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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99권, 영조 38년 5월 22일 을묘 2번째기사 1762년 청 건륭(乾隆) 27년

동궁의 허물을 아뢴 나경언을 친국하고 복주하다

나경언(羅景彦)이 복주(伏誅)되었다. 나경언 이란 자는 액정 별감(掖庭別監) 나상언(羅尙彦)의 형이니, 사람됨이 불량하고 남을 잘 꾀어냈다. 가산(家産)이 탕패되어 자립(自立)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춘궁(春宮)097) 을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려, 환시(宦侍)가 장차 불궤(不軌)한 모의를 한다고 고하였다. 참의 이해중(李海重)이 영의정 홍봉한에게 달려가 고하니, 홍봉한이 말하기를,

"이는 청대(請對)하여 계품하지 않을 수 없다."

하매, 이해중이 이에 세 차례나 청대하였다. 임금의 마음이 놀라 이해중의 입시를 명하니, 이해중이 드디어 그 글을 아뢰었다. 임금이 상(床)을 치면서 크게 놀라 말하기를,

"변란이 주액(肘腋)에서 있게 되었으니, 마땅히 친국(親鞫)하겠다."

하였다. 경기 감사 홍계희(洪啓禧)가 마침 입시하고 있다가 임금에게 호위(護衛)하게 하기를 권하니, 임금이 이에 성문 및 아래 대궐의 여러 문을 닫으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즉시 태복시(太僕寺)에 나아가 국청(鞫廳)을 설치하니, 시임 대신 홍봉한·윤동도와 원임 대신 신만(申晩) 등이 입시하였다. 남태제(南泰齊)를 지의금(知義禁)으로 삼아 판의금(判義禁) 한익모(韓翼謨)·동의금(同義禁) 윤득양(尹得養), 문랑(問郞) 홍낙순(洪樂純) 등 8인과 함께 죄인을 국문하였다. 나경언이 옷솔기에서 흉서(凶書)를 내놓으면서 말하기를,

"이 글을 구중(九重)의 천폐(天陛)에 올리고자 했으나 올릴 길이 없기 때문에 우선 형조에 원서(原書)를 올려 계제(階梯)를 삼았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다 읽지 못하고서 손으로 문미(門楣)를 치면서 말하기를,

"이런 변이 있을 줄 염려하였었다."

하고, 그 글을 영의정에게 주어 보도록 했다. 홍봉한이 울면서 보고는 말하기를,

"신이 청컨대 먼저 죽고자 합니다."

하였고, 윤동도가 나아가 말하기를,

"신 역시 보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 또한 보라."

하였다. 윤동도가 보기를 마치자, 임금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오늘날 조정에서 사모(紗帽)를 쓰고, 띠를 맨 자는 모두 죄인 중에 죄인이다. 나경언이 이런 글을 올려서 나로 하여금 원량(元良)의 과실을 알게 하였는데, 여러 신하 가운데는 이런 일을 나에게 고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으니, 나경언에 비해 부끄럼이 없겠는가?"

하였다. 대개 나경언이 동궁(東宮)의 허물 10여 조(條)를 낱낱이 들었는데 말이 매우 패란(悖亂)하였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이 글을 두어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청컨대 불태우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판의금 한익모가 나아가 말하기를,

"친국할 때에 금오랑(金吾郞)이 철저히 조사하지 않아서 이런 흉서를 장전(帳殿)으로 들어오게 했으니, 도태하고 잡아다 처리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윤동도가 말하기를,

"국청의 체면은 마땅히 판금오의 말과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추고만 하고 도태하지는 말며, 한익모 역시 중추(重推)하라."

