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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1권, 고종 31년 6월 23일 무진 4번째기사 1894년 조선 개국(開國) 503년

부호군 이남규가 재정 낭비, 조세문제, 법 적용의 형평성, 일본군사의 난입 등에 관해 진술하다

부호군(副護軍) 이남규(李南珪)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우리 전하께서는 호남(湖南)의 비적(匪賊)이 준동(蠢動)하는 것 때문에 밤낮으로 편할 날이 없으셨는데,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물으시니 위무(威武)는 추상(秋霜)같이 엄하시고, 조세를 감면하고 폐단을 제거하시니 덕의(德意)가 봄별처럼 따뜻하였습니다. 저들이 아무리 미련하더라도 응당 두려워하고 감격해야 할 것인데, 흉악하고 사나운 무리들이 감히 교화에 맞서서 성읍(城邑)에 돌입하여 파견된 관리를 살해하였으며, 심지어 전주부(全州府)에 돌입하여 경기전(慶基殿)과 조경묘(肇慶廟)를 놀라게 하였으니, 사람과 귀신이 다 노하고 높고 낮은 사람들이 다 분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하의 위령(威靈)에 힘입어 관군이 연달아 승리하여 성읍과 전주부를 회복하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사직의 홍복이며 나라의 운수가 길이 전해질 기회입니다. 전하께서는 진실로 이런 때에 크게 분발하고 크게 진작하여 세상의 이목을 새롭게 하여 위로는 하늘의 보살핌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민심을 수습하여 원망을 칭송으로 바꾸고 의혹을 화목으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단지 한 도(道)에서 이미 발생한 변란을 그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장차 온 나라에 드러나지 않은 근심까지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서 토지에서 받는 조세(租稅)와 호구(戶口)에서 거두는 부세(賦稅)로는 수입에 따라 지출을 하여도 언제나 부족함을 염려해야 할 형편이어서 일체 경비는 다 되도록 검소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는 일정하게 드는 경비는 있지만 사장(私藏)은 없으며, 아래에는 정당한 공납(公納)은 있지만 사사로이 바치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위에서 하려는 일이 효과도 없이 비용만 들 경우 유사가 반드시 간하여 중지시키는데, 이것이 어찌 위를 모시는 데 박하게 하면서 절약하기만 하려는 의도이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 고통을 받게 되어 나라도 따라서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입이 비록 적더라도 경상비용이 그다지 궁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토지와 호구(戶口)가 예전 그대로인데도 경상비용이 매우 궁색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전하께서 하려고 하는 일이 효과도 없이 비용만 드는데도 유사가 감히 그만두도록 간하여 절약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찌하여 그전에는 그다지 궁색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몹시 궁색하겠습니까?

신이 감히 전하께 이런 실책이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순(虞舜)과 같은 성인에 대해서도 고요(咎繇)는 ‘안일과 욕심으로 인도하지 말라.’고 경계하였으며, 주 무왕(周武王)과 같은 성인에 대해서도 소공(召公)은 ‘무익한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계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비록 우순이나 주무왕과 같은 자질을 지니고 계시지만 신하 가운데 전하의 곁에 고요소공과 같은 보좌가 없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또한 천만 가지 생각 중에 한 가지 실수가 없으리라고 어찌 보장하겠습니까?

