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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7권, 정조 3년 1월 1일 병술 2번째기사 1779년 청 건륭(乾隆) 44년

권농의 윤음을 내리다

권농 윤음(勸農綸音)을 팔도(八道)와 양도(兩都)에 내리기를,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처음이고 인(仁)은 정치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옛날의 성왕(聖王)들은 매양 원단(元旦)의 정월이 시작 되는 때를 당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는 뜻이 더욱 간절하였으니, 매우 성대한 일이었다. 오직 나 과인(寡人)은 감히 나의 백성들을 돌보아 구휼하고 나의 백성들을 잘 보존시킬 것을 생각함에 있어 능히 백성을 위해 걱정하는 방도를 극진히 했다고 할 수 없지만, 때로 비와 햇볕이 정상에 어긋나거나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가 이변을 일으키는 데 대해서는 잊지 않고 걱정하는 한 마음이 실은 일찍이 잠시도 가슴 속에서 해이된 적이 없었다. 더구나 이에 삼양(三陽)001) 이 처음 돌아와서 만물이 비로소 새로워지는 때이겠는가? 그런데 딱하게도 나의 백성들은 봄을 당하여 궁핍함이 갈수록 극심해서 살아갈 계책이 아득하기만 한데 거기다 갖가지 세금 독촉이 아울러 일어나 있어 여러모로 질고(疾苦)가 많다.

전부(田賦)를 가지고 말한다면 비록 정공(正供)만을 받아들인다고는 하지만 동이에 비축한 곡식은 겨울의 적곡(糴穀)에서 바닥이 나버렸으며 보리의 이익은 들판에서 수확도 하기 전에 징독(徵督)이 그치지 않아 매질이 뒤따르고 있다. 말이 여기에 미치니 옥식(玉食)도 달갑지가 않다. 모든 나의 장리(長吏)002) 들은 과연 나의 이런 마음을 본받아서 진념(軫念)하고 있는가? 신포(身布)를 가지고 말한다면 이것이 부리(夫里)003) 의 제도이기는 하지만 온 나라의 〈주군(州郡)에〉 베짜는 바디 소리가 끊겼는데도 황구(黃口)와 백골(白骨)이 된 사람들의 이름까지 쪽지[簽]를 붙이는 일이 서로 잇달기 때문에 심지어는 따뜻한 겨울에도 춥다고 울부짖고 손으로 베를 짰지만 입을 옷이 없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고을의 아전들은 독촉해 불러내면서 정한(程限)을 넘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말이 여기에 미치니, 비단옷을 입은들 무엇이 편하겠는가? 모든 나의 장리(長吏)들은 또한 이런 나의 마음을 본받아서 돌보아 구휼하고 있는가? 창고의 적곡은 백성을 위하여 설치한 것인데 적곡의 장부만 헛되이 가지고 있을 뿐이어서 매양 식량이 부족하다는 탄식을 초래하고 있고 농작(農作)은 곡식을 생산하는 근원인데 봄에 갈고 가을에 거두는 것을 살피지 않았으니 부족한 것을 도와주는 혜택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 제도(諸道)에서 기근(飢饉)을 고하여 와서 진구(賑救)하는 일이 바야흐로 급하기 때문에 견감(蠲減)하고 산대(散貸)하는 것에 대해 내가 이미 조금도 아끼는 것이 없다. 모든 나의 장리들은 나의 이런 마음을 본받아서 마음을 다하여 진구하고 있는가?

아! 백성들의 수척한 형상과 신음(呻吟)하는 고통은 오매초(烏昧草)를 캐어 올리고004) 유민(流民)의 모습을 그려 올리기005) 를 기다리지 않고도 나의 눈에 선하기만 하다. 매양 울부짖으면서 양식을 구하는 정경을 생각하면 저절로 밤이 깊도록 애타게 걱정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나의 걱정을 나누어 나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오직 장리들 뿐인데 다방면으로 조처를 취하여 마음을 다하여 구제해 살리는 것을 부필(富弼)006)청주(靑州)에 있을 때처럼 하고 범중엄(范仲淹)이 호상(湖上)에 있을 때처럼 한다면 나 과인(寡人)이 주야로 애타는 걱정을 잊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사대부(士大夫)가 본심을 보존하여 사물을 사랑하는 도리에 있어서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점이 있게 될 것이다. 아! 진실로 이 백성들로 하여금 죽어서 구렁에 나뒹구는 걱정을 면할 수 있고 배부르게 먹는 즐거움을 이루게 할 것을 기약하려 할 경우 마땅히 먼저 힘써야 할 것은 농사와 길쌈뿐인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를 빼앗지 말고 백성들을 동요시키지 말게 함으로써 농부들이 자신들의 일에 힘을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가뭄과 장마가 고르지 않고 서리와 우박의 재해(災害)가 있게 되는 것은 이것이 진실로 과인이 하늘에 대응(對應)하는 정성의 성실성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 또 백성을 동칙(董飭)하고 권과(勸課)하는 방도는 또한 어찌 풍속을 살피는 수토신(守土臣)의 근만(勤慢)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헌발(獻發)007) 이 이미 지났으니 농사짓고 길쌈하는 일이 장차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더욱 마땅히 척념(惕念)하여 가난한 백성들로 하여금 일년 내내 따뜻한 봄을 함께 하는 뜻을 지니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85면
  • 【분류】
    농업-권농(勸農)