하였다. 임금이 춘방(春坊)에 하교하여 준절히 책망하니, 홍봉한이 말하기를,

"동궁께서 평소 두려워하고 겁을 내는 증세가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반드시 편안히 있지 못할 것입니다. 청컨대 이유수(李惟秀)와 함께 가서 성교를 전하고, 또 진정하게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홍봉한이 급히 창덕궁(昌德宮)으로 나아가 세자에게 보고하매, 세자가 크게 놀라 보련(步輦)을 타고 대궐로 나오니 이때가 바야흐로 2경(更)이었는데, 홍화문(弘化門)에 나아가 엎드려 대죄(待罪)하였다. 임금이 이에 문랑(問郞)으로 하여금 죄인에게 묻기를,

"네가 나라를 위해 이처럼 진달하였으니, 그 정성은 가상하다. 그러나 처음 올린 글에 부언(浮言)을 만들어 사람을 악역(惡逆)의 죄과로 모함하였고, 또 ‘변란이 호흡 사이에 있다.’는 등의 말로 임금을 공동(恐動)시켜 궐문을 호위까지 하게 하고 도성이 들끓게 하였으니, 이후 불궤한 무리들이 다시 네 버릇을 본받게 될 것이다."

하고, 이에 엄형하기를 명하였다. 신장(訊杖)을 네 차례를 치고 우선 중지해 문사 낭청으로 하여금 죄인에게 묻게 하기를,

"네 글 가운데 서(徐)·김(金)·이(李) 세 사람은 누구인가?"

하니, 죄인이 공초하기를,

"서명응(徐命膺)이요, 은 바로 호리(戶吏)의 아들 김유성(金有星)인데, 전년에 정배(定配)되어 물에 빠져 죽었으며, 이(李)는 모릅니다."

하니, 오위 장(五衛將) 조덕상(趙德常)이 말하기를,

"김유성은 본래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닙니다. 작년 진주(晉州)에서 돌아올 때에 보았습니다."

하매,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국청은 체모가 지극히 엄한데, 한낱 위장(衛將)이 어찌 감히 잡스런 말을 하는가? 이는 스스로 공을 세우려는 뜻이다."

하고, 빨리 남해(南海)로 정배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죄인의 글 가운데 이르기를 김시찬(金時粲)·이보관(李普觀)이 상서하여 극진히 간쟁하였다고 하였으니, 그 서본(書本)을 가져오라."

하였다. 임금이 다 읽고 나서 말하기를,

"역시 대단치 않다."

하였다. 임금이 동궁의 입시를 명하니, 홍봉한이 말하기를,

"동궁을 죄인과 같은 뜰에 있게 해서는 안되니, 마땅히 죄인을 내보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한참 후에 세자가 입(笠)과 포(袍) 차림으로 들어와 뜰에 엎드렸는데 임금이 문을 닫고 한참 동안 보지 않으므로, 승지가 문 밖에서 아뢰었다. 임금이 창문을 밀치고 크게 책망하기를,

"네가 왕손(王孫)의 어미를 때려 죽이고, 여승(女僧)을 궁으로 들였으며, 서로(西路)에 행역(行役)하고, 북성(北城)으로 나가 유람했는데, 이것이 어찌 세자로서 행할 일이냐? 사모를 쓴 자들은 모두 나를 속였으니 나경언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왕손의 어미를 네가 처음에 매우 사랑하여 우물에 빠진 듯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마침내는 죽였느냐? 그 사람이 아주 강직하였으니, 반드시 네 행실과 일을 간(諫)하다가 이로 말미암아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또 장래에 여승의 아들을 반드시 왕손이라고 일컬어 데리고 들어와 문안할 것이다. 이렇게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하니, 세자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경언과 면질(面質)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책망하기를,

"이 역시 나라를 망칠 말이다. 대리(代理)하는 저군(儲君)이 어찌 죄인과 면질해야 하겠는가?"

하니, 세자가 울면서 대답하기를,

"이는 과연 신의 본래 있었던 화증(火症)입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차라리 발광(發狂)을 하는 것이 어찌 낫지 않겠는가?"

