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46권, 선조 26년 12월 30일 己卯 6/8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비변사에서 군량 마련을 위해 진주 흥선도 목장을 둔전으로 경작할 것을 청하다
국역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의 형세는 곳곳에 양곡이 고갈되었는데 병란은 풀리지 않고 있으니 백방으로 생각하여 보아도 구제할 계책이 없습니다. 지난번 전라 수사(全羅水使) 이순신(李舜臣)이 해도(海島)에 둔전 설치하기를 청했는데 이는 매우 원대한 생각입니다. 가령 소득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지(內地)에서 운송해 가는 폐단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경상도 진주(晉州)의 흥선도(興善島) 목장(牧場)은 토지가 비옥하여 기장이 잘 된다고 하는데 지금 수군과 제장(諸將)들이 한산도(閑山島)에 있으면서 그 앞을 막고 있으니 금년에 조처하여 목자와 유민들로 하여금 김해(金海)·거제(巨濟) 등처에서 귀순해 와서 갈 데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살게 하고, 남해(南海)·곤양(昆陽)·진주 등지의 금년 관적(官糴) 가운데 있는 종자를 내어 주어 힘써 경작하게 한다면, 이를 수확하여 군량에 충족시킬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거처를 잃은 백성들도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원균(元均)의 군관(軍官)인 감찰(監察) 박치공(朴致恭)이 내려가니 이런 내용으로 원균과 관찰사 한효순(韓孝純)에게 하유하여 제때에 맞추어 시행하게 하소서. 또 장내(場內)의 마필(馬匹)의 수효도 조사하여 계문하게 하고 그 가운데 건장한 말은 숫자를 헤아려 끌어다가 전사(戰士)들에게 쓰게 하고 그 나머지 암컷과 망아지는 남겨두어 번식시키는 종마(種馬)로 쓰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의견도 상세히 헤아려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원문
○備邊司啓曰: "今日之勢, 處處糧穀殫竭, 兵連不解, 而百無可濟之策。 頃者全羅水使李舜臣, 請於海島爲屯田, 此甚經遠之慮。 假使所得不優, 而猶可以減內地轉運之弊。 聞慶尙道 晋州 興善島牧場, 土地沃饒, 宜稷粟, 而舟師諸將, 方在閑山島, 遮其前。 若於今年措置, 令牧子及流民, 與金海、巨濟等處, 歸順出來, 無所於歸者, 入處其中, 出南海、昆陽、晋州等處今年官糴所捧種子, 使之勤力耕作, 則非徒成熟之後, 足資軍食, 民之失所者, 亦有資生之理。 今元均軍官監察朴致恭下去, 請以此意, 下諭于元均及觀察使韓孝純處, 使之及時施行。 且場內馬匹多少, 亦爲相考啓聞, 其中壯馬, 量數捉出, 以爲戰士之用, 其餘只留雌馬、兒馬, 以爲孶息之種無妨。 此意亦商度施行。" 上從之。
선조 26년 (1593) 12월 30일
- 병조 판서 이덕형이 우리 나라 사정을 중국에 잘 전달할 방법을 건의하다
- 비변사에서 중국 차관을 접대하는 방법에 대해 건의하다
- 사간원에서 형옥을 즉시 처결하지 않은 형조 당상 등을 처벌할 것을 청하다
- 중국군이 철병한 경주 지역 백성을 위무하고 전투에 공이 있는 이를 시상할 것을 명하다
- 비변사에서 김덕령의 군대를 충용군이라 칭하고 기치를 내릴 것을 청하자 다시 의논하라고 하다
- 비변사에서 군량 마련을 위해 진주 흥선도 목장을 둔전으로 경작할 것을 청하다
- 비변사에서 중국군 철병 후 민심을 위무하고 아울러 군공이 있는 자를 포상할 것을 청하다
- 햇무리가 지다
선조실록46권, 선조 26년 12월 30일 己卯 6/8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비변사에서 군량 마련을 위해 진주 흥선도 목장을 둔전으로 경작할 것을 청하다
국역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의 형세는 곳곳에 양곡이 고갈되었는데 병란은 풀리지 않고 있으니 백방으로 생각하여 보아도 구제할 계책이 없습니다. 지난번 전라 수사(全羅水使) 이순신(李舜臣)이 해도(海島)에 둔전 설치하기를 청했는데 이는 매우 원대한 생각입니다. 가령 소득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지(內地)에서 운송해 가는 폐단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경상도 진주(晉州)의 흥선도(興善島) 목장(牧場)은 토지가 비옥하여 기장이 잘 된다고 하는데 지금 수군과 제장(諸將)들이 한산도(閑山島)에 있으면서 그 앞을 막고 있으니 금년에 조처하여 목자와 유민들로 하여금 김해(金海)·거제(巨濟) 등처에서 귀순해 와서 갈 데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살게 하고, 남해(南海)·곤양(昆陽)·진주 등지의 금년 관적(官糴) 가운데 있는 종자를 내어 주어 힘써 경작하게 한다면, 이를 수확하여 군량에 충족시킬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거처를 잃은 백성들도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원균(元均)의 군관(軍官)인 감찰(監察) 박치공(朴致恭)이 내려가니 이런 내용으로 원균과 관찰사 한효순(韓孝純)에게 하유하여 제때에 맞추어 시행하게 하소서. 또 장내(場內)의 마필(馬匹)의 수효도 조사하여 계문하게 하고 그 가운데 건장한 말은 숫자를 헤아려 끌어다가 전사(戰士)들에게 쓰게 하고 그 나머지 암컷과 망아지는 남겨두어 번식시키는 종마(種馬)로 쓰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의견도 상세히 헤아려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원문
○備邊司啓曰: "今日之勢, 處處糧穀殫竭, 兵連不解, 而百無可濟之策。 頃者全羅水使李舜臣, 請於海島爲屯田, 此甚經遠之慮。 假使所得不優, 而猶可以減內地轉運之弊。 聞慶尙道 晋州 興善島牧場, 土地沃饒, 宜稷粟, 而舟師諸將, 方在閑山島, 遮其前。 若於今年措置, 令牧子及流民, 與金海、巨濟等處, 歸順出來, 無所於歸者, 入處其中, 出南海、昆陽、晋州等處今年官糴所捧種子, 使之勤力耕作, 則非徒成熟之後, 足資軍食, 民之失所者, 亦有資生之理。 今元均軍官監察朴致恭下去, 請以此意, 下諭于元均及觀察使韓孝純處, 使之及時施行。 且場內馬匹多少, 亦爲相考啓聞, 其中壯馬, 量數捉出, 以爲戰士之用, 其餘只留雌馬、兒馬, 以爲孶息之種無妨。 此意亦商度施行。" 上從之。
원본
선조 26년 (1593) 12월 30일
- 병조 판서 이덕형이 우리 나라 사정을 중국에 잘 전달할 방법을 건의하다
- 비변사에서 중국 차관을 접대하는 방법에 대해 건의하다
- 사간원에서 형옥을 즉시 처결하지 않은 형조 당상 등을 처벌할 것을 청하다
- 중국군이 철병한 경주 지역 백성을 위무하고 전투에 공이 있는 이를 시상할 것을 명하다
- 비변사에서 김덕령의 군대를 충용군이라 칭하고 기치를 내릴 것을 청하자 다시 의논하라고 하다
- 비변사에서 군량 마련을 위해 진주 흥선도 목장을 둔전으로 경작할 것을 청하다
- 비변사에서 중국군 철병 후 민심을 위무하고 아울러 군공이 있는 자를 포상할 것을 청하다
- 햇무리가 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