  • [註 001]
    삼양(三陽) : 봄을 말함.
  • [註 002]
    장리(長吏) : 지방관(地方官).
  • [註 003]
    부리(夫里) : 부포(夫布)와 이포(里布)를 말하는 것으로, 부포는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부과하고 이포는 택지(宅地)에 뽕나무를 심지 않은 데 대해 부과함.
  • [註 004]
    오매초(烏昧草)를 캐어 올리고 :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 범중엄(范仲淹)이 강회(江淮) 지방을 안무(按撫)하고 돌아와서 빈민(貧民)들이 먹던 오매초를 인종에게 올렸던 고사(故事). 여기서 오매초(烏昧草)란 고사리의 별칭을 말한다.
  • [註 005]
    유민(流民)의 모습을 그려 올리기 : 송(宋)나라 신종(神宗) 때 정협(鄭俠)이 유민(流民)이 유랑하는 형상을 그려서 신종(神宗)에게 올렸던 고사(故事).
  • [註 006]
    부필(富弼) : 송(宋)나라 인종 때 사람.
  • [註 007]
    헌발(獻發) : 헌세 발춘(獻歲發春)을 이름. 즉 정월 원일(正月元日)이란 말.

○下勸農綸音于八道、兩都曰:

春者, 生物之始;仁者, 爲治之本。 古昔聖王, 每當履元開泰之時, 益切仁民愛物之意, 甚成節也。 惟予寡人, 非敢曰憫恤我元元, 懷保我元元, 克盡憂民之方, 而至若時雨、時暘之或愆, 冬寒、夏暑之曰咨, 耿耿一念, 實未嘗暫弛于中。 矧玆三陽初回, 萬物載新, 而嗟我小民, 春窮轉甚, 活計索然。 從而催科竝起, 疾苦多端。 以言乎田賦, 則雖曰惟正之供, 益粟之儲, 已盡於冬糴;來牟之利, 未收於春畝, 而徵督未已, 箠楚相繼。 興言及此, 玉食靡甘。 凡我長吏, 果能體予此心, 而軫念之歟? 以言乎身布, 則雖是夫里之制, 大東、小東, 杼軸其空, 黃口、白骨簽括相續, 甚至冬暖而呼寒, 手織而無衣。 而縣吏催呼, 程限莫踰, 興言及此, 錦衣何安? 凡我長吏, 亦能體予此心, 而顧恤之歟? 倉糴, 爲民而設, 而穀簿虛擁, 每致艱食之歎;農作, 生穀之原, 而耕歛不省, 未聞補助之惠。 且今諸道告飢, 賑事方棘, 所以蠲減之散貸之者, 予已無少惜焉。 凡我長吏, 其能體予此心, 着意賙救歟? 嗚呼! 捐瘠之狀ㆍ殿屎之苦, 不待烏昧之採進, 流民之圖上, 而如在目中。 每思庚癸之呼, 自切乙丙之憂。 而分予憂、牧予民者, 惟長吏也。 多般設施, 悉心濟活, 如富弼之在靑州范仲淹之在湖上, 則非但予寡人, 忘宵旰之慮, 其在士大夫存心愛物之道, 必有所濟矣。 噫! 苟欲使斯民, 得免塡壑之患, 期致含哺之樂, 則當務之所先者, 惟耕、織是已。 不奪其時, 不擾其民, 盡力乎工夫之業。 然惟旱澇之不均, 霜雹之爲災, 此固在寡人對越之誠否, 而又如蕫飭之道, 勸課之方, 亦豈不在於守土、觀風之臣勤怠之如何乎? 目今, 獻發已過。 耕織之事, 將自今伊始。 尤宜惕念, 俾蔀屋, 終歲有同春之意。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85면
  • 【분류】
    농업-권농(勸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