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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118번째기사

사직을 청하는 태조의 전문과 윤허치 않는 비답이 오가다

6월, 대간(大諫)이 상언(上言)하기를,

"우현보(禹玄寶)는 죄가 이색(李穡)과 같은데, 지금 이색이 이미 폄직(貶職)되었으니 마땅히 모두 먼 곳으로 귀양보내야 될 것입니다."

하였다. 소(疏)가 무릇 세 번 올라갔으나 모두 전중(殿中)에 머물러 두었다. 우리 전하(殿下)130) 가 이때 우대언(右代言)이 되었는데, 공양왕이 명하여 태조의 저택(邸宅)에 보내어 대간(臺諫)을 금지시키도록 청하니, 태조가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일찍이 내가 대간(臺諫)을 사주했다고 생각하는가?"

하였다. 드디어 전문(箋文)을 올려 사직(辭職)하기를,

"모든 정치가 잘되는 것은 명철한 군주가 재상을 선임(選任)하는 데 있고, 온갖 책임[百責]의 모이는 바는 마땅히 수효만 채우는 신하가 현인(賢人)을 추천해야 되니, 진실로 의(義)를 잊고 영화만 좋아한다면, 이것은 사정(私情)을 위하여 덕(德)에 누(累)가 되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신은 기국(器局)은 작은데 책임은 크니, 일은 정리되는데도 비방은 일어납니다. 비록 관중(管仲)131) 처럼 신임을 얻어 정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더라도, 증서(曾西)132) 취(取)하지 않는 바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얕은 정성을 다하여 다시 천총(天聰)을 번거롭게 합니다. 3월에 신에게 문하 시중(門下侍中)을 두 번째 제수하시니, 은총(恩寵)이 후(厚)하시어 청의(淸議)에 부끄러운 점이 있습니다. 잘못 윤허된 하교를 받들때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실로 깊었사오며, 더욱이 관직을 비워둔 비난[曠職之譏]을 끼치게 되매 두려움과 근심이 더욱 무거웠습니다. 하물며, 본디부터 병이 있으며, 또 마땅히 영만(盈滿)을 경계해야 하니, 만물의 생성(生成)을 관찰해보면, 사시(四時)가 차례를 번갈아 하는데서 유래(由來)된 것을 알았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을 넓히시고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베푸시어, 신의 지극한 정을 불쌍히 여기시와, 신의 사직(辭職)을 허락하신다면, 신은 삼가 한적한 곳에서 병을 휴양하여 중흥(中興)의 공(功)을 길이 보전하고, 분수를 지키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상수(上壽)의 축원을 항상 바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좌대언(左代言) 이첨(李簷)을 명하여 가서 유지(諭旨)하게 하고, 이내 비답(批答)을 내리기를,

"한 나라의 편안함과 위태함은 매인 바가 중대하니, 대신(大臣)의 거취(去就)는 경솔히 할 수가 없소. 어찌 영만(盈滿)을 경계하는 데만 절개를 힘써서, 몸을 보전하여 물러가기를 원하고자 하는가? 경(卿)은 산천(山川)의 정기를 타고난 불세출(不世出)의 인물이요, 일월(日月)같은 고충(孤忠)으로서, 대의(大義)에 의거하여 군사를 돌이켜서 국가가 다시 편안해지고, 명분을 바로잡아 계책을 정했으니 신(神)과 사람이 곧 기뻐하였소. 이 새로 건국(建國)한 시기에 이르러 경에게 임금을 보좌하는 재간에 폐를 끼쳐, 바야흐로 정사를 함께 하여 태평을 이루려고 하는데, 어찌 사직(辭職)을 핑계하면서 면(免)하기를 도모하는가? 비방이 일어나면 도리로써 풀게 할 것이며, 병이 심하면 마땅히 의술(醫術)로써 다스리게 할 것이니, 직위를 내놓아 편안하게 거처할 필요가 없이 능히 정신을 즐겁게 하여 잘 보전할 것이오. 이미 세 번이나 사양했으니 다만 조금 안정하기를 바라오."

하였다. 태조는 아뢰기를,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신(臣)으로 하여금 함께 모의하게 하고, 변경(邊境)에 급한 일이 있으면 신(臣)으로 하여금 외모(外侮)를 막게 하여, 신(臣)의 할 수 있는 일로써 책임지운다면, 신이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지금 신이, 임무는 크고 직책은 무거워서 이미 능히 감내하지 못하였는데도, 게다가 병이 번갈아 침노하오니, 원컨대, 의약(醫藥)을 써서 스스로 보양(保養)하겠습니다."

하였으나, 공양왕이 윤허하지 아니하고 강제로 일어나게 하니, 태조는 사양하고 나가지 아니하고는, 또 전문(箋文)을 올리기를,

"신(臣)이 무진년에 대의(大義)에 의거하여 군사를 돌이켜 위성(僞姓)을 폐위하고 진성(眞姓)을 세웠으나,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의 시기함을 입었습니다. 또 창(昌)을 세우고 우(禑)를 맞이할 적에 윤이(尹彝)이초(李初)가 함께 모의 한 것이 증험이 이미 명백한 까닭으로, 대간(臺諫)이 자기들끼리 소(疏)를 올려 죄주기를 청하였을 뿐인데, 신이 어찌 감히 사주하였겠습니까? 지금 신에게 명하여 대간을 금지시키게 하니, 이것은 신이 대간을 사주시켰는가 의심하는 일입니다. 신은 재주가 없는 사람이므로 큰 임무를 감당하는 데 적합하지 못하오니, 마땅히 현량(賢良)을 뽑아 신을 대신하게 하소서."

