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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210권, 선조 40년 4월 2일 甲午 2번째기사 1607년 명 만력(萬曆) 35년

비변사가 홀적이 패하고, 호인이 양식을 빌려달라는 일 등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시발(李時發)의 전후 장계를 보건대 군관 조공개(趙公玠)가 노추(老酋)와 홀추(忽酋) 양쪽 군사의 승패(勝敗)를 목격하고 왔다는데 그 말이 꼭 맞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홀호가 패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홀호 장수의 전사자 숫자에 대한 다과(多寡)가 동일하지 않을 뿐입니다. 아당개(阿堂介)·탁두(卓斗)·돌장개(乭將介) 등은 모두가 우리 나라를 배반하고 홀추에게 투항한 호인(胡人)이니, 그들이 전사하였는지를 다시 조사하여 사실을 알아서 치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번호(藩胡)가호(家好)·아질교(阿叱交) 등이 진고(進告)한 내용에 의하면 ‘수하(水下)에서 노략한 호인을 풍산(豐山)후시리동(厚時里洞)부터 수상(水上)까지 나누어 배치하였는데 양식이 없고 흉년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조선의 환곡(還穀)을 받아서 목숨을 잇고자 한다. ……’고 하니,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산외(山外)에 있는 번호의 촌락에 배치한 듯한 바 뒷날의 걱정은 말할 겨를도 없을 뿐더러 당장 양식을 빌려달라는 일 또한 매우 난처한 것 같습니다. 좋은 말로 거절하되 약점도 보이지 말고 노엽게도 하지 말아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소추(小酋)가 말한 직첩(職牒)과 아호(阿胡) 2건의 일은 아마도 전쟁에 승리하였음을 빙자해서 과장하여 공갈하는 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내세워 흔단을 만들어 다시 저돌적으로 나오는 일이 없지 않으리라고는 보장하기 어려우니, 방비에 대한 일을 완벽3하게 조치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솔히 소요스럽게 하여 스스로 곤란함을 초래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신은 논한다. 변방의 신하가 홀적(忽賊)이 패한 것을 우리의 다행으로 여기고 심지어는 간첩을 보내어 서로 탄멸(呑滅)하게 하려 하였으니 잘못된 계획이다. 융적(戎狄)의 성품은 떼 지어 살면 각자가 서로 시기하면서 방어하지만, 통합되면 내지(內地)를 넘보게 된다. 홀적은 사나운 개이고, 노호(老胡)는 산에 숨은 호랑이라서, 그들 병세(兵勢)의 강약과 지모(智謀)의 장단은 천 리 밖에서도 헤아릴 수 있다. 사나운 개라도 있다면 호랑이가 항시 개를 노리게 되겠지마는, 그 개를 잡아먹고 만족하지 않을 때는 장차 사람을 노리게 된다. 홀적이 멸망되기 전에는 노호의 병사가 반드시 남쪽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나, 두 적이 사로 싸우면 홀적은 패망하고 노호는 강성하여질 것이니 우리에게 무슨 다행함이 있겠는가. 직첩(職牒)을 요구하고 환곡(還穀)을 청하는 아호들의 말은 뒷날 이 말을 트집잡아 말썽을 야기시키는 빌미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 실정은 이것으로써 은혜나 원망으로 삼아 반드시 보복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진(秦)과 진(晉)의 싸움이 폐적(閉糴)에서 일어났고 제(齊)와 초(楚)의 다툼이 전가(田假)에서 시작되었으며 금(金)과 송(宋)의 흔단이 공낙(鞏洛)에서 발단되었지만, 이들 몇 나라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트집잡을 말이 없어져서 과연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장수를 선발하고 사졸을 어루만져 완취(完聚)하여 굳게 지킨다면 저들을 엎어놓고 매질을 하더라도 저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찌 트집잡을 말이 없겠는가. 저들의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잘 마무리하면 시랑(豺狼)의 조아(爪牙)를 잡아맬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피폐(皮幣)와 토지(土地)로도 그들의 욕구를 채울 수 없을까 싶다. 육국(六國)이 진(秦)에게 뇌물준 것이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 【태백산사고본】 113책 210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20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통신(通信) / 역사-사학(史學)

    ○備邊司啓曰: "以李時發前後狀啓見之, 則軍官趙公玠目見兩軍勝敗之狀而來, 其言之適中, 雖未可盡知, 而忽胡之見敗則明矣。 但將戰亡之數, 多寡不同。 阿堂介卓斗石乙將介等, 皆是背叛我國, 投附忽酋之胡, 其敗死與否, 更爲査訪得實, 馳啓爲當。 藩胡 家好阿叱交等進告內: ‘水下所掠之胡, 自豐山 厚時里洞, 分置水上, 無糧饑饉, 不得已朝鮮還上受出連命。’ 云云。 實如此言, 則似是布置山外, 藩落日後之憂, 有不暇言, 而目前借糧之事, 亦甚難處。 善辭拒之, 毋爲示弱, 毋使激怒爲當。 小酋所言職牒、阿胡二件事, 似近於乘其戰勝, 誇張恐嚇之說, 而執此爲釁, 更肆豕突, 難保其不無防備之事, 所當極盡措置, 而亦不可輕爲騷動, 以致自困。"

    【史臣曰: "邊臣以忽賊見敗, 爲我之幸, 而至欲發間, 使相呑滅, 料之誤矣。 戎狄之性, 群居則自相猜防; 統合則覬覦內地。 忽賊, 搏噬之犬也; 老胡, 隱山之虎也。 兵勢之强弱; 知慮之長短, 可籌於千里之外。 猛犬猶在, 則虎之窺覘, 常在於犬, 呑噬不饜, 則又將窺人。 忽賊未滅之前, 兵必不南向, 而兩賊相値, 則斃、强, 何幸於我? 至於求職、乞糴阿胡等語, 他日之執言開釁, 雖在於此, 其情則未嘗以是爲恩怨, 而必報之也。 之兵, 起於閉糶; 之伐, 起於田假; 之釁, 起於, 使數國不如是, 則無言可執, 而果不受隣敵之兵乎? 使我擇將撫卒, 完聚固守, 則雖伏而笞之, 彼將無辭焉。 如其不然, 豈無可執之辭乎? 若謂善了此數事, 可以縶豺狼之爪牙, 則吾恐皮幣土地, 不足以稱其欲也。 六國之賂, 可以監矣。"】


    • 【태백산사고본】 113책 210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20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통신(通信)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