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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57권, 선조 27년 11월 15일 己丑 4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이조 판서 이덕형이 사직하니 허락하지 않다

이조 판서 이덕형(李德馨)이 상소하여 기복(起復)의 명을 취소하도록 빌고 또 전형(銓衡)의 직을 사임하니, 답하였다.

"이처럼 국세가 위급할 때에는 인물을 전형하는 일에 국가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어찌 단지 금혁(金革)을 친히 맡은 것뿐이겠는가. 한갓 사정(私情)만을 고집하고 군부(君父)의 위급함은 돌아보지 않으니, 어찌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는가. 경은 전번의 전지에 따라 급히 올라오라."

사신은 논한다. 기복이 비록 옛법이나 적이 문정(門庭)에 있고 몸소 금혁을 맡았으면 기복해야 하는 것이고, 국가의 안위가 달려 있는 중책을 맡고 있고 창생의 생사가 매여 있는 인망을 지녔다면 기복해야 하는 것이다. 상란(喪亂)이 있어 온 이래로 삼강(三綱)이 땅에 떨어져서 사람들이 상기(喪紀)의 중함을 모른다. 이에 친상(親喪)을 방치하고 떠나 돌보지 않는가 하면, 혹은 종군(從軍)에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기복하여 장수가 되기도 하여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등 못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낯이 두껍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있으며, 서민들까지 이를 본받아 온 세상이 모두 그러하여 금수의 풍습을 수습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때를 당해서는 삼강을 일으켜 세워 회복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요, 조정에서부터 먼저 무너뜨려 민생의 법칙을 하찮게 여기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탈정 기복(奪情起復)은 실로 부득이한 데서 나오는 것인데이겠는가. 비록 훈련 때문에 부득이하여 이러한 기복의 명이 있었다 하여도 그를 한산한 지위에 앉혀 그로 하여금 훈련에 전심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인물을 전형하는 일은 이미 금혁의 일이 아니요 화려한 총재직 또한 상제로서 처해 있을 바가 아닌데, 어찌 꼭 이 직위를 제수하여 후세에 권신으로서 정권을 잡고 위치를 굳히는 자들이 무궁한 폐단을 일으키는 길을 열어놓는가. 이덕형은 끝내 억지로 기복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다같이 잘못을 범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57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39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

    ○吏曹判書李德馨上疏, 乞寢起復之命, 且辭銓衡之任。 答曰: "當此國勢危急之時, 銓衡人物, 係干成敗, 豈但親任金革而已哉? 徒守私情, 不顧君父之急, 何至於是耶? 卿其克遵前旨, 急急上來。"

    【史臣曰: "起復, 雖古也, 必也賊在門庭, 身任金革, 則起之; 責重安危, 望係蒼生, 則起之。 喪亂以來, 三綱墜地, 人不知喪紀之爲重, 任置親喪, 去而不顧, 或托名於從軍, 或自起而爲將, 飮酒食肉, 無所不至, 有靦面目, 恬不羞恥, 馴致庶民效之, 擧世滔滔, 禽風獸習, 不可收拾。 當此之時, 正其有以擔起三綱, 以爲恢復之本, 固不可自朝廷先壞之, 使爲少民則也。 而況奪情起復, 實出於不得已之擧也? 雖或不得已於訓鍊, 而有此起復, 置之散地, 使之專意於訓鍊, 可也, 至於銓衡人物, 旣非金革之事, 而冡宰華(御)〔銜〕 , 又非欒棘之身所堪自處, 則亦何必以此授之, 而啓後世權臣執政固位者無窮之弊也? 德馨終未免於勉起胥失之矣。"】


    • 【태백산사고본】 34책 57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39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