대체로 유한한 재물로 무한한 경비에 충당함에 있어, 무조건 받들어 그저 따르기만 하고 한 번도 재정의 궁핍을 아뢰지 않는다면, 설사 유안(劉晏)이나 한황(韓滉)과 같은 사람이 유사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반드시 방백(方伯)이나 수령(守令)에게 요구할 것인데, 방백이나 수령인들 무슨 재주로 응하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백성에게 주구(誅求)하는 형편에 처할 것입니다. 그 중에 다행히 처신이 확고한 사람은 악착같이 자신을 지켜서 공무를 빙자하여 사복을 채우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일언지하에 그 요구를 거절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우둔하고 옹졸하며 이익만 탐하고 염치를 모르는 무리들은 모두 진헌(進獻)한다는 명목 아래 재물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일삼고 뇌물과 청탁을 법으로 여기며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재능으로 여기면서, 오로지 못물을 고갈시킬 것만 추구하고 물고기가 없어진다는 사실은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몸을 살찌우고 자기 집을 윤택하게 할 것이니, 그 결과 백성들에게 거둔 재물의 십중팔구는 개인에게 돌아가고 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겨우 한둘이며, 백성들의 원망의 십중팔구는 나라에게 돌아오고 아래에 미치는 것은 겨우 한둘일 것입니다. 《시경(詩經)》의 이른바 ‘긁어들일 줄밖에 모르는 자들〔曾是指克〕’이라든가 ‘원망을 듣는 것을 덕으로 여긴다.〔斂怨以爲德〕’는 말들이 이런 무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방백과 수령으로 하여금 세월만 믿고 거리낌 없이 굴면서 점차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데에는 유사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하면서 자기 한 몸만 생각하고 경기전과 조경묘를 돌아보지 않은 방백을 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백성을 학대하여 변란을 빚어낸 수령을 도배(島配)에 그치고, 일을 그르쳐 소요를 일으킨 안핵사(按覈使)를 찬배하는 데 그치고, 백성과 고을에 폐해를 끼친 균전사(均田使)에 대하여 그 직책이나 감하고 사람은 처벌하지 않았다가 이내 벼슬을 주고, 규정에도 없는 재물을 거두어들여 비방을 일으키고 원망을 사서 화란(禍亂)을 빚어낸 장본인이라고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지목하는 전운사(轉運使)에 대하여 끝내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 속이 켕기어 낌새를 차리고 미리 피하거나 겁을 먹고 위험 앞에서 구차스럽게 목숨을 건진 수재(守宰)들을 그전 직책에 유임시키기도 하고 내직(內職)의 가까운 반열로 옮겨주기도 하였으니, 이는 커다란 실정(失政)입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먼저 성총(聖聰)을 넓히시고 몸소 검약을 실천하여 여러 유사들을 권면하실 것이며 이어 해당 관사에 명하여 여러 방백, 수령 및 전운사, 안핵사, 균전사 등을 각각 해당되는 죄목으로 처벌하게 하여 나라의 법도를 세우고 여론에 답하소서. 그리하여 중외로 하여금 이들의 횡포가 조정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환히 알게 하고, 국법은 사정에 따라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저 반복 무상한 자들이 두려워 꺾일 것이며 만백성이 기뻐서 복종할 것이며 모든 관리들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만일 그럭저럭 적당히 세월이나 보낸다면 목전의 다급함은 다소 풀릴지 모르지만 태평성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국가의 안위가 그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살피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이것은 여러 사람들의 말이지 신 한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신이 말하려는 것은 이보다 더 급한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 일본(日本)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도성문으로 들어왔는데 외무 관청의 관리가 극력 제지하였으나 듣지 않았으니, 신은 그 의도가 어디에 있으며 그 병력의 명분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이웃 나라의 환란을 도우려는 것이라면 우리는 구원을 요청한 일이 없으며, 만일 상민(商民)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면 그들이 걱정 없도록 우리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도와주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상을 꾸며대는 것이고, 걱정할 것 없이 보호하는데도 보호하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우리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앞의 것으로 말하면 이것은 의리가 아니고 뒤의 것으로 말하면 신의가 아니니, 이렇게 그들을 추궁한다면 그들이 무슨 말로 대답하겠습니까? 이웃 나라와 사귀는 도리는 오직 의리와 신의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수립되지 않고서는 우호관계를 보장한다는 것을 신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춘추(春秋)》의 맹세에서는 먼저 ‘간사한 자를 보호하지 말고 악의를 품지 말라.’ 하고, 다음에 ‘재난을 구제하고 변란을 돌보아 준다.’고 하였으니, 그 완급의 순서가 참으로 명백합니다. 그런데 갑신년(1884)의 정변 때 도망친 흉악한 무리들을 저들이 숨겨주었으니, 이것은 간사한 자를 보호하고 악의를 품은 것으로 공공연히 두둔한 것입니다. 《춘추》의 맹세로 따지면 이미 위반한 것입니다.

