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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59권, 광해 13년 12월 26일 癸巳 4번째기사 1621년 명 천계(天啓) 1년

도원수 한준겸과 변방의 방비에 관해 의논하다

〈미시에〉 왕이 〈선정전(宣政殿)에 납시어〉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을 인견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경은 무슨 계책으로 적을 막으려 하는가?"

하니, 준겸이 아뢰기를,

"소신이 늙고 재주가 없어 큰 일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성상께서도 통촉하셨을 것입니다. 다만 적이 변경을 침입하였는데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이 매우 근심스럽습니다."

하자,〉 왕이 이르기를

"경이 내려가서 모 총병을 만나 해도로 피신할 것과 가달에 대한 적절한 조처를 강력하게 진술하도록 하라."

하니, 준겸이 아뢰기를,

"이제까지 찬획사와 찬리사 등의 신하들이 모 총병과 상견례를 가진 일이 없었는데, 소신이 처음으로 가서 만나본다는 것이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토록 하라. 〈모장이 만약 해도로 들어가라는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선 산속으로라도 피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적이 만일 임진 왜란 때와 같이 성을 공격한다면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을 수 없으나 만일 한인들만 쫓는 것이라면 당나라 곽자의(郭子儀)회흘(回紇)을 방비하였던 것과 같이 강한 군사로 굳게 지키면 될 것이다."

하니, 준겸이 아뢰기를,

"〈성상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그러나 적이 내지에 들어왔는데 변방 신하들이 그들을 막을 계책은 없이 어찌 매번 이렇게만 하겠습니까. 만일 말로 타일러서 듣지 않으면 할 수 없이 싸움을 해야만 하는데 규율이 해이되고 백성들의 마음도 안일과 고식에 빠져 있으니 이 점이 염려됩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이 적은 흉악하고 교활하기 그지없는데 만일 지키고 있는 성은 공격하지 않고 곧 바로 서울로 밀고 들어오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반드시 중도에서 차단하여 불의의 공격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하 할 것이다."

하니, 준겸이 아뢰기를,

"비록 산성이 있더라도 성을 지키는 군사와 나가 싸우는 군사는 용병이 다른 것인만큼 응당 미리 계산하고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양 감군은 사람이 도도하고 벼슬도 높아 모 총병과는 심히 달라서 수응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반드시 접반사를 적임자로 골라서 그의 환심을 사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다가는 일이 전도될 우려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지난 기미년에 병사(兵使)에게 부원수를 겸임시키는 것이 매우 적합하지 않다는 뜻을 하교하였는데 비변사에서 따르지 않았다. 지금도 반드시 겸임시켜야 하겠는가?"

하니, 준겸이 아뢰기를,

"김경서(金景瑞)는 변방의 모든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국에서 요청하여〉 부원수를 겸임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병사도 자기가 지키고 있는 곳이 있으니 겸임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중국의 군사가 나온 뒤에야 군량을 계속 대기가 곤란할 것이니 의당 미리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하삼도에는 곡식을 비축한 사람이 많기에 상을 후하게 주어 모집하라는 하교를 한두 번 내린 것이 아닌데 오늘내일 미루면서 날이 갈수록 더욱 안일해지고 있다."

하니, 준겸이 아뢰기를,

"병법에 의하면 ‘반드시 안팎이 서로 도와주어야 견제당하는 우려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둔하고 용렬한 신은 지난날 선조 때에 능력도 없이 예비로 자리를 채우고 있다가 오늘에 이르렀는데 중대한 직책을 잘못 맡고 보니 죽을 곳을 모르겠습니다. 응당 모든 것을 묘당의 계책에 따라 할 것이니 조치를 취해야 할 모든 일들을 빨리 지휘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자, 왕이 이르기를,

"비국의 모든 일이 날마다 해이해지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전장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묘당의 계책을 기다리겠는가. 조치를 취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먼저 치문(馳問)을 하면 응당 의논해서 처리하도록 할 것이다."

하였다. 준겸이 아뢰기를,

"황해도평안도에는 수령이 없는 고을이 아주 많습니다. 현읍(縣邑)에 수령이 없으면 군사를 징집하고 군량을 운반하는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울 사람이 없습니다. 연로의 수령들을 마땅히 빨리 차출하여 보내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경을 장성(長城)같이 믿고 있으니 직무에 있는 힘을 다하라."

하니, 준겸이 아뢰기를,

"어찌 감히 목숨을 걸고 수행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신시에 파하고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59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0책 70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軍事)

    (未時)(御宣政殿,) 引見都元帥韓浚謙(王曰: "卿以何策禦賊乎?" 浚謙啓曰: "小臣年衰才淺, 不能當大事, 聖明想已洞燭矣。 第賊入邊境, 我不能出一言, 前頭之事, 極爲悶慮。") 王曰: "卿下去見毛將, 極陳避入海島之意及假㺚善處之事。" 浚謙 (啓)曰: "自前贊畫、贊理諸臣, 與毛將曾無相見之禮, 小臣創始往見(未知)如何。" 王曰: "令備邊司議處。 (毛將若不從入島之言, 勸令姑避山谷間宜當。)" 王曰: "伊賊若如壬辰攻城, 則不可不以干戈從事, 而若只逐人, 則嚴兵堅守, 如郭子儀之待回紇可矣。" 浚謙曰: "(聖敎至當。但) 賊入內地, 而邊臣無遮截之計, 豈可每每如是? 若以言語, 開諭不聽, 則干戈從事, 在所不已, 而紀律解弛, 我國人心, 偸安姑息, 是爲可慮。" 王曰: "此賊兇狡有餘, 若棄城守處而直擣京城, 則將何以爲之? 必須中路遮截, 俾無橫突之患。" 浚謙 (啓)曰: "雖有山城, 而守城與出戰軍異用, 所當預爲料理以待, 而第聞梁監軍爲人, 志亢爵尊, 與毛將頗異, 策應甚難。 必接伴使得人, 使要得其歡心, 不然則恐有顚倒之患矣。" 王曰: "往在己未, 以兵使兼副元, 以(甚)不便之意下敎, 而備局不從。 今亦必兼之乎?" 浚謙 (啓)曰: "金景瑞則詳知邊事(之首末), 故(備局啓請), 兼副元帥矣。 兵使亦有把守處, 似不必兼任矣。" 又(啓)曰: "天兵出來之後, 繼糧極難, 宜爲先措置(宜當)。" 王曰: "下三道多有積穀處, 重賞募得事, 下敎非一, 而今日明日, 玩愒日甚矣。" 浚謙曰: "兵法必有內外相濟之事, 可免掣肘之患。 如臣駑劣, 往在先朝, 承乏預備, 而至于今日, 謬當大任, 不知死所矣。 當一依廟算爲之, 凡干施措, 俾令從速指揮, (而俾無緩不及事之患宜當。)" 王曰: "備局諸事, 日以解弛, 可謂寒心。 臨陣對敵, 何待廟算? 若施措之事, 先爲馳, 則當令議處矣。" 浚謙 曰: "兩西守令曠闕頗多。 縣邑無主, 則徵兵運糧等事, 責無所歸。 沿路守令, 請從速差出(宜當)。" 王曰: "倚卿如長城, 盡心職事。" 浚謙曰: "敢不死生以之?" (申時, 罷出)


    • 【태백산사고본】 59책 59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0책 70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