하매, 공양왕이 전문(箋文)을 보고 우리 전하(殿下)133) 에게 이르기를,

"시중(侍中)의 전문(箋文) 가운데서 진술한 것은 모두가 나의 생각 밖에 나왔다. 내가 무능한 사람으로 외람되이 왕위에 있는 것은 오직 시중(侍中)의 추대(推戴)하는 힘만을 믿을 뿐이므로, 시중(侍中)을 존경하기를 아버지와 같이 하는데, 시중께서 어찌 나를 저버리겠는가? 창(昌)을 세우고 우(禑)를 맞이할 적에 윤이(尹彝)이초(李初)가 함께 모의한 사람들은, 이미 전년(前年)에 의논하여 정적(情迹)이 명백하지 않다고 하여서 특별히 이들을 사죄(赦罪)했으며, 시중도 또한 그렇게 여겼던 것인데, 지금 대간이 다시 사죄(赦罪) 전의 일을 들어서 죄주기를 청하는 까닭으로, 경(卿)으로 하여금 시중에게 고(告)하여, 시중이 만약 대간을 보게 되면 이 뜻으로 개유(開諭)하기를 청할 뿐이니, 경이 시중에게 어떻다고 말하였기에, 시중이 굳게 사퇴하고자 하겠는가. 만약 시중이 사직한다면, 내가 또한 어찌 감히 이 자리에 편안히 있겠는가."

하면서, 이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가리키면서 맹세하였는데, 말의 취지가 매우 간절하였다. 곧 우리 전하로 하여금 가서 관직에 나아오도록 개유하게 하였으나, 태조는 끝내 정사를 보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6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사(故事)

  • [註 130]
    전하(殿下) : 태종(太宗).
  • [註 131]
    관중(管仲) : 춘추 시대 제환공(齊桓公)의 현상(賢相).
  • [註 132]
    증서(曾西) :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증자(曾子)의 손자.
  • [註 133]
    전하(殿下) : 태종(太宗).

○六月, 臺諫上言: "禹玄寶罪同李穡。 今旣貶, 宜幷竄逐。" 疏凡三上, 皆留中。 我殿下時爲右代言, 恭讓命遣太祖邸, 請令禁止臺諫, 太祖嘆曰: "曾謂我指嗾臺諫乎?" 遂上箋辭職曰:

庶政惟和, 在明主之擇相; 百責所萃, 宜具臣之推賢。 苟忘義而好榮, 是徇私而累德。 伏念臣器小任大, 事修謗興。 雖非管仲之得專, 恐爲曾西之不取。 肆殫卑懇, 再瀆宸聰。 三月日, 再除臣門下侍中, 寵渥卽優, 淸議可愧。 每承違允之敎, 慙懼實深; 益貽曠職之譏, 畏憂彌重。 矧本有疾, 又當戒盈。 觀萬物之生成, 由四時之代序。 伏望廓包荒之度, 垂惻隱之心, 憐臣至情, 許臣乞骨, 則臣謹當投閑養疾, 永保中興之功; 守分安心, 恒貢上壽之祝。

王命左代言李簷往諭旨, 仍賜批答曰: "一國安危, 所係者重, 大臣去就, 未可以輕。 何勵節於戒盈, 欲全身而求退? 卿山川間氣, 日月孤忠。 仗義回軍, 則國家再安; 正名定策, 則神人載悅。 及玆新造之隙, 煩卿篤棐之材。 方將共政以致平, 豈可托辭而窺免? 謗興則可以理遣, 病革則當用醫治。 不必釋位以居安, 乃能怡神而善保。 旣煩三讓, 惟冀小安。" 太祖曰: "國有大事, 使之與謀, 邊境有急, 使之禦侮。 責臣以所能, 則臣何敢辭? 今臣任大責重, 旣不能堪, 加以疾病交攻, 願就醫藥, 以自保養。" 恭讓不允, 强起之。 太祖辭不就, 又上箋曰:

臣於戊辰, 仗義回軍, 廢僞立眞, 因被國人猜忌。 又立, 同謀, 證驗已明, 故臺諫自上章請罪耳。 臣何敢指嗾! 今命臣禁止臺諫, 是疑臣嗾之也。 臣顧不才, 不宜當大任, 宜選賢良代之。

恭讓覽箋, 謂我殿下曰: "侍中箋中所陳, 皆出予意表。 予以無能, 濫居大位, 惟侍中推戴之力是賴, 仰侍中如父, 侍中何負我乎? 立, 同謀之人, 已於前年, 議謂情迹未明, 特赦之, 侍中亦然之。 今臺諫更擧赦前事請罪, 故使卿往告侍中, 若見臺諫, 請諭此意耳。 卿言於侍中謂何, 侍中堅欲辭退? 若侍中辭職, 予亦豈敢安此位乎?" 因泣下, 指天爲誓, 辭(指)〔旨〕甚切。 卽令我殿下往諭就職, 太祖竟不視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6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