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1권, 총서 81번째기사
명에서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하자 요동 정벌을 논의하다
처음에 명(明)나라 황제가 말하기를,
"철령(鐵嶺)을 따라 이어진 북쪽과 동쪽과 서쪽은 원래 개원로(開元路)에서 관할하던 군민(軍民)이 소속해 있던 곳이니, 중국인·여진인(女眞人)·달달인(達達人)·고려인(高麗人)을 그대로 요동(遼東)에 소속시켜야 된다."
고 하였다. 최영이 백관(百官)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명나라에〉 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우왕은 최영과 비밀히 의논하여 요동(遼東)을 치려고 하매, 공산 부원군(公山府院君) 이자송(李子松)이 최영의 사제(私第)에 나아가서 옳지 못함을 힘써 말하니, 최영은 자송(子松)이 임견미(林堅味)에게 편당(偏黨)해 붙었다고 핑계하고는 곤장을 쳐서 전라도 내상(內廂)으로 유배시켰다가, 조금 후에 그를 죽였다. 우왕이 서북면 도안무사(都安撫使)의
"요동(遼東) 군사가 강계(江界)에 이르러 장차 철령위(鐵嶺衛)를 세우려 한다."
는 보고를 받고 울면서 말하기를,
"여러 신하들이 나의 요동을 공격하려는 계책을 듣지 않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였다. 명(明)나라에서 다시 요동 백호(遼東百戶) 왕득명(王得明)을 보내어 철령위(鐵嶺衛)를 세움을 알렸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1면
- 【분류】인물(人物) / 역사(歷史)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