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 김상헌이 이귀를 비판한 데 대한 하교가 민망하다며 파직을 청하다
대사헌 김상헌(金尙憲)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어제 정원에 하교한 것을 듣건대, 지극히 송구스럽습니다. 대간의 계사, 장관의 명령, 이귀를 탄핵하는 글 등은 모두 신이 한 짓입니다. 대저 묘당의 예가 오로지 엄숙하고 정성스러운 것과 대간의 논의가 강직한 것은 곧 당연한 체모입니다. 말을 거칠게 했다는 것은 그 기상을 그대로 쓴 것이며, 바로 잡으려는 행동은 모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주나라도 10명의 어진 백성을 얻었을 뿐이다.’는 말은 글을 쓰는 격식이지, 어찌 깊은 뜻이 있겠습니까. 옛날에 소망지(蕭望之)는 어사 대부로서 승상을 만났을 때 무례하였다고 하여 김안상(金安上) 등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좌천당했습니다. 어사 대부는 지위가 상경(上卿)과 삼공의 다음인데도 한 마디 말이 불손하다 하여 모두 그 허물을 바로잡았으니, 일품이라 하여 옹호받았던 경우가 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성품이 편협하여 무슨 일에나 번번이 낭패를 봅니다. 지금 또 망발하여 엄중한 교지를 받았으니,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집의 이유달(李惟達), 장령 고부천(高傅川)·이행건(李行健), 지평 오달승(吳達升)·송국택(宋國澤)이 모두 이 때문에 인피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대사간 이상길(李尙吉), 사간 한필원(韓必遠), 헌납 심연(沈演), 정언 조빈(趙贇) 등이 아뢰기를,
"무릇 합계한 내용은 반드시 서로 의논한 뒤에 아뢴 것입니다. 어제 계사 중에 ‘일부(一夫)’라는 말은 그저 보통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성상께서는 모욕이라고 물리치기까지 하셨습니다. 헌부가 이미 이 때문에 인피하였으니, 신들이 어찌 감히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모두 물러가서 물론을 기다렸다. 옥당이 상차하기를,
"대관(臺官)이 일마다 논열하는 것은 곧 그들의 직책이니, 바로 잡는 데에만 뜻이 있고 별다른 곡절이 없다면 그들이 말한 것들은 애당초 모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엄중한 교지가 내리자 혹은 동료의 간통(簡通)을 보았다고 하고 혹은 이 논의에 동참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변명하려는 것으로서 전혀 대간(臺諫)의 체통이 없는 짓입니다. 일이 진실로 거론할 만한 것이라면 발의를 일찍 하고 늦게 하는 것은 말할 것이 못 되니, 이로써 인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사헌 김상헌, 지평 송국택, 대사간 이상길, 사간 한필원, 헌납 심연, 정언 조빈을 출사케하고, 집의 이유달, 장령 고부천·이행건, 지평 오달승은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저께 종호를 의논할 때에 양사(兩司) 장관이 처음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물러가서 뒷말을 한 것이 첫째 잘못이며, 예조의 회계에 대해 별로 반대한 말이 없었는데 반대하였다고 하는 것이 두 번째 잘못이며, 이귀의 공은 사직을 보존한 것이며 나이나 직위가 모두 높으므로 대관이 매도할 수 없는데 매도한 것이 세 번째 잘못이다. 김상헌 등은 이 세 가지 잘못이 있으므로 그대로 대각(臺閣)에 있게 할 수 없으나, 본관의 처치가 이러하니 아뢴 대로 하라. 이유달 등도 체직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87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왕실-종사(宗社)
○戊午/大司憲金尙憲啓曰: "臣伏聞昨日下政院之敎, 不勝悚然之至。 凡臺諫啓辭、長官命語、李貴彈文, 亦臣所爲也。 大抵廟堂之禮, 專於嚴恪; 臺諫之論, 主於直截, 乃體貌之當然也。 麤厲之云, 直書其氣象; 糾正之擧, 非出於侮辱。 況周家民獻, 猶得十夫之稱, 文字間措語, 亦豈有深意也? 昔蕭望之爲御史大夫, 遇丞相無禮, 金安上等以不遜論劾, 左遷。 御史大夫位在上卿、三公之亞, 而一言不遜, 擧正其過, 未聞以一品之故, 而有所回護也。 臣稟性狷狹, 動輒狼狽。 今又妄發, 致勤嚴旨, 請命罷斥。" 執義李惟達、掌令高傅川ㆍ李行健、持平吳達升ㆍ宋國澤, 皆以此引避, 答曰: "勿辭。" 大司諫李尙吉、司諫韓必遠、獻納沈演、正言趙贇等啓曰: "凡合啓之辭, 必通議然後乃啓。 昨日啓辭中一夫之稱, 不過尋常措語, 而聖敎至以侮辱斥之。 憲府旣以此引避, 臣等亦何敢晏然? 請命罷斥。" 答曰: "勿辭。" 竝退待物論。 玉堂箚曰:
臺官之隨事論列, 乃其職耳。 意在糾正, 別無他腸, 則其所云云, 初不出於侮辱也。 嚴旨之下, 或稱見同僚簡通, 或稱同參此論, 迹涉規避, 殊無臺諫風采。 事苟可論, 則發論早晩, 非所當論, 不必以此引避。 請大司憲金尙憲、持平宋國澤、大司諫李尙吉、司諫韓必遠、獻納沈演、正言趙贇出仕, 執義李惟達、掌令高傅川ㆍ李行健、持平吳達升遞差。
答曰: "再昨議號時, 兩司長官初不立異, 退有後言, 其失一也。 禮曹回啓, 別無防塞之語, 稱以防塞, 其失二也。 李貴功存社稷, 齒爵俱高, 有非臺官所可侮罵, 其失三也。 金尙憲等有此三失, 不可仍在臺閣, 而本館處置如此, 依啓。 李惟達等亦勿遞。"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8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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