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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35번째기사

태조가 22살에 관직에 나가다. 격구하는 방법

고려 공민왕 5년(1356) 병신 【지정(至正) 16년.】 태조의 연세가 22세인데 비로소 벼슬하였다. 고려의 풍속에 매양 단오절(端午節)에는 무관(武官)의 나이 젊은 사람과 의관(衣冠)의 자제(子弟)들을 뽑아서 격구(擊毬)의 기예(技藝)를 익혔는데, 그 날이 이르면 구규(九逵)019) 에 용봉(龍鳳) 장전(帳殿)을 설치하고 길 복판에 구문(毬門)을 세우고, 왕이 장전(帳殿)에 나아가서 이를 구경한다. 연회를 베풀고 여악(女樂)을 벌려 놓으매, 경대부(卿大夫)들이 모두 따르고, 부녀들도 또한 길 왼쪽과 오른쪽에 장막을 매고 금단(錦段)으로 장식하여, 이를 화채담(畫彩毯)이라 이름하니, 구경하는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된다. 격구(擊毬)하는 사람이 의복 장식을 화려하게 하여 다투어 사치를 숭상하니, 말안장 한 개의 비용이 중인(中人) 10가(家)의 재산에 해당되었다. 두 대열(隊列)로 나누어 왼쪽과 오른쪽에 서고, 기생 한 사람이 공[毬]을 잡고 전전(殿前)에서 창(唱)하기를,

"온 장내의 퉁소와 북은 공을 따라 모아 들고, 사간(絲竿)과 홍망(紅網)에 구경꾼의 머리 쏠리누나" 하니,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모두 음악의 음절에 맞았다.

공을 길 복판에 던지면, 왼쪽과 오른쪽의 대열(隊列)에서 모두 말을 달려 나와 앞을 다투어, 맞힌 사람은 이를 얻게 되고, 나머지 사람은 모두 물러가서 서게 된다. 공을 치는 법은 먼저 구장(毬場)에 말을 달려 나와서 장(杖)의 비(匕) 안으로써 공을 일으키면, 이를 배지(排之)라 하고, 장(杖)의 비(匕) 등으로써 공을 움직이면, 이를 지피(持皮)라 하고, 세 번의 형세를 마치면, 그제야 말을 달려 쳐서 공을 운행(運行)하게 된다. 공을 운행하는 처음에는 세로 치[縱擊]지 않는데, 이를 비이(比耳)라 하니, 장(杖)을 잡고 가로 바로 서[橫直]서 말귀[馬耳]와 가지런함을 말함이다. 비이(比耳)한 후에 손을 들어 세로 치는데, 이를 수양(垂揚)이라 하니, 손은 높이 들고 장(杖)은 아래로 드리워져 휘청휘청함을 말함이다. 공이 문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적고, 문에 지나가는 사람은 10명에 2, 3명 정도이고, 하던 중간에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으며, 만약 문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같은 대열(隊列)의 사람들이 즉시 모두 말에서 내려 전전(殿前)에 나아가서 두 번 절하고 사례(謝禮)하게 된다. 태조도 또한 그 선발(選拔)에 참여하여 공을 운행할 때에, 말을 달림이 너무 빨라서 벌써 수양(垂揚)이 되었는지라, 공이 문득 돌에 부딪쳐 놀라 거꾸로 달아[逆走]나 말의 네 발 뒤로 나왔다. 태조는 즉시 위를 쳐다보고 누워 몸을 돌려서 말 꼬리에 부딪쳐 공을 치니, 공이 도로 말 앞 두 발 사이로 나오므로, 다시 쳐서 문밖으로 나가게 하니, 그때 사람이 이를 방미(防尾)라 하였다. 또 공을 운행해 칠 때는 또한 벌써 수양(垂揚)이 되어 공이 다리 기둥[橋柱]에 부딪쳐 말의 왼쪽에 나가므로, 태조는 오른쪽 등자를 벗고 몸을 뒤집어 쳐서 이를 맞히고, 다시 쳐서 문밖으로 나가게 하니, 그 때 사람이 이를 횡방(橫防)이라 하였다. 온 나라 사람들이 몹시 놀라면서 전고(前古)에 듣지 못한 일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王室) / 역사(歷史) / 풍속-풍속(風俗)

  • [註 019]
    구규(九逵) : 도시의 큰 길.

〔○〕高麗 恭愍王五年丙申, 【至正十六年。】 太祖年二十二, 始仕。 高麗俗每於端午, 選武官年少者及衣冠子弟, 習擊毬之藝。 至其日, 於九逵, 設龍鳳帳殿, 當路中立毬門, 王御帳殿觀之, 設宴會張女樂, 卿大夫皆從之, 婦女亦結幕於路之左右, 飾以錦段, 名畫彩毯, 觀者如堵。 擊毬者盛服飾, 競尙侈靡, 一鞍之費, 直中人十家之産。 分作二隊, 立於左右, 妓一人執毬, 當殿前唱曰: "滿庭簫皷簇飛毬, 絲竿紅網總擡頭", 進退皆中樂節。 擲毬道中, 左右隊皆趨馬而爭先, 中者得之, 餘皆退立。 擊毬之法, 先趨馬於場, 以杖之匕內, 挑毬曰排之, 以杖之匕背, 運毬曰持皮。 三回勢畢, 乃馳馬擊行毬。 行毬之初, 不縱擊, 謂之比耳, 言執杖橫直, 與馬耳齊也。 比耳之後, 擧手縱擊, 謂之垂揚, 言手高抗而杖下垂揚揚也。 出門者少, 過門者十之二三, 中道而廢者多。 若有出門者, 同隊之人, 卽皆下馬, 進殿前再拜謝。 太祖亦與其選。 行毬之時, 馳馬太疾, 已垂揚矣。 毬忽觸石而驚, 逆走出馬四足之後, 太祖便仰臥側身, 衝馬尾而擊之, 毬還出馬前二足之間, 復擊而出門, 時人謂之防尾。 又行擊之時, 亦已垂揚, 毬觸橋柱, 出馬之左, 太祖脫右鐙翻身, 擊而中之, 復擊而出門, 時人謂之橫防。 擧國驚駭, 以爲前古無聞。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王室) / 역사(歷史)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