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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31권, 五禮 吉禮儀式 親享先農儀 陳設

五禮 / 吉禮儀式 / 親享先農儀 / 陳設

◎ 진설(陳設)

제향 전 3일에 호위사(扈衛司)에서 대차(大次)를 재궁(齋宮)에다 남향하여 설치하고, 소차(小次)를 단(壇)의 동계[東陛] 동남쪽에 서향하여 설치하고, 문무시신(文武侍臣)의 막차(幕次)를 재궁 앞에 설치하는데, 문관은 왼편에, 무관은 오른편에 설치하되, 모두 서로 향[相向]하게 한다. 여러 향관(享官)의 막차를 재방(齋妨) 안에 설치하고, 배제(陪祭)할 종실(宗室)과 문무 군관(文武群官)의 막차를 또 그 앞에다 설치하는데, 땅의 형편에 따라서 적당히 한다.

2일전에 전사관(典祀官)이 그 소속을 거느리고 단의 내외를 소제하고, 찬만(饌幔)을 내유(內壝)의 동문(東門) 밖에 설치하되, 땅의 형편에 따라서 적당히 한다. 아악령(雅樂令)이 그 소속을 거느리고 등가악(登歌樂)을 단 위에다 남쪽으로 가까이 설치하고, 헌가(軒架)를 단 아래에 설치하는데, 모두 북향하게 한다.

1일 전에 전사관이 그 소속을 거느리고 신농씨(神農氏)의 신좌(神座)를 단 위의 북방(北方)에다 남향하여 설치하고, 후직씨(后稷氏)의 신좌를 단 위의 동방(東方)에다 서향하여 설치하는데, 자리[席]는 모두 왕골자리로 한다.

장생령(掌牲令)이 희생을 끌고 향소(享所)로 나아가다.

