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대왕의 산릉을 정하고 능 이름을 원릉으로 정하다
대행 대왕의 산릉(山陵)을 정하고, 능 이름을 원릉(元陵)으로 의논하여 올렸다. 산릉을 처음에는 홍릉(弘陵)으로 정했다가 다시 소령원(昭寧園)의 국내(局內)를 살펴보았는데 의논이 일치되지 않으므로, 여러 차례 대신과 예조 당상을 보내어 두루 여러 곳에서 찾아 보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옛 영릉(寧陵)이 완전한 길지(吉地)인 것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영의정 김양택(金陽澤)·좌의정 정존겸(鄭存謙)·판중추부사 김치인(金致仁)과 이은(李溵)·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과 상지관(相地官) 김기량(金基良)·김전(金田)·유동형(柳東亨)·김상현(金尙鉉) 등을 여차(廬次)에서 소견하고 두루 각자의 의견을 물으니, 김양택과 이은이 말하기를,
"이미 증험해 본 땅이 마치 기다리고 있은 듯합니다."
하고, 정존겸이 말하기를,
"영릉을 옮겨 모실 때에 한 대오의 사람들이 종실(宗室)을 종용하여 상소에서 ‘더없이 중요해야 할 자리에 틈이 있다.’고 했었고,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의 상소에서도 ‘석회가 굳게 엉키어 있어 크고 작은 도끼가 서로 부딪치므로, 신의 마음이 애통스러우며 마치 도끼가 가슴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또한 문충공(文忠公) 민진원(閔鎭遠)의 주의(奏議)를 보고 대략 마음속에 헤아려지는 바가 있었다."
하였다. 김기량이 말하기를,
"옛 영릉 자리의 체세(體勢)는 건원릉(健元陵)과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국세(局勢)가 비록 건원릉이 주가 되기는 하지만 정간(正榦)의 정신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하였고, 유동형이 말하기를,
"불암산(佛岩山)의 정간의 면목이 모두 이곳을 향하고 있으니, 진실로 완전한 대지(大地)입니다."
하였으며, 김상현이 말하기를,
"온 국(局) 안의 원기가 모두 이 곳에 모여 있습니다. 산을 보아 온 지 50년이지만 이와 같은 길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옛 광(壙)이라도 또한 꺼릴 것이 없습니다."
하니, 대신 이하가 봉심하도록 명했었는데, 복명(復命)에 당하여 똑같은 말로 칭찬하여 아뢰었다. 이 날에 이어서 대신과 비국 당상들을 소견하여 두루 물었는데 여러 신하들이 이의가 없으므로, 이어 능을 결정하고 명칭을 의정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70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壬子/定大行大王山陵, 議上陵號曰元陵。 山陵初定弘陵, 又審昭寧園局內, 議不合, 屢遣大臣禮堂, 遍尋諸處。 至是有以舊寧陵爲十全吉地言者, 召見領議政金陽澤、左議政鄭存謙、判中樞金致仁、李溵、錦城尉 朴明源, 相地官金基良、金田、柳東亨、金尙鉉等于廬次, 遍詢僉見, 陽澤、溵曰: "已驗之地, 似若有待也。" 存謙曰: "寧陵遷奉時, 一隊人慫慂宗室, 疏稱莫重之地有罅隙, 先正臣宋時烈疏中, 有石灰堅凝, 斧斤相激, 臣心痛霣, 如斧落胸之語矣。" 上曰: "予亦見閔文忠奏議, 有檃度于中矣。" 基良曰: "舊寧陵體勢, 與健元陵無異。 且局勢雖主健元陵, 而正榦精神, 盡在於此矣。" 東亨曰: "佛巖山正榦面目, 皆向此處, 誠爲十全大地矣。" 尙鉉曰: "一局中元氣都聚於此。 看山五十年, 未見如此吉地。 舊壙亦無嫌也。" 命大臣以下奉審, 及復命齊聲仰贊。 是日仍召見大臣、備局堂上歷詢, 諸臣無異議, 乃定陵議號。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70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