이번에 그들의 병력이 구휼을 위해 출동한 것이라고 해도 벌써 완급의 순서를 그르친 것인데 더구나 구휼을 위한 것도 아니고 방위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또한 방위할 만한 걱정거리도 없는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설사 참으로 방위해야 할 걱정이 있더라도 우리가 응당 약조에 따라 보호할 것인데, 저들이 많은 군사를 마구 동원하여 우리 경내에 들어와 단속도 무시하고 우리나라 도성문으로 들어오면서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굴어 우리 백성들을 더욱 소란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신은 거기에는 무슨 거짓이 있고 우리나라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 여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그마한 무기 하나가 없어서 천 리의 강토를 가지고도 그들을 두려워하며, 잔뜩 움츠러들어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 내버려 둔 채 감히 뭐라고 한 마디도 못한단 말입니까? 도성 안에 저들이 점포를 열도록 승인한 것도 식견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는데, 더구나 그들의 군사가 주둔하는 것을 승인하고 금지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외무 관청의 관리가 이치와 의리로 따지면서 성실과 신의를 베풀면 저들은 꼭 물러가지 않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이치와 의리, 성실과 신의로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면 그것은 적이지 이웃이 아닙니다. 적과 이웃이 되어 속으로는 의심을 품은 채 겉으로 괜찮은 척하면서 끝내 무사한 경우는 있은 적이 없습니다.

논의하는 사람들은 필시 신의 말이 시의(時宜)를 고려하지 않고 사세를 헤아리지 않은 채 큰일을 함부로 말하여 이웃 나라의 힐책을 불러온다고 하겠지만, 이것은 구차하고 고식적인 말일 뿐입니다. 무릇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는 것은 그 국체(國體) 때문입니다. 국체를 존중하지 않는데도 시의에 맞다느니 사세에 합당하느니 하는 말은 신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옛날에 서성(徐盛)은 한 마디 말로 위(魏) 나라 사신(使臣)의 교만을 꺾었으며, 호전(胡銓)은 한 장의 글로 강한 금(金) 나라의 군사를 물리쳤습니다. 이 두 사람이 어찌 정말로 시의를 고려하지 않고 사세를 헤아리지 않은 채 큰일을 함부로 말하여 이웃 나라의 힐책을 불러일으킨 것이겠습니까? 단지 구구한 하찮은 의리를 가지고도 나라가 망하는 것이니, 국체를 존중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만일 국체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아무리 망하지 않으려고 하여도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신이 갑신년의 치욕 때에 죽지 않은 것부터가 벌써 이 두 사람에게 매우 부끄러운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말한 것 때문에 저들이 힐책을 한다면 원컨대 신을 잡아다가 저들의 사신에게 내어주십시오. 신은 목을 자른 피를 그들에게 뿌리고서 저승에서 저 두 사람을 따른다면 죽어도 영광이겠습니다.

