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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129번째기사

세자가 명에서 돌아오다. 정몽주가 태조를 견제하기 위해 태조의 측근을 탄핵하다

3월, 세자(世子) 석(奭)중국에 조현(朝見)하고 돌아오니, 태조황주(黃州)에 나가서 맞이하고, 드디어 해주(海州)에서 사냥하였다. 장차 길을 떠나려 하매 무당 방올(方兀)강비(康妃)에게 말하기를,

"공(公)의 이번 행차는, 비유하건대, 사람이 백척(百尺)의 높은 다락[樓]에 오르다가 실족(失足)하여 떨어져서 거의 땅에 이르매, 만인(萬人)이 모여서 받드는 것과 같습니다."

하니, 강비가 매우 근심하였다. 태조가 활을 쏘아 사냥하면서 새를 쫓다가, 말이 진창에 빠져 넘어졌으므로 드디어 떨어져 몸을 다쳐, 교자(轎子)를 타고 돌아왔다. 공양왕이 중사(中使)를 연달아 보내어 문병(問病)하였다. 처음에 정몽주(鄭夢周)태조의 위엄과 덕망이 날로 성하여 조정과 민간이 진심으로 붙좇음을 꺼려하였는데, 태조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기뻐하는 기색이 있으면서 기회를 타서 태조를 제거하고자 하여, 대간(臺諫)을 사주하여 말하기를,

"먼저 그의 보좌역(補佐役)인 조준(趙浚) 등을 제거한 후에 그를 도모할 것이다."

하였다. 이에 태조의 친근하고 신임이 있는 삼사 좌사(三司左使) 조준(趙浚)·전 정당 문학(政堂文學) 정도전(鄭道傳)·전 밀직 부사(密直副使) 남은(南誾)·전 판서(判書) 윤소종(尹紹宗)·전 판사(判事) 남재(南在)·청주 목사(淸州牧使) 조박(趙璞)을 탄핵하니, 공양왕이 그 글을 도당(都堂)139) 에 내렸다. 몽주(夢周)가 중간에서 이를 선동(煽動)하여 조준 등 6인을 모두 먼 곳으로 귀양보내고, 그 무리 김귀련(金龜聯)·이반(李蟠) 등을 조준·정도전·남은의 귀양간 곳으로 나누어 보내어 그들을 국문(鞫問)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김귀련 등이 길을 떠나려 할 적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모친상[內憂]를 당하여 속촌(粟村)의 무덤 옆에서 여막(廬幕)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李濟)가 차와 과일을 준비하여 가니, 전하(殿下)가 이제에게 말하기를,

"몽주는 반드시 우리 집에 이롭지 못하니, 마땅히 이를 먼저 제거해야 되겠다."

하매, 이제는 말하기를,

"예! 예! 지당한 말씀입니다."

하였다. 태조벽란도(碧瀾渡)에 이르러 유숙하니, 전하가 달려와서 아뢰기를,

"몽주가 반드시 우리 집을 모함(謀陷)할 것입니다."

하였으나, 태조는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또 아뢰기를,

"마땅히 곧 서울로 들어가셔야 될 것입니다. 유숙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으나, 태조께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굳이 청한 후에야 태조가 병을 참고 밤에 행차하니, 전하가 태조를 부축하여 저택(邸宅)에 이르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7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변란(變亂) / 역사(歷史)

  • [註 139]
    도당(都堂) :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三月, 世子朝見而還, 太祖出迎于黃州, 遂畋于海州。 將行, 有巫方兀言於康妃曰: "公之此行, 譬如人升百尺之樓。 失足而墜, 幾至于地, 萬人聚而奉之。" 深憂之。 及太祖射獵逐禽, 馬陷泥淖而蹶, 遂墜失豫, 肩輿而還。 恭讓連遣中使問候。 初鄭夢周太祖威德日盛, 中外歸心, 及聞太祖墜馬, 有喜色, 欲乘機去之, 嗾臺諫曰: "先剪羽翼趙浚等, 然後可圖也。" 乃劾太祖所親信三司左使趙浚、前政堂文學鄭道傳、前密直副使南誾、前判書尹紹宗、前判事南在淸州牧使趙璞, 恭讓下其書都堂。 夢周從中扇之, 將等六人, 竝流遠地; 分遣其黨金龜聯李蟠等, 就道傳貶所鞫問, 欲殺之。 龜聯等臨發, 我殿下方居(外)〔內〕憂, 廬于粟村墓側。 李濟具茶果以往, 殿下語曰: "夢周必不利於我家, 當先除之。" 唯唯。 及太祖碧瀾渡次宿, 殿下馳至告曰: "夢周必陷我家。" 太祖不答。 又告以宜卽入京, 不可留宿。 太祖不許。 强請, 然後太祖力疾夜行, 殿下扶侍至邸。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7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변란(變亂)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