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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실록 1권, 철종 대왕 시책문(諡冊文)

철종 대왕 시책문(諡冊文)

시책문(諡冊文)

유세차(維歲次) 갑자년020) 3월(三月) 신축(辛丑) 삭(朔) 13일 계축(癸丑)에 애종자(哀從子) 사왕(嗣王) 신(臣) 희(曦)는 삼가 재배(再拜)하고 머리 조아리면서 상언(上言)합니다. 삼가 아뢰건대 이제 하늘이 어찌 차마 가슴을 에이는 슬픔을 내려 검석(劍舃)021) 을 어루만지면서 애통함을 머금게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대덕(大德)은 반드시 그 명성(名聲)을 얻는 법이므로 요민(瑤珉)022) 에 새길 시문(諡文)을 바칩니다. 그저 슬픔과 사모함만 증가시킬 뿐이니, 감히 유양(揄揚)023)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질과 광대하고 박후(博厚)한 교화로서 말은 준칙(準則)이 되었고 행동은 법식(法式)이 되었으므로, 온량(溫良)하고 공검(恭儉)함을 체득하였으며, 용모에는 덕기(德氣)가 있었고 표상에는 의법(儀法)이 있어, 중정(中正)하고 순수(純粹)한 정기를 지니셨습니다.

조종(祖宗)께서 어렵게 이룩한 대업(大業)을 부여받음에 있어서는 순원 왕후(純元王后)의 휘음(徽音)을 크게 받들었으며, 하늘과 사람이 순신(順信)하는 상서를 받은 것은 멀리 선조조(宣祖朝)의 고사(故事)와 부합되었습니다.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옛날 외방에서 노고(勞苦)하듯이 험저(險阻)하고 간난(艱難)한 고비를 갖추어 겪었으며,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자신을 법도로 삼듯이 규구(規矩)와 준승(準繩)에 행동이 합치되었습니다. 인심(仁心)은 만화(萬化)의 근본을 삼아 힘써 실천하고 몸소 행함에 있어 그 요령을 체득하였고, 의방(義方)은 사조(四條)의 훈계를 받들었으므로 정령(政令)과 시조(施措)에 전수받은 것이 있습니다. 무릇 본성(本性)을 극진히 하고 윤상(倫常)을 극진히 하는 성덕(盛德) 같은 것은 진실로 잘 계술(繼述)한다는 모훈(謨訓)에 연유하고 있습니다. 종궁(宗宮)에는 사시(四時)에 제사를 경건히 거행하였는데 향의(享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능침(陵寢)이 좋지 않아 만세의 길지(吉地)를 점쳐 얻었으니 신리(神理)가 매우 편안하였으며, 예실(禰室)024) 의 무감(武戡)한 공을 드날림에는 존친(尊親)이 중대한 것이고, 헌종(憲宗)에 세헌(世獻)하는 예법을 정한 것은 계서(繼序)를 잊지 않은 조처인 것입니다. 요첩(瑤牒)을 동조(東朝)025) 에 누차 진헌한 것은 미덕(美德)을 천명한 신효(宸孝)026) 가 더욱 드러난 것이고, 선계(璿系)를 중국의 사서(史書)에서 잘 바로잡은 것은 변무(辨誣)의 성대한 공렬(功烈)이 더욱 빛난 것입니다. 다섯 달 동안 등문공(滕文公)같이 여막(廬幕)에 거처한027) 것은 천승(千乘)의 임금으로서 증자(曾子)·민자건(閔子騫)의 효도를 몸소 실행한 것이고, 육궁(六宮)에서 관저(關姒)028) 의 송축(頌祝)이 있는 것은 이남(二南)029) 이 풍화를 바루는 근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4년 동안 정치가 태평하였으니, 진실로 억조 창생이 사랑하여 추대하게 된 것입니다.