당초에 우리가 중국(中國)에 구원을 청한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었습니다. 좁은 지방의 작은 도둑을 수령이나 방백이 제압하지 못하고 점차 큰 도적으로 만들고는 끝내는 초토사(招討使)와 순변사(巡邊使)로 하여금 연이어 군사를 거느리고 가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른바 천 근(千斤)짜리 쇠뇌를 생쥐를 향해 쏜 형국입니다. 이것부터가 벌써 이웃 나라에 알려지게 해서는 안 될 일인데, 또 우리가 도리에 맞게 역적을 치면 누르지 못할 리가 없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경솔하게 약점을 보이면서 구원을 요청하는 데 급급하여 접대에 재물을 낭비하고 운반하는 인력을 지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필시 우리를 비겁하다고 여겼을 것이니, 일본 사람들이 이로 인해 우리의 형편을 엿보기 위해 병력을 동원해서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저들과 화친을 하였으니, 이제 갑자기 힘으로 맞설 수는 없고 마땅히 이치와 의리, 성실과 신의로 깨우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이것은 결국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이니, 우리도 응당 무기를 수리하고 군사를 훈련하여 대처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찌 다른 나라 군사가 도성 안에 있는데 편안히 앉아서 방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태평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군대를 꺼립니다. 그래서 남들은 우리가 군정(軍政)에 등한하다고 하며, 우리도 애당초 타성에 젖어 스스로 작다는 생각에 안주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본래 군사가 정예롭지 못한 것이 아니고, 장수가 될 만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시험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뛰어난 인재를 구별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면 요즘 듣고 본 것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적 김옥균(金玉均)은 매우 간악한 자입니다. 그런데 한 사나이가 가슴에 충성과 의리를 품고 사나운 파도를 헤치며 바다를 건너가서 맨손으로 그를 마른나무 꺾듯이 처치했으며, 호남(湖南)의 비적(匪賊)은 극악한 도적이었건만 일개 초토사가 새로 뽑은 수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는 한 번 쳐서 그 괴수를 섬멸하고 두 번 쳐서 그 성(城)을 회복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병법을 익힌 것도 아니고 무술을 배운 것도 아니며, 재략(才略)이 남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고 명성이 남보다 두드러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오히려 이처럼 대단한 공로를 세울 수 있었으니,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나라는 충의(忠義)로 나라를 세웠으며 선왕(先王)의 은택과 전하의 어짐이 사람들의 골수에 젖어 들어서 임금에게 무례한 것을 보면 설사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눈을 부릅뜨고 용기를 내어 자식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듯이 한사코 보복하기 때문입니다.

조정에서 대대로 녹(祿)을 받는 사람들은 논할 것도 없고 초야(草野)의 선비나 군사들도 이 두 사람의 마음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이것으로 원수를 갚는다면 어떤 원수인들 갚지 못하며 이것으로 적을 치면 어떤 적인들 치지 못하겠습니까? 이렇게 한다면 설사 우리나라를 천하에서 막강한 나라라고 하여도 옳은 말이며 과장이 아닙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벌벌 떨면서 스스로 움츠러들어 다른 나라의 수모를 받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지금은 적의 세력이 이미 꺾였고 민심이 이미 안정되었으며 이웃 나라의 관계에서 말썽이 없고 서울이나 지방이 모두 잠잠하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마땅히 분발하고 진작하여 세상의 이목을 일신하여 영원한 걱정거리를 제거할 방도를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서 옛 법을 따르고 조상을 본받으소서. 그리하여 마음을 바로하여 모든 교화를 베풀고, 기강을 세워서 명분을 바로잡고, 탐오에 관한 법을 엄하게 하여 탐관오리를 징계하고, 부세(賦稅)를 가볍게 지워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돌보고, 상벌을 신중히 하여 공로와 죄를 밝히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 경비를 절약하고, 군정을 잘하여 방비를 단단히 하고, 작록(爵祿)을 공평하게 내려서 염치를 기르고, 명기(名器)를 존중하여 벼슬길을 깨끗이 하고, 정학(正學)을 숭상하여 이단을 물리치고, 한 자리에 오래도록 있는 사람들을 등용하여 공도(公道)를 넓히고, 억울하게 잘못된 일을 풀어주어 화기(和氣)를 이끌고, 충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며, 모든 관리들에게 성과를 올리게 하고 세무(細務)를 직접 다루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측근에서 알랑거리는 자들을 없애서 총명이 가려지는 폐단을 제거하고, 간쟁하는 길을 넓혀서 허물을 고치는데 이바지하게 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도리를 논하여 치세의 방도를 찾으며,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안정의 근본으로 삼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으로 내치(內治)를 닦고 외적을 물리치는 비결로 삼는다면, 상하가 뜻을 같이 할 것이니 어찌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겠으며, 원근이 모두 귀부(歸附)할 것이니 누가 감히 거스르겠습니까? 울음을 바꾸어 웃음을 만들고 위험을 바꾸어 안정을 이룬다면 얼마 안 가서 충분히 나라가 태평하게 될 것입니다.

