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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18권, 태종 9년 9월 21일 庚寅 1번째기사 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유구국 중산왕 사소가 사신편에 예물과 포로를 송환하는 내용의 자문을 보내다

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 사소(思紹)가 사신(使臣)을 보내어 내빙(來聘)하고, 자문(咨文)하였다.

"1. 수사(酬謝)에 대한 일. 생각건대, 홍무 연간(洪武年間)에 여러 번 귀국(貴國)에서 사신을 보내어 본국(本國)에 이르렀고, 진귀(珍貴)한 물건을 하사(下賜)하여 맹약(盟約)과 소식(消息)을 통하고 휴척(休戚)을 같이 하였었는데, 불행하게도 뒤에 선조왕(先祖王) 찰도(察度)와 선부(先父) 무령(武寧)이 서로 잇달아 훙서(薨逝)하여, 각 채(寨)가 불화(不和)하고 여러 해 동안 싸움이 그치지 않아서 일향(一向) 소활(疏闊)하게 되어 신사(伸謝)를 하지 못하였으니, 깊이 저버린 것을 황송하고 부끄럽게 여깁니다. 지금 대명(大明) 황제(皇帝)의 먼 곳 사람을 회유(懷柔)하는 은혜를 입어, 영광스럽게 왕작(王爵)을 봉(封)해 이 지방을 관장(管掌)하게 되었으니, 흠준(欽遵)하여 조공(朝貢)하는 외에, 인국(隣國)의 의교(義交)에 대한 일절(一節)을 생각건대 또한 마땅히 사신을 보내어 서로 소식을 통하는 것이, 이것이 곧 사해(四海)가 한 집이 되고 거의 윤당(允當)할 듯하기에, 이 때문에 정사(正使) 아내가결제(阿乃佳結制) 등을 보내어 본국(本國)의 해선(海船)을 타고 예물(禮物)을 장속(裝束)하여 싣고 귀국에 가서 국왕 전하께 나아가 봉헌(奉獻)하게 하여, 약간의 수사(酬謝)의 정성을 펴오니, 받아들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는 선인편(船人便)에 딸려 보내는 물건을 용납하여 매매(賣買)하게 해 주시고, 일찍 출발시켜 회국(回國)하게 하시오면 편익(便益)하겠습니다. 지금 봉헌 예물(奉獻禮物)의 수목(數目)을 기록하여 보내고 자문(咨文)하여 알리는 바입니다. 예물(禮物)은 호초(胡椒) 1백 근(觔), 상아(象牙) 2매(枚), 백반(白磻) 5백 근, 소목(蘇木) 1천 근입니다.

1. 체송(遞送)에 대한 일. 부녀(婦女) 오가(吳加)의 고칭(告稱)에 의거하면, ‘원래 나주(羅州) 등처에 살고 있는 인민(人民)인데, 왕년(往年)에 왜구(倭寇)에게 노략(擄掠)을 당하여 본국에 유리(流離)해 왔다.’고 하면서, 고향에 돌아가 백성이 되어 살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고한 것을 참조하건대, 먼 곳의 사람들이므로 사리가 마땅히 돌아가야 하겠기에, 지금 오가(吳加) 등을 출발시켜 배에 태워 보냅니다. 지금 발송해 보내는 부녀(婦女) 3명은, 오가(吳加)·삼덕(三德)과 데리고 있는 소녀(少女) 위가(位加)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09면
  • 【분류】
    호구-이동(移動) / 무역(貿易) / 외교-유구(琉球)

    ○庚寅/琉球國 中山王 思紹, 遣使來聘。 咨曰:

    一, 酬謝事。 照得, 洪武年間, 累蒙貴國遣使到國, 及惠珍貺, 得通盟耗, 與同休戚。 不幸後因先祖王察度及先父武寧相繼薨逝, 以致各寨不和, 連年征戰不息, 一向疎廣, 未得伸謝, 深負惶愧。 今深荷大明皇帝柔懷遠人, 寵封王爵, 掌管地方。 除欽遵朝貢外, 竊念隣國義交一節, 亦合遣使往來, 相通音耗, 是爲四海一家, 庶爲允當。 爲此, 專遣正使阿乃佳結制等, 坐駕本國海船, 裝載禮物, 前詣國王殿下奉獻, 少伸酬謝之誠, 幸希叱納。 所據今去船人, 附搭物貨, 仍乞容令買賣, 早爲打發回國, 便益。 今將奉獻禮物數目, 開坐前去, 合咨知會。 禮物: 胡椒一百觔, 象牙二枚, 白磻五百觔, 蘇木一千觔。 一, 遞送事。 據婦女吳加告稱, 原係羅州等處人民。 於往年前間, 因被倭寇擄掠, 流離本國, 告乞回鄕, 爲民住坐。 參照所告, 係干遠人, 理合就行。 得此, 今發婦女吳加等就船前去。 今發去婦女三名, 吳加三德就帶小女位加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09면
    • 【분류】
      호구-이동(移動) / 무역(貿易) / 외교-유구(琉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