하고, 물러가기를 명하니, 세자가 밖으로 나와 금천교(禁川橋) 위에서 대죄하였다. 홍봉한이 나와서 아뢰기를,

"대조(大朝)께 충성하는 자는 소조(小朝)에도 충성하는 것입니다. 나경언의 불충(不忠)은 이미 논할 것도 없으니, 마땅히 해당되는 율로 논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크게 노하여 홍봉한의 파직을 명하였는데, 윤동도가 구해(救解)하매, 이에 다시 영상(領相)을 제수하였다. 임금이 죄인을 용서하고자 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굳이 가형(加刑)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부득이 이에 하교하기를,

"네가 이미 여러 신하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였으니, 그 정성이 비길 바가 없다. 그러나 남을 악역(惡逆)으로 무함했으니 죄 역시 가볍지 않다."

하고, 형장(刑杖) 6도(度)를 시행하라고 명하니, 나경언이 ‘동궁을 무함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야 마땅합니다.’라고 공초하였다. 임금이 그래도 살리고자 하니, 남태제(南泰齊)가 말하기를,

"나경언은 하찮은 사람으로서 이미 ‘동궁을 무함하였다.[誣陷東宮]’라는 공초가 나왔으니, 전하께서 온전히 살려주어서는 안됩니다. 청컨대 대역 부도(大逆不道)의 율을 시행하소서."

하고, 문랑(問郞) 홍낙순(洪樂純) 역시 같은 말로 청하였다. 윤동도가 말하기를,

"참으로 두 사람의 말과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부득이 허락하였다. 남태제 등이 율관(律官) 전상우(田相雨)로 하여금 부대시 처참(不待時處斬)으로 조율(照律)하여 아뢰었다. 대사간 이심원(李心源)·장령 이지회(李之晦)가 죄인에게 노륙(孥戮)의 율로 시행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매우 꾸짖기를,

"이심원은 일찍이 춘방(春坊)을 역임했는데 어찌 얼굴이 부끄럽지 않은가? 파직하고, 이지회는 체차하라."

하였다. 판의금 한익모가 아뢰기를,

"죄인을 이미 결안(結案)하였으니, 청컨대 사주(使嗾)한 사람을 물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크게 노하여 한익모의 파직을 명하였다. 제일 늦게 판부사 정휘량(鄭翬良)이 들어와 말하기를,

"신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야 들어왔습니다. 이런 흉인을 어찌 일각이라도 머물러 두겠습니까? 빨리 참형에 처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9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9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인사-임면(任免) / 변란-정변(政變)

  • [註 097]
    춘궁(春宮) : 세자궁. 여기서는 사도 세자를 가리킴.