집례(執禮)가 전하의 판위(版位)를 단(壇) 아래 동남쪽에 서향하여 설치하고, 음복위(飮福位)를 단(壇) 위 남계[南陛]의 서쪽에다 북향하여 설치한다. 찬자(贊者)가 아헌관·종헌관·진폐작주관(進幣爵酒官)·천조관(薦俎官)·전폐작주관(奠幣爵酒官)의 자리를 전하의 판위(版位) 뒤 길[道] 남쪽에다 서향하여 설치하고, 집사자는 그 뒤에 자리하게 하는데, 매 품등(品等)마다 자리를 달리 하고 모두 겹줄로써 서향하게 하되, 북쪽을 위로 한다. 감찰(監察)의 자리 둘을 단(壇) 아래에다 남쪽으로 가까이 설치하되, 동서(東西)로 상향(相向)하게 하고, 서리(書吏)가 각기 그 뒤에 배립(陪立)하게 한다. 집례의 자리가 둘인데, 하나는 단 위에, 하나는 단 아래에 있게 하되, 모두 동쪽으로 가까이 서향하게 한다. 알자·찬자·찬인은 단 아래 집례의 뒤에 있게 하되, 조금 남쪽으로 하여 서향하고, 북쪽을 위로 한다. 협률랑(協律郞)은 단 위에 서쪽으로 가까이 동향하여 자리하고, 아악령(雅樂令)은 헌현(軒懸)의 북쪽에 북향하여 자리한다. 배제관(陪祭官)의 자리를 설치하는데, 문관 9품 이상은 동문(同門)안의 길 남쪽에 있게 하되, 매 품등마다 자리를 달리 하고 모두 겹줄로써 서향하여 북쪽을 위로 하고, 무관 9품 이상은 서문(西門) 안에 문관과 마주 대하게 하되, 매 품등마다 자리를 달리 하고 모두 겹줄로써 동향하여 북쪽을 위로 한다. 문외위(門外位)를 설치하는데, 향관과 여러 집사는 동문(東門) 밖 길 남쪽에 품등마다 자리를 달리하고 모두 겹줄로써 북향하게 하되, 서쪽을 위로 한다. 예감(瘞坎)을 단 북쪽 임지(壬地)에 파는데, 넓이와 깊이는 물건을 넣기에 넉넉하게 하고, 남쪽으로 섬돌[陛]을 낸다. 망예위(望瘞位)를 예감의 남쪽에 설치하는데, 아헌관은 남쪽에 있어 북향하고, 집례(執禮)·대축(大祝)·찬자(贊者)는 동쪽에 있게 하되, 모두 겹줄로써 서향하고 북쪽을 위로 한다. 전농시(典農寺)에서 전하(殿下)의 경적위(耕籍位)를 유(壝)의 남문(南門) 밖에 설치하는데, 동남쪽 10보(步)되는 곳에 남향하여 설치하되, 땅의 형편에 따라 적당하게 한다. 【무릇 경적례(耕籍禮)는 전농시에서 주장(主掌)한다. 】 호위사(扈衛司)에서 악좌(幄座)를 관경대(觀耕臺) 위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소차(小次)를 서계(西階) 아래에 조금 북쪽으로 남향하여 설치한다. 전농시에서 전하(殿下)의 판위(版位)를 경적소(耕籍所)에 남향하여 설치하는데, 시경위(侍耕位)는 동·서계(東西階) 아래에 있게 하되 북쪽을 위로 하고, 종경(從耕)할 종실(宗室)과 재신(宰臣)의 자리는 동남편에 있고, 여러 판서(判書)와 대간(臺諫)의 자리는 그 남쪽에 있게 하되, 모두 서향하고 북쪽을 위로 한다. 【사간(司諫)은 조금 물러 있게 한다. 】 서인(庶人)의 자리는 그 남쪽에 조금 동쪽으로 10보(步) 밖에 있고, 기민(耆民)의 배경위(陪耕位)는 또 그 남쪽에 있게 하되, 모두 서향한다. 친경(親耕)할 쟁기의 자리[耒席]를 종실(宗室)의 북쪽에 조금 서쪽으로 남향하여 설치하고, 사복시(司僕寺)에서 친경(親耕)할 소[牛]를 친경위(親耕位)의 서쪽에 조금 북쪽으로 설치한다. 아악서(雅樂署)에서 등가악(登歌樂)을 관경대(觀耕臺) 위에 설치하고, 헌가(軒架)를 서인(庶人)의 경위(耕位) 서남쪽에 설치하는데, 모두 북향하게 한다. 전농시에서 경적사(耕籍使)의 자리를 친경위(親耕位)의 동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판전농(判典農)은 경적사의 동남쪽에 있고, 적전령(籍田令)은 판전농의 남쪽에 조금 뒤로 물러 있는데, 모두 서향하고 북쪽을 위로 한다. 청상(靑箱)을 받든 관원은 그 뒤에 자리하고, 전농시 윤(典農寺尹)은 서인의 자리 앞에 자리하고, 전사 주부(典祀主簿)는 전농시 윤의 남쪽에 조금 뒤로 물러 자리하는데, 모두 서향하고 북쪽을 위로 한다. 판사복(判司僕)은 친경(親耕)할 소의 동쪽에 조금 앞으로 남향하여 자리하고, 기내(畿內)의 읍령(邑令)은 서인의 자리 동쪽에 서향하여 자리하고, 쟁기[耒耜]를 잡는 자는 종경관(從耕官) 뒤, 분삽(畚鍤)229) 을 잡은 자의 앞에 서향하여 자리한다. 또 종경할 쟁기와 소를 각기 그 자리의 앞에다 설치한다.

미시(未時) 뒤 2각에 전사관이 그 소속을 거느리고 단(壇)의 내외(內外)를 소제하고, 집례(執禮)가 먼저 단 아래로 들어오고, 아헌관·종헌관 이하가 모두 모여서 의식을 연습한다. 알자가 아헌관을 인도하고, 찬인이 감찰을 인도하여 모두 상복(常服)으로 주방(廚房)에 나아가서 척탁(滌濯)을 보고, 찬구(饌具)를 살피고, 희생의 충돈(充腯)을 보고 모두 재소(齋所)로 돌아간다. 포시(晡時)230) 뒤에 전사관이 재인(宰人)을 거느리고 난도(鑾刀)로써 희생을 베고, 축사(祝史)가 반(槃)을 가지고 털과 피를 취(取)하여 찬소(饌所)에 두고, 드디어 희생을 삶는다. 【가죽째 삶아 익히고, 그 나머지의 털과 피는 깨끗한 그릇에 담아 두었다가, 제사가 끝난 뒤에 묻는다. 】

