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숙종실록56권, 숙종 41년 8월 23일 丙戌 3번째기사 1715년 청 강희(康熙) 54년

교리 정식의 언로(言路)의 일 등에 대한 상소

교리 정식(鄭栻)이 상소(上疏)하기를,

"언로(言路)가 막힌 것이 요즈음처럼 심한 적이 없는데, 명론(名論)이 어떠한지 헤아려 보지 않은 채 오직 추향(趨向)의 동이(同異)만을 보고 있습니다. 옛날 이종민(李宗閔)당 문종(唐文宗)에게 말하기를, ‘정담(鄭覃)은유(殷侑)의 의논은 들을 것이 못됩니다.’ 하니, 이덕유(李德裕)가 말하기를, ‘정담은유의 논의를 다른 사람들은 듣고자 하지 않으나, 오직 폐하(陛下)만은 듣고자 하시니 매우 다행합니다.’ 했습니다. 지금 금고되어 폐기되고 배척받는 사람으로서 어찌 정담은유와 같은 무리가 없습니까마는, 시론(時論)을 잡고 있는 이종민과 같은 무리들이 그들의 논의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괴이하게 여길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전하(殿下)의 명성(明聖)하신 총명으로도 그들의 의논을 듣고 싶어하지 않으시니, 신은 그윽이 의혹됩니다. 간장(諫長)과 유신(儒臣)의 상소는 진실로 숨김 없는 충정에서 나온 것인데, 전장(銓長)의 상소에 곧 취모 멱자(吹毛覔疵)한다는 등의 말로써 말한 자를 도리어 공박하였으며, 아전(亞銓)의 상소에서는 오로지 분박(噴薄)만 일삼고 있으니, 어찌 이와 같이 방자하겠습니까? 권엽(權熀)의 상소는 대체로 전관을 위하여 도왔는데, 양신(兩臣)045) 의 상소가 나온 뒤로 대각(臺閣)의 여러 사람들이 감히 공공연히 헐뜯고 배척하지 못했으니, 공의(公議)를 두려워할 만하다는 것을 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엽은 도리어 공격하기에 급급(汲汲)하였고 그의 ‘자처하는 의리가 반박(斑駁)되었다.’는 등의 말은 매우 놀라운 말로서 참으로 괴이하고 또한 가소롭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종민(李宗閔)은 바로 우승유(牛僧孺)를 끌여들여 그와 함께 이덕유(李德裕)를 배척한 자로서, 본래 정인(正人)이 아닌데, 그 이종민을 오늘의 정신(廷臣)에 비유하여 논의하고 있으니, 이 논의가 과연 공심(公心)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는가? 매우 옳지 못하다."

하였다. 이 비답이 있은 뒤에 정언 권엽정식(鄭栻)의 상소를 가지고 대변소(對辨疏)를 올리기를,

"송나라 때에 ‘당(黨)’ 한 글자로 간관(諫官)과 어사(御史)를 축출하자, 주자(朱子)는 ‘나라가 없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제 정식이 단번에 조정의 신하를 오멸시켜 당(唐)나라 말엽의 소인(小人)들에게 비교하기에 이르렀으니, 나라가 없게 될 근심을 성조(聖朝)에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언자(言者)가 전지(銓地)를 공박하면서 시비(是非)가 전도되었으므로, 신이 한 마디 말로 변명(辨明)한 것은 대체로 하루의 책임을 다하려고 한 것인데, 도리어 신을 좌단(左袒)으로 배척하고 있으니, 신은 감히 여러 말로 변명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정식이 강개(慷慨)하여 말하고자 한다면, 즉시 상소하여 변명한들 누가 금지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고 여러 날 직숙을 이탈하며 무엇에 압박을 받아 비로소 친병(親病)을 구제하기를 애원하는 소장에 분박(噴薄)하는 것입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유신(儒臣)이 상소 가운데 견준 것은 차례가 없으니, 자못 불편(不便)한 데 관계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4책 56권 9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5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註 045]
    양신(兩臣) : 홍치중(洪致中)과 오명항(吳命恒)임.

○校理鄭栻上疏曰:

言路之壅閼, 未有如近日之甚者, 不計名論之如何, 惟視趨向之同異。 昔李宗閔言於 文宗曰: "鄭覃殷侑論議不足聽。" 李德裕曰: "論議, 他人不欲聞, 惟陛下欲聞之, 幸甚。" 目今錮廢擯斥之人, 豈無者流, 而秉時論如李宗閔輩者, 厭聞其論議, 固不足怪, 而以殿下之明聖, 亦不欲聞之, 臣竊惑焉。 諫長、儒臣之疏, 亶出無隱, 而銓長之疏, 乃以吹覓等說, 反攻言者, 亞銓之疏, 則專事噴薄, 何若是縱肆也? 權熀之疏, 大抵爲銓官左袒。 兩臣疏出後, 臺閣諸人, 不敢公肆詆斥, 公議之可畏, 此可見矣, 而也, 乃反汲汲攻擊, 處義斑駁等言, 殊甚駭然, 良可異而亦可笑也。

答曰: "李宗閔, 卽引進牛僧孺, 相與排擯李德裕者也。 本非正人, 而乃以宗閔, 比論於今日廷臣, 果出於公心乎? 殊甚不韙也。" 是後, 正言權熀疏上對辨疏, 以爲:

時以黨之一字, 逐諫官、御史, 朱子以爲無邦。 今一筆汚衊, 至比末, 不料無邦之憂, 復見於聖朝也。 今之言者, 侵攻銓地, 而是非倒懸, 臣一言辨明, 蓋效一日之責, 而反斥臣以左袒, 臣不敢呶呶也。 今慷慨欲言, 則趁卽疏辨, 誰禁不爲, 而脫直累日, 於何被迫, 而始乃噴薄於親病乞救之章耶?

上答曰: "儒臣疏中, 比擬無倫, 殊涉不便矣。"


  • 【태백산사고본】 64책 56권 9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5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