신은 이미 호남 비적이 소란을 일으키던 초기에 광망(狂妄)한 말을 진술하려다가 의식(衣食)이 편치 않으신 중에 거듭 응대하는 수고를 끼치는 것이 의분(義分)으로 보아 감히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며 십여 일이나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변란은 지금 비록 좀 평정되었으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걱정이 더욱 급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에 감히 외람됨을 헤아리지 않고 번거롭게 아룁니다.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신의 분수에 넘치는 외람된 행동을 용서하시고 신의 숨김없이 아뢰는 의리를 살피시어, 사람이 변변치 않다고 그 말까지 버리지 마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문제를 조리 있게 논하였고 그 말이 또한 절절하니 매우 감탄스럽다."

하였다.


  • 【원본】 35책 31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9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동학(東學) / 변란-민란(民亂) / 왕실-종사(宗社) / 재정-재정일반(財政一般) / 역사-고사(故事) / 사법-탄핵(彈劾)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재판(裁判) / 외교-일본(日本) / 외교-청(淸) / 군사-군정(軍政) / 재정-국용(國用)

副護軍李南珪疏略:

我殿下, 以匪蠢動, 宵旰靡安。 興師問罪, 威武如秋霜之嚴也; 蠲稅祛瘼, 德意如春煦之溫也。 彼雖豚魚, 宜畏宜感, 一種凶獷, 敢自阻化, 隳突城邑, 戕害使者, 甚至闖入完府, 震驚殿、廟, 人神胥怒, 小大共憤。 賴殿下威靈, 王師連捷, 城府復完。 此誠社稷之洪福, 而迓續永命之會也。 殿下誠以此時, 大奮發, 大振作, 以新一世耳目, 仰答天眷, 俯收物情, 易怨咨爲謳歌, 化疑梗爲和忻。 非止戢一路已著之亂, 亦將消四方無形之憂矣。 夫我國壤地褊小, 土田之稅, 戶口之賦, 量入爲出, 常患不給, 一應經費, 悉從儉約。 上有常用而無私藏, 下有正供而無私獻。 凡上所欲爲, 有無益之費, 有司必諫止之。 此其意豈薄於奉上而務裁節之哉? 不如是, 民受其困, 而國隨以危也。 故所入雖少, 而經用則未甚絀矣。 今土田、戶口猶夫昔也, 而經用甚絀焉, 何哉? 豈殿下所欲爲有無益之費, 而有司不敢諫止而裁節之歟? 不然, 何昔之未甚絀, 而今之甚絀也? 臣非敢謂殿下有此失。 然之聖焉, 而咎繇以無敎逸欲爲誡; 武王之聖焉, 而召公以不作無益爲誡。 殿下雖有之姿, 臣恐殿下之左右, 無咎繇召公之輔, 則亦安保無千慮之一失乎? 夫以有限之財, 應無限之用, 唯諾承奉, 未嘗告乏, 雖劉晏韓滉爲有司, 不能也。 