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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25번째기사

환조가 기철 등의 당여를 물리치고 쌍성을 수복하다

이때 기 황후(奇皇后)의 종족(宗族)이 황후의 세력을 믿고 몹시 난폭했으며, 황후의 형 대사도(大司徒) 기철(奇轍)쌍성(雙城)의 관리 조소생(趙小生)·탁도경(卓都卿)과 몰래 통하여 서로 당(黨)을 지어 반역을 꾀하였다. 왕이 환조에게 이르기를,

"경(卿)은 우선 돌아가서 우리 백성들을 진무(鎭撫)하라. 혹시 변고가 있으면 마땅히 내 명령대로 하라."

하였다. 이해 5월에 기씨(奇氏)를 평정하고 밀직 부사(密直副使) 유인우(柳仁雨)를 명하여 가서 쌍성(雙城)을 토벌하게 하였다. 인우(仁雨) 등이 등주(登州)에 머무르니 쌍성과의 거리가 2백여 리(里)였다. 그곳에 머무르면서 나아가지 않으니, 왕은 이 소식을 듣고 환조에게 시소 부윤(試少府尹)을 제수(除授)하고, 자금어대(紫金魚袋)015) 를 내리고 중현 대부(中顯大夫)로 계급을 승진시키고는, 병마 판관(兵馬判官) 정신계(丁臣桂)를 보내어 교지(敎旨)를 전하여 내응(內應)하게 하였다. 환조는 명령을 듣고 즉시 〈군졸과 말을〉 함매(銜枚)하고 행군(行軍)하여 인우와 더불어 군사를 합쳐 쌍성을 쳐부수니, 소생(小生)도경(都卿) 등은 처자(妻子)를 버리고 밤에 도망하였다. 이에 화주(和州)·등주(登州)·정주(定州)·장주(長州)·예주(預州)·고주(高州)·문주(文州)·의주(宜州)선덕진(宣德鎭)·원흥진(元興鎭)·영인진(寧仁鎭)·요덕진(耀德鎭)·정변진(靜邊鎭) 등 여러 성(城)과 함주(咸州) 이북의 합란(哈蘭)·홍헌(洪獻)·삼살(三撒)의 땅을 수복(收復)했으니, 고종(高宗)원(元)나라에 점령당한 때로부터 99년만에 지금에 와서 이를 모두 수복하였다. 왕이 환조를 승진시켜 대중 대부(大中大夫) 사복경(司僕卿)으로 삼고, 서울에 제택(第宅) 1구(區)를 내리고 이내 머물러 거주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면
  • 【분류】
    인물(人物) / 외교-원(元) / 왕실(王室) / 인사(人事) / 역사(歷史) / 군사(軍事)

  • [註 015]
    자금어대(紫金魚袋) :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는 주머니. 공복(公服)의 띠에 매달아 관직의 귀천(貴賤)을 구분하였음.

○時奇皇后之族, 倚后勢暴橫, 后兄大司徒, 潛通雙城官吏趙小生卓都卿等, 結爲黨援謀逆。 王語桓祖曰: "卿且歸, 鎭吾民, 脫有變, 當如吾命。" 是年五月, 平奇氏。 命密直副使柳仁雨, 往討雙城仁雨等次登州, 距雙城二百餘里, 逗遛不進。 王聞之, 授桓祖試少府尹, 賜紫金魚袋, 進階中顯, 遣兵馬判官丁臣桂, 傳旨內應。 桓祖聞命, 卽刻銜枚就行, 與仁雨合兵, 攻破雙城, 小生都卿等, 棄妻子夜遁。 於是, 收復宜州宣德元興寧仁耀德靜邊等鎭諸城。 咸州以北哈蘭洪獻三撒之地, 自高宗時沒于九十九年, 今皆復之。 王進桓祖爲大中大夫司僕卿, 賜京第一區, 因留居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면
  • 【분류】
    인물(人物) / 외교-원(元) / 왕실(王室) / 인사(人事) / 역사(歷史)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