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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27번째기사

환조가 동북면으로 돌아가다 죽자 함흥부에서 장사지내고 정릉이라 하다

지정(至正) 21년(1361) 신축 봄에 환조가 영록 대부 판장작감사(榮祿大夫判將作監事)로서 나가서 삭방도 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가 되었는데, 어사대(御史臺)에서 상소(上疏)하여 말하기를,

"이자춘(李子春)은 본디 동북면 사람이며 또 그 지경의 천호(千戶)이니, 병마사(兵馬使)를 삼아서 진수(鎭守)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였으나, 왕은 윤허(允許)하지 아니하고는 홀적청(忽赤廳)에서 연회를 베풀어 그를 위로하기를 심히 후하게 하고, 재신(宰臣)016)추신(樞臣)017) 들도 또한 회빈문(會賓門) 밖에서 전별하여 그를 위로하였다. 이미 떠나자 승진시켜 호부 상서(戶部尙書)로 삼았다. 환조가 북도(北道)에 이르러 얼마 안 되어 치보(馳報)하기를,

"본국(本國) 사람으로서 저 땅에 들어갔던 사람이 모두 명령에 따라 나왔습니다."

하였다. 4월 경술에 병이 나서 훙(薨)하니, 수(壽)가 46세였다. 함흥부(咸興府)신평부(信平部) 귀주동(歸州洞)에 장사지냈으니, 곧 정릉(定陵)이다. 왕이 부고(訃告)를 듣고 매우 슬퍼하며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내리기를 예절대로 하였다. 사대부(士大夫)들이 모두 놀라면서 말하기를,

"동북면에는 사람이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면
  • 【분류】
    인사(人事) /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역사(歷史)

  • [註 016]
    재신(宰臣) : 문하성(門下省)의 요직(要職)에 있는 이를 재신이라 함.
  • [註 017]
    추신(樞臣) : 중추원(中樞院)의 요직에 있는 이를 추신이라 함.

至正二十一年辛丑春, 以榮祿大夫判將作監事, 出爲朔方道萬戶、兼兵馬使。 御史臺上疏以爲: " 【桓祖諱。】 本東北面人, 而又其界千戶也。 不可以爲兵馬使而鎭守。" 王不允, 設宴于忽赤廳, 慰藉之甚厚, 宰樞又餞于會賓門外以慰之。 旣行, 陞爲戶部尙書。 桓祖至北道未幾, 馳報云: "本國人入彼土者, 皆順命出來。" 四月庚戌, 病薨, 壽四十六。 葬于咸興府信平部 歸州洞, 卽定陵。 王聞訃悼甚, 遣使弔哭, 致賻如禮。 士大夫咸驚曰: "東北面無人矣!"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면
  • 【분류】
    인사(人事) /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