其勢必徵索於方伯、守令, 方伯、守令亦何術而應之哉? 其勢必誅求於百姓。 其幸能自立者, 惟齷齪自守, 不藉公濟私而已, 亦未敢一言拒其徵索。 其餘闒茸猥瑣, 嗜利忘恥之徒, 率皆以進獻爲題目, 聚斂爲職事, 關節爲章程, 椎剝爲能幹。 惟求渴澤, 不思無魚, 以肥其身, 以潤其屋。 斂民之財, 十八九歸于私, 而入于公者, 僅一二焉。 斂民之怨, 十八九歸于公, 而令于下者僅一二焉。 《詩》所云‘曾是掊克斂, 怨以爲德’, 非此輩之謂乎? 然使方伯、守令, 憑恃無憚, 馴至于此, 有司亦難乎免其責矣。 今方伯之失守逃竄, 只顧其身, 而不顧廟、殿者, 不置之法; 守令之侵虐釀亂者, 島置而止; 按覈而僨誤滋擾者, 竄配而止; 均田而爲民邑弊者, 只減其職, 不罪其人, 而旋縻以爵; 轉運使科外徵斂, 招謗聚怨, 目之爲禍亂之階, 萬口一辭, 而卒不問; 外他守宰之內疚而見幾先避者, 恇怯而臨危苟活者, 或仍授舊任, 或內遷邇列。 此失政之大者也。 殿下宜先恢張聖聰, 躬率歛約, 以勵群有司。 仍命攸司, 諸方伯、守令及轉運、按覈、均田等使, 各以其罪罪之, 以伸王法, 以謝物情, 使中外曉然知此輩侵暴, 非出於朝廷之意。 而法不以私愛貸, 然後反側可以畏折矣、萬姓可以悅服矣, 百僚可以震懾矣, 若因循翫愒, 架漏度日, 目前之急, 雖或少紓, 太平之業, 未易可期。 殿下盍於此安危嚮背之機, 勵精以審之哉? 雖然此輿人之言, 非臣一人所言。 抑臣所欲言, 有急於此者。 今日本人, 率兵入都門, 外署之臣, 力止而不聽, 臣未知其意之何居, 而其兵之何名也。 若曰救恤隣患, 則我未嘗求援矣; 若曰防衛商民, 則我保其無憂矣。 不求援而猶曰救恤, 是矯情也; 保無虞而猶曰防衛, 是疑我也。 由前則非義, 由後則非信, 以此責彼, 彼何說之辭? 交隣之道, 惟義與信, 二者不立, 而能保交好, 臣未之聞也。 《春秋》之盟, 先言毋保姦, 毋留慝, 次言救菑, 恤亂, 其緩急之序, 固較然矣。 甲申之變, 凶徒之逋逃者, 彼爲之藪, 是保是留, 顯爲卵翼。 徫之以《春秋》之盟則已渝矣。 今其兵以救恤出, 固已失緩急之序, 況非救非恤, 名之以防衛, 而又無可防之虞乎? 設若眞有可防之虞, 我當依約防護。 而彼乃紛紛動大衆, 涉吾境而不問禁, 入吾國都門而肆然不少憚, 使吾民益騷攘以訛, 何也? 臣恐其中有詐, 而謂我無人也。 我國雖小, 曾無尺寸之刃, 以千里畏人, 而伈睍低首, 一聽其進退, 而莫之敢誰何哉? 都城之內, 許彼開鋪, 識者猶恥之, 況可許其駐兵而莫之禁乎? 外署之臣, 責以理義, 布以誠信, 彼未必不退。 若曰非理義誠信所可動, 是敵也, 非隣也。 與敵爲隣, 內懷疑忌, 外示羈縻, 而卒無事者未之有也。 議者, 必以臣言爲不度時宜, 不量事勢, 妄談大事, 以招隣嘖, 此苟且姑息之說耳。 夫國之爲國, 以其有國體也。 國體不尊, 而中於時宜, 合於事勢, 非臣攸聞。 昔徐盛以片言, 折使之驕; 胡銓以一紙, 却虜師之强。 二子者, 豈不誠度時宜而量事勢, 妄談大事, 以招隣嘖哉? 徒以區區咫尺之義, 謂國可亡。 體不可不尊, 體不尊, 國雖欲無亡, 不可得也。 臣不死於甲申之辱, 已有愧於二子者, 多矣。 今因此言而彼若有嘖, 願執臣身以謝彼使。 臣請以頸血濺之, 而得以從二子於地下, 雖死亦榮矣。 始我之求救中國, 非計之善也。 