제향일(祭享日) 행사하기 전에 전사관이 그 소속을 거느리고 들어와서 축판(祝版) 각 하나씩을 신위(神位)의 오른편에 올려놓고, 【각기 점(坫)이 있다. 】 폐비(幣篚) 각 하나씩을 준소(尊所)에 진설하고, 향로·향합과 초를 신위 앞에 진설한다. 다음에 제기(祭器)와 실찬구(實饌具)를 설치하는데, 매위(每位)에 각기 변이 10개로서, 왼편에 있게 해서 세 줄로 하되, 오른편을 위[上]로 하고, 【첫째 줄에는 형염(形鹽)이 앞에 있고, 어수(魚鱐)·건조(乾棗)·율황(栗黃)이 다음이요, 둘째 줄에는 진자(榛子)가 앞에 있고, 능인(菱仁)·검인(芡仁)이 다음이요, 세째 줄에는 녹포(鹿脯)가 앞에 있고, 백병(白餠)·흑병(黑餠)이 다음이다. 】 두(豆) 10개가 오른편에 있게 해서 세 줄 하되, 왼편을 위로 한다. 【첫째 줄에는 구저(韮菹)가 앞에 있고, 탐해(醓醢)·청저(菁菹)·녹해(鹿醢)가 다음이요, 둘째 줄에는 근저(芹菹)가 앞에 있고, 토해(兎醢)·순저(筍菹)가 다음이요, 세째 줄에는 어해(魚醢)가 앞에 있고, 비석(脾析)·돈박(豚拍)이 다음이다. 】 조(俎)가 3개로서, 둘은 변 앞에 있고, 하나는 두 앞에 있다. 【변 앞의 조(俎) 하나에는 우성(牛腥)을 담고, 하나에는 양성 칠체(羊腥七體)를 담는다. 칠체(七體)는 양비(兩髀)·양견(兩肩)·양협(兩脅)과 등심[脊]인데, 양비는 양단(兩端)에 있고, 견(肩)과 협(脅)은 다음이요, 등심[脊]은 중앙에 있다. 두(豆) 앞의 조(俎)에는 시성 칠체(豕腥七體)를 담는데, 그 담는 것은 양성 칠체와 같다. 송나라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무릇 앞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 남쪽을 이름이다." 하였다. 】 두 오른편에 조(俎)가 3개요, 【하나는 소[牛]의 익힌 장(腸)·위(胃)·폐(肺)를 담고, 하나는 양(羊)의 익힌 장·위·폐를 담고, 하나는 돼지[豕]의 익힌 살코기[膚]를 담는데, 돼지가 앞에 있고, 양·소가 다음이다. 무릇 조(俎)에는 다 생갑(牲匣)이 있다. 】 보(簠)·궤(簋)가 각각 2개로서, 변(籩)·두(豆) 사이에 있는데, 보가 왼편에 있고, 궤가 오른편에 있다. 【보에는 도(稻)·양(粱)을 담는데, 양이 도 앞에 있고, 궤에는 서(黍)·직(稷)을 담는데, 직이 서 앞에 있다. 】 등(㽅)·형(鉶)이 각각 3개로서, 보·궤 뒤에 있는데, 형이 앞에 있고, 등이 다음이다. 【등에는 대갱(大羹)을 담고, 형에는 화갱(和羹)을 담는데, 모활(毛滑)을 더한다. 】