농사를 권면하고 기곡제(祈穀祭)를 지내니, 한재(旱災)·수재(水災)·상박(霜雹)의 재이(災異)가 들지 않았고, 내탕전(內帑錢)을 내어 기근(饑饉)을 진구(賑救)하니 환과 고독(鰥寡孤獨)이 모두 부양되었습니다. 어염(魚鹽)에 세금을 마구 거두어들여 지치게 하는 것을 금지하니, 백성들이 호산(湖山)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낙우(酪牛)에 대해 상공(常供)의 수요(需要)를 견감하니 은혜가 금수(禽獸)에까지 미쳤습니다. 삼가 오형(五刑)의 신중히 함을 공경히 하니 억울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신리(伸理)시켰고, 삼정(三政)의 이정(釐整)에 마음을 다하니 미세(微細)한 것이라 하여 밝히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주고(周誥)030) 의 어린아이 보호하듯이 한다는 생각을 본받았으니 ‘안민(安民)’ 두 글자의 부신(符信)이 되었고, 서경(西京)031) 의 질박함을 돌이킨 기풍(氣風)이 있으니 검소함을 밝힌 일덕(一德)의 효험인 것입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교악(喬嶽)이 움직이지 않아도 만물(萬物)이 각기 그 생성(生成)을 이루어가고 상천(上天)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어도 육기(六氣)032) 가 그 궤도(軌道)를 따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대개 이는 일용(日用) 사이의 일을 미루어 나간 것으로 모두가 성학(聖學) 중에서 나온 것이나 윤한(綸翰)과 편장(篇章)은 다만 그 여분의 일일 뿐입니다. 참찬(參贊)하여 만물을 잘 육성하다가 신공(神功)을 거두어 물러났습니다. 보주(寶籌)033) 가 정성(鼎盛)한 시기에 있었으므로 인수(仁壽)의 복을 누리기를 기대했었으며, 좋은 운수가 태형(泰亨)034) 의 기회에 속해 있으므로 덕화(德化)가 완성되는 것을 보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아! 대업(大業)이 중도(中途)에서 반도 못된 시점에 말명(末命)이 갑자기 옥궤(玉几)를 기댄 곳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035) . 여러 백성들이 복록이 없어 형호(荊湖)에서 궁검(弓劍)을 어루만지며 슬퍼하는 것을 차마 말할 수 있겠으며, 푸른 하늘도 믿기 어렵게 되어 주단(周壇)036) 에 옥벽(玉璧)을 바치고 빈 것도 힘입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태허(太虛)037) 의 한 점 구름처럼 지나갔으니, 어떻게 한평생 생각나는 것을 위로할 수가 있겠습니까? 먼 바닷가 궁벽한 산골에 사는 백성들도 모두 부모의 상(喪)을 당한 것처럼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태모(太母)께서 종국(宗國)을 돌아보시고 소자(小子)로 하여금 큰 서업(緖業)을 계승하게 하였는데, 두렵기가 얇은 얼음을 밟고 깊은 연못에 임한 것같이 큰 역복(歷服)을 이어받들어서 휼민(恤民)할 보위(寶位)에 나아가 행례(行禮)함으로부터 전대의 영인(寧人)038) 을 추상(追上)하여 유종의 미를 도모하였습니다. 단의(丹扆)039) 가 영원히 비어버렸으니 목소리와 모습이 침비(寢悶)됨을 슬퍼하고 대여(大輿)의 행렬이 출발하려 하니 광음(光陰)이 머물지 않음을 개탄합니다. 조운(鳥耘)040) 이 새로운 산등성이에 성실히 화합하니 실로 성인(聖人)의 택조(宅兆)가 될 곳이요, 상설(象設)을 선침(先寢)041) 에 가까이 하였으니 신도(神道)가 여기에 의지할 것입니다.