羅景彦伏誅。 景彦者, 掖庭別監尙彦之兄也, 爲人浮浪, 善爲人誘。 破其家産, 不能自立, 乃生除去春宮之計, 呈書于秋曹, 告宦侍將行不軌之謀。 參議李海重奔告于領議政洪鳳漢, 鳳漢曰: "此不可不請對稟啓。" 海重乃請對三次。 上意驚動, 命海重入侍, 海重遂奏其書。" 上拍案大驚曰: "變在肘腋, 當爲親鞫。" 京畿監司洪啓禧, 時適入侍, 勸上護衛, 上乃命閉城門及下闕諸門。 上卽御太僕設鞫, 時任大臣洪鳳漢尹東度, 原任大臣申晩等入侍。 以南泰齊爲知義禁, 與判義禁韓翼謩, 同義禁尹得養、問郞洪樂純等八人鞫罪人。 景彦自衣縫中出凶書曰: "欲納此書于九重天陛, 而末由登徹, 故先呈原書于秋曹, 以爲階梯矣。" 上覽未畢, 以手拍門楣曰: "慮有此變。" 以書賜領議政視之。 鳳漢泣見曰: "臣請先死。" 尹東度進曰: "臣亦請見。" 上曰: "卿亦見之。" 東度見畢, 上謂諸臣曰: "今日朝廷着帽結帶者, 皆罪人之罪人也。 景彦能呈此書, 使予知元良過失, 諸臣無一人以此告予者, 視景彦能無愧乎?" 大抵景彦枚擧東宮闕失十餘條, 語極悖亂。 洪鳳漢曰: "此書置之何用? 請付丙。" 上從之。 判義禁韓翼謩進曰: "親鞫時, 金吾郞不爲窮搜, 致此懷凶書, 入於帳殿之下, 請汰拿處。" 上不許。 尹東度曰: "鞫體當如判金吾之言。" 上曰: "只推勿汰, 翼謩亦重推。" 上, 下敎于春坊, 切責之, 鳳漢曰: "東宮素有恐怯之症, 聞此必不按住。 請與李惟秀, 偕往以傳聖敎, 且令鎭定。" 上許之。 鳳漢急詣昌德宮, 以報世子, 世子震驚, 乃乘步輦上闕, 時方二更, 進伏于弘化門內待罪。 上乃使問郞, 問罪人曰: "汝能爲國陳此, 其誠可嘉。 然初呈書中, 做作浮言, 陷人於惡逆之科, 且以變在呼吸等語, 恐動君父, 以至闕門扈衛, 都下波蕩, 此後不軌之徒, 復踵汝習矣。" 乃命嚴刑。 訊杖四度姑停, 使問郞問于罪人曰: "汝書中三人誰也?" 罪人供曰: "命膺也。 卽戶吏子金有星, 前年定配投水死矣, 則不知也。" 五衛將趙德常曰: "有星本不溺死。 昨年晋州歸路見之矣。" 上怒曰: "鞫體至嚴, 一衛將安敢雜言。 此立功自效之意。" 亟命投畀南海。 上曰: "罪人書中云金時粲李普觀, 上書極諫, 其書本持來。" 上覽畢曰: "亦不大段矣。" 上命東宮入侍, 洪鳳漢曰: "東宮不可與罪人同庭, 宜撤下罪人。" 上從之。 有頃世子以笠袍, 入伏庭中, 上閉戶不見者良久, 承旨啓于戶外。 上推牕大責曰: "汝搏殺王孫之母, 引僧尼入宮, 西路行役, 北城出遊, 此豈世子可行之事? 着帽之漢, 皆欺我, 微景彦, 予何得聞? 王孫之母, 汝初甚愛, 以至溺井之境, 何乃竟殺乎? 其人頗剛直, 必諫汝之行事, 由是見戮。 且將來僧尼之子, 必稱王孫, 入來問安矣。 如此而國不亡乎?" 世子不勝其憤, 請與景彦面質。 上責曰: "此亦亡國之言。 代理儲君, 豈與罪人面質乎?" 世子泣對曰: "此果臣之本病火症也。" 上曰: "寧爲發狂, 則豈不反勝乎?" 命退出, 世子出外, 待罪于禁川橋上。 洪鳳漢進啓曰: "忠於大朝者, 卽忠於小朝也。 景彦之不忠, 已無可論, 宜論以當律。" 上大怒, 命罷洪鳳漢, 尹東度救解, 乃復授領相。 上欲因赦罪人, 而諸臣固請加刑, 上不得已乃下敎曰: "汝旣爲諸臣所不能爲之事, 其誠不偶。 而誣人惡逆, 罪亦不輕。" 命施刑杖六度, 景彦以誣陷東宮, 罪當死爲招。 上猶欲活之, 南泰齊曰: "景彦以幺麽一漢, 旣出誣陷東宮四字, 則殿下不可全而活之。 請施大逆不道之律。" 問郞洪樂純, 亦同聲以請。 尹東度曰: "誠如兩人之言矣。" 上强許之。 泰齊等, 仍令律官田相雨, 照律以不待時處斬爲啓。 大司諫李心源、掌令李之晦、請罪人孥戮之典, 上切責曰: "心源曾經春坊, 豈不靦顔? 罷職, 之晦遞差。 判義禁韓翼謩啓曰: "罪人旣結案, 請問指嗾。" 上大怒, 命罷翼謩職。 最後判府事鄭翬良入來曰: "臣全然不知, 故今始入來。 而如許凶人, 豈可一刻留置耶? 亟命處斬。"


  • 【태백산사고본】 68책 9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9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인사-임면(任免) / 변란-정변(政變)