潢池小盜, 一縣吏、一方伯, 不能制之, 涓涓炎炎, 養成劇寇, 至使招討使、巡邊使, 相繼出師, 殆所謂千斤之弩, 爲鼷鼠而發也。 此已不可使聞於隣國, 而又不能料我以順討逆, 理無不克, 遽示內弱, 汲汲求救, 以致費供億而勞輸輓, 人必以我爲懦怯。 安知日本人, 不因此而窺我淺深, 以兵嘗試之耶? 我業與彼和, 今不可遽以力拒, 惟當以理義誠信悟之。 如是而不悟, 是終慢我也。 我亦宜繕甲治兵以待之。 安有異國之兵在都城之內, 而晏然不爲之備乎? 我國昇平日久, 以兵爲諱, 故人謂我疎於戎政。 我亦未始不狃恬嬉而自小。 然兵卒未嘗不精, 將帥未嘗無人。 惟其不見試, 故無以別利器也。 就以近日所見聞者言之, 玉賊賊, 巨慝也, 一匹士胸涅忠義, 涉鯨波, 蹈鱷浪, 徒手殪其身, 如摧枯拉朽; 匪, 劇寇也, 一招討提數百新集之兵, 一討而殲其魁, 再討而復其城。 此二人者, 非習於鞱靲也, 嫺於弓馬也。 才略未嘗超衆也, 聲名未嘗著人也, 一朝猶能樹奇功如此, 此無他。 我國以忠義立國, 先王之澤, 殿下之仁, 浹人肌髓, 見無禮於君, 雖三尺之童, 無不明目張膽, 失死必報, 如子之於父讐故也。 朝廷之上, 世祿之家, 固勿論, 卽草野之士, 卒伍之類, 無非此二人者之心。 以此報怨, 何怨不報; 以此討賊, 何賊不討? 若是者, 雖以我國爲天下莫强之國, 宜也非夸也。 柰之何惴惴然自小, 以受異國之侮哉? 嗚呼! 殿下以今時, 爲賊勢已挫, 民心已定, 隣好無釁, 都鄙無警, 不足以虞憂則已, 如其未也, 宜思所以奮發振作, 以新一世耳目, 以紓無窮之憂也。 惟殿下勤思熟計, 惟古是遵, 惟祖宗是法, 正一心以宣萬化, 立紀綱以正名分, 嚴贓法以徵貪婪, 薄賦斂以恤煢獨, 愼賞罰以核功罪, 省冗雜以節經費, 詰戎政以備綢繆, 頒爵祿以養廉恥, 重名器以淸仕路, 崇正學以闢異端, 拔淹滯以恢公道, 疏冤枉以導和氣。 奬用忠直, 勿近諂諛; 責成群工, 勿親細務。 杜侫倖之門, 以祛壅蔽; 廣諫諍之路, 以資繩紏。 夙興夜寐, 論道求治, 以愛民爲寧謐之本, 以自强爲修攘之要, 則上下同志, 何有不從? 遠邇歸心, 孰敢有越? 回咷爲笑, 轉危爲安, 旬月之間, 足致太平矣。 臣業欲以狂瞽之說, 仰陳於匪俶擾之初, 而錦玉靡甘之中, 重貽酬接之勞, 非義分所敢出。 故泯默浹辰, 蘊結于中。 已著之難, 今雖稍平, 無形之憂, 尤有所急。 玆敢不揆猥越, 冒瀆聰聽, 伏願聖明, 恕臣越位之僭, 察臣無隱之義, 勿以卑菲而廢其言。

批曰: "論事有條理, 其言且剴切, 甚庸歎賞。"


  • 【원본】 35책 31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9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동학(東學) / 변란-민란(民亂) / 왕실-종사(宗社) / 재정-재정일반(財政一般) / 역사-고사(故事) / 사법-탄핵(彈劾)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재판(裁判) / 외교-일본(日本) / 외교-청(淸) / 군사-군정(軍政) / 재정-국용(國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