으레 행하는 이장(彝章)을 따라 이에 숭종(崇終)한 홍호(鴻號)를 거행합니다. 빛나는 도(道)를 드러내어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찬란한 경위(經緯)의 문(文)이요, 성헌(成憲)을 본받아 휘덕(徽德)을 천양하는 것은 위대한 보정(保定)의 무(武)입니다. 헌(獻)은 엄숙하고 사리(事理)에 통달했다는 뜻이므로 영모(英謨)를 천추(千秋)에 창달시켰고, 인(仁)은 장인(長人)의 칭송이 되었으므로 효행(孝行)을 만선(萬善)에 독실히 했습니다. 하나의 시호(諡號)로는 아! 큰 공을 사서(史書)에 이루 다 기재할 수가 없고 칠세묘(七世廟)042) 에서 덕을 살필 수 있는 것이므로, 이를 융숭히 받듦에는 국가에 상전(常典)이 있습니다. 삼가 사신(使臣)을 보내어서 책보(冊寶)를 받들어 존시(尊諡)를 문현 무성 헌인 영효(文顯武成獻仁英孝)라고 하고 묘호(廟號)는 철종(哲宗)이라고 올리오니, 우러러 바라건대 깊이 살피시어 분명히 따르신다는 허락을 굽어 내리소서. 전대(前代)보다 빛나는 공렬이 있음은 천지에 세워놓고 백세(百世)를 기다려도 의혹스러울 것이 없겠으며, 아름다운 천명(天命)은 신민(臣民)을 보전하여 만년이 되도록 전할 것입니다. 아! 슬프다. 삼가 아룁니다. 【행 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윤치수(尹致秀)가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665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20]
    갑자년 : 1864 고종 원년.
  • [註 021]
    검석(劍舃) : 황제(黃帝)가 스스로 죽을 날을 택하고 여러 신하들과 헤어지자, 교산(橋山)에 장사지냈는데, 산이 무너지면서 텅빈 관(棺)이 나타났고 그 속에는 오로지 황제의 칼과 신만 남아 있었다는 고사. 곧 죽은 사람의 유품을 뜻함.
  • [註 022]
    요민(瑤珉) : 옥돌.
  • [註 023]
    유양(揄揚) : 찬양.
  • [註 024]
    예실(禰室) : 아버지의 사당.
  • [註 025]
    동조(東朝) : 대비.
  • [註 026]
    신효(宸孝) : 임금의 효성.
  • [註 027]
    다섯 달 동안 등문공(滕文公)같이 여막(廬幕)에 거처한 :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등문공(滕文公)이 그 아버지 정공(定公)의 상(喪)을 당해 효자의 예절을 극진히 한 것을 말함. 《맹자(孟子)》 등문공 상편에, "죽을 마시고 얼굴이 매우 검은 빛으로 자리에 나아가 곡(哭)한다.[歠粥 面深墨 卽位而哭]" 하였고, "다섯 달 동안 여막(廬幕)에 거처하였다.[五月居廬]" 하였는데, 얼굴이 검다는 것은 슬픔으로 단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말함.
  • [註 028]
    관저(關姒) : 《시경(詩經)》 주남(周南)의 편명(篇名). 주 문왕(周文王)의 비(妃)인 태사(太姒)의 여덕(女德)을 찬미한 시임.
  • [註 029]
    이남(二南) : 주남(周南)·소남(召南).
  • [註 030]
    주고(周誥) : 《서경(書經)》의 강고(康誥)를 가리킴. 주 무왕(周武王)이 아우 강숙(康叔)을 봉하여 위후(衛侯)로 삼고 백성을 잘 다스리라고 계고(戒誥)한 내용임.
  • [註 031]
    서경(西京) : 한(漢)나라의 서울로, 한 문제(漢文帝)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음.
  • [註 032]
    육기(六氣) : 음(陰)·양(陽)·풍(風)·우(雨)·회(晦)·명(明).
  • [註 033]
    보주(寶籌) : 임금의 나이.
  • [註 034]
    태형(泰亨) : 형통.
  • [註 035]
    되었습니다 : 유언(遺言)을 뜻하는 말.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임종(臨終) 때 대신(大臣)을 불러 놓고 옥궤(玉几)에 기대어 고명(顧命)을 내린 데에서 인용된 것임.
  • [註 036]
    주단(周壇) : 주 무왕(周武王)이 병을 앓게 되자 주공(周公)이 제단(祭壇)을 만들고 제물(祭物)로 옥벽(玉璧)을 바친 다음 자신의 목숨으로 무왕을 대신하여 죽게 해달라고 빌었던 고사(故事)에서 온 말임.
  • [註 037]
    태허(太虛) : 하늘을 말함.
  • [註 038]
    영인(寧人) : 천하를 편안하게 한 사람이라는 말로 무왕(武王)의 신하들을 가리킨 말인데, 여기서는 임금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음.
  • [註 039]
    단의(丹扆) : 임금 자리에 치는 병풍.
  • [註 040]
    조운(鳥耘) : 순제(舜帝)가 역산(歷山)에서 농사지을 때 새들이 날아와서 풀을 뽑아주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성덕(聖德)의 감응을 가리키는 말임.
  • [註 041]
    선침(先寢) : 선왕의 능침.
  • [註 042]
    칠세묘(七世廟) : 천자(天子)의 종묘(宗廟)로, 태조(太祖)를 중심으로 왼쪽에 삼소(三昭), 오른쪽에 삼목(三穆)을 모심. 제후는 태조를 중심으로 왼쪽에 이소(二昭), 오른쪽에 이목(二穆)으로 모시게 되는 것이나, 여기서는 임금의 종묘를 이름.