작이 3개로서 보·궤 앞에 있다. 【각기 점(坫)이 있다. 】 희준(犧尊) 2개, 【하나는 명수(明水)를 담고, 하나는 예제(醴齊)를 담는다. 】 상준(象尊) 2개, 【하나는 명수(明水)를 담고, 하나는 앙제(盎齊)를 담는다. 】 산뢰(山罍) 2개를 【하나는 현주(玄酒)를 담고, 하나는 청주(淸酒)를 담는다. 】 설치하는데, 세줄로 하고, 【첫째 줄에는 희준이요, 둘째 줄에는 상준이요, 세째 줄에는 산뢰이다. 】 모두 작(勺)과 멱(羃)을 얹어 놓되, 단(壇) 위의 동남쪽 모퉁이에 있게 하고, 북향하여 서쪽을 위로 한다. 【무릇 준(尊)·뇌(罍)는 명수(明水)와 현주(玄酒)를 담은 것이 위[上]가 된다. 배위(配位)의 주준(酒尊)은 정위(正位)의 준소(尊所) 동쪽에 있다. 무릇 신(神)에게 제향드리는 물건으로서 당시에 없는 것은 시물(時物)로써 대신한다. 】 복주작(福酒爵)과 【점이 있다. 】 조육조(胙肉俎) 각 하나를 정위(正位)의 준소에 설치하고, 또 정위의 조 하나를 찬만(饌幔) 안에 설치하고, 세(洗)를 남계[南陛]의 동남쪽에 북향하여 설치하고, 【관세(盥洗)는 동쪽에 있고, 작세(爵洗)는 서쪽에 있는데, 반이(槃匜)가 있다. 】 뇌(罍)는 세(洗) 동쪽에 있게 하여 작(勺)을 얹어 놓고, 비는 세 서남쪽에 늘어놓되, 수건을 담아 놓는다. 【만약 작세의 비(篚)라면 또 작을 담아 놓는다. 점(坫)이 있다. 】 아헌(亞獻)·종헌(終獻)의 세를 또 동남쪽에 있게 하고, 【관세는 동쪽에 있고, 작세는 서쪽에 있다. 】 뇌는 세 동쪽에 있게 하여 작을 얹어 놓고, 비는 세 서남쪽에 늘어놓되, 수건을 담아 놓는다. 【만약 작세(爵洗)의 비라면 작을 담아 놓는다. 점이 있다. 】 여러 집사의 관세(盥洗)를 아·종헌의 세 동남쪽에 북향하여 설치하고, 집준(執尊)·집뢰(執罍)·집비(執篚)·집멱자(執羃者)는 준·뇌·비·멱의 뒤에 자리하게 한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13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5책 262면

