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15권, 태조 7년 11월 18일 庚寅 1번째기사
1398년 명 홍무(洪武) 31년
덕비에게 책문과 인장을 주다. 그 책문
임금이 면류관과 예복(禮服)차림으로써 근정전에 앉아 덕비(德妃)에게 책보(冊寶)를 주었는데, 좌정승(左政丞) 조준(趙浚)을 봉책사(奉冊使)로 삼고,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이거이(李居易)를 부사(副使)로 삼았다. 그 책문(冊文)은 이러하였다.
"《역경(易經)》에는 함괘(咸卦)와 항괘(恒卦)127) 를 나타내어 인륜(人倫)을 바로잡았으며, 《예기(禮記)》에는 명분(名分)을 엄하게 하여 배필을 소중히 여기었다. 항상 지켜야 할 전례(典禮)를 상고하여 이에 아름다운 칭호를 세우게 한다. 오직 김씨(金氏)는 단일 성장(端一誠莊)하고 유한 정정(幽閑貞靜)하였다. 일찍이 규문(閨門)의 도리를 세워 그 가인(家人)에게 화합(和合)하였으며, 장성해서는 총부(冢婦)128) 의 예의(禮儀)를 닦아 우리 종사(宗事)를 받들었다. 서자(庶子)129) 의 난리를 선동할 때를 당하여, 내조(內助)를 다해서 위태함을 구제하였다. 이미 곤의(壼儀)130) 에도 싫어함이 없으니 풍화(風化)에 도움이 있을 것이다. 이에 명하여 왕의 덕비(德妃)로 삼고 보책(寶冊)을 주는 것이다. 아아! 규예(潙汭)에 시집가니131) 순제(舜帝)의 일어난 근본이 되었고, 읍강(邑姜)132) 을 신하로 삼으니 무왕(武王)의 정치를 보좌하였다. 과거의 행위(行爲)를 힘써 따라서 후손[後昆]에게 유족(裕足)한 도리를 전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5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40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