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이덕형이 중국 장수들이 왜적들과 몰래 통하고 있음을 아뢰다
좌의정 이덕형(李德馨)이 【덕형은 나이가 40이 되기 전에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으니 어찌 영화가 아니겠는가. 다만 국가가 어려운 때를 만나 군주의 융숭한 대우를 믿어 자신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헤아리지 않고 사무를 담당하려고 하였는데 작은 그릇은 채워지기 쉽고 짧은 재주는 바닥나기 쉬우므로 일처리를 할 때 실패가 많으니 정승의 일은 참으로 어렵다고 하겠다. 】 아뢰었다.
"오늘 아침에 대 중군(戴中軍)이 신에게 말하기를 ‘정응태(丁應泰)가 상본(上本)하여 이곳에 있는 장수들을 탄핵하였는데, 그 안에는 상서(尙書) 소대형(蕭大亨), 급사(給事) 장보지(張輔之), 급사 요문울(姚文蔚)을 비롯하여 구경(九卿) 중에 싸움을 주장하는 자가 모두 탄핵을 받았다. 그의 말은 내외의 적신(賊臣)이 붕당을 지어 나라를 그르쳤다 하고 귀국은 간교한 번국(藩國)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주(星州)에 있을 때 보낸 주본이며, 이제 들으니 평양에 가서 또 주본을 올린다고 하니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귀국을 논한 조항을 먼저 등서하여 보인다.’ 하고, 또 은밀히 말하기를 ‘전일에 이응시(李應時)가 요동(遼東)에서 7일에 북경에 들어가 정응태의 밀서를 조 상공(趙相公)에게 바쳤으며, 상공의 밀유(密諭)를 받아 요동으로 돌아와서 정응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조 상공이 「조선은 부득이한 중대한 일이 있으면 포함해야겠으나 대단한 일이 아니면 조선까지 포함할 것은 없다. 」하였다 한다. 조선은 정응태의 소장이 올라가기 전에 정응태가 가는 곳마다 관원을 마구 때려 피해를 끼친 일을 미리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우리나라는 사체상 감히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니, 대 중군은 이는 귀국이 헤아려 조처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만 경리가 또 대 중군과 모(茅)036) ·허(許)037) 두 유격(遊擊)을 불러 들어갔는데 나중에 들으니 제장(諸將)이 각자 주본을 올릴 계획을 하고 있고 군문과 경리는 주본의 초고를 작성하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응태의 소장은 대략 ‘조선이 왜와 교통한 것은 예부터 해오던 일로서 《해동기략(海東記略)》에 의하면 간교한 번국이 사실 그런 일이 증명되며 지금 왕경(王京)에 왜관(倭館)인 일본관(日本館)이 아직도 있다. 그리고 압록강 중앙에 있는 섬을 차지하기 위하여 중국과 다투어 틈을 만들고 왜를 끌어들인 것이다. 지난해 5월에 독신(督臣)이 되돌려 보냈는데 조선 백성이 강가에서 길을 가로막고 자기들 땅이니 돌려달라고 다투었다. 지금 모인(某人)들이 항상 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사람은 교활하여 겉으로 중국을 섬기는 체하고 속으로는 일본과 결탁하여 곡식을 남몰래 조운(漕運)하면서 그 안에 연탄(鉛彈)을 숨기고 있으며 우리 군사의 상황을 왜노에게 비밀히 알리고, 또 장수들의 얼굴 모습과 투구·갑옷·말 등을 그림으로 그려 왜노에게 바쳤다. 그 때문에 전투를 할 때 왜노가 우리 장수를 알아보아 유격 노득공(盧得功)이 집중 사격을 받고 죽었으니 신은 통탄한 나머지 목이 메인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9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7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출판(出版) / 군사(軍事)
○左議政李德馨 【德馨年未四十, 位至台鉉, 豈不盛哉? 値國家艱虞之會, 恃君上眷遇之隆, 不揆己力之不逮, 乃欲擔當時務, 小器易盈, 短才易乏, 處事之際, 多所顚倒, 信乎相業之難也。】 啓曰: "今朝戴中軍謂臣曰: ‘丁應泰上本, 參在此諸將, 裏面則蕭尙書大亨、張給事輔之、姚給事文蔚諸人, 九卿中主戰者, 都被參說。 稱內外賊臣, 朋比誤國, 貴國則指爲奸藩, 此是在星州所發本也。 今聞到平壤, 又上本云, 未知再說何事。 其論貴國一款, 先爲謄書見示。’ 且密言: ‘前日李應試, 自遼東七日入京, 納丁之密書于趙相公, (授)〔受〕 相公密諭, 馳還遼東, 以待丁行。 風聞趙相公說: 「朝鮮有不得已重事, 則可參, 如非大段事, 則不須幷參朝鮮」 云。 朝鮮須及丁疏未上之前, 說丁之到處亂打官人擾害之事則可矣。’ 臣答稱: ‘小邦事體不敢’ 云爾, 則戴中軍說稱: ‘此則貴國可量處’ 云。 萬經理又招戴中軍及茅、許兩遊擊以去。 晩聞諸將, 將擬各上本, 而軍門及經理, 時方做本稿云。 丁疏略曰: ‘朝鮮通倭, 從來已然, 《海東記略》, 奸藩實有是事。 今王京, 倭館日本館尙在, 而爭告洲地, 啓釁犯倭。 昨年五月, 督臣還遁, 鮮民遮道江干, 尙爾告爭。 今某人等慣言鮮人猾詐, 陽事天朝, 陰結日本, 私運糧米, 中藏鉛彈, 而我兵情形, 密報倭奴, 且圖畫諸將面貌、盔甲、馬匹, 以獻倭奴。 所以臨陣倭, 能認得遊擊盧得功, 被衆銃以死。 臣飮恨呑聲云云。’"
- 【태백산사고본】 68책 109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7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출판(出版)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