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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27권, 영조 대왕 빈전 친제문

영조 대왕 빈전 친제문

빈전 친제문(嬪殿親祭文)에 이르기를,

"병신년 5월 신미삭(辛未朔) 11일 신사(辛巳)에 고손(孤孫) 사왕(嗣王) 신(臣) 이산(李祘)은 감히 지행 순덕 영모 의열 장의 홍륜 광인 돈희 체천 건극 성공 신화 대성 광운 개태 기영 요명 순철 건건 곤녕 대행 대왕(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大行大王)의 영좌(靈座)에 고합니다. 아! 중도에서 해가 저물어 젖먹이가 젖을 잃으니, 발버둥치며 울부짖어도 천지는 아득합니다. 예전부터 산 사람의 슬픔은 이보다 절박한 것이 없거니와, 소자(小子)가 문득 이 지경을 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할아버지이고 손자라면 사람이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마는, 할아버지로서 아버지를 겸한 사랑과 아버지로서 어머니를 겸한 사랑은 예부터 이제까지 어찌 대행(大行)께서 소자에게 주신 것과 같은 것이 있겠습니까? 앉으면 모시게 하고 누우면 보호하게 하고 잡수시면 수저를 바치게 하고 거둥하시면 지팡이와 신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소자 세상에 태어나서 25년 동안에 대개 하루도 그렇지 않은 날이 없었고, 근년 이래로는 또 한 시도 그렇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한번 숨쉬는 데에 내쉬고 들이쉬는 것이 있고 한몸에 형체와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았는데, 더욱이 이보다 큰 것이 있었습니다. 소자는 성질이 어리석고 재주가 없으므로 능히 짐을 지지 못할세라 늘 염려하였는데, 우리 대행께서는 그 불초함을 모르고 저사(儲嗣)의 책무를 맡기시어 정일(精一)한 전수(傳授)를 가르치고 효제(孝悌)의 진실을 일깨우고 인의(仁義)·도덕(道德)의 문(門)으로 이끄셨으니, 성심(聖心)이 늘 염려하신 것은 오직 소자 한 몸 밖에는 다시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사랑으로 감싸 주신 인은(仁恩)이 이처럼 매우 깊었으나, 소자가 그때에는 매우 마음에 느껴 기뻐할 줄 알 뿐이고 만세(萬歲)에 끝없는 즐거움을 길이 생각하였는데, 아! 대행께서는 어찌하여 차마 이런 은애(恩愛)를 끊고 문득 진유(眞游)를 빨리하여 소자가 중도에서 젖을 잃은 아이가 되게 하셨습니까? 소자가 상을 당한 지 어느덧 석 달이 되었습니다. 용루(龍樓)에 새벽이 오면 문침(問寢)해야 할 듯하며 여각(餘閣)에 잔을 올리면 음식을 올려야 할 듯하며 보유(寶帷)의 지척(咫尺)에 있으면 용광(龍光)을 뵙고 옥음(玉音)을 들을 듯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희미하고 어두워서 다시는 보이지 않고 다시는 들리지 않으니, 인리(人理)의 아픔이 여기에 이르러 지극합니다. 그러나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봄과 여름이 이미 바뀌어 눈으로 보고 코로 숨쉬는 것이 여전하니, 소자가 이토록 질길 줄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아! 대행께서 늘 품안의 어린아이처럼 소자를 보호하시고 한번 언동(言動)하고 한번 기거(起居)하는 사이에도 성려(聖慮)를 부지런히 하여 병이 날세라 염려하셨는데, 이제는 근심되고 불안하여 마치 곤궁한 사람이 의지할 데가 없는 것과 같아서 하늘에 호소하여도 모르고 땅에 호소하여도 응답이 없으니, 아! 대행의 하늘처럼 높고 땅처럼 두터우신 은혜로서 어찌하여 돌보고 가엾이 여기지 않으십니까? 생각하면 을유년184) 겨울에 소자가 수십일 동안 병을 앓았는데, 우리 대행께서 염려하여 애태우며 음식과 잠을 잊고 전무(殿廡) 사이를 방황하고 별이 비추는 밤에 한데에서 기도하여 소자만을 생각하고 성궁(聖躬)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에 보령(寶齡)이 이미 칠순을 넘으셨거니와, 높은 은혜를 입은 소자는 다행히 병이 나았으나 성궁은 이미 피곤함을 보였고, 과연 병술년185) 봄에 옥후(玉候)가 편찮아 그때부터 이제까지 잇달아 정섭(靜攝)하셨습니다. 아! 성질(聖質)은 천지가 유구(悠久)한 것과 같고 옥도(玉度)는 일월이 늘 선명한 것과 같으시므로 천년 만년 끝이 없으실 수 있는데, 불행히 병술년의 환후가 실로 오늘의 화(禍)의 원인이 되고 소자의 그때의 병이 혹 병술년의 빌미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대행의 지자 지인(至慈至仁)이 소자를 거의 위태로운 데에서 소생시키셨으나, 소자는 정성을 쌓아 대신하기를 원하여 성질(聖疾)을 기미(幾微)에서 돌이키지 못하였으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속이 찢어지려 합니다. 아! 천위(天位)는 매우 어렵고 천명(天命)은 믿기 어렵거니와, 대행께서 돌보고 맡기신 것이 여기에 있고 소자가 애써 따르고 조심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도(世道)의 혼란을 어떻게 진정시키며 인심이 갖가지로 다른 것을 어떻게 하나로 돌아가게 하며 백성이 몹시 곤궁한 것을 어떻게 안정시킵니까? 바라건대 대행께서는 어두운 가운데에서 지도하여 떨어지고 잃지 않게 하소서. 아! 지극한 슬픔은 글로 형용할 수 없고 지극한 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으니, 다만 하늘에 사무치는 울음과 땅에 사무치는 눈물이 있을 뿐입니다. 아! 마음 아픕니다."

하였다. 금상(今上)의 어제(御製)이다.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7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5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殯殿親祭文曰:

維歲次, 丙申五月辛未朔十一日辛巳, 孤孫嗣王臣, 敢告于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大行大王靈座。 伏以嗚呼! 日暮中途, 嬰兒失乳, 躑躅呼號, 天地茫茫。 從古生人之悲, 莫切於此, 誰料小子, 遽罹此境耶? 曰祖曰孫, 人孰不然, 而以祖而兼父之慈, 以父而兼母之愛者, 自古迄今, 豈有若大行之於小子乎? 坐焉而命之侍, 臥焉而命之護, 餐焉而命之供匙箸, 動焉而命之奉杖屨。 小子生世二十有五年, 蓋無一日不然, 近年以來, 又無一時不然。 比如一氣之有呼吸, 一身之有形影, 而尤有大焉者。 小子性魯才下, 常恐不克負荷, 我大行不知其不肖, 托之以匕鬯, 敎之以精一之傳, 諭之以孝悌之實, 引之於仁義道德之門, 聖心之所耿耿者, 惟小子一身之外, 更無他焉。 慈覆仁恩, 若是深切, 小子當時, 但知感悅之極, 而長擬無窮之樂於萬歲矣, 嗚呼! 大行何忍割此恩愛, 遽速眞遊, 使小子作中途失乳之兒耶? 小子之奉諱, 忽忽已三朔矣。 龍樓之曉, 若將問寢, 餘閣之奠, 若將進餐, 寶帷咫尺, 若將覲龍光而聆玉音。 畢竟僾然黯然, 無復覩矣, 無復聞矣, 人理之痛, 至此極矣。 然饑而食, 渴而飮, 春夏已易, 而視息如舊, 誠不料小子之頑, 至於此也。 嗚呼! 大行保小子常若懷中之小兒, 一言動、一起居之間, 聖慮屢勤, 恐其有疾, 今也皇皇恤恤, 如窮無歸, 呼天而不知, 呼地而無應, 嗚呼! 以大行隆天厚地之恩, 何不眷顧而垂憐也耶? 記昔乙酉之冬, 小子數旬委疾, 我大行, 憂焦慮煎, 忘餐與寢, 徊徨於殿廉之間, 露禱於星月之下, 但知有小子而不知聖躬。 于時寶筭, 已踰七矣, 隆恩所霑, 小子雖幸起疾, 而聖躬已示憊, 果然丙戌之春, 玉候違豫, 自是至今連在靜攝。 嗚呼! 聖質如天地之悠久, 玉度如日月之常鮮, 可以于千于萬至于無極, 而不幸丙戌之患候, 實基今日之禍, 而小子伊日之病, 無或爲丙戌之祟歟? 嗚呼! 大行至慈至仁, 起小子於濱危, 小子不能積誠願代, 回聖疾於惟幾, 思之及此, 心肝欲裂。 嗚呼! 天位孔艱, 天命難諶, 大行之所眷顧而寄托者在此; 小子之所勉膺而祗懼者在此。 世道之淆亂, 何以定之; 人心之千百, 何以一之; 赤子之顚壑, 何以奠之? 伏惟大行, 指導於冥冥, 俾無墜失焉。 嗚呼! 至哀無文, 至情無言, 但有徹天之哭, 徹地之淚而已。 嗚呼! 痛哉!

今上御製。

英宗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實錄卷之百二十七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7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5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