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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71번째기사

태조가 자유 자재로 활을 쏘다

신우(辛禑) 11년(1385) 을축, 태조우왕을 따라 해주(海州)에서 사냥하였다. 화살 만든 장인(匠人)이 새 화살[新矢]을 바치니, 태조가 지환(紙丸)을 쌓아 놓은 벼[稻] 위에 질서 없이 꽂아 놓게 하고 이를 쏘아 모두 맞히고는, 좌우(左右)의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오늘 짐승을 쏘면 마땅히 모두 등골을 맞힐 것이다."

하였다. 태조가 평상시에는 짐승을 쏘면 반드시 오른쪽 안시골(雁翅骨)을 맞혔었는데, 이날은 사슴 40마리를 쏘았는데 모두 그 등골을 바로 맞히니, 사람들이 그 신묘한 기술을 탄복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짐승을 쏠 적에, 짐승의 왼쪽에 있으면 짐승의 오른쪽을 쏘아서, 짐승이 오른쪽으로부터 가로질러 달아나서 왼쪽으로 나오면, 짐승의 왼쪽을 쏘는데, 태조는 짐승을 쫓아서 짐승이 비록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나오더라도 즉시 쏘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의 말을 돌려 꺾어서 채찍질하여 짐승으로 하여금 왼쪽에서 바로 달아나게 하고서, 그제야 이를 쏘는데 또한 반드시 오른쪽 안시골(雁翅骨)을 맞히니, 이때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공(李公)은 온갖 짐승을 쏘되, 반드시 쏠 때마다 그 오른쪽을 맞힌다."

하였다. 우왕이 일찍이 행궁(行宮)에서 여러 무신(武臣)에게 명하여 활을 쏘게 하는데, 과녁[的]은 황색 종이로써 정곡(正鵠)을 만들어 크기가 주발만 하게 하고, 은(銀)으로써 작은 과녁[小的]을 만들어 그 복판에 붙였는데, 직경(直徑)이 겨우 2치[寸] 정도이었다. 50보(步) 밖에 설치했는데, 태조는 이를 쏘았으나 마침내 은 과녁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였다. 우왕은 즐거이 구경하기를 촛불을 밝힐 때까지 계속하였으며, 태조에게 좋은 말 3필을 내려 주었다. 이두란(李豆蘭)태조에게 말하였다.

"세상에 드문 재주는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서는 안 됩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0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역사(歷史)

〔○〕辛禑十一年乙丑, 太祖畋于海州。 矢人進新矢, 太祖令亂揷紙丸於積稻之上, 射之皆中, 謂左右曰: "今日射獸, 當盡中脊。" 太祖平時射獸, 必中右雁翅骨, 是日射鹿四十, 皆正中其脊, 人服其神。 世人射獸, 獸在左則射獸之右, 獸自右, 橫走出左則射獸之左。 太祖逐獸, 獸雖自右而左, 不卽射之, 必旋折其馬而鞭之, 使獸在左直走, 乃射之, 亦必中右雁翅骨。 時人皆曰: "李公射百獸, 必百中其右。" 嘗於行宮, 命諸武臣射, 的用黃紙爲質, 大如椀, 以銀爲小的, 棲其中, 徑纔二寸, 置五十步許。 太祖射之, 終不出銀的, 樂觀之, 繼之以燭, 賜太祖良馬三匹。 李豆蘭言於太祖曰: "奇才, 不可多示人。"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0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