◎ 陳設

前享三日, 扈衛司設大次於齋宮, 南向; 小次於壇東階東南, 西向; 設文武侍臣次於齋宮之前, 文左武右, 俱相向; 設諸享官次於齋坊之內; 陪祭宗室及文武群官次又於其前, 隨地之宜。 前二日, 典祀官帥其屬, 掃除壇之內外, 設饌幔於內壝東門外, 隨地之宜。 雅樂令帥其屬, 設登歌之樂於壇上近南; 設軒架於壇下, 俱北向。 前一日, 典祀官帥其屬, 設帝神農氏神座於壇上北方, 南向; 后稷氏神座於壇上東方, 西向, 席皆以莞。 掌牲令牽牲詣享所。 執禮設殿下版位於壇下東南, 西向; 飮福位於壇上南陛之西, 北向。 贊者設亞獻官、終獻官、進幣爵酒官、薦俎官、奠幣爵酒官位於殿下版位之後道南, 西向; 執事者位於其後, 每等異位, 俱重行, 西向北上; 設監察位二於壇下近南, 東西相向, 書吏各陪其後; 執禮位二, 一於壇上, 一於壇下, 俱近東西向; 謁者、贊者、贊引在壇下執禮之後稍南, 西向北上; 協律郞位於壇上近西, 東向; 雅樂令位於軒懸之北, 北向; 設陪祭官位文官九品以上於東門之內道南, 每等異位, 俱重行, 西向北上; 武官九品以上於西門之內當文官, 每等異位, 俱重行, 東向北上; 設門外位享官及諸執事於東門外道南, 每等異位, 俱重行, 北向西上; 開瘞坎於壇之北壬地, 方深取足容物, 南出陛; 設望瘞位於瘞坎之南, 亞獻官在南北向, 執禮、大祝、贊者在東, 俱重行西向北上。 典農寺設殿下耕籍位於壝南門外東南十步所南向, 隨地之宜。 【凡耕籍禮, 典農寺主之。】 扈衛司設幄座於觀耕臺上, 南向; 小次於西階下稍北, 南向。 典農寺設殿下版位於耕籍所, 南向; 侍耕位在於東西階下, 北上; 從耕宗室宰臣位在東南, 諸判書臺諫位在其南, 皆西向北上; 【司諫稍却。】 庶人位在其南少東十步外, 耆民陪耕位又在其南, 皆西向; 設耕耒席於宗室之北稍西, 南向。 司僕寺設親耕牛於親耕位之西稍北。 雅樂署設登歌之樂於觀耕臺上, 軒架於庶人耕位西南, 俱北向。 典農寺設耕籍使位於親耕位之東南向, 判典農在耕籍使東南, 籍田令在判典農之南少退, 俱西向北上; 奉靑箱官位於其後, 典農寺尹位於庶人位之前, 典祀注簿位於典農寺尹之南少退, 皆西向北上; 判司僕位於親耕牛之東稍前南向; 畿內邑令位於庶人位之東, 西向; 執耒耟者位於從耕官之後執畚鍤者之前西向, 又設從耕耒耟及牛各於其位之前。 未後二刻, 典祀官帥其屬, 掃除壇之內外。 執禮先入壇下, 亞終獻以下竝集肄儀。 謁者引亞獻官, 贊引引監察, 俱以常服詣廚, 視滌濯省饌具及視牲充腯, 俱還齋所。 晡後, 典祀官帥宰人, 以鑾刀割牲, 祝史以槃取毛血, 置饌所, 遂烹牲。 【連皮煮熟, 其餘毛血, 以淨器盛貯, 祭畢埋之。】 享日未行事前, 典祀官帥其屬入, 奠祝版各一於神位之右, 【各有坫。】 陳幣篚各一於尊所, 設香爐香合幷燭於神位前。 次設祭器實饌具, 每位各籩十在左, 爲三行右上, 【第一行形鹽在前, 魚鱐乾棗、栗黃次之。 第二行, 榛子在前, 菱仁、芡仁次之。 第三行、鹿脯在前, 白餠、黑餠次之。】 豆十在右, 爲三行左上。【第一行, 韭菹在前, 醓醢、菁菹、鹿醢次之。 第二行, 芹菹在前, 兎醢、荀菹次之。 第三行、魚醢在前, (髀析) 〔脾析〕、豚拍次之。】 俎三, 二在籩前, 一在豆前。 【籩前俎一實牛腥, 一實羊腥。 七體兩髀兩肩兩脅幷脊而髀在兩端, 肩脅次之。 脊在中, 豆前俎實豚腥七體, 其載如羊。 宋 《釋奠儀》云: "凡言在前者, 皆謂南也。"】 豆右之俎三, 【一實牛熟腸胃肺, 一實羊熟腸胃肺, 一實豕熟膚。 豕在前, 羊牛次之。 凡俎, 皆有牲匣。】 簠簋各二在籩豆間, 簠在左簋在右。 【簠實以稻粱, 粱在稻前。 簋實以黍稷, 稷在黍前。】 㽅鉶各三在簠簋後, 鉶居前, 㽅次之。 【㽅實以大羹, 鉶實以和羹, 加毛滑。】 爵三在簠簋前。 【各有坫。】 設犧尊二 【一實明水, 一實醴齋。】 象尊二 【一實明水, 一實盎齋。】 山罍二 【一實玄酒, 一實淸酒。】 爲三行。 【第一行犧尊, 二行象尊, 第三行山。】 皆加勺羃, 在壇上東南隅, 北向西上。 【凡尊實明水, 玄酒爲上。 配位酒尊, 卽於正位尊所之東。 凡享神之物, 當時所無者, 以時物代之。】 設福酒爵 【有坫。】 胙肉俎各一於正位尊所, 又設正位俎一於饌幔內; 設洗於南陛東南北向, 【盥洗在東, 爵洗在西, 有槃匜。】 罍在洗東加勺, 篚在洗西南肆, 實以巾; 【若爵洗之則又實以爵, 有坫。】 亞終獻洗又於東南, 北向; 【盥洗在東, 爵洗在西。】 罍在洗東加勺, 篚在洗西南肆, 實以巾; 【若爵洗之則又實以爵, 有坫。】 設諸執事盥洗於亞終獻洗東南, 北向; 執尊罍篚羃者位於尊罍篚羃之後。


  • 【태백산사고본】 43책 13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5책 2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