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고종실록 3권, 고종 3년 7월 8일 갑자 4번째기사 1866년 청 동치(同治) 5년

프랑스 전교사들을 사형에 처한 문제로 북경에 회답 자문을 띄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방금 북경(北京) 예부(禮部)에서 보내온 자문(咨文)을 보니, ‘전에 프랑스 공사(公使)가 여러 차례 전교사(傳敎士)들이 조선에 나갈 수 있도록 호조(護照) 발급을 청하였는데, 총리 아문(總理衙門)에서 습교(習敎)는 조선에서 원하는 바가 아니므로 호조를 발급하기가 곤란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시 프랑스 공사가 보내온 조회(照會)에 의하면, 고려 국왕이 프랑스의 주교(主敎) 두 사람 및 전교사 아홉 사람과 본지(本地)의 습교인 남녀노소를 모두 살해하였기 때문에 장수에게 군사를 일으키도록 명하여 며칠 안으로 일제히 소집할 것이라고 하였다. 중국이 이미 이 일을 알았으니 중간에서 해명해 주지 않을 수 없는데, 과연 전교사(傳敎士)들을 살해한 사실이 있다고 하면 먼저 이치에 의거하여 조사할 것이요, 갑자기 병란의 단서를 만들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귀국에 알려 심사숙고하여 처리하게 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총리 아문에서 해명해 주려는 것과 예부에서 이자(移咨)한 것에 대해 모두 사의를 표해야 하겠으며, 사실의 자초지종에 대해서도 상세히 갖추어 말을 만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답 자문은 문임(文任)으로 하여금 재자관(齎咨官)을 정하여 며칠 이내로 들여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예부에 보내는 회답 자문에,

"우리나라에서 작년 겨울부터 흉악한 무리와 도둑의 부류들이 무리를 지어 결탁하고 몰래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마침내 체포해 보니 다른 나라 사람이 8명이나 끼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어느 곳으로 국경을 넘어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옷차림과 말하는 것은 동국(東國)사람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간사스러운 여자로 가장하고 자취를 숨기기까지 하였으니 그들이 우리나라의 경내에 오랫동안 있었음을 미루어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설령 교리를 전파하고 익히게 하려고 하였다면 어찌 이렇게 비밀리에 하였겠습니까?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 표류하여 온 경우에는 모두 보호해주고 돌려보내 주지만, 공적인 증거 문건 없이 몰래 국경을 넘어온 자들의 경우에는 모두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 원래 금석(金石)과 같은 성헌(成憲)에 있으므로, 이에 나란히 해당 법률을 적용하였던 것입니다.

가령 우리나라 사람이 몰래 다른 나라에 들어가 부당하게 법을 위반하면서, 그릇된 일을 선동하여 그 나라 백성과 그 나라가 피해를 입었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반드시 남김없이 모두 사형에 처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마땅히 그에 대하여 한 터럭만큼이라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의 변경을 튼튼히 하고 나라의 금법을 엄격히 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모두 그러합니다.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넓고 큰 바다로 막혀 있어 서계(書契)를 서로 통하지도 못하는데, 무슨 오래 전부터 원망을 가진 일이 있거나 혐의스러운 일이 있다고 온전히 돌려보낼 방도를 생각하지 않고서 차마 이와 같이 사형에 처하는 조치를 취하겠습니까? 이번에 프랑스에서 주장한 말은 미처 생각해 보지도 못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혀 연락을 가질 기회가 없었는데, 다행히도 여러 대인들이 화해를 시켜주는 혜택을 입었고 깊이 생각하여 만전을 기하는 계책까지 가르쳐 주었으니, 이는 진실로 일반 규례를 벗어나 잘 돌봐주고 도와주려는 훌륭한 덕과 지극한 생각입니다.

앞으로 사행(使行) 때 그 정성에 사례하기를 기다리면서 이에 먼저 자세히 갖추어 회답합니다."

하였다.


  • 【원본】 7책 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3면
  • 【분류】
    외교-프랑스[法] / 외교-청(淸) / 사상-서학(西學)

議政府啓: "卽見北京禮部咨文, 則以爲: ‘前因法國公使, 屢請發給傳敎士護照往朝鮮, 而自總理衙門, 以習敎非朝鮮所願, 礙難發照行文矣。 復據法國公使照會內, 稱高麗國王, 將法國主敎二人及傳敎士九人, 竝本地習敎男婦老幼, 盡行殺害。 是以命將興師兵船, 不日齊集云。 中國旣知此事, 不能不從中排解, 而如果有殺害敎士等情, 先行據理査詢, 不必遽起兵端, 以此行知該國, 使之熟思審處’云矣。 總理衙門之排解, 禮部之移咨, 俱宜有稱謝之擧, 而至若事實始末, 亦不可不該備措辭。 回咨文, 令文任撰出, 別定䝴咨官, 以爲不日入送之地何如?" 允之。 回咨: "弊邦自昨冬以來, 有凶徒匪類, 聚黨糾結, 潛圖不軌。 遂乃掩捕, 則異國人八名。 不知何處冒越, 衣冠言語, 與東國無別。 甚至姦昵婦女, 幻形匿跡, 其久處弊境, 推可量會。 藉曰傳習其敎, 安用此祕詭爲哉? 異國人之漂到弊國者, 盡行護還, 至若無公憑潛越者, 一切置辟, 原係金石之成憲。 此所以竝施當律者也。 假使弊邦之人, 潛入他國, 冒禁煽訛, 民國與受其害, 則他國必鋤誅之無遺, 弊邦亦不當一毫致憾。 靖封疆嚴邦禁, 易地皆然矣。 弊邦與法國, 隔以重溟, 不通書契, 抑有何舊怨夙嫌, 不思所以全歸之方, 忍行此誅殛之擧乎? 今此法國之執言, 圖慮之所不及也。 弊邦僻遠, 全昧機會, 而幸蒙諸大人之排難解紛, 敎之以熟思萬全之計, 此誠格外眷佑之盛德至意也。 容俟前頭使行, 稱謝忱悃。 玆先備悉事由, 有此覆陳。"


  • 【원본】 7책 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3면
  • 【분류】
    외교-프랑스[法] / 외교-청(淸) / 사상-서학(西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