○諡冊文:

維歲次甲子三月辛丑, 朔十三日癸丑哀從子嗣王臣熙, 謹再拜稽首上言。 伏以今天, 胡忍降割, 攀劍舃而銜哀? 大德必得其名, 勒瑤珉而薦謚祗增悲慕, 敢云揄揚? 恭惟大行大王, 聰明睿智之姿, 廣大博厚之化, 言爲則行爲法, 溫良恭儉得之容, 有德象有儀中, 正純粹精也。 拊祖宗艱大之業, 誕承純元后徽音, 應天人順信之祥, 遠符宣廟朝故事。 殷高宗舊勞于外, 險阻艱難之備嘗, 夏禹氏爲度於身, 規矩準繩之動合。 仁心, 爲萬化之本, 力踐躬行之得其要, 義方承四條之敎, 政令施措之曰有受。 若夫盡性盡倫之盛, 亶由善繼善述之謨。 宗宮虔四時之禋, 享儀靡懈, 灤渦卜萬歲之吉, 神理孔安, 颺禰室武戡之功, 尊親爲大, 定憲廟世獻之禮, 繼序不忘。 瑤牒屢進於東朝, 闡美之宸孝益著, 璿系克正於北史, 辨誣之盛烈冞光。 五月滕廬之居, 千乘躬曾閔之行, 六宮關睢之頌, 二南正風化之原。 所以十四載治平, 允爲億兆民愛戴。 勸農祈穀, 旱澇霜雹, 不爲烖捐帑, 賑饑鱞寡孤獨。 皆有養鹽漁禁, 橫歛之困人, 自得於湖山, 酪牛蠲常供之需, 恩足及於禽獸。 祗祗於五刑之恤, 有枉必伸, 惓惓乎三政之釐, 無微不燭體。 周誥若保之念, 二字安民之符, 有西京反樸之風, 一德昭儉之效。 譬則如喬嶽不運, 萬品遂其生, 寂然若上載無聲, 六氣順其軌。 蓋此日用間推去, 皆從聖學中出來, 綸翰篇章, 特其疏節。 參贊位育, 歛却神功 寶籌屆鼎盛之期, 庶享仁壽之福, 休運屬泰亨之會, 思見德化之成。 嗟! 大業未半於中途, 伊末命遽揚於憑几。 群黎無祿, 忍言荊湖之泣弓, 彼蒼難諶, 莫賴周壇之植璧, 若太虛點雲之過, 曷慰沒世之思? 雖薄海窮山之民, 普切如喪之慟, 肆太母眷言宗國, 俾小子嗣有丕基, 澟如履薄而臨深, 纉承大歷服惟恤, 自夫踐位而行禮, 思追前寧人圖終。 丹扆永虛, 衋音容之寢閟, 素廞將啓, 慨光陰之不留。 鳥耘允協於新岡, 實維聖人之攸宅, 象設密邇於先寢, 庶幾神道之是依。 玆循尙行之彝章, 爰擧崇終之鴻號, 彰顯道而紀實, 煥乎經緯之文, 拚成憲而揚徽, 大哉保定之武。 獻, 是齊聖之義, 鬯英謨於千秋, 仁爲長人之稱, 篤孝行於萬善。 壹惠以節, 猗! 洪功史, 不勝書, 七世可觀而隆奉, 國有常典。 謹遣使臣, 奉冊寶上尊諡曰, 文顯武成獻仁英孝, 廟號曰, 哲宗, 仰冀沖鑑, 俯賜明歆。 于前有光, 建天地而俟百不惑, 用休其命, 保臣民而於萬斯年。 嗚呼! 哀哉。 謹言。 【行知中樞府事尹致秀製。】


  • 【태백산사고본】 9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665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