 山河帶礪, 敢忘吾心! 毋煩固辭, 速踐乃職。"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5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王室) / 역사(歷史) / 군사(軍事)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