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02권, 영조 39년 9월 2일 병진 1/3 기사 / 1763년 청 건륭(乾隆) 28년
왕세손에게 《맹자》의 우산장을 강하게 하다
국역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왕세손(王世孫)을 시좌(侍坐)하도록 명하고 《맹자(孟子)》의 우산장(牛山章)을 강하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산(山)도 성품[性]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장차 사람의 성품을 말하려 했기 때문에 먼저 산의 성품을 말한 것입니다."
하였다. 이때 관동(關東)의 네 고을의 가장 극심한 수재(水災)를 입었으므로 도신(道臣)이 새 환곡(還穀)을 절반을 감하여 대봉(代捧)하게 해줄 것을 장청(狀請)하니, 임금이 먼저 구포(舊逋)를 모두 견감(蠲減)시킬 것을 허락하고, 왕세손을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구포를 정지하는 것은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경용(經用)을 잇대지 못할 경우에는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백성이 넉넉하게 되면 임금이 어찌 넉넉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매우 기뻐하여 말하기를,
"요순(堯舜) 이후에 다시 요순 같은 임금이 없었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사욕(私慾)이 〈본성(本性)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하자, 임금이 잘한다고 칭찬하고서 말하기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 너는 힘쓸지어다."
하였다.
원문
영조 39년 (1763) 9월 2일
영조실록102권, 영조 39년 9월 2일 병진 1/3 기사 / 1763년 청 건륭(乾隆) 28년
왕세손에게 《맹자》의 우산장을 강하게 하다
국역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왕세손(王世孫)을 시좌(侍坐)하도록 명하고 《맹자(孟子)》의 우산장(牛山章)을 강하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산(山)도 성품[性]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장차 사람의 성품을 말하려 했기 때문에 먼저 산의 성품을 말한 것입니다."
하였다. 이때 관동(關東)의 네 고을의 가장 극심한 수재(水災)를 입었으므로 도신(道臣)이 새 환곡(還穀)을 절반을 감하여 대봉(代捧)하게 해줄 것을 장청(狀請)하니, 임금이 먼저 구포(舊逋)를 모두 견감(蠲減)시킬 것을 허락하고, 왕세손을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구포를 정지하는 것은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경용(經用)을 잇대지 못할 경우에는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백성이 넉넉하게 되면 임금이 어찌 넉넉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매우 기뻐하여 말하기를,
"요순(堯舜) 이후에 다시 요순 같은 임금이 없었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사욕(私慾)이 〈본성(本性)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하자, 임금이 잘한다고 칭찬하고서 말하기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 너는 힘쓸지어다."
하였다.
원문
원본